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예수님의 엘랄레이와 이아토(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0. 3. 14:11

제목; “예수님의 엘랄레이와 이아토”(9:1-11, 참조; 11:20, 4:31-41, 5:4-10)

설교일; 주후 202210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03일 월요일 작성)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 제9장에서 예수님이 12사도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고서 갈릴리지방에 복음의 전도자로 파송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 그런데  그 파송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두가지입니다(2);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입니다(2a). 또 하나는,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는 것입니다(2b);

그와 같은 일은 제10장의 기록을 참조하면, 사마리아지방에서도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제자 70명을 21조로 하여 35개조를 만들어 한꺼번에 여러 마을에 복음전도자로 파송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수님께 돌아와서 보고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벌써 위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17-20);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모두가 주님의 제자들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28:18-20, 24:44-49, 1:8). 그 일을 위하여 세상적으로 많은 능력은 물론 영적인 권위까지 지니며 그것을 종교적으로 행사하고 있습니다(1:19-23).

그러나 그 모든 종교적인 능력과 권위가 오로지 다음과 같은 일을 위하여 사용이 되는 것이라고 하는 그 목적을 누가복음 제9장 본문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을 고치시더라”(9:11).

쉽게 풀이를 해보자면, 하나님나라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과 또 병자를 고치는 것 두가지인데 그것을 동사로 보면 헬라어로 이야기한다는 용어 엘랄레이’(ἐλάλει)와 고친다고 하는 헬라어 이아토’(ἰᾶτο)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본문말씀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기 전에 누가복음의 기록자인 의사 누가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그 대목을 먼저 살펴보고 그 다음에는 병든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관심이 복음서에 어떻게 기록이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면 본문의 말씀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의사 누가는 발로 뛰면서 예수님의 교훈과 행적을 취재하고 그 내용을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분석한 인물로 보입니다(1:1-4). 그러한 그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1:20);

죄와 사망의 권세를 가진 악한 영들이 영적으로 사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사람들의 심령속에 영적으로 임재하시게 되면 벌써 하나님의 나라가 그 사람에게 임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취지의 예수님의 말씀을 잘 풀이하고 있는 자가 사실은 후속사도인 바울입니다. 따라서 그 점을 그의 로마서 제8장의 기록에서 다음과 같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요컨대, 성도들이 살아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그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주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칭의의 은혜를 얻고 또한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으로 이제는 악한 영의 죄와 사망의 정죄에서 벗어나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는 확신 가운데 거듭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하나님나라의 임재의 은혜입니다.

(2)  병든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관심이 유대인의 관점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그의 복음서 제5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38해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그 장애인 병자는 예수님의 거지 나사로의 비유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이미 천국에 들어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 미래가 약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임, 16:20-23, 25:40. 그러한 그에게 혹시 남은 인생 가운데 어떠한 소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예수님이 묻고 계신 것임)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5:4-10).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유대인들의 관심사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천사가 기적을 베풀 때에 가장 먼저 그것을 얻는 자가 병이 낫게 되는 기적을 체험한다는 것입니다(4). 그것은 선착순입니다. 또 하나는, 안식일 규례를 지키는 것이 병이 낫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10). 

2)    둘째, 예수님의 관심사는 유대인들과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선착순이 아니라 가장 불쌍한 자로서 낫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한 자에게 주님의 긍휼이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5-7). 그리고 안식일 규례를 지키는 것보다 그 병자의 소원을 들어주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8-10, 3:4);

(3)  그 다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 제4장에서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1.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그들의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33. (가버나움)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가버나움) 근처 (갈릴리) 사방에 퍼지니라.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벳새다에 있는, 1:44)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시몬의 장모)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시몬의 장모)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 (안식일이 지나고) 해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4:31-41).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고향이 있는 갈릴리지역은 유대 땅의 중심인 예루살렘과 비교할 때 크게 보아 두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방적입니다. 헬라인들이 갈릴리지역에 상당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예루살렘의 종교재판소 산헤드린 대공회의 영향력이 변방인 갈릴리지역에서는 약합니다. 그 이유는 갈릴리가 로마총독의 관할이 아니라 헤롯 왕 안디바가 다스리고 있는 변방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갈릴리를 복음전파의 본거지로 삼고 있습니다. 토요일 안식일에는 가버나움에 있는 큰 회당에서 히브리경전을 읽고서 말씀풀이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31-32).   

2)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풀이가 탁월합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백성들의 병을 고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버나움과 그 주변에서는 나사렛 예수를 큰 선지자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33-37). 더구나 악한 영인 귀신들은 예수님의 정체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영을 지니고 있는 거룩한 자라는 사실을 벌써 눈치를 채고 있습니다(34, 41a).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귀신들이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있는 것을 일체 허용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41b). 그 이유는 영적인 비밀은 진리의 성령님에 의하여 성도들이 깨닫게 되는 것이 옳지 귀신의 소리에 의하여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진리와 거짓을 적절하게 섞어서 사람들을 유혹하며 마침내 세상적인 탐욕에 빠져서 넘어지게 만드는 악한 영들인 것입니다(3:1-7).

3)    대도시 가버나움의 동편에 있는 인근 촌락이 어부들의 마을인 벳새다입니다. 그곳 시몬의 집에서 인편으로 급한 기별이 오고 있습니다(38a).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서 위독하다는 전갈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도들이 예수님에게 빨리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벳새다로 가서 시몬의 장모의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합니다(38b). 그 이유는 평소 시몬의 장모가 신실하며 사위의 동료들에게 자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신위적인 능력으로 고쳐 주십니다(39a);

그녀는 병이 낫자마자 부엌에 들어가서 사위의 친구들을 대접하려고 분주합니다(39b). 비록 가난한 어부의 집안이지만 그녀의 성품이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임을 넉넉하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4)    그날이 안식일입니다. 하지만 벳새다 시몬의 집에 나사렛 예수가 방문하여 열병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낫게 하였다는 소문이 온마을에 삽시간에 퍼지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빨리 해가 지고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병자들을 치료할 수가 없다는 율법세칙이 그들의 행동을 제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저물자 너나없이 집안의 병자들을 데리고 시몬의 집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40a). 예수님은 밤이 늦도록 일일이 병자에게 안수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하고 있습니다(40b);

(4)  누가복음 제4장에 기록되어 있는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방문하고 있는 모든 병자들을 일일이 고치시는 모습은 요한복음 제5장에서 이미 살펴본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장애인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 가장 큰 차이점이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베데스다 못가에 모여 있는 수많은 병자와 장애자 가운데 유독 38년된 장애인 병자 한사람만을 예수님이 시범적으로 고쳐 주셨는데 시몬의 집에서는 동네사람 가운데 그를 찾아오는 모든 병자를 전부 고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2)    또 하나는, 예루살렘 동쪽 문인 양문(羊門, sheep gate) 곁에 있는 베데스다 못가에서는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것입니다;

 그러나 갈릴리 시몬의 집에서는 안식일에 그 장모를 치료하시고 동네사람들은 안식일이 지나자 일일이 고쳐주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들 동네의 병자들을 안식일에 방문하도록 미리 조치하지 아니한 것일까요?

3)    결론은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라고 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3:4). 그렇다고 하더라도 안식일을 지키고 해가 지면 병자를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는 동네사람들의 관념 역시 존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절대선을 행하시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믿고 있는 상대적인 선에 대해서도 포용력을 가지신 예수님을 여기서 발견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4)    그리고 처음에는 시범적으로 병자를 신위적인 능력으로 치유하시지만 나중에는 복음의 더 빠른 전파를 위하여 모든 병자들을 일일이 고쳐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는 엘랄레이와 병자를 고치는 이아토가 그 전파의 속도에 있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계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빠른 속도로 본문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한 구절 씩 풀이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말씀의 묵상 가운데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 예수께서 12제자 (12사도)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9:1-6);

(1)  4복음서 가운데 예수님의 행적을 가장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가장 늦게 사도 요한이 저술한 제4복음서입니다. 그 내용을 참조하면 예수님 일행의 3년반동안의 공생애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①공생애를 시작하신 다음해 첫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성전청결운동을 벌이고 니고데모를 만나고 있습니다;

 ②두번째 유월절에도 예수님 일행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시며 북상하는 걸음에 수가성의 여인을 만나 그 동네에 복음을 전파합니다. ③세번째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오지 아니하고 갈릴리에서 복음사역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가을걷이가 끝나고 초막절에 예수님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옵니다. ④다음해 예수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체포가 되고 십자가 처형을 받으며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만나 40일간 재교육시키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십니다.

(2)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 일행이 갈릴리에서 복음사역을 하던 마지막 해의 기록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12사도에게 21조로 6개의 팀이 되어 여러 마을에 다니면서 독자적으로 복음사역을 한번 해보도록 조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6:7). 그것이 마치 마지막 종합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해 가을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다음해 유월절에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실 예정이기에 그 전에 사도들에게 독자적인 복음사역을 할 수 있도록 미리 훈련을 시키신 것으로 보입니다(1a). 예수님이 복음사역을 떠나는 사도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그것이 세가지입니다; 첫째,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의 능력입니다(1b). 둘째,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서 병을 낫게 하는 능력입니다(1c). 셋째,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복음으로 깨달아 전파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2).

(3)  백성들은 예수님의 복음이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복과 현세적인 질병과 장애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받는 복 등 두가지의 복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일행이 하나님나라에 관하여 전파하면서 동시에 병든 자를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서 신위적으로 고치고 있기 대문입니다. 그 가운데 백성들은 어느 종류의 복을 더 간절히 원하고 있을까요? 본문 제1-2절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대한 것이 3분의 1이고 현세적인 복이 귀신에서 놓임을 받는 것과 병의 치유를 받는 것 등으로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비중으로 보아 백성들은 현세적인 치유의 복을 더 중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그런데 사도들이 복음사역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영생의 복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과 장애도 고치고 귀신들린 자도 고치고 있습니다(6). 그것은 의원보다 더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고침을 받은 백성들이 예수님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잘 대접할 것입니다. 그런 현실을 감안하여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여행을 위하여 간편하게 짐을 꾸릴 것이며 더 나은 대접을 해준다고 하여 머물던 집을 함부로 옮기지 말라고 사전에 경고하고 있습니다(3-4);

그리고 혹시 그와 같은 영생의 복과 현세적인 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고 있는 사도들을 외면하는 마을이 있다고 하면 미련을 두지 말고 그 동네를 떠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5).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직접 치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0:10-16).  

둘째로, “7. (갈릴리) 분봉 왕 헤롯(안디바)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부활하였다)고도 하며, 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14:10),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진짜로 다시 살아난 세례 요한인가) 하며 그를 보고자(23:8) 하더라”(9:7-9);

(1)  예수님이 12사도를 21조로 하여 갈릴리지역에 복음사역팀을 6이나 파송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전체 갈릴리지역이 온통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떠들썩합니다. 그 정보를 수집하여 듣고 있는 갈릴리의 분봉 왕 헤롯 안디바는 가슴이 뜨끔합니다(7). 왜냐하면, 그가 선지자 세례 요한을 참수한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9);

(2)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이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첫째, 세례 요한이 나사렛 예수로 부활한 것이다(7). 둘째, 그 옛날 승천한 엘리야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8a). 셋째, 죽은 선지자 가운데 한사람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8b). 그 가운데 헤롯 안디바를 가장 두렵게 하는 소문이 바로 죽은 세례 요한이 선지자 예수로 부활하였다는 것입니다(9a).

(3)  의사 누가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헤롯 안디바는 과연 그 소문이 사실인지 당사자를 만나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9b). 그 정보에 의거하여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 제23장에서 다음과 같이 헤롯 안디바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8.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23:8).

셋째로,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엘랄레이)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이아토)(9:10-11);

(1)  갈릴리에서 가장 큰 도시는 호수의 북안(북쪽 호숫가)에 있는 가버나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12사도를 21조로 하여 6개의 복음사역팀을 갈릴리지역에 두루 보내고 나서 훗날의 집합장소를 가버나움으로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복음사역을 끝내고 사도들과 제자들이 모두 모여 예수님께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10a). 그러므로 온 가버나움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예수님은 따로 사도들만 데리고 동편에 있는 조용한 어부들의 마을 벳새다로 이동을 하신 것입니다(10b).

(2)  그런데 문제는 12사도들과 제자들이 복음사역을 하면서 온전히 고치지 못한 병자들이 많이 있으며(9:40) 더구나 하나님나라에 관한 깊은 내용을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어하는 백성들이 더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모여서 예수님 일행의 행적을 살피다가 드디어 벳새다까지 따라오고 있습니다(11a).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보시고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관하여 깊은 내용을 먼저 가르쳐 주십니다(11b);

그 다음에는 그들의 중한 병과 장애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부 치유하여 주시는 것입니다(11c).

(3)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의 절정임을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11. 무리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엘랄레이)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이아토)(9:11);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핵심이 두가지 헬라어 동사로 집약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나라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영생을 누리는지 그리고 영적으로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그 복을 누릴 수가 있는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동사로는 엘랄레이입니다. 또 하나는, 남은 인생 가운데 영생의 복을 누리는 자가 현세적으로도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며 예수님의 치유하심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 하나의 동사 이아토입니다;

(4)  그와 같은 두가지 복을 인생 가운데 얻기 위하여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를 본받아 살아가고자 하는 자를 오늘날에도 주님께서는 제자로 영접하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십니다(3:10-16). 그 의미가 본문에서 영접이라고 하는 용어 가운데 고스란히 담기어 있다고 하겠습니다(11a). 참고로 그 점을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반대의 경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10. (하나님의 아들)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0-12).

결론적으로,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에는 내세에 얻게 되는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대한 복보다는 당장 얻게 되는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절실합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질병과 장애를 고쳐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것이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고 믿음이 성숙하게 되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생의 하나님나라가 임재하는 것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 엘랄레이가 병을 고치는 이에토보다 먼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아무쪼록 거듭난 인생 가운데 끝까지 하나님나라를 엘랄레이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며 온갖 질병과 장애를 치유하는 이아토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