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37강(렘25: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0. 6. 09:11

예레미야 강해 제137(25: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10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야김 왕 4년에 선민 유대인들에게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의 내용이 어떠한가?(25:1-7)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제사장 성읍 아나돗이 있습니다(21:4, 17-19). 그곳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인 예레미야가 주전 627년 곧 성군(聖君, 거룩한 군주) 요시야 통치 제13년에 여호와의 말씀의 위탁을 받아 선지자활동을 시작합니다(1:1-2). 그가 활발하게 선지자활동을 한 시대는 성군 요시야의 아들들인 유다 왕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때라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1:3).

그러나 한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서 성군으로 알려진 요시야 시대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어떠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군으로 불리는 요시야에 대해서는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23:25)고 역사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성군의 시대에 선지자가 할 일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문에 대하여 본문에서 명쾌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말하여 이르되,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23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25:1-3).

한마디로, 요시야 왕 시절에도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일한 여호와의 말씀을 선민 유대인들에게 대언하였지만 그때나 지금 여호야김 왕의 시대에 있어서나 유대인들이 한결같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성군 요시야 시대나 악한 왕 여호야김 왕의 시대에 있어서나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민 유대인들이 동일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질문이 필요합니다; ①첫째, 신정국가의 왕이 백성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종교개혁에는 어떠한 한계가 있는 것일까요? ②둘째, 그 한계를 뛰어넘자면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일까요? ③셋째,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서 본문 제4-7절에 그 말씀의 요지가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것이 위의 질문에 대하여 어떠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신정국가의 왕이 백성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종교개혁에는 어떠한 한계가 있는 것일까요?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에는 두가지 차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①하나는, 제도적인 개혁입니다. ②또 하나는, 의식적인 개혁입니다.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1)    정치권력으로 강제할 수 있는 종교의 개혁이란 제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성군 요시야가 시행한 종교개혁의 내용에서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전심으로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도록 신민들에게 맹세를 하게 합니다(왕하23:3). 그러나 맹세와 실천은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선민들의 율법생활이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자발적인 만족한 수준이 아니므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계속 회개를 종용하십니다(25:3-7).

2)    둘째, 모든 이방신상과 우상을 철거하고 산당 제사를 금지하며 왕명으로 그 일에 종사하는 제사장들을 전부 처형하고 있습니다(왕하23:4-20). 그러므로 백성들이 겁을 집어 먹고 겉으로는 우상을 섬기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우상문화까지 없애기 위해서는 참으로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성군 요시야가 그 일을 하기에는 그의 통치기간이 부족합니다. 통치 18년에 예루살렘성전에서 겨우 신명기 양피지 하나를 발견한 요시야 왕입니다. 어떻게 남아 있는 기간 13년 동안에 백성들의 의식을 완전히 개혁할 수가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3)    셋째, 전국에 걸쳐서 유월절 행사를 실시하도록 왕명을 내리고 있습니다(왕하23:21-23). 이상 세가지는 제도적인 종교개혁입니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왕명으로 시행한 강력한 것이지만 실제로 백성들의 의식을 바꾸기에는 미흡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의식개혁이 가능할까요?

(2)  둘째로, ”그 한계를 뛰어넘자면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일까요?에 대한 답을 구하는데 있어서 사도 바울의 다음 글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2-3). 말씀을 풀이해봅니다; ①첫째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이 진정으로 백성들의 우상문화를 제거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국력을 기울여서 히브리정경을 찾아 그것을 필사하여 전국적으로 보급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②둘째가 히브리정경에 담겨 있는 여호와의 말씀의 취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선지자와 선생이 다같이 필요합니다. 그 점에 대한 노력이 요시야의 종교개혁에서 미흡합니다. 따라서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표피적인 것이며 심부화되거나 내면화되지 못한 채 그의 갑작스런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3:25-27). 그의 후계자로 악한 왕들이 줄줄이 나타나자 선민 유대인들은 아무 미련 없이 그 옛날 악한 왕 므낫세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3)  셋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서 본문 제4-7절에 그 말씀의 요지가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것이 위의 질문에 대하여 어떠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봅니다;

1)    첫째, 여호와께서는 모든 백성들의 내면적인 신앙의 상태를 통찰하고 계십니다(삼상16:7, 4:12-13). 성군 요시야의 시대에도 선민 유대인들은 그 마음속에서 우상문화를 청산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히브리정경조차 없애 버린 그들이기에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들을 계속 선민사회에 보내어 급한 대로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십니다(25:3a, 4a).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율법생활 및 선민의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선지자들이 선포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고 있습니다(25:3b, 4b).

2)    둘째, 여호와의 말씀의 핵심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악한 길을 버리라는 것입니다(25:5a). 선한 길은 여호와를 섬기는 길입니다. 여호와는 창조주이시므로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사랑하시고 돌보시며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3:4). 그것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입니다(5:44). 그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면 생명을 살리는 여호와의 선한 종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집단 이기적인 정의만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이방인까지 살리라고 말씀하시는 여호와를 배척하고 맙니다(5:43). 그것은 남을 미워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악한 길입니다. 요컨대, 선하신 여호와를 섬기는 믿음이 아니라 남을 해치는 악한 영을 자신들의 신으로 믿고 따르는 악한 길입니다(25:6a).

3)    ②또 하나는,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25:5b). 사람이 만든 것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과 이데올르기입니다”. 여기서 우상이란 사람이 만든 매우 편리한 신입니다. 사람의 소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이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가장 악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의 형편을 두루 살피고 모두를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선하심과 공의의 정신과는 정면으로 어긋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쪽의 일방적인 소원을 무조건 들어준다고 하는 것은 그 상대편에 대해서는 손해와 위해(危害, 위험과 해로움)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탐욕이며 악행인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이념도 그러한 것입니다. 인간의 이데올르기’(理念, ideology)는 집단 이기주의의 산물입니다. 자신들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상대집단이나 나라에 대해서는 굴욕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20세기의 자유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의 대결도 그러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모르고 선민과 이방인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선민 유대인들의 잘못을 재현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4)  넷째로, 겉으로만 효과를 드러내는 종교개혁으로는 사람들의 내면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의식(意識)은 여전히 우상문화에 젖어 있기 때문에 성군 요시야가 갑자기 죽자 유다 왕국이 그 옛날 므낫세의 악한 시절로 되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이 죽고 여호야김 왕 4년이 되자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선민 유대인들에게 대언하고 있습니다(25:1-3). 그 내용은 유다 왕국의 왕과 백성들이 악한 길과 악행을 마음속으로부터 떠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여호와의 노여움을 사서 이제는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망하고 그 백성들이 이방인들의 노예로 살아가는 고난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5: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말하여 이르되,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23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25:1-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25:1);

1)    주전 609년 성군 요시야가 전장에서 화살을 맞고 후송 도중에 갑자기 죽자 중신들은 똑똑한 지차 왕자인 살룸을 여호아하스 왕으로 세우고 바로 느고의 회군에 대비하여 전쟁준비를 서두르게 됩니다(왕하23:29-30, 대상3:15, 22:11). 그러나 애굽의 황제인 바로 느고가 시리아에서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3개월만에 예루살렘으로 진격을 합니다. 당시 동생인 살룸에게 왕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엘리아김은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여 바로 느고와 내통을 합니다. 그 때문에 여호아하스 왕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바로 느고에 의하여 폐위를 당하고 애굽으로 끌려 가게 됩니다(왕하23:31-34).

2)    바로 느고는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또한 많은 금은으로 조공을 바치고 있는 엘리아김 왕자를 유다 왕 여호야김으로 세우고 친 애굽 괴뢰정권을 맡깁니다(왕하23:34-35). 그리고 4년이 지나 주전 605년이 되자 국제정세가 급변하게 됩니다. 신바벨론에 영웅왕 느부갓네살이 즉위하여 앗수르의 잔존세력을 소탕하고 시리아에서 애굽의 주둔군을 모두 쫓아내고 맙니다. 그러자 유다 왕 여호야김은 외교노선을 변경합니다. 애굽의 바로가 아니라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를 섬기고자 한 것입니다(왕하24:1). 그러한 국제정세의 급변과 외교노선의 변경이 이루어 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고 있습니다(25:1). 그 말씀은 두가지 사실 때문에 중요합니다;

3)    하나는, 성군 요시야의 시대나 악한 왕 여호야김의 시대에 있어서나 여호와의 말씀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같기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이 동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군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철저하게 실패를 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시야의 왕명으로 이방신상과 우상 그리고 산당 예배를 제거하고 유월절 행사를 부활할 수는 있었는지 몰라도 선민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세적인 기복신앙과 이기적인 우상문화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권력으로는 제도적인 개혁이 가능할지 몰라도 사람들의 의식개혁은 가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또 하나는, 유다 왕 여호야김과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주변의 강대국에 의존하여 살아가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누가 패권을 행사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가 힘이 강하면 그쪽에 붙어서 사대주의를 하면서 생존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신바벨론의 황제가 힘이 강해지면 외교노선을 변경하여 느부갓네살 황제를 주군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근본적으로 선민 유대인들과 여호야김 왕의 생각으로는 창조주 여호와의 권세와 능력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주변의 세상적인 제국의 힘을 의지하고 자신들의 종주국으로 섬기면서 빌붙어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이성적이며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현실정치의 입장에서는 맞는 이야기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입장에서는 불합격입니다.  

(2)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말하여 이르되,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23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25:2-3); 예레미야는 주전 627년 곧 성군 요시야 13년에 약관의 나이로 선지자가 됩니다. 그는 지금 주전 605년 여호야김 왕 4년에 이 말씀을 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으로 대언하고 있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선지자 예레미야가 외친 말씀은 동일합니다; “그것은 선민 유대인들은 그 마음속에 있는 우상문화와 현세적인 기복신앙을 청산하고 창조주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25:2-3a, 5-6). 그러나 요시야 왕의 시대나 지금 여호야김 왕의 시대에 있어서나 선지자가 전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선민 유대인들의 행실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25:3b).  

둘째로,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 그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자악한 길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25:4-5);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25:4); 본문은 선지자 예레미야와 같은 여호와의 종과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정직하게 대언하고 있는 자들이 참된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을 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실천을 하게 되면 자신들에게 손해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 축복에 속하는 것은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들이기 위하여 아멘으로 화답을 하고 그 반면에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원수 같은 이웃까지 사랑하라고 하는 비현실적인 이상주의 말씀에 대해서는 건성으로 그저 좋은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그 실천을 그대로 하지 아니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5:43).

2)    둘째,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그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여호와의 생각과 지혜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근본적인 차이를 부인하고 있는 교만한 자들이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진실한 종의 태도가 아닙니다(25:4). 사람들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적인 상식과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은 따르지만 그러하지 아니한 것은 실천하지 아니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여호와의 말씀 위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자악한 길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25:5a);

1)    여호와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을 선민 유대인에게 보내어 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청산을 해야만 하는 것이 두가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①하나가 악한 길입니다(25:5aa). 그것은 여호와께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멀어지는 길입니다. 창세기 제3장의 기록에 따르면 에덴동산에서 아담부부가 여호와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방법입니다. 반면에 마귀의 화신인 뱀의 거짓말을 선호하고 세상적인 지혜와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거짓 진리대로 행동하게 되면 여호와를 떠나게 됩니다. 그것이 악한 길입니다.

2)    ②또 하나가 악행입니다(25:5ab). 그것은 여호와를 대적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두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첫째가, 사람이 만든 우상입니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자신에게 편리한 우상을 만들어 수호신이며 하나님이라고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②둘째가 사람이 만든 세상적인 이데올르기입니다. 사람들은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종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르기의 종으로 살고자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이데올르기가 창조주 여호와만큼 지혜와 진리성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55:8-9). 그것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또 하나의 인간의 악행입니다(25:5ab).

(3)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25:5b); 창세기 제3장에서 아담부부가 마귀의 화신인 뱀의 거짓말에 속지를 아니하고 그것을 물리쳤더라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고집대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아니하고 또한 선민이라는 이데올르기를 내세워 이기적으로 살아가지 아니했더라면 여호와께서 기업으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번영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25:5b)는 말씀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너희는 다른 신을 따라 다니며 섬기거나 경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6-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는 다른 신을 따라 다니며 섬기거나 경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25:6); 사람이 여호와가 아니라 다른 신을 따라 다니게 되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서 자꾸만 멀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다른 길로 행하게 되는 인간의 악행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인 사람이 자신들이 만든 우상이나 이데올르기를 절대화하여 신처럼 숭상하게 되면 그것 역시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십계명을 어긴 죄악을 범한 것이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죄악을 범하지 말라고 하는 의미에서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을 일으키는 악을 부디 행하지 말라고 하는 당부입니다(25:6).  

(2)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7);

1)    본문에서는 여호와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기 쉽게 다시 한번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그것은 마귀가 속삭이는 소위 사람의 탐욕과 정욕을 충동하는 거짓말을 따르지 아니하고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②둘째, 피조물인 사람이 만든 그 어떠한 우상이나 이데올르기보다 여호와의 말씀의 지혜를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임하게 되는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에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과 같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①첫째, 여호와의 진노를 사지 아니하므로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사망과 멸망의 심판이 아니라 구원과 영생의 심판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10:28, 25:40-46, 5:24, 29).

결론적으로, 성군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13년간 진행이 됩니다. 왕의 정치권력으로 시행한 그것이 제도적인 개혁에는 성공합니다.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상문화와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하는데 있어서는 실패를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신앙태도를 완전히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며 실천하게 하는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그러한 조치가 미흡합니다. 구체적으로, 히브리경전을 많이 사본으로 만들어 보급을 하여야 하는데 그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선생과 학자를 많이 양성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여전히 그 마음속에서 여호와의 길이 아니라 악한 영들의 거짓말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 우상과 선민만의 구원이라는 이데올르기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우리야와 예레미야를 선민 유대인들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이방인과 더불어 함께 여호와의 축복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12:39). 그것보다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집단 이기적인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며 현세적인 기복신앙에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신앙이 아니라 우상문화입니다.

그와 같은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사람이 만든 것을 여호와로 섬기는 악행을 버리지 아니하면 선민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진노로 나라가 망하며 망국의 백성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예언이 성군 요시야 시대와 여호야김 왕의 시대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동일하게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예레미야의 말씀선포에서 자유스럽지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자신의 여호와신앙의 모습이 어떠한지 깊이 성찰하시고 신실하게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