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66강(렘30:4-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1월 4일(주일)
여호와께서 특별히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기록하도록 지시하시는 두번째 예언의 내용은 무엇인가?(렘30:4-9)
본문에 들어오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할 날이 오리니”(렘30:3)라고 예언하시면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기록하도록 지시하십니다(렘30:2). 그 예언의 말씀 가운데 뚜렷하게 엿볼 수 있는 세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1) 첫째,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여호와의 백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은 세상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2) 둘째,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처럼 선민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왕국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세상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도록 역사를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
(3) 셋째, 그러나 그들이 쫓겨 가서 살고 있는 그 모든 땅에서 새로운 이스라엘과 유다를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섭리는 단순하게 이스라엘과 유다를 회복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때에 이 세상에서 선민의 지위를 누리고 있 있는 백성들이 모두 사라진 것으로 기록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렘31:32).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자손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한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2) 또 하나는,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다시 선민의 지위를 부여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구원의 해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 잘못된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완전한 치유가 없으면 인류의 타락은 다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훗날 이스라엘과 유다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다시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고 말 것입니다.
2) 그렇게 되면 다시 선민의 나라가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할 것이며 나중에는 또다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는 역사가 반복이 될 따름입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3)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반복이 아니라 잘못된 순환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온전하게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하셔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31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새 언약’의 발동입니다(렘31:31-34).
위와 같은 생각들을 염두에 두고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선민 출신인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이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종말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렘30:4-5). 애초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그 말씀을 실천하는 선민에게는 구원이, 창조주 여호와를 모르고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세상적인 이익과 탐욕을 추구하고 있는 이방인들에게는 멸망이 주어지도록 되어 있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선민들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모두가 아기를 낳는 산모의 고통 가운데 울부짖게 되는 것입니다(렘30:6-7a).
(2)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환난에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렘30:7b). 그것은 창세기 제32장과 제35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바와 같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창32:27-29, 35:10-13). 여호와께서 주시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세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는 그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요?(렘30:8-9a)
(3) 셋째로, 그 완전한 구원의 방법이 이 세상에 오시는 새로운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를 온전히 섬기는 것입니다(렘30:9b).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일 뿐만 아니라(눅23:38, 요19:19-20) 세상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고자 결심하는 모든 성도들의 왕이십니다(마28:18). 그러므로 성도들이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영의 능력이 필요합니다(마28:19-20, 눅24:49, 요14:16-20, 행1:8).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 일을 하고자 하면 다시 과거의 유대인들처럼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영을 성도들에게 임재하게 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시는 시대를 시작하십니다(행2:1-4). 그것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새 언약’으로 은근히 말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렘31:31-34).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무서워 떠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렘30:4-5);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렘30:4);
1) 여호와께서는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선민의 나라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하고 그 백성인 이스라엘 10지파가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선민의 족보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왕하17:1-6).
2) 그리고 앗수르제국의 침략으로부터 겨우 살아 남은 다윗왕조의 선민 유대인들마저 여호와신앙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들처럼 타락하자 여호와께서는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유대인들로부터 선민의 지위를 박탈하고자 하십니다(렘7:11-16, 31:32).
3) 이 세상의 선민의 나라가 모두 이방인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이방 땅에서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었으니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제 명확하게 다시 말씀하시고자 하십니다(렘30:4).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무서워 떠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렘30:5a);
1)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우리가’(렘30:5aa)라고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표현하십니다. 그것은 삼위일체(三位一體, three in one) 하나님이심을 은근히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시는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도들이 육신적인 탐욕을 이루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소원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내주하여 능력을 공급하여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존재가(엡4:6) ‘새 언약’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시기 때문에 그 사실을 벌서 시사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 앞에 그 옛날 애굽제국의 바로와 신하들이 벌벌 떨고 있습니다. 특히 10번째의 재앙이 유월절 밤에 애굽 땅에 임하게 되자 바로의 장자는 물론 애굽의 모든 귀족들의 장자와 일반백성들의 장남까지 전부 떼죽음을 당하고 맙니다(출12:29-30). 가축의 초태생까지 죽고 맙니다. 그날 밤에 애굽인들의 집에서는 줄초상이 나서 통곡소리가 애굽제국의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워서 먹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에는 죽은 자가 한사람도 없습니다(출12:6-14).
3) 유월절 어린양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나면 이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구별하여 유월절 죽음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선민의 은혜가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두가 죽음의 공포 앞에 노출이 되어 무서워 떨 따름입니다(렘30:5ab).
(3)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렘30:5b); 두려움은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 평안함은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누구나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영벌(永罰, the eternal punishment)로 들어가기 때문에 세상의 종말을 바라보면서 두려워서 떨 따름입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백성으로 선택이 된 선민들은 여호와의 종으로 한평생 신실하게 그 말씀을 청종하고 실천하면 이 땅에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기업을 얻고 영생의 기업을 천국에서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고난과 여호와의 역사심판 앞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민인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종으로 살지를 아니하고 세상의 종이 되어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조국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평안함을 잃어버리고 두려워 떨 따름입니다(렘30:5b).
둘째로,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 슬프다 그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날은 야곱의 환난의 날이 되리로다”(렘30:6-7a);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렘30:6);
1) 창세기 제3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마귀의 화신인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먼저 따먹은 자는 여자인 하와입니다. 아내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 먹은 자가 아담입니다. 두 사람의 잘못을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판결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주범인 하와에게는 남편을 섬기고 자녀를 생산하는 산고(産苦)의 고통이 더해지고 있습니다(창3:16). ②반면에 가장(家長)인 아담에게는 평생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박토(薄土)에서 농사를 짓는 고통의 벌을 받게 됩니다(창3:17-19).
2)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모두 보전하고 있는 아담은 여호와의 종인 선민입니다(창5:3). 그런데 세상적인 탐욕 때문에 선악과의 유혹에 완전히 빠져버린 하와는 이방인과 같습니다. 마치 그 옛날의 하와처럼 마지막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인처럼 살아가게 되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그 나라가 망하고 망국의 백성이 되고 맙니다. 이제 이방인의 땅에서 포로로 살아가게 되는 유대인들은 아담에게서 엿볼 수 있는 선민의 형상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것은 가장(家長)인 아담이 지니고 있는 특권 곧 산고(産苦)에서 제외가 되는 선민의 특혜를 잃어버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선민의 지위를 잃어버린 유대인들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여호와 앞에 산고에 시달리는 산모처럼 겁에 질려서 벌벌 떨고 있을 따름입니다?(렘30:6).
(2) “슬프다 그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날은 야곱의 환난의 날이 되리로다”(렘30:7a);
1) 다윗와 솔로몬의 이스라엘제국이 르호보암 왕 2년에 남과 북으로 쪼개어집니다.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성립이 되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소속이 됩니다. 그리고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에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속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그래도 종교개혁을 몇 차례 실시하면서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나름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은 남조 유다 왕국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앗수르제국의 침략으로부터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멸망을 당하도록 버려 두었지만 남조 유다 왕국은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왕하19:34-35).
2) 그러나 여호야김 왕과 시드기야 왕 때에 이르러 유다 왕국은 완전히 그 옛날 이스라엘 왕국처럼 변하고 맙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타락하여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죄악을 심하게 범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철저하게 망하고 유대인들이 선민의 지위를 상실하며 이방인들의 포로로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렘7:12-15). 그와 같은 미래를 바라보면서 여호와께서는 “슬프다 그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날은 야곱의 환난의 날이 되리로다”(렘30:7a)고 여기서 벌써 애도(哀悼)를 표하신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그러나 그가(야곱이)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렘30:7b-8);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나 그가(야곱이)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렘30:7b);
1) 개인적으로 야곱은 죽음의 위기를 두차례나 맞이하게 됩니다; ①한번은 장인 라반의 양을 치다가 양떼를 몰고서 야반도주를 한 때입니다(창31:17-22). ②또 한번은 얍복 시냇가에서 숙적(宿敵)인 형 에서를 만났을 때입니다(창32:6-7). 그 두번의 위기를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벗어나게 됩니다. 먼저 야곱을 치려고 뒤쫓아온 라반에게 여호와께서는 꿈에 나타나셔서 가부간 야곱에게 시비를 걸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창31:24). 만약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게 되면 라반을 죽이시겠다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그 결과 길르앗 산에서 라반은 서로 침범하지 말자고 경계를 정하고 평화적으로 헤어지게 됩니다(창31:52-55). 부하 400명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는 숙적 에서를 만나게 되는 야곱은 초주검이 되고 있습니다. 얍복 시냇가에서 밤새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사자를 보내어 씨름을 시키면서 야곱의 이름을 세상을 이기는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십니다(창32:27-31, 35:9-13). 그 새 이름 새로운 신분 때문에 야곱은 숙적 에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창33:1-4, 15-17).
2) 생각해보면, ‘야곱’이란 이름은 세상적인 지혜와 꾀로 한평생을 살면서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형 에서의 발목을 잡고 자신이 먼저 세상에 태어나서 장자가 되고 차기 족장이 되겠다고 하는 세상적인 욕심을 말하고 있습니다(창25:22, 26). 그러나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야곱의 꾀를 버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 세상을 이기고 자신의 운명을 죽음에서 구원으로 바꾼다는 뜻입니다. 그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의 뜻을 되살려서 야곱 족속이 마침내 여호와의 종인 ‘이스라엘’로 살아가고자 결단을 하게 되면 여호와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렘30:7b).
(2)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렘30:8);
1) 선민 유대인들은 시드기야 왕 때에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하다가 패망하게 됩니다. 전란에서 살아 남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쇠 멍에를 메고서 바벨론의 황제를 섬기는 노예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렘28:14). 멍에에는 목줄이 감겨 있습니다(렘27:2-6). 바벨론 사람들이 그 목줄을 쥐고서 유대인 포로들을 가축처럼 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언제 그 쇠 멍에와 목줄이 풀리고 해방을 맞이하게 될까요? 역사적으로는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이 페르시아의 고레스 황제에 의하여 끝나게 됩니다(렘25:11-12, 스1:1-4). 자유를 얻은 유대인들의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제2성전을 건축하고 다시 속죄의 제사를 드리며 여호와를 섬기고자 합니다(스6:13-22). 그러나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다시는 재건이 되지를 못하고 차례로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여전히 세상제국의 종 노릇을 하며 이방인들을 섬기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렘30:8b).
3) 그렇다면 언제 세상제국의 종살이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게 될까요?(렘30:8a) 그것은 마태복음 제1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해답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넷째로,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렘30:9);
(1) 제2성전 시대의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능력으로 세상제국의 지배를 벗어나고 그 옛날 다윗에게 주신 여호와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이스라엘의 제국을 재건하는 것이 그들의 꿈입니다. 그 일은 약소민족인 유대인들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위임 받은 메시아가 유대인사회에 오셔서 그 일을 성취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환언하면, 메시아가 세상제국을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왕으로 다스리는 것을 그들이 희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메시아는 다윗의 왕가에서 탄생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 아닙니다. 의붓아버지 목수 요셉이 다윗의 왕손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은 그 혈통이 아니십니다(마1:2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버지이시고 어머니는 아론의 후손인 마리아입니다(눅1:5, 35-38).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의 한 위격(位格)이시므로 피조물인 다윗의 자손이 아니며 만물보다 먼저 계신 창조주이십니다(출3:14, 요1:1-4).
(3) 그러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다윗왕의 깨달음의 시와 세례 요한의 증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그리스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시110:1-2),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요1:15).
(4) 요컨대, 다윗 왕의 주인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렘30:9)는 말씀의 의미는 유대인들이 다시 그 옛날의 다윗 왕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앞으로 성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날 것인데 그 가운데 새로운 이스라엘로 불리는 유대인들이 속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렘30:9)는 말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종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의미를 말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것은 선민의 부활이 아니라 성도의 탄생을 의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에 따라 이제는 선민우월사상이나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을 선민들이 독점하는 사상은 종말을 고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여전히 자신들의 세상적인 욕심을 이루고자 세상의 종으로 살아가는 타락한 인간들의 행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만민을 구원하여 다 함께 구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모두들 그러한 신실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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