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세상이 멸망을 당하여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9. 13. 11:08

제목; “세상이 멸망을 당하여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17:12-14, 17:3, 4:11-12)

설교일; 주후 2022918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913일 화요일 작성)

 

과거 1990년대에 한국에서는 소위 다미선교회라는 신흥교단이 발생하여 성도들에게 다가오는 미래를 대비하라. 휴거의 때가 오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을 했습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정리하여 다미선교회에 가입하자 그 선교회는 그들을 모아서 폐쇄적인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외국에 살고 있는 교민 가운데 그들의 주장에 현혹이 된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그 선교회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믿고서 다가오는 휴거를 대비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재산을 정리하고 컨테이너에 짐을 싣고 외딴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과연 다미선교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그날에 지구의 종말이 오고 휴거사건이 대대적으로 발생한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기에 그후 21세기가 이 세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성경에서는 두가지 사실을 성도들에게 명심하라고 벌써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종말의 때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극비 사항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아버지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지 말고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취지의 말씀을 승천 직전에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1:7-9);

둘째,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퍼뜨리지 말고 오로지 온 세상에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성도들은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28:18-20, 24:47-48, 1:8). 그때에 마치 도적과 같이 세상의 종말이 임하고 그들이 전도하고 있는 그 현장에서 휴거의 사건이 발생할 따름입니다(24:42, 25:13, 살전4:13-5:2). 그 점을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복음사역을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직접 명쾌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14.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으로 도망할지어다”(24:14-16). 적어도 다음 두가지의 뜻을 밝히고  있는 대목입니다;

(1)  하나는, 세상의 종말이란 반드시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다음에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세상의 산간오지와 벽촌 나아가서 외딴 섬에까지 골고루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야 이 세상의 종말이 임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세상의 종말과 함께 멸망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법령의 도달주의를 선택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2)  또 하나는, 다니엘이 예언하고 있는 것이 다음 세구절에 들어 있다고 성경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9:27); 종교적 자유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세상의 권력이 사탄을 의지하여 온 세상을 지배하는 그때에 심판의 날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11:31); 사탄을 숭배하는 무리의 군대가 기독교세력을 격파하고 교회에 대하여 두가지 조치를 하는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세상심판이 임하는 때입니다; 하나는, 예배와 성찬식이 사라집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신에 우상이 그 자리에 서게 됩니다;

  

3)   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1,290일을 지낼 것이요“(12:11); 교회당에서 예배가 사라지고 십자가 대신에 우상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금방 세상의 심판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상징적인 숫자로 1,290을 지내게 된다고 하는 예언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금방 짐을 싸서 산으로 피난을 갈 일이 아닙니다(24:16).

따라서 작은 결론을 맺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직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세우고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예배를 드리며 성도 간에 성찬식을 거행할 수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종말이 금방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운운하면서 다미선교회를 조직하여 폐쇄적인 공동생활을 영위하거나 재산을 처분하여 산으로 피신하는 것은 성경말씀을 잘못 해석한 결과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현대교회사에서 그러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 옛날 19세기 중엽에 미국에서도 그와 같은 다미선교회의 잘못된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사탄을 숭배하는 종교와 세상의 권력이 군사력으로 기독교의 세력을 이기고 교회에서 예배를 보지 못하게 하며 우상을 섬기도록 강제하고 있는 그때가 곧바로 세상의 종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온 세상 구석구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끝까지 전파하는 성도들의 사명이 완성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상징적인 숫자 1,290이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명심하라고 강조하시는 주님의 다음 말씀이 여전히 옳다고 하겠습니다;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7-8).

(3)  그와 같은 맥락에서 초대교회시대 사도 바울이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선교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복음을 끝까지 전파하다가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시고 무덤속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사도 바울이 선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어느 곳에 있든지 그리스도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바울 자신처럼 성도들도 동일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고전11:1). 그와 같은 취지가 그의 글 가운데 풍성합니다;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1:23-24),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을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끝까지 복음의 전파자로 살아가라는 말씀, 1:7-8)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산으로 도망하지 말고) 그대로 행할 것이라”(3:10-16);

(4)  비록 이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종말심판이 임한다고 하더라도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주님의 지상명령을 신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제자들에게는 영생의 부활과 천국입성이 주어지고 있습니다(22:28-30, 5:24-29, 25:40, 45-46, 21:23-27). 그러므로 그 푯대를 바라보고 사도 바울처럼 끝까지 달려가는 것이 옳습니다(3:16).

그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태초부터 우주 바깥 천국에 자리를 잡고 계시며, 1:1-2), 우리의 성소이시며(이 땅에서는 지성소와 우리의 심령속에 임재하시며, 25:22, 14:16-20), 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흙으로 돌아갈 뿐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신 여호와, 2:7, 그 생명의 능력을 이 세상에 가지고 오신 그리스도, 4:14)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14.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창조주의 능력으로)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 하시면 내가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얻으리이다“(17:12-14);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태초부터 우주 바깥 천국에 자리를 잡고 계시며, 1:1-2), 우리의 성소이시며(이 땅에서는 지성소와 우리의 심령속에 임재하시며, 25:22, 14:16-20),“(17:12);

1)    선지자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3가지 사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첫째, 태초부터 창조주 여호와의 보좌는 피조세계 우주의 바깥 천국(heaven)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1:1-2);

둘째, 출애굽의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대제사장을 만나기 위하여 잠시 지성소 언약궤와 속죄소에 임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25:22). 셋째, 성도들의 심령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며 성령이 임재하여 역사하시는 새로운 시대 곧 새언약의 시대가 되면 그것이 새로운 성소인 것입니다(31:31-33).

2)    왜냐하면, 선민 유대인의 예루살렘성전은 물론 그 안의 지성소는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불에 타서 없어져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왕하25:9). 그렇게 되면 이 피조세계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는 성도들의 심령속에 성령의 전이 마련되고 그 속에 승천하신 주님께서 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임재하시는 새로운 시대가 전개됩니다(14:16-20);

3)    그리고 변함없이 우주 바깥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보좌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12).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와 같은 사실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이 세상에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피조세계를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보좌는 여전히 천상에서 견고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완성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구원은 이 세상에 종말심판이 임한다고 하더라도 주님 안에서 영원히 견고하며 확실한 것입니다(8:38-39).  

(2)  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흙으로 돌아갈 뿐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신 여호와, 2:7, 그 생명의 능력을 이 세상에 가지고 오신 그리스도, 4:14)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17:13);

1)    선지자 예레미야는 성군 요시야 13년 곧 주전 627년에 여호와의 부름을 받아 선지자로 세워진 이후 주전 586년에 조국 다윗왕조 유다왕국이 신바벨론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받을 때까지 무려 41년간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권력과 지혜만 추구하고 있는 유다의 왕과 백성들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본문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 의미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은 여호와께서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있기에 영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2:7). 그런데 그 사실을 외면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떠나서 제마음대로 탐욕스럽게 세상적인 방법으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끝까지 회개하고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게 되면 구원의 소망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 결과는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며 모두가 흙으로 돌아가는 비극만이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13a). 생명수를 주실 수 있는 주님을 버려 버렸기에(4:14) 그들이 영생의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한갓 진토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13b)”;

(3)  14.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창조주의 능력으로)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 하시면 내가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얻으리이다“(17:14); 선지자 예레미야는 창조주 여호와를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는 여호와신앙으로 돌아가게 되면 두가지 축복이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한평생 여호와를 찬양하며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그 정신과 육신을 치유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4a). 100여년전 전란 중에 불치의 병에 걸린 히스기야왕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병을 치유하고 15년 목숨연장까지 선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왕하20:5-6). 그러므로 성도들이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며 창조주의 권능을 찬송하면 그 마음과 몸을 치유하여 주는 것은 실로 당연한 것입니다;

2)    둘째, 피조물인 인간은 그 몸과 마음을 고쳐주고 치유하여 준다고 하더라도 향년이 되면 죽고 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멸망이 임한다고 하더라도 성도를 부활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주님의 구원입니다. 그와 같은 구원을 달라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아니하면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의 침략으로 다윗왕조 유다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되는 미래가 그의 영적인 눈에 확실하게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줄 수 없는 그 영생의 선물을 달라고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절실하게 부르짖고 있는 장면입니다(14b);

  

둘째로, “3. 영생은 곧 (산술적인 하나가 아니라 삼위일체의 신비를 가지신, 4:6) 유일하신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거짓의 아비 마귀와 구별이 되는, 8:44, 고후11:14)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1:14-18) 예수 그리스도아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알고 그 제자로 살아가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 16:24, 22:28-30)이니이다“(17:3);

(1)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서신서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영생의 구원이라는 선물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벌써 갈파하고 있습니다(17:4). 그 점에 유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영생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 대목이 바로 분문입니다. 그 뜻을 풀이하여 보면 다음 두가지입니다;

(2)  첫째, 사람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그것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의 구원은 창조주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3a). 그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특징 두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일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손꼽을 수 있는 산술적인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삼위일체라고 하는 영적인 신비를 보유하고 계시는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4:6);

2)   또 하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이나 우상들이 자신들이 창조주라고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거짓이며 그들은 피조물인 사람에게 영생의 구원이라는 선물을 줄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8:44). 물론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인간에게 접근하고 있는 마귀나 사탄도 인간에게 영생의 구원을 줄 수가 없으며 그 반대로 영원한 죽음만을 선사하고 마는 것입니다(고후11:14).

(3)  둘째, 영생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은 아무에게나 주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선물을 완벽하게 처음으로 얻은 인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유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서 온전히 실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 선물을 얻자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인생을 살았으며 어떠한 복음을 전파하고 대속의 삶을 살아갔는지를 이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창조주 여호와)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b)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11. 예수너희 건축자들(유대교의 지도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하나님의 새 언약, 31:31)의 머릿돌(반석)이 되었느니라. 12. (예수를 제외하고)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천국을 의미하는 변화산상에서 오직 예수만을 따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있음, 9:35-36) 하였더라“(4:11-12);

(1)  구약시대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율법에 따라 매년 유대 달력으로 710일 대()속죄일에 예루살렘성전에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들이 지난 1년동안 지은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제사를 드리고 있으므로 그들만이 구원을 얻고 그러한 율법에 따른 속죄의 제사가 없는 이방인들은 전부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16:29-34).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여호와신앙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긴 선민 유대인들은 이방인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그들의 성전을 불타고 성전제사마저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16:13).

(2)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이 세상의 멸망에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대답을 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사도행전 제4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처형하여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2)    둘째, 그 결과 영생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은 유대교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영접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1:11-14).

3)    셋째,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시고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종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3)  요컨대, 종래의 유대교에서는 율법에 따른 성전제사로 죄사함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무효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그 점을 사도 베드로가 설교하면서 예루살렘에서 초대교회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의 선지서 제31장에 기록하고 있는 새언약의 시대입니다(31:31-34).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 형제는 일찍이 변화산상에서 기이한 환상을 본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스승 예수님의 모습이 변모하고 그 앞에 승천한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무나 황홀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곳에 초막 3을 짓고 3분을 모시고 영원히 살고 싶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9:33).

그러나 다음순간 하늘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35.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9:35). 그와 같은 영적인 체험과 깨달음이 초대교회를 형성하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 가운데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2. (예수를 제외하고)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2).

한편 선지자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피조세계의 바깥 천국에 보좌를 가지고 계시기에 이 세상이 역사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성도들의 영생구원은 천국에서 확실하게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멸망 가운데 유일하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훗날 사도 바울의 외침 그대로 한평생 그리스도의 종이며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천국에서 영생의 구원이라는 상급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