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글로바와 아들 시므온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15. 15:17

제목; “글로바와 아들 시므온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24:13-49, 참조; 15:7-15, 18:1-33)

설교일; 주후 2022821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15일 광복절 월요일 작성)

 

의사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에 관한 자료를 자기 나름대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체계적인 복음서를 저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점을 벌써 제1장 첫머리에서 진술하고 있습니다(1:3). 그 내용이 스스로 자신의 발로 현장을 뛰면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객관적으로 알기 쉽게 복음서를 기술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누가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의사 누가는 마지막 장인 제24장에서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제자들을 만나신 이야기를 전부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제자들을 만났으며 그들을 40일간 어떠한 내용으로 재교육시켜 부활의 증인으로 온세상에 파송하였는가? 하는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중요한 이야기를 마지막 장에 기록하면서 의사 누가는 제13절부터 제35절에 이르기까지 무려 23절을 할애하여 엠마오로 가고 있는 2명의 제자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만나고 계시는가에 대하여 적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러한 구성을 선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의 강해설교는 그 점을 집중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점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중요 포인트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첫째로, 엠마오로 가고 있는 그 두사람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수많은 제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서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그 두사람은 벌써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까지 예루살렘에서 전해 듣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엠마오로 가고 있습니다. 어째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하고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3)  셋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우연히 만난 것처럼 가장하고서 두사람과 엠마오까지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사람은 전혀 그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4)  넷째로, 예수님이 두사람의 집에서 식사하시면서 자신의 부활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그리스도에 관한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에 비추어서 조목조목 풀이를 해주시자 비로소 그들의 눈이 영적으로 밝아져서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들과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5)  다섯째,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된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되돌아가서 사도 및 제자들과 그때부터 행동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부활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그들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정식으로 찾아오셔서 어떻게 재교육을 시키고 어떠한 사명을 부여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리고 부활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능력을 부여 받아야 한다고 언급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이제부터 위와 같은 5가지 사실에 중점을 두고서 본문의 말씀을 한번 빠른 속도로 풀이하여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깨달은 교훈과 메시지를 동시에 간략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3. 그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세상이치에 매몰된 그들에게 창조주의 능력을 인정하는 영적인)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사람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 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24:13-24);

(1)  의사 누가는 엠마오의 위치가 예루살렘에서 10km 25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3). 실제로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나가서 서쪽으로 가는 통로로 이동을 하는 경우 25리 지점에 엠마오가 있다는 사실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엠마오에서 다시 북서쪽으로 20km정도를 더 진행하게 되면 다윗의 자손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아리마대에 도착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제2장을 참조하면, 목수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유월절을 지낸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족들과 함께 엠마오와 아리마대로 가고 있습니다(2:41-44). 그들은 친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빠서 그만 일행 중에 장남 예수가 있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2:44-46). 그때 발생한 일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전에 홀로 남아서 랍비들과 히브리경전의 내용을 토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45-50).

(2)  그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엠마오와 아리마대에 목수 요셉의 친족인 다윗의 자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부부는 편한 요단 강가의 길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일부러 친족들의 동네가 있는 그 길을 따라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엠마오에 살고 있는 두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의사 누가가 2사람 중 한사람의 이름이 제18절에서 글로바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또 한사람은 글로바의 아들인 시므온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15:14).  

(3)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일부러 글로바를 만나고자 동행하고 계십니다(15). 그 이유는 글로바가 가까운 친족 가운데 가장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글로바가 예수님의 숙부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그런지 십자가 아래에 글로바의 아내인 숙모 마리아가 서있는 것입니다(19:25);

그리고 글로바의 아들인 시므온이 훗날 예수님의 친동생인 장로 야고보에 이어서 예루살렘교회의 총회장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5:14). 또 하나는, 아리마대에 살고 있는 다윗 자손 유대인들의 촌장이 부자인 요셉인데 그는 산헤드린 대 공회에 참석하고 있는 종교적인 지도자로서 기실 숨어 있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23:50-51). 따라서 그가 십자가에서 운명한 예수님의 시신을 로마총독의 허락을 얻어서 자신의 묘역에 안장하고 있는 것입니다(23:52-54).

(4)  글로바가 다윗의 자손이며 목수 요셉의 아우라고 한다면 어째서 장조카인 나사렛 예수를 금방 알아보지 못했을까요?(16) 그 이유는 두가지로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전의 모습이 상당히 달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역사적으로 선지자가 부활한 사건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큰 선지자로 여겨지고 있는 나사렛 예수라고 하더라도(19) 일단 십자가에서 처형이 되고 무덤에 안장이 된 다음에는(20) 부활할 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입니다.

(5)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의 부활을 그들에게 정확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 점이 제17절에서부터 단계적으로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먼저 그 첫번째 단계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글로바와 시므온에게 예루살렘에서 처형이 된 나사렛 예수에게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답변하면서 글로바와 시므온이 두가지 사실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다윗의 자손으로 큰 선지자가 나사렛에서 나타났기에 유대인들은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할 줄 믿었다는 것입니다(19절과 21). 그러나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예수가 그만 십자가에 처형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20).

(6)  또 하나는, 여자들이 예수의 무덤에 갔다가 시신이 사라지고 그가 부활하였다는 천사의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남자제자들이 무덤을 찾았더니 역시 시신이 사라진 상태라는 것입니다(22-24).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므로 정황증거 뿐이라는 진술입니다(24). 그러므로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의 부활을 글로바와 시므온에게 믿게 하기 위하여 별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둘째로,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참조, 11:27),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참조, 53),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참조, 24:44).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참고, 18:1-5).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참고, 9:16, 22:19-20),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부활의 주님 영이신)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이때로 일어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공동체)에 돌아가보니, 11제자 및 그들과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24:25-35);

(1)  두번째 단계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질책입니다(25).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 속 부활에 대해서는 벌써 히브리정경에 예언이 되고 있으며 예수님의 공생애 36개월 동안에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직접 예언을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그 모든 사실을 인간적인 상식과 교만 때문에 전혀 믿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6-27, 8:31, 9:31, 10:33-34). 그것은 한마디로, 여호와의 창조주 되심과 그 말씀의 전능하신 창조성을 전혀 믿지 아니하고 있는 인간들의 불신앙인 것입니다(15:6). 그 점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가까운 친척 글로바와 시므온에게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세번째 단계는 두사람에게 영적인 눈이 뜨일 수 있도록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떡을 가지고 축사를 하시고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주는 것입니다(30). 그와 같이 성찬식을 시행할 때에 생명의 양식을 얻게 되는 성도들의 영안이 뜨이고 있습니다(31);

둘째,  바리새인들이 전통적으로 믿고 있는 영의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전혀 다릅니다(11:24-26). 예수님은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셨기에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식사에 참여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떡을 먹는 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로운 부활의 역사가 얼마나 위대한 소망인가를 정확하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글로바와 시므온처럼 고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24:32).

(3)  세번째 단계와 같이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는 은혜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글로바와 시므온이 자신의 동네를 지나쳐 가시려고 하는 부활의 주님을 자신들의 집으로 인도하고자 애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주님을 자신의 집에 모시고자 하는 신실한 종의 태도입니다. 그와 같은 선례를 아브라함의 경우 창세기 제18장 앞부분에서 정확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요컨대 주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자에게 부활의 확신이라고 하는 놀라운 은혜가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요1:11-14).

(4)  네번째 단계는 주님의 부활을 혼자서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와 기타 성도들에게 전해주고자 믿음의 공동체로 달려가야 합니다(33). 글로바와 시므온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그 기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하여 엠마오에서 예루살렘까지 25리 길을 밤중에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기쁜 소식을 온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낮과 밤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곧바로 뛰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얻으신 영생의 몸 곧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복음으로 온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성도의 아름다운 발걸음이라고 하겠습니다(10:15);

(5)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장차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으므로 그 기쁜 소식을 온세상에 전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달려가는 자에게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동일한 영적인 체험을 한 성도들과의 교제가 허락이 되고 있습니다(34-35).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의 믿음의 강화인 것입니다. 참고로, 율법에 따르면 중요한 사건은 두세사람의 증언이 있을 때에 확정이 됩니다(고후13:1, 17:6).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도 장정인 남자성도 2-3명의 증거가 있음으로 하여 증거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34-35절).

셋째로,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영생의 몸으로 새로운 창조를 받은 바)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셨기에) 그 앞에서 (그 옛날처럼, 22:19) 잡수시더라”(24:36-4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정식으로 나타나십니다. 자신이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였다는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증거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대목이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1)  첫째, 순전히 영체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셨기에 예수님은 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매우 친숙합니다. 따라서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먼저 언급하십니다;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영생의 몸으로 새로운 창조를 받은 바)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24:36-39). 

(2)  둘째, 하나님께서 새로이 창조하여 예수님께 가장 먼저 주신 그 영생의 몸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몸으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생애 당시와 같이 생선을 구워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있습니다(40-43).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 새로운 몸으로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서만 영원히 생활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 영생의 몸을 입으시고 그대로 감람산에서 40일 후에 승천하여 천국으로 들어가십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각각 기록하고 있습니다(24:50-53, 1:9-11).

넷째로,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참조, 16:31),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 47. (이제는 성전의 제사가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회개하면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놀라운 복음을 온세상에 알리는)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참조, 1:8)”(24:44-49); 무덤에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영생의 몸을 얻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재교육하십니다(1:3). 그에 대한 귀한 자료를 의사 누가가 어렵게 수집하여 이 대목에서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 대체적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임을 온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오시는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구약성경인 히브리경전에 풍성하다는 것입니다(24:44-47);

구체적으로, 모세의 글 민수기 제1129, 출애굽기 제3234,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의 글 제91-2절 및 제53, 시편에 등재가 되고 있는 다윗왕의 예언의 노래인 시편 제110편이 그러합니다.

(2)  참고로, 그 대목을 적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희생으로, 1:29) 보응하리라”(32:34), “29. 모세가 그(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1:29),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9:1-2),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1. 여호와께서 내 주(부활하신 주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110:1).

(3)  둘째, 히브리정경에 기록되어 있는 선지자들의 예언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살아갔으며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무덤속에서 영생의 몸으로 3일만에 부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그 뒤를 이어 주님처럼 영생의 몸으로 무덤에서 부활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5:29, 고전15:20-24). 그 사실을 하나님의 복음으로 온세상에 전파하라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48). 그것이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복음전파의 사명인 것입니다(28:18-20, 1:8).

(4)  셋째,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새로운 역사는 순전히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새로운 창조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력만으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함께 할 때에만 성취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으로 임재하여 성도들에게 권능을 부어 주셔야만 합니다(49, 9:1). 그 점이 다음과 같이 의사 누가에 의하여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9).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결론적으로, 바리새인들은 부활의 때가 되면 여호와의 능력에 의하여 죽은 자들이 영적인 부활을 맞이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고백을 베다니의 마르다가 예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11: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달리 말씀하십니다.

그 점을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살아 생전에 죽은 자의 부활을 베다니의 나사로의 경우처럼 볼 수가 있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정확하게 믿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죽은 몸이 영생의 몸으로 되살아나는 소망을 오늘도 확신하면서 기쁨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1:25-26의역).

의사 누가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관하여 발로 뛰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본문의 말씀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무덤속에서 예수님이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 증거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40일간 제자들에게 히브리정경에 기록되어 있는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님 자신에 의하여 어떻게 성취가 되었는지 재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렇지만 죽은 자가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고 그대로 승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설명할 수도 전파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에서부터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권능을 부어줄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라고 언급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제2장에 따르면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복음의 증거는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땅끝까지 영생의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의 일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