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67강(렘30:10-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1월 5일(월)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훗날 그 잘못에 대하여 어떠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구원을 베풀겠다고 말씀하시는가?(렘30:10-13)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참으로 그 풀이가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훗날 그리스도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으로 전파하게 되면 야곱 족속이 이 세상의 종에서 벗어나서 여호와의 종인 이스라엘이 되고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되어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렘30:10). 그와 같은 역사섭리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는 ‘새 언약’과 같은 맥락입니다(렘31:31-34).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 세상의 이방나라들을 심판하실 때에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의 종으로 살아간 유대인들의 잘못에 대하여 ‘공의의 법’에 따라 엄중하게 징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렘30:11). 그것은 구원과 징계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출32:34). 도대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문장일까요?
(2)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세상과 짝하며 살아간 유대인들의 죄악은 심각하며 그것을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고칠 수도 없으며 인간들의 법정에서는 재판을 행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렘30:12-13).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방인처럼 세상적인 성공과 소원성취만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을 치유하고 고쳐서 여호와의 종으로 삼을 수가 있을까요? 그 특별한 비결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정답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한 위격(位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성육신하셔서 친히 만민의 죄 사함을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요1:14, 29).
그리스도의 피 흘림의 제사가 자신의 죄악을 속하기 위한 속죄의 제사라는 사실을 알고 진심으로 회개를 하는 성도들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가 성도들에게 가능하게 됩니다(요14:16-17, 눅24:49, 행2:1-4).
그때부터 성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적으로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요14:18-20, 행1:8, 롬8:1-4). 그것이 유일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비결입니다. 그와 같은 ‘새 언약’의 시대를 염두에 둘 때에(렘31:31-34) 비로소 본문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를 시작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나의 종)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이 세상에서)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렘30:1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나의 종)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렘30:10a);
1) 본문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이방인의 땅으로 가서 살게 되는 야곱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구원의 말씀입니다. 사실 그 말씀은 창세기 제28장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 벧엘의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환상으로 야곱을 만나시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동시에 본문은 야곱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고 있는 여호와의 구원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 구원의 말씀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고찰을 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집에서 쌍둥이 형 에서의 장자의 지위를 탐내고 있습니다(창25:29-34, 27:12-30). 함께 어머니 리브가의 모태에서 조성이 되었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서는 에서가 먼저입니다(창25:24-25). 고대 가부장 사회이므로 장남인 에서가 아버지 이삭의 족장의 지위와 모든 재산을 상속하게 되는 차기 족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형 에서의 발목을 잡고 함께 태어난 야곱 자신은 차남이 되어 장자의 특혜를 하나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창25:26). 쌍둥이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억울한 운명인지 모릅니다. 따라서 야곱은 여호와를 믿는 어머니의 기도 처소인 장막에서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창25:27-28).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족장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운명으로 바꾸어 달라는 것입니다.
3) 둘째, 야곱의 기도가 고대 가부장 사회에서 과연 실현이 될 수가 있을까요? 인간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것이 가능합니다(렘30:10a). 그 사실을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창세기 제25-50장에 실려 있는 야곱의 일대기입니다. 야곱이 여호와께서 주신 새 이름 ‘이스라엘’이 되어 남은 인생을 신실하게 여호와의 종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되자 가나안 땅의 중심도시인 세겜 성까지 정복하고 넓은 초원을 지배하는 대 족장 이스라엘이 됩니다(창32:28-29, 35:9-13, 37:12-17, 48:22). 그리고 흉년을 피해 애굽에 들어가서는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게 되며 특히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사랑하는 아들 요셉과 여러 아들들에게 여호와의 신앙이 무엇인가를 눈으로 똑똑하게 보여주게 됩니다(창47:29-31, 49:1-33). 여호와의 종 이스라엘의 믿음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에게 계승이 되고 있음을 창세기 제50장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창50:12-14, 17-26).
4) 야곱이 세상적인 방법과 꾀로써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고자 할 때에는 아버지의 집에서 이방 땅으로 쫓겨나 라반의 집에서 고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의 이름 ‘이스라엘’로 살아가게 되자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바꾸며 온세상에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을 전하고 보여주는 새로운 인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종이 된 야곱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렘30:10aa). 그 내용은 이방 땅에서 노예의 멍에를 메고 고통 가운데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종으로 이제부터 신실하게 살아가겠다고 결단을 한다면,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렘30:10ab)라는 여호와의 확실한 구원의 약속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2)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이 세상에서)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렘30:10b);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갔기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선민의 지위를 잃어버린 채 이방인들의 땅에 흩어져서 고난의 세월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들의 잘못과 죄악을 깨닫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고자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구원의 언약이 그들에게 임하게 됩니다(렘30:10b).
2) 더 이상 세상의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뜻을 실천하는 성도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대속의 주님께서 영적으로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영이 성령님으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고 계십니다(요14:16-20). 따라서 신실한 성도의 복음전파의 삶에 이 세상 어떤 피조물이라도 장애가 될 수가 없습니다(렘30:10b). 그와 같은 의미를 훗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둘째로,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렘30:11);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렘30:11a);
1) 그 옛날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벧엘의 꿈 가운데서 주신 약속의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창세기 제12장에서 아브람에게 주신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거쳐서 야곱에게 승계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2)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시내 산 앞에서 계승하고 있습니다(출19:4-6, 24:3-8).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제멋대로 세상의 종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선민의 지위를 잃어버린 그들이 이방인의 땅에 끌려가서 세상의 포로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3) 이제는 선민과 이방인의 구별이 사라진 세상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새로운 여호와의 종인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의미는 대속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남은 인생을 여호와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모든 사람을 성도로 삼아 구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을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렘30:11a)는 구절이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렘30:11b);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자 하는 성도들의 앞길을 이 세상의 권력이 가로막게 되면 그 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될까요? 본문에서 한마디로,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렘30:11b)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적(敵)그리스도와 성도를 핍박하는 이방인들의 나라는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자는 누구나 여호와의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렘30:11c);
1) 심판과 구원과의 관계가 다시 한번 조명이 되고 있습니다.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그 때문에 의인으로 간주가 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성령님으로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영적인 삶이 전개가 됩니다(롬8:1-4). 그 모든 작업은 성도들을 복음사역의 일꾼으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마28:18-20, 눅24:44-49, 행1:8, 2:1-11).
2) 그런데 성도들이 끝까지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지 아니하게 되면 그 죄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치리(治理)하실까요? 그 대목에 대한 서술이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렘30:11c)는 것입니다.
3) 잘못을 범한 종은 주님 앞에 죄인으로 다시 서야만 합니다. 그 잘못에 대한 징계를 받아 들이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다시 올바른 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간구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지역사회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에 대하여 하나같이 사죄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합니다. 그 모든 절차를 전부 생략하고 무조건 용서하여 준다고 하는 그러한 값싼 해석은 삭개오의 회개의 장면에 비추어보면 거짓이라고 하겠습니다(눅19:7-10).
셋째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렘30:12-1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렘30:12);
1) 사람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와 육체적인 부상을 온전히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고치고 치유할 수가 있을까요? 현대의 첨단적인 과학기술과 의료기술을 가지고도 그것은 여전히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만이 피조물인 사람을 온전히 고치고 치료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물주가 아닌데 어떻게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온전히 치유하고 구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2)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과 몸을 치료하고 있는 상담자나 의사들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한 다음에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정직하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으로 부디 심신(心身)이 온전하게 치유가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상책(上策, the best policy)인 것입니다.
(2)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렘30:13);
1) 영과 육이 하나가 되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굉장히 특이한 존재입니다(창2:7, 전3:20-21). 육신적인 삶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법정에서 유죄와 무죄를 따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정의의 개념에 의한 심판의 제도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법정에서 다룰 수가 없습니다. 정의의 개념으로 사람을 온전히 치유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렘30:13).
2) 사람의 영혼은 영생과 관련이 되어 있는 존재이므로 하나님이 법정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창조주의 공의의 법칙에 따라 멸망의 심판이냐 아니면 구원의 대상이냐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가 무엇인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인생으로 보여 주십니다(사11:3-5). 그 진리를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생각나고 깨닫도록 역사하십니다(요14:17, 26). 그것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러한 내용을 제31장에서 ‘새 언약’으로 제시하고자 하며 그 전(前) 단계로서 제30장에서는 본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부자이며 족장인 아버지 데라가 하란 땅에 머물면서 더 이상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창11:26, 31-32).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데라의 장남인 아브람에게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로 살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창12:1-3, 20:7).
그 명령에 순종하여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의 막대한 재산의 상속을 포기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창12:4-5).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 아브라함에게 개인적으로 여호와의 언약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기록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의 언약이 그의 가문 가운데 특히 이삭과 야곱에게 승계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에서는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이 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여호와의 언약을 시내 산 앞에서 민족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출19:4-6, 24:3-8).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선지서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게 됨으로써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영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선민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야곱이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간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들과 세상사람들이 누구나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그들에게 여호와의 구원의 축복이 함께하게 된다는 복음을 벌써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새 언약’에 대하여 뒤이어 제31장에서 기술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본문의 내용을 음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호와 하나님의 깊은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신실하게 복음사역에 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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