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81강(렘32:6-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1. 2. 02:38

예레미야 강해 제181(32:6-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119()

 

궁중의 시위대 감옥에 갇혀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느닷없이 고향의 밭을 사도록 만들고 있는 여호와의 뜻은 과연 무엇인가?(32:6-11)  

 

본문에서는 유다 왕국이 망하기 1년 전 선지자 예레미야가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 사촌 하나멜의 요청으로 고향 아나돗의 밭을 사게 되는 내용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유다 왕국의 전역을 짓밟고 이제 수도인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을 하고 있는 시점입니다(32:2). 그러한 때에 예루살렘성으로 피난하고 있는 사촌이 고향의 밭을 사라고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찾아오고 있습니다(32:8). 그것은 적군에게 점령을 당하고 있는 고향의 밭을 팔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발생할 것임을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미리 알려 주신 것입니다(32:6-7). 그 뜻을 예레미야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이 본문기록의 핵심적인 교훈입니다. 

(2)  둘째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사촌인 하나멜이 옥중으로 찾아와서 그 고향의 밭이 본래 예레미야의 부친의 소유이므로 차제에 기업을 물러가라고 종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여호와의 뜻을 깨닫고 있습니다(32:6-8). 그것은 아무 소리를 하지 말고 그 땅을 하나멜이 원하는 금액을 지불하고서 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순순히 은화 17세겔을 하나멜에게 지불하고 법적인 효력을 가지는 매매증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입니다(32:9-11).

(3)  셋째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멀지 않아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37:7-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용이 없는 땅을 여호와의 뜻으로 알고 기업을 무르는 형식으로 사고서 매매증서를 꾸미고 있습니다(32:8-11). 그 깊은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여호와께서 선민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그 땅을 영원히 대대로 지닐 수 있는 자는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지금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에 젖어서 이방인처럼 죄악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기업을 잃어버리고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기업은 이제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예레미야와 같은 자에게 기업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2)    둘째, 31장에서 새 언약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한 다음에 본문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새 언약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훗날의 성도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기업이 배분이 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일종의 예표라고 하겠습니다.

3)    셋째,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전쟁포로로 적국에 끌려가고 나면 가나안 땅의 소유권은 신바벨론의 황제에게 넘어가고 맙니다. 그 다음에는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그 소유권을 보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와서 땅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땅을 빌려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 땅을 사고 있는 이유는 그 소유권이 황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4)  넷째로, 또 하나 복음적인 맥락에서 본문에 대한 풀이를 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촌 하나멜의 가족이 고향 아나돗을 떠나 예루살렘성에서 피난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예루살렘 인근의 성읍에서 많은 난민들이 발생하여 예루살렘성으로 몰려들어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물가가 비싼 대 소비도시이므로 가지고 있는 돈이 모두 소비가 되고 맙니다. 살길이 막막합니다. 따라서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찾아가서 고향의 땅을 사는 조건으로 도와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생계가 어려워진 친척을 구하기 위하여 예레미야는 그가 원하는 은 17세겔을 주고서 당장 필요가 없는 그 땅을 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25:40의 내용과 합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예레미야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32:6-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레미야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32:6-7a);

1)    유다 왕 시드기야 10년 곧 주전 587년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궁중의 시위대의 뜰에 있는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32:5). 그때는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가 유다 왕국으로 다시 쳐들어와서 전국을 유린하면서 예루살렘성을 에워싸기 시작하는 때입니다(32:2). 한 마디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성에서 전쟁에 임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은 두가지의 견해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2)    첫째, 시드기야 왕과 주전파(主戰派) 신하들과 백성들은 작년처럼 애굽이 이끌고 있는 반() 바벨론 연합군이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를 배후에서 공격하여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37:5, 왕하25:1). 그리하면 전쟁은 유다 왕국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입니다(28:1-4).

3)    둘째,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견해는 다릅니다. 그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며 살았는데 그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여호와 앞에 회개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이번 전쟁에서 망국의 비극을 당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37:7-10, 24:8-10).

4)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번 전쟁으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하고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또 하나 그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촌인 하나멜이 예루살렘 왕궁 내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찾아와서 고향에 있는 밭을 사라고 요청을 한다는 것입니다(32:6-7a). 얼마 지나지 아니하면 전국의 토지가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의 소유로 바뀌고 말 것인데 도대체 그 밭을 사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요? 그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5)    여기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숙부인 살룸과 그의 아들인 하나멜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①첫째, 살룸은 보응이라는 뜻입니다. ②둘째, 하나멜은 하나님께서 긍휼하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 두가지의 의미를 연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번 전쟁을 통하여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그 백성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하십니다. 그것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죄악된 삶을 살아간 선민들에게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그 보응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 훗날 새 새 언약에 따라 그들의 자손들을 긍휼하게 여기시고 만민과 함께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한 새 언약이 발동이 된다는 사실을 유념하고서 성도들은 기업을 무를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2)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32:7b);

1)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대로 살아가는 죄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지 못하고 쫓겨나고 맙니다. 그 대신에 그 땅은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기업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물론 새로운 약속의 땅은 이 세상에서나 천국에서 성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으로 배분하여 주는 땅입니다.

2)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그 기업을 무를 수 있는 권리가 정당하게 주어집니다(32:7b). 반면에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인양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은 그 기업을 잃어버리고 쫓겨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12:31).

둘째로,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나에게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17세겔을 달아 주되”(32:8-9);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나에게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32:8a);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옥중에서 참으로 이상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받고 그 의미를 곰곰 생각하고 있는데 며칠이 지나지 아니하여 그 예언의 말씀 그대로 현실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고향 아나돗에 살고 있는 사촌 하나멜이 갑자기 왕궁 시위대의 뜰에 위치하고 있는 예레미야의 옥사를 방문하여 느닷없이 고향의 밭을 사라는 것입니다(32:8aa). 그 밭은 본래 예레미야의 부친의 것인데 경제적 이유로 동생 집안에 팔았으므로 지금까지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밭을 무를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는 예레미야가 그 권리를 행사하여 그 밭을 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32:8ab). 그것은 율법의 규정에 맞는 이야기인 줄은 몰라도 당시의 전쟁상황에 비추어보면 다음과 같이 전혀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2)    첫째, 신바벨론의 군대가 유다 왕국의 지방을 휩쓸고 이제는 수도인 예루살렘성을 에워싸고 있습니다(32:2). 그러므로 사촌 하나멜의 가족도 예루살렘 북쪽 4km에 있는 고향 아나돗을 떠나 지금 예루살렘성에 들어와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알기로는 이번의 전쟁으로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전국은 신바벨론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의 소유가 됩니다. 따라서 고향 아나돗의 밭은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그 소유권이 사라지고 말 것인데 그것을 율법의 규정에 따라 예레미야 자신에게 사라고 하니 그것은 억지인 것입니다.

3)    둘째, 선지자 예레미야는 사전에 여호와께서 사촌 하나멜이 찾아와서 고향의 밭을 사라고 요구할 것임을 예언하여 주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 뜻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여호와께서는 여호와신앙을 가지고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선지자 예레미야와 같은 성도들에게 앞으로 기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피난생활을 하면서 돈이 떨어져서 고생을 하고 있는 친척을 이번 기회에 기분 좋게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할 일입니다(25:40).

(2)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17세겔을 달아 주되”(32:8b-9);

1)    그 이상한 말도 안되는 일을 선지자 예레미야는 사전에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계셨으므로 그대로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32:8b). 따라서 사촌 하나멜이 요구하고 있은 금액 은 17세겔을 묵묵히 지불하고 있습니다.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 그 금액은 상당히 귀중합니다. 너나없이 가진 돈이 바닥이 나고 있는 실정이므로 그만큼 귀한 돈입니다.  

2)    오늘날의 금액으로 환산을 해보자면, ①은으로 1세겔이 4데나리온이며 ②1데나리온이 장정의 하루 품삯 곧 $100불 정도이므로 ③17세겔은 68일간의 품삯인데 그것은 $6,800불에 해당합니다. 당시에 노예의 값으로 따지자면, 장정은 은 30세겔이고 미성년자는 은 20세겔입니다(37:28, 21:32). 그러므로 전시상황임을 감안한다면, 17세겔은 미성년자 한 사람의 몸값에 해당합니다.

3)    물론 밭을 사는 것이므로 은 17세겔은 정당한 값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멀지 아니하여 적군에게 점령을 당하게 될 밭을 생돈을 주고 산다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뜻인 줄 알고서 그대로 순종하고 있는 예레미야의 태도가 돋보이고 있는 대목입니다.

셋째로,증서를 써서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법과 규례대로 봉인하고, 봉인하지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가지고”(32:10-11);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증서를 써서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법과 규례대로 봉인하고”(32:10-11a);

1)    여기서 증서는 두가지라고 하겠습니다; ①하나는 토지등기 또는 토지대장입니다. ②또 하나는, 매매증서입니다. 그것은 매매계약서와 지불에 대한 내용 그리고 증인들의 수결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증서를 전부 봉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내용을 도중에 함부로 고칠 수가 없도록 조치하는 한편 영구 보존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토지의 소유권은 권리의 변동이 없는 이상 그렇게 영구적인 것입니다.

2)    선지자 예레미야는 후 세대를 위하여 토지매매의 절차가 어떠한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고 증인을 세우고 있습니다. ②둘째, 증인들 앞에서 토지대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③셋째, 매매증서를 영구 보존할 수 있도록 봉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타임캡슐에 그 문서를 보관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전쟁 중이라고 하더라도 그 인봉이 된 증서를 비밀 장소에 묻어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항아리에 담아서 굴속에 넣어두든지 아니면 굴속의 땅에 문서가 든 항아리를 파묻어 두든지 하여 자손대대로 넘겨주고자 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3)    그렇게 매매증서를 영구 보관하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입니다.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므로 그 매매증서는 영원한 효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 증서만을 인봉하고 파묻어 주는데 그치지만 그것을 때가 되면 여호와께서 기억하시고 개봉하여 기업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그와 동일한 방법으로 성도들과 계약하고 있는 여호와의 언약을 인봉하고 영구 보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정경의 말씀과 새 언약의 말씀들이 그렇게 기록이 되어 항아리에 담겨서 영구보전이 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그것이 개봉이 되어서 여호와의 뜻을 온세상에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2)  봉인하지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가지고”(32:11b); 이 세상에서는 영구보존을 하도록 인봉하여 타임캡슐에 넣어 두는 문서가 있고, 또 하나는 봉인되지 아니한 문서를 만들어 당사자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필요한 경우에 그 문서를 저당 잡히고 돈을 융통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업 자체를 쉽게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활용하여 필요한 목돈을 급히 마련할 수는 있습니다. 유한한 인생을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는 그 기업을 저당 잡히고 돈을 융통해야만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절차까지 세심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역사속으로 사라지려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본문에서 그 땅은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와 같은 자에게 기업으로 주어질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은 중요합니다. 그들의 이름으로 이 세상의 기업이 배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천국에서도 12사도의 이름이 새 예루살렘성 12대문의 초석에 새겨져 있습니다(21:14).

그리고 끝까지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간 성도들은 천국에서 자신의 영원한 기업을 얻고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고 복음서에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22:28-30).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러한 영원한 기업을 얻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