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히스기야 왕과 므낫세 왕의 잘못이 무엇인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23. 12:30

제목; “히스기야 왕과 므낫세 왕의 잘못이 무엇인가?”(왕하19:14-19, 34-37, 20:1-6, 17-19, 21:11-16)

설교일; 주후 2022828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23일 화요일 작성)

 

다윗대왕은 그 옛날 사울 왕이 다스리고 있던 작은 이스라엘왕국을 당대에 중동의 패권국 이스라엘제국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 솔로몬대왕을 지나고 나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그 이듬해에 북쪽의 이스라엘왕국과 남쪽의 다윗왕조 유다왕국으로 분열이 되고 맙니다. 그때가 주전 930년경입니다;

그러므로 남조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역사는 르호보암 왕을 제1대로 보면 제13대가 히스기야 왕이고 제14대가 므낫세 왕입니다. 그런데 유다왕국의 역사에 있어서 히스기야 왕과 므낫세 왕이 굉장히 유명합니다.

그 이유는 히스기야 왕은 주전 701년에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인 앗수르제국의 침략을 기적적으로 물리쳤으며 그의 아들인 므낫세 왕은 유다왕국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악한 왕으로 기록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선지자 이사야의 기록을 참조하면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인 승전을 얻고 자신의 죽을 운명이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그 후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모조리 잊어버리고 현세주의적인 영광만을 탐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인 므낫세 왕은 더욱 절망적입니다. 가장 앞장서 우상을 섬기며 이방신 몰렉에게 왕자를 바쳐 인신제사의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왕하21:6). 그리고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는 무죄한 자의 피가 철철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왕하21:16);

그 결과 그의 손자인 성군 요시야의 유대교 개혁노력이 있지만 선민 유대인들의 우상숭배와 약육강식의 행태는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요시야 왕의 3아들과 1명의 손자가 마지막으로 유다왕국을 다스리고 있지만 여호와의 진노로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마지막 선민의 나라가 지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열왕국인 남조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제13대 왕인 히스기야와 그의 아들인 므낫세 왕의 잘못이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서인 열왕기하에서는 어떻게 기록이 되고 있을까요? 비슷하지만 그 질이 다른 두사람의 잘못에 관하여 우선 다음과 같이 진술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히스기야 왕은 희한하게도 세상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다가 그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게 되면 마지막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 울며불며 매어 달리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히스기야 왕의 이상한 기도에 대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2차례나 긍정적으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것이 주전 701년에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대군 185천명을 하룻밤에 여호와의 천사가 모조리 도륙한 사건입니다(왕하19:35). 그리고 또 하나가 여호와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히스기야 왕의 불치의 병을 단숨에 고쳐주고 수명을 15년 연장하여 준 사건입니다(왕하20:5-6).

둘째로,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대한 여호와의 긍정적인 응답은 하나의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그것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가 진정한 회개의 내용이 아니지만 차제에 여호와는 창조주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산헤립 황제의 군대를 처벌한다는 것이며 동시에 히스기야 왕에게는 다윗왕과 같은 진정한 회개에 입각한 여호와신앙으로의 회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19:34, 20:6, 37:35, 38:5). 그 대목이 워낙 중요하기에 이사야가 역사서의 내용을 그대로 그의 대선지서에 중복하여 기록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구원을 얻은 히스기야 왕은 그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베풀어 주신 여호와의 참뜻을 완전히 저버리고 그는 오만하고도 교만하게 현세주의적인 영광만을 추구하며(왕하20:19) 아울러 여호와를 자신이 마지막 순간에 기도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베풀어주는 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Genie)와 같은 우상의 하나로 취급하고 마는 것입니다(39:8);

셋째로, 히스기야 왕이 불치병에서 여호와의 은혜로 고침을 받고 게다가 15년의 수명연장까지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여호와의 은혜를 저버리고 현세적인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기에 그가 얻은 수명연장 15년이 그만 역사상 가장 악한 왕 므낫세를 낳게 되는 비극으로 작용하고 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수명연장을 받고 3년이 지나자 왕자 므낫세가 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므낫세 왕자는 12살에 즉위할 때까지 부왕 히스기야로부터 두가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가, 여호와를 자신의 일방적인 소원을 이루는 도구 곧 우상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가, 현세적인 영광을 추구하는 왕권의 강화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넷째로, 그로 말미암아 므낫세 왕은 우상숭배에 앞장을 서고 절대적인 왕권으로 폭정을 일삼고 맙니다(왕하21:6-9, 16). 전쟁에서의 무조건 승리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방나라 암몬에서 도입한 몰렉에게 인신제사를 바치고 있습니다(왕하21:6);

그리고 가나안의 주신 바알에게 풍년을 빌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행동하는 므낫세 왕을 보고서 유다왕국의 백성들이 하나같이 여호와신앙을 버리며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다왕국에서 선지자가 사라지고 히브리경전마저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2:8). 그에 따라 므낫세 왕의 손자인 성군 요시야가 아무리 종교개혁에 박차를 가해도 백성들은 회개할 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왕하21:11-13).

요컨대,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하게도 여호와를 자신의 도구로 여기며 현세주의적인 영광만 추구하였다고 한다면 부왕의 잘못된 모습을 보고서 자란 그의 아들 므낫세 왕은 더욱 악한 왕이 되고 맙니다. 그 결과 우상숭배가 극심해지고 백성들은 여호와신앙을 완전히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선민의 나라 유다왕국이 이방나라보다 더욱 악한 포악한 상태로 변하고 말기에 그 옛날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신 같은 잣대로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땅에서 유다왕국을 멸망시키고 마시는 것입니다(왕하21:9-15);

그와 같은 이해를 가지고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25:19-22),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1:1).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6:4참조).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1:2, 4:9-11, 39:9, 4:12-13참조).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 여호와여 앗수르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34. 내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185천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하19:14-19, 34-37); 

(1)  열왕기하 제19장 본문에서는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제13대왕인 히스기야가 어떻게 앗수르제국의 대군을 물리치고 왕국을 보전할 수 있었는지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승전의 비결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유다 왕 히스기야는 애굽제국의 바로가 구원병을 보내어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허사가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전쟁에 능한 앗수르제국의 산헤립 황제가 애굽의 대군이 진격해오는 길목의 산지와 요새에 복병을 숨겨두고서 그 통로를 막고 섬멸작전을 전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립나 계곡에서 당시 애굽 바로의 형제인 구스(이디오피아) 왕 디르하가의 군대가 대패를 당하고 그만 애굽으로 되돌아가고 맙니다(왕하19:8-9).

2)    둘째, 그 소식을 산헤립이 선전관 랍사게를 통하여 히스기야 왕에게 전달하면서 유다의 수호신 여호와도 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왕하19:10-13). 히스기야 왕은 세상적인 모든 방법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성전으로 들어갑니다(14). 그는 여호와 앞에 교만한 산헤립 황제의 최후통첩문을 펴 놓고서 탄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창조주이심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적들에게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15-19);

히스기야 왕의 의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산헤립 황제의 군대를 쳐부수어 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히스기야 왕은 그러한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계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 위와 같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는, 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히스기야 왕의 지식이 일천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5절 말씀,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는 언급은 창세기 첫머리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피조물이며 종인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고 계시는 전능자시라는 사실을 히스기야 왕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1:2, 4:9-11, 39:9, 4:12-13). 따라서 그는 감히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16b)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모세오경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는 소위 쉐마의 의미(6:4)를 꺼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16a)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신앙이란 근본적으로 그 반대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시며 역사섭리의 주인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종인 인간이 겸손하게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그러한 종의 입장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탄원에만 귀를 기울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히스기야 왕은 예루살렘성전에 들어와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서도 그가 처음부터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강대국 애굽의 구원병만을 의지하였던 자신의 잘못을 조금도 뉘우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유다왕국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첫째, 창조주 여호와를 비방하고 있는 교만한 산헤립 황제를 처벌하기 위한 것입니다(34a). 둘째, 다윗왕조의 왕인 히스기야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정할 기회를 그 옛날 다윗대왕 때처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34b).  

1)   다윗은 조카 요압을 사령관으로 삼아 암몬왕국의 수도 랍바를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다윗성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때 헷족속 출신 장수 우리야의 아내를 왕궁으로 불러서 하룻밤을 지내고 맙니다(삼하11:2-5). 그 사실이 탄로나게 되자 그만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만들고 있습니다(삼하11:14-17). 그와 같이 살인죄와 간음죄를 저지른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지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자 여호와 앞에 납작 엎드려서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모든 징벌을 달게 받겠다고 맹세합니다(삼하12:13-15);

2)   그와 같은 다윗왕의 여호와신앙의 회복을 히스기야 왕이 부디 본받으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히스기야 왕에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함으로써 앞으로 유다왕국을 선민의 나라 답게 경영할 기회를 여호와께서 다시 한번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여호와께서는 죽음의 천사를 보내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의 군사 185천명을 그날 밤에 모두 도륙하십니다(35). 그에 놀란 산헤립 황제가 멀리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 성으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36).

3)   20년의 세월이 흐르자, 패전한 황제를 업신여기는 황자 2명이 반란을 일으키고 부황 산헤립을 살해합니다(37a). 그것을 보고서 전장에 나가 있던 용맹한 황자 에살핫돈이 반란을 진압하고 새로운 황제로 즉위합니다(37b). 그는 부황 산헤립보다 더욱 뛰어난 영웅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에 쳐들어가서 상당부분 점령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앗수르제국은 끝까지 다윗왕조 유다왕국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1.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3일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15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왕하20:1-6, 17-19);

(1)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배신하고 있는 히스기야 왕의 잘못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도움으로 멸망 일보직전의 왕국을 보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을 운명이 바뀌어 15년 목숨의 연장까지 받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놀라운 여호와의 은혜를 그가 완전히 잊어버리고 마치 제가 잘나서 자신의 목숨도 구하고 나라도 구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20:13);

그와 같은 히스기야 왕의 교만이 훗날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고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으로 그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17-18).

(2)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 왕이 반성하지도 회개하지도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당대에 영화를 누리고 유다왕국이 보전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현세주의적인 기복사상만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입니다(19). 그것이 여호와신앙을 떠난 자의 진면목이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역사서인 열왕기하 제20장에 기록되어 있는 본문을 자신의 대선지서 제38장과 제39장에 그대로 다시 수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를 들면, 이사야는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39:8)고 기록함으로써 그의 구약적인 모습의 대선지서 이사야의 기록을 제39장에서 마감하고 제40장부터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시는 구원주 메시아의 오심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제40장부터 마지막 제66장까지의 27장은 신약적인 모습이고 제1장부터 제39장까지의 39장은 구약적인 모습의 기술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약 39권 신약 27권이라는 성경의 편제와 맞물려 또 하나의 신비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4)  참고로, 본문에서 히스기야 왕은 자신이 죽게 되는 운명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전언을 듣고서 벽을 향하여 앉아 여호와께 통곡하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한마디로 죄인의 기도가 아니라 자칭 의인의 기도입니다. 훗날 예수님께서 비유 가운데 말씀하신 외식하는 자 바리새인의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18:11-12). 여호와 앞에서 히스기야는 의인인 자신을 살려주는 것이 옳다는 주장입니다(3).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의 믿음을 전제로 하여 그를 살려주고 있습니다(5).

(5)  그러나 그 결과는 다윗과 같은 믿음의 회복이 아니라 더욱 교만해진 히스기야 왕의 치세가 이어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 뒤를 수명연장 3년 후에 태어난 유일한 왕자 므낫세가 이어받고 있습니다(왕하21:1);

므낫세가 보고 배운 것은 현세적인 영광을 추구하기 위하여 여호와를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부왕 히스기야의 잘못된 신앙관입니다. 그것이 발전하여 므낫세 왕의 치세가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악한 것으로 나타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1:11).

셋째로, “11.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3.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14.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15.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16.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왕하21:11-16);

(1)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시간이 바뀌어도 그리고 그 처벌의 대상이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언제나 동일하시다는 사실이 하나의 원칙으로 본문에서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주전 14세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합니다. 그때 아모리 족속으로 대표가 되고 있는 원주민 가나안사람들이 우상을 심하게 섬겼기에 여호와의 진노로 그 땅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15:16, 10:40-42). 그런데 주전 7세기에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므낫세 왕과 그의 신하 및 백성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문화에 크게 빠져버렸기에 그들의 선민의 지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장차 그 옛날 원주민 아모리 족속처럼 그 땅에서 쫓아내어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11-12). 그것이 시간을 초월하여 이방인이거나 선민이거나 상관없이 동일하게 여호와의 역사심판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2)    둘째,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이스라엘 10지파가 참여하고 있는 이스라엘왕국이 어째서 이방인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정복이 되고 말았을까요? 그 이유는 초대왕 여로보암1세가 백성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성전을 순례하는 일을 금지하고자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단과 벧엘에 세웠는데 그 악한 정책을 모든 이스라엘왕국의 국왕들이 한결같이 고수했기 때문입니다(왕상12:26-33, 왕하17:21-23). 그로 말미암아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왕과 백성들은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완전히 이방인처럼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 강대국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100여년의 세월이 흐르자 마지막 제사장나라 다윗왕조 유다왕국마저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제13절에서 제15절 사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2)  므낫세 왕의 잘못은 비단 우상을 심하게 섬겼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잘못은 무죄한 자의 피를 예루살렘과 유다의 땅에서 너무 많이 흘렸다는 것입니다(16);

1)    그 대목은 창세기 제6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관한 기록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11.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1-13).

2)    주전 25세기 노아의 시대나 주전 7세기 므낫세 왕의 시대나 차이가 없이 무죄한 자의 피가 땅에 너무 많이 흐르고 있으므로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그 핏값을 치르게 하시는 것입니다(9:6).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원칙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히스기야 왕이나 므낫세 왕이나 여호와를 우상으로 여기고 현세적인 영광을 추구하였다는 사실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참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접어든 자가 히스기야 왕이라고 한다면, 그에게서 배운 므낫세 왕은 더욱 심하게 우상을 섬기고 백성을 착취하는 폭정을 일삼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므낫세 왕 시대에 여호와신앙은 자취를 감추고 히브리경전마저 사라지고 맙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완전히 타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들 선민의 행태가 그 옛날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원주민들과 동일하게 되고 말았기에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멸망이 역사 가운데 찾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우상 섬김과 진배가 없는 무속신앙이 판을 치고 백성을 착취하는 황금만능사상이 팽배한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영적으로 엄청난 위기 가운데서 헤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몰락이 도래하기 전에 지도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통회하는 회개의 역사가 시급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 일에 앞장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