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87강(렘32:36-4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1월 25일(주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어떠한 영원한 언약을 새 언약으로 선포하게 하시는가?(렘32:36-41)
본문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수많은 종족들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는가?(출19:4-6) 하는 점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알기 위하여 출애굽기 제19장의 관련구절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4-6). 간략하게 그 의미를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이 원하지 아니하였지만 애굽 사람들의 노예로 대대로 살아오고 있습니다(출1:8-11). 그들의 소원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과 예언의 말씀대로 자신들을 노예에서 해방을 시키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창15:13-16, 46:3-4, 48:21-22, 50:24). 애굽제국의 고센 땅에서 신도시 라암셋의 건설현장과 여러 군사시설의 건설공사에 인부로 동원이 되어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기도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출2:23-25).
(2) 둘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의 조상들에게 언약하시고 예언하신 그대로 그들을 출애굽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고자 하십니다(출3:7-8). 그 일을 위하여 모세를 하나님의 사자인 인도자로 삼으신 것입니다(출3:9-12).
(3) 셋째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 곧 언약의 백성인 선민으로 삼으시면서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분석해보면 선민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애굽과 같은 세상의 노예로 살고 있는 자신을 여호와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해방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출19:4-5).
2) 둘째,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소유인 여호와의 종의 의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출19:5).
3) 셋째,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나라로 그리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알지 못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백성들에게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그들에게, ①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고(창12:2-3, 14:18-24), ③그들을 멸망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려주며(창18:23-32), ③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라는 것입니다(창20:7, 17-18).
역사적으로 선민임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기대를 저버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지를 아니하고 맙니다. 여호와 대신에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에 젖어 이방인처럼 죄악을 범하며 살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선민의 신분과 이 세상의 기업을 빼앗고 마십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유대인들이 선민의 지위에서 쫓겨나고 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수많은 종족들 가운데 누구를 선택하여 제사장나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실 것인가요?
그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하고 있는 것이 예레미야 제31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새 언약’이며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렘32:36-41). 왜냐하면, ‘새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바로 그 옛날의 이스라엘 12지파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계7:4-8).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성은 하나님나라의 도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렘32:36-37). 그리고 그 영생의 나라에 이르게 한다는 뜻에서 ‘영원한 언약’이라는 용어를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렘32:40). 그 내용은 ‘새 언약’과 같은 것입니다(렘31:31-34).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렘32:36-37);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32:36);
1) 선지자 예레미야는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죄악을 범하여 살아가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말미암아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고 벌써 예언하고 있습니다(렘25:7-11, 6:13-15).
2) 그러므로 유다 왕 시드기야 때에 유대인들이 철옹성 예루살렘에서 끝까지 갈대아 군대의 포위공격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렘39:1-2). 여호와께서 전란 가운데 가뭄과 전염병이라는 재앙을 예루살렘성에 발생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시드기야 왕과 유다의 군사들이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는 것입니다(렘32:24, 36, 14:12).
3) 예루살렘성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함락이 되자 시드기야 왕이 친위대와 함께 도망을 치다가 사로잡히게 되고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왕하25:2-7). 느브갓네살 황제는 3년간이나 예루살렘성에게 항거를 한 유다 왕국을 미워하여 성을 완전히 불태우고 성벽을 붕괴시키며 그 주민들을 전부 바벨론 포로로 끌고 오라고 원정대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강력하게 명령합니다(렘39:8-10).
4) 그렇다면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예루살렘성은 훗날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렘32:36) 그 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음 구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렘32:37-41).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2)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렘32:37a); 본문에서는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가 무엇을 각각 말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그 다음에는 그들을 어떻게 모아 들이게 되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교훈과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노여워하십니다(렘32:33).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고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이며 제사장나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는데 도무지 그 언약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출19:6).
2) 둘째,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성전에 이방신상을 세우고 분향을 하는 것을 보고서 분하게 여기십니다(렘32:34). 오직 창조주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라고 십계명으로 강조하셨는데 감히 우상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히고 있는 것입니다(출20:3-5).
3) 셋째,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집집마다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는 것을 보고서 크게 분노하십니다(렘32:29, 35). 그에 따라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선민의 기업과 신분에서 쫓겨나고 마는 것입니다.
4) 그들을 이방 땅에서 모아 들인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두가지로 풀이가 됩니다; ①하나는,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페르시아의 고레스 황제가 칙령으로 해방을 시키고 원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짓고 살 수 있도록 조치를 해줍니다(렘25:12, 스1:1-4). 그에 따라 바벨론으르 끌려간 유대인들 가운데 1할 정도가 고토로 돌아와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스2:2-65).
5) ②또 하나는, 그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아니한 유대인들이 9할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의 시대에 유대인 교포로서 중근동과 유럽에 흩어져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이 훗날 기독교인들이 되어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다가 새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과연 둘 가운데 어느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3)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렘32:37b);
1) 당장 70년 후가 아니라 먼 훗날 만민 가운데 ‘새 언약’에 따라 대속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영접하고 그 제자로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성도들을 새로운 예루살렘성으로 인도하여 들이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렘32:37b)는 구절의 의미 때문입니다.
2)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주전 516년에 솔로몬성전의 4분의 1규모인 제2성전을 짓고 여호와신앙을 되살리고자 노력하지만 역시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지를 못하고 주후 70년에 다시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불타고 붕괴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고 하는 구절은 하나님나라의 새 예루살렘성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사65:17-18, 66:20).
둘째로,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렘32:38-3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렘32:38);
1) 출애굽기 제19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시내 산 언약을 참조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실천하고 그 언약을 지키는 백성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출19:5-6). 그러기 위해서는 선민들이 이방인들에게 여호와가 창조주이시며 모든 인생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이방인들의 죄의 용서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한편 중보의 기도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출19:6).
2) 그런데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은 주변의 이방인들을 미워하여 그들을 군사력으로 정복하기만을 원하고 있습니다(마5:43). 그 옛날 이스라엘제국을 다시 건설하는 것이 선민들의 꿈이며 그 일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계자인 메시아를 보내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선민의 나라를 모두 망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민의 자리에서 쫓아내시고 마십니다(렘32:28, 36). 그렇다면 이제 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될 수가 있는 것일까요?
(2)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렘32:39);
1) 예레미야 제31장 제33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 ‘새 언약’을 풀어서 절묘하게 기술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이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①첫째,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됩니다(엡4:3). ②둘째, 영생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영원한 구원의 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 제자로 한평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눅22:28-30, 행4:12).
2) 창세기 제22장을 참조하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고 있는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바치고자 합니다(창22:1-10). 그때 여호와께서는 급히 사자를 보내어 이삭의 목숨을 살리시면서 그 자리에서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바로 아브라함이라고 인정을 하십니다(창22:11-12). 그리고 아브라함의 여호와 경외의 신앙을 본받는 자에게 여호와의 복이 흘러 넘치게 된다는 사실을 선포하십니다(창22:16-18). 사도 바울의 설명과 같이 아브라함은 선민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여호와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믿음의 조상입니다(롬4:16). 그러므로 본문 역시 선민이 아니라 성도들의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이 땅에 심으리라”(렘32:40-41);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렘32:40a);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키고 여호와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십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진노와 재앙으로 그들을 망하게 하시고 그들을 떠나 버리십니다(렘6:28-30, 창6:3, 롬1:28).
2) 그러나 온세상에 흩어진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시 모아 예루살렘성으로 들이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때에는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고 영원한 복을 주며(렘32:40aa) 그 언약을 영원히 지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렘32:40ab). 그것은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국한이 되고 있는 구원의 말씀이 아닙니다.
3) ‘새 언약’에 따라 대속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성도들에게 발생하게 되는 영생의 구원을 미리 말하고 있는 대목인 것입니다.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님의 임재를 말하고 있는 ‘새 언약’을 여기서는 ‘영원한 언약’이라고 바꾸어서 말하고 있습니다(렘32:40ab).
(2)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32:40b);
1)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가장 큰 잘못은 여호와의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이 세상과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환언하면, 여호와의 말씀과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생각과 욕심을 쫓아 살아가며 세상적인 소원성취를 위하여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아간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2)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선민 이스라엘이 범한 그 잘못을 사람들이 되풀이하지 아니하고 제대로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 비결이 바로 제31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새 언약’의 깊은 내용입니다. 그것은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첫째, 대속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회개를 하는 사람 곧 성도에게는 여호와께서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3) ②둘째, 칭의의 은혜를 입은 성도의 심령속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그리하면 성령님께서 내주하여 성도가 복음을 전파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를 하십니다(요14:16-20, 26, 행1:8, 롬8:2-4). 그와 같은 내용을 여기서는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32:40b)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이 땅에 심으리라”(렘32:41);
1) 영생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성도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원한 구원이며 영생의 복입니다. 그 복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가 될 때에 이 세상에 임하게 되는 새 예루살렘성으로 성도들이 부활하여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성에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양 그리스도의 보좌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계21:22).
2) 주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는 새로운 이스라엘 12지파 곧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성으로 입장을 할 때에는(계7:4-8, 21:27) 천국의 잔치와 기쁨이 함께하는 날입니다(렘32:41a). 그러한 새 예루살렘성이 마치 주님의 신부처럼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서 이 세상에 강림을 하게 됩니다(계21:2). 그것을 여기서는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이 땅에 심으리라”(렘32:41b)고 예언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선지자의 글에 벌써 대속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오심 그리고 새 예루살렘성의 강림이 예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훗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24:44-45).
구약의 선지자들이 소망 가운데 예언한 대속자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참으로 복이 많은 자들입니다. 선민의 자리에서 쫓겨난 이스라엘 12지파를 대신하여 하나님나라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성으로 입장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큰 복이며 영원한 구원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살아 생전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끝까지 신실하게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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