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51강(렘27:9-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0. 17. 23:42

예레미야 강해 제151(27:9-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019()

 

여호와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신바벨론제국에게 저항을 하는 나라와 스스로 항복을 하는 나라를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달리 처우하겠다고 말씀하시는가?(27:9-11)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 왕 시드기야와 주변의 5왕국에서 온 사신들에게 거짓선지자의 거짓 예언을 듣고 오판하여 왕국의 멸망을 초래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27:9-11). 자세한 내용을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선민 유대인들에게는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이방인의 왕국에는 그와 비슷한 복술가, 꿈꾸는 자, 술사, 요술자 등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같이 반(, anti-) 바벨론 전선을 형성하여 대항을 한다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를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더라도 그 말을 믿어서는 안됩니다(27:9). 왜냐하면,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뜻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그들의 거짓말을 따르게 되면 세가지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27:10); ①첫째, 외국으로 피난을 가야만 합니다. ②둘째, 전쟁포로가 되고 맙니다. ③셋째, 나라와 가문이 모두 망하고 맙니다.

(3)  셋째로, 마지막 수단이지만 속국의 멍에를 메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라가 망하지 아니하고 살아남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27:11a). 그것은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항복을 하면 조공만 바치고 자신들의 기업을 일구며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27:11b). 그 점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보증을 하십니다(27:11c).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너희는 너희 선지자복술가꿈꾸는 자술사요술자가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너희는 듣지 말라”(27: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너희는 너희 선지자복술가꿈꾸는 자술사요술자가 이르기를”(27:9a); 여호와께서는 거짓선지자처럼 복술가, 꿈꾸는 자, 술사, 요술사가 백성들의 판단력을 흐리고 미혹할 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는 먼저 복술가, 꿈꾸는 자, 술사, 요술사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첫째, 복술가(卜術家)는 점을 치는 사람입니다. 점을 치더라도 그 점괘를 해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무엇에 의존하여 점괘를 풀이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통계적인 자료를 염두에 두고서 풀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점괘를 뽑는 것 자체는 신비적인 요소입니다. 우연이거나 아니면 영적인 힘에 의하여 선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행과 주관적인 해석에 의존하고 있는 점술에 대해서는 백성들을 미혹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둘째, 꿈꾸는 자는 몽중(夢中, 잠자는 동안)의 꿈이나 환상을 의지하여 현실문제에 대한 해법을 얻어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잠자는 동안에 꾸는 꿈은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에 속하는 신비적인 것입니다. 환상도 그러한 것입니다. 따라서 전적으로 꿈이나 환상에 의존하여 현실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주관적이며 비논리적인 것입니다. 물론 답답한 현실을 뛰어넘게 하는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관적인 편견이 심하고 현실을 도피하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이 되고 있으므로 그만큼 부작용이 심한 것입니다. 더구나 의도적으로 꿈을 빙자하여 거짓과 사기행위를 할 때에는 그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3)    셋째, 고대사회에서 술사(術士)는 일종의 기술자입니다. 흔히 술법을 구사한다고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요술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기술자에 해당하는 술사는 오히려 과학자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천문학적인 지식 또는 물리적, 화학적인 지식을 사용하여 신비를 풀고자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전체의 몇 %를 알고 있으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영역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겸손한 과학정신이 아니라 모르는 영역을 마치 아는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러한 술사는 혹세무민에 능하기 때문입니다.

4)    넷째, 요술사(妖術師)는 눈속임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인지능력과 오감에는 일종의 사각지대(死角地帶)가 있습니다. 그 점에 착안하여 교묘한 장치를 마련하고 눈속임에 나서는 것입니다. 한갓 오락거리로 삼으면 그 나름대로 삶의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러나 그 기술을 사용하여 남을 전문적으로 속이고자 나서면 참으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권력자가 요술사를 너무 의존하게 되면 요행을 기대하면서 잘못 정책결정을 하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2)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너희는 듣지 말라”(27:9b);

1)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위탁하시는 말씀만을 신실하게 사람들에게 대언하면 됩니다. 그런데 거짓선지자는 그것이 아닙니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지어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예언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므로 자신들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복술가, 꿈꾸는 자, 술사, 요술사 등에게 쉽게 속아 넘어 가듯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2)    그러나 그것이 엄청난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벌써 진짜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너희는 듣지 말라”(27:9b)고 경고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냐와 같은 거짓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와 전투를 벌일 경우 그 옛날 히스기야 왕 때처럼(왕하19:34-35) 승리를 주신다고 하는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내어 증거하게 하십니다(28:1-17).

둘째로,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 너희가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내가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망하게 하느니라”(27:10);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27:10a);

1)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3:32)고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첫째, 거짓선지자는 거짓 꿈을 가지고 예언활동을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꿈의 해석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헛된 꿈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거짓 예언입니다.

3)    둘째, 거짓선지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의 뜻에서 벗어나는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셋째, 인간의 자만심은 헛된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겸손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며 특히 선민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부추기고 있는 말씀은 거짓선지자의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5)    넷째,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지 말고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뜻을 선포하지 아니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의 오만한 말씀선포는 구원을 얻는 유익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2)  너희가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내가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망하게 하느니라”(27:10b); 거짓선지자의 거짓 예언을 선호하여 그것을 선택하여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여호와의 진노로 다음 세가지 재앙을 만나게 된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    첫째, 전쟁이 곧 발생하게 될 것이므로 많은 백성들이 미리 외국으로 멀리 피난길에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2)    둘째, 피난을 가지 못한 백성들은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전쟁포로가 되어 이방 땅으로 끌려가게 되고 맙니다.

3)    셋째, 조국이 망하고 자신들의 기업이 모두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그러나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27:11);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나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27:11a); 멍에를 메고 강대국의 왕을 섬기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첫째가 아니라 둘째의 경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전쟁에서 패하여 포로로 끌려가서 그 나라의 왕을 섬기는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망국의 백성으로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가축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그 목에 사람의 종이라고 하는 멍에가 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이 그 목줄을 당기면 소나 말처럼 그 명령대로 반드시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27:2). 그러하지 아니하면 채찍질을 당하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둘째, 전쟁을 하기 전에 스스로 항복을 함으로써 강대국의 왕을 섬기는 속국의 멍에를 자진하여 메고서 살아가는 것입니다(27:11). 자발적으로 항복을 함으로써 나라의 패망을 방지하고 있으므로 속국의 백성이 곧바로 종주국의 전쟁포로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농사를 지어서 조공을 바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속국의 백성이라는 멍에는 메어져 있지만 그 목줄까지 메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27:2, 11).  

(2)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27:11b); 전운(戰雲, 전쟁의 짙은 구름)이 감도는 때가 되면 국내적으로 주전파(主戰派)와 주화파(主和派)의 의견이 대립이 됩니다;

1)    주전파는 항복을 하여 적에게 목숨을 내맡기는 것보다는 싸워서 결판을 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전쟁의 승패라고 하는 것은 마치 축구공과 같아서 전투를 해보아야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도 사나이 답게 싸우다가 죽는 것이니 비겁하게 사는 것보다는 떳떳하다는 논리입니다. 그것이 투지를 불러 일으키며 나름대로 호소력이 있습니다.

2)    주화파는 전쟁으로 인한 나라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화친을 청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입니다. 상대국이 항복을 받아 주고 조공을 요구하면 그 조건에 따라 상국으로 모시고 조공을 바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영원한 강대국이 없으므로 상대국의 힘이 약해지게 되면 그때 대국의 내정간섭(內政干涉)에서 벗어나면 된다고 하는 논리입니다.

3)    그런데 문제는 항복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자 나서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한 우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27:11b)고 말씀하십니다.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하지 말고 먼저 화친을 청하고 항복을 하게 되면 유다 왕국을 보전하게 해주겠다고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의 말씀이신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구절이 뒤따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을 추종하게 되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도 망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국이 거짓선지자의 말을 듣고 정책결정을 하게 되면 반드시 멸망시켜버리고 말겠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사는 길은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하지 말고 화친을 청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게 되면 여호와께서 유다 왕국을 멸망시켜버리겠다고 하시는 말씀이 벌써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또 하나는, 전운이 감돌고 있으므로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 뜻을 물어야만 합니다. 그 전쟁은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기에 발생하고 있는 여호와의 진노이며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멸망의 심판을 받기 전에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간절하게 회개를 하면서 구원을 호소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완벽하게 국난을 예방하고 나라와 백성들이 사는 방법입니다(26:12-13, 3:1-10).  

강대국에게 화친을 청하고 스스로 항복을 하는 것보다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화목을 청하고 스스로 항복을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대속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5:10-11).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 점을 명심하고서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피시는 현명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