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83강(렘32:16-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1. 2. 23:05

예레미야 강해 제183(32:16-2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121()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정당한 값을 주고 산 고향 밭의 매매증서를 자신이 생전에 사용할 수 없음을 슬퍼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어떠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고 있는가?(32:16-20)  

 

사촌 하나멜로부터 고향의 밭을 여호와의 뜻으로 알고 은 17세겔을 주고서 산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렇게 하도록 예언의 말씀을 주신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두 차례에 걸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은 그 기도의 전반부가 됩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여호와의 뜻이 과연 그러한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로 질문을 드리고 있는데 그것을 단도직입적으로 곧바로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 질문의 도입부가 참으로 길고도 조심스럽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생각이 다르며 자신은 종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그러한 자신의 인식을 먼저 신앙 고백하면서 감히 주인이신 여호와의 뜻을 구하고자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당장 유다 왕국의 역사가 어떻게 될 것이며 동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될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1)    지금 사촌 하나멜의 손에서 고향의 밭을 사도록 언질을 주셨으니 그로 미루어 보아 그 토지의 소유권을 다시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 말은 예루살렘과 고향의 산천이 이방 강대국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날이 속히 이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여호와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역사의 길이는 그것이 아닙니다. 인간역사의 태초부터 종말까지를 그 손에 쥐시고 한꺼번에 보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이십니다. 따라서 그 점을 선지자 예레미야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먼저 인지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가 그의 기도에 들어 있습니다(32:20).

3)    따라서 지금 사촌에게서 은을 주고 고향의 밭을 사고 있는 행위는 몇 십년이나 몇 백 년 후에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의 긴 역사와 관련이 되어 있는 상징적인 행위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선민 유대인들에게 발생하고 있는 역사의 흥망성쇠가 그들에게만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선지자 예레미야는 본문의 기도를 통하여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천만인과 인류의 모든 길을 주장하고 계신다고 예레미야가 진술하고 있습니다(32:18-19).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경험하고 있는 출애굽의 역사와 선민의 역사라는 것입니다”(32:20).

(3)  셋째로, 사람은 유한한 인생을 이 세상에서 살고 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그 창조의 능력을 영원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능력의 한계 안에서 이해를 하고자 할 뿐입니다;

1)    여호와께서 새로이 창조하시는 역사를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부디 창조주의 이름으로 동족들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의 방법이 제31장에서 새 언약에 대한 예언의 말씀으로 이미 선포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 보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2)    다만, 영원한 구원과 하나님 경외의 시대가 먼 훗날 이 땅에서 전개가 될 것이라는 사실만을 예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와 같은 일에 자신의 밭이 사용이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4)  넷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의 기도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여호와의 답변이 제32장 말미에 실려 있습니다. 참고로, 그 내용을 미리 여기에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방과 유다 성읍들과 산지의 성읍들과 저지대의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에 있는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2:40-44). 한마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사촌 하나멜로부터 고향의 밭을 사고 그 증서를 바룩에게 맡기게 하고 있는 그 모든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도들에게 주는 영원한 구원의 복과 관련하여 생각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내가 매매증서(the deed of purchase, NIV)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준 뒤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아뢰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32:16-1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내가 매매증서(the deed of purchase, NIV)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준 뒤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아뢰되”(32:16); 선지자 예레미야가 옥중에서 그를 방문한 사촌 하나멜로부터 고향의 밭을 사게 됩니다(32:8-12). 그는 증인들 앞에서 대금을 지불하고 매매증서를 작성하여 증인들의 도장까지 받고 있습니다. 증인들은 감옥의 뜰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율법의 규정에 따라 원만하게 매매가 이루어진 사실을 선포합니다. 그때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매매증서(the deed of purchase, NIV)를 자신이 간직하지 아니하고 그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젊은 서기관 바룩에게 맡깁니다(32:16a). 그 다음에 옥중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본문에서와 같은 기도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32:16b).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아뢰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32:17);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기도의 첫마디가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마음이 슬프다는 것입니다(32:17a). 그 의미는 무엇보다도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는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훗날 예레미야의 동족은 물론 온 세상 만민을 전부 구원하시는 새 역사를 창조하실 것인데(32:17b), 그것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보지를 못하고 눈을 감게 될 것이니 그것이 슬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기도의 이면에는 부디 자신을 이 세상에서의 목숨이 다하더라도 영생의 여호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여 그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원이 담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이시므로 예언하신 그대로 70년 후에 동포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인데 자신은 그때를 보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니 그것이 슬프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먼 훗날에는 새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마음으로  깨닫고 영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이 온 세상에 여호와의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새로운 시대가 발생할 것인데(31:31-34) 그것을 자신은 보지 못하고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 그것이 슬프다는 것입니다. ③셋째, 자신이 이번에 산 고향의 그 밭을 바룩에게 부탁하여 영구 보존할 것이니(32:14) 부디 그것을 동포들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32:15).  

둘째로,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32:18);

(1)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기도 가운데 두가지 사실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창조주 여호와께서 만민을 구원하겠다고 나서시는 그 길을 막아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악한 영들과 더불어 죄악을 범하고 있는 인간들의 유전적인 잘못에 대하여 완전한 징계를 행하시며 먼 훗날 그 주범인 악한 영들을 한꺼번에 도륙하신다는 것입니다.

(2)  참고로, 사도 바울의 발견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흘러 넘치고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4차원에 비추어 보면(3:18-19),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여호와의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은 다음과 같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①첫째,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신다는 넓이를 지니고 있습니다(3:16-17). ②둘째, 역사 가운데 반복이 되고 있는 그 모든 죄악에 대하여 일일이 처벌을 하시는 길이를 지니고 있습니다(65:17-18, 11:36).

(3)  ③셋째, 유전적으로 인류의 범죄를 조장하고 있는 근원 곧 악한 영들을 도말하심으로써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겠다는 것입니다(5:24, 8:2). 그것이 하나님 복음의 깊이입니다. ④넷째,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1:12-13).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높이입니다.

셋째로,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great in counsel, and mighty in work, KJV),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32:19);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대하여 네 가지로 나누어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성부, 성자, 성령님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나누어서 이해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가 있기에 그 점을 덧붙여 봅니다;

(1)  첫째, “주는 책략에 크시며”(32:19a)라고 하는 말은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 그 누구보다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경우의 수로 통찰하여 완벽한 계획을 세울 수가 있으므로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2)  둘째,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계획을 이 세상에서 온전히 성취하기 위하여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과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하신 분이 바로 성자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을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32:19b)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3)  셋째,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속과 인생의 길 그리고 세세한 활동을 감찰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32:19c)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넷째, 성령님과 교통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사람들의 선택과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복과 저주 그리고 생명과 사망으로 심판을 행하십니다(30:19-20). 그에 대한 언급이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32:19d)라고 하겠습니다.

넷째로,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miraculous signs, NIV)기사(wonders, NIV)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32:2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miraculous signs, NIV)기사(wonders, NIV)를 행하셨고”(32:20a);  

1)    사람은 시공간에 갇혀 있는 육신을 입고서 유한한 시간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경험과 사고력과 판단력이 모두 제한적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그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창조주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행하시는 일을 신비스러운 기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2)    그런데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신비와 기적을 두가지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그야말로 인간의 성취와 능력을 넘어서고 있는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이 발생하고 있다는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그것을 여기서는 기사’(奇事, wonders)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32:20ab). ②또 하나는, 그러한 기이한 여호와의 역사가 그대로 다른 모든 나라와 족속들에게 그대로 임할 수가 있다고 하는 측면에서 먼저 선민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이 일종의 표적’(表蹟, signs)입니다(32:20aa).

3)    예를 들면, 선민 유대인들에게 임하게 되는 나라의 멸망과 포로생활이 그러한 것입니다. 선민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죄악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진노하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그러한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와 같은 일이 예루살렘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동일한 죄악을 범하고 있는 모든 이방나라들에게 차례로 발생하게 됩니다(25:29). 그러므로 선민의 나라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은 이방인 나라들에게 있어서 그 자체 표적’(signs)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오늘까지도 이스라엘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32:20b);

1)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고향이 예루살렘에서 4km 북쪽에 있는 아나돗입니다(1:1). 그는 성군 요시야 13년인 주전 627년부터 유다 왕국이 망하는 때 곧 시드기야 왕 11년인 주전 586년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대언하고 있습니다(1:2-3). 그러므로 그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동족인 유대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이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예언의 말씀이므로 그 적용은 선민 유대인들의 장래에 국한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피조물인 모든 인류와 그들의 나라 그리고 그들의 환경이 되고 있는 모든 피조세계에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의미에서 그것은 유대 땅에서 발생하고 있는 하나님의 기인한 일인 하나의 기사’(wonders)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인류가 눈을 씻고 쳐다보고 그 의미를 깨달아야만 하는 하나님의 표적’(signs)입니다. 과연 이방나라와 그 백성들의 운명이 장차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러한 관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눈여겨 보아야만 합니다. 그러한 의미를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오늘까지도 이스라엘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32:20b)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3)    그 의미를 조금 더 살펴봅니다; ①첫째, 이스라엘 자손에게 발생하고 있는 일이 바로 모든 인류에게 발생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여호와의 역사가 그렇게 이방인들에게도 똑같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이름으로 불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32:20b). ②둘째,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때에는 주변의 이방나라부터 먼 나라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을 예언의 말씀으로 선포하고자 합니다. 그 작업이 유다 왕국이 멸망한 주전 586년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계속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조국인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나자 일부 권력자들에게 이끌려서 애굽 땅에 있는 유대인 난민촌으로 가게 됩니다(43:6-8). 그곳에서 그는 만국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43:9-51:64).

성경학자들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고향의 밭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레미야나 그와 함께 애굽으로 끌려가고 있는 바룩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43:6-7).

그렇다면 그것은 먼 훗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이방인들을 함께 구원하여 성도로 살아가게 할 때에 필요한 기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그때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될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고서 예레미야가 슬프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축복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대속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의 은혜를 깨닫고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