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다윗과 예수님의 족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9. 14:19

제목; “다윗과 예수님의 족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1:1-17, 3:23-25, 36-38)

설교일; 주후 2022814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9일 화요일 작성)

 

성도들이 읽고 있는 성경은 구약 39, 신약 27권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정경으로 불리고 있는 구약의 시작이 창세기인데 제1장 제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신론과 범신론을 동시에 배격하면서 오로지 유일신론 곧 여호와만이 창조주가 되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지금도 이 세상의 자연은 물론 인간의 역사까지 섭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여호와신앙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신앙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 다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창조주가 아니 계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무신론입니다. 또 하나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제는 선민에게 전권을 맡기시고 일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지 아니하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인간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하여 신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그것이 인본주의 내지 범신론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마태복음 제1장 제1절에서는 무엇을 선포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선 그 구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1:1);

창세기 첫머리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에서 시작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와 달리 마태복음의 첫머리는 여호와신앙인으로 불리고 있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선적으로, 구약에서 아브라함과 다윗대왕의 기록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핵심을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창세기 제22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는 엄청난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22:12). 그리고 다윗대왕은 한마디로, 작은 이스라엘왕국이 아니라 거대한 이스라엘제국을 중동 땅에 건설함으로써 선민의 영광을 사해에 떨친 자입니다(삼하8:14, 13:22);

따라서 마태복음 제1장에 실려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읽고 있는 선민들은 그 옛날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언약을 다윗대왕이 실현하였으며 이제는 그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외세를 물리치고 이 세상에 선민의 제국을 다시 건설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만약 성도들이 그렇게 유대교인들처럼 정치적인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는 선민 유대인과 같은 혈통적인 신앙관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는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진짜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기독교의 성도들입니다.

그와 같은 관념을 얼핏 알고 있는 성도들이 주로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선민의 족보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흥미가 없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의 자랑인 다윗왕조의 왕들이 나열되고 있기에 그것을 읽는데 그만 지치고 맙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이방인 출신 4명의 여인이 다윗왕조의 조상으로 등재가 되고 있기에 그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1:3-6);

구체적으로,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과부가 되어 수절하고 있다가 먹고 살 방도를 얻기 위하여 시부 유다에게 창녀인 척 접근하여 아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1:3, 38:14-30). 그리고 여리고 성읍의 기생출신인 라합이 유다지파의 밀정 살몬을 숨겨주고 그 덕택에 그의 아내가 됩니다(6:25). 그녀의 아들이 보아스입니다(1:5a).

보아스는 모압 출신 여인 을 아내로 얻고 아들 오벳을 생산하여 나오미 시가의 기업을 물려주고 있습니다(4:13-17). 그 오벳이 이새의 부친이며 이새의 아들이 다윗입니다(1:5b). 그리고 다윗은 이방인 헷 출신 장군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에게서 후계자 솔로몬을 낳고 있습니다(1:6, 왕상1:11).    

따라서 예수님의 계보는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하고자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사역의 특징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을 이방여인 4명의 기록으로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그리고 공의의 정신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므로 오늘날에도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의 주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3:16, 9:1-2, 11:1-9).

과연 마태복음 제1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그 정도의 시사성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 이상의 구체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점을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한 구절 씩 풀이하면서 자세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아브라함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은 아비나답을 낳고, 아비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삼하11:3, 26-27, 왕상1:11)에게서 솔로몬을 낳고”(1:1-6);

(1)  아브라함은 다윗의 조상일 뿐만 아니라 나사렛 예수의 조상입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적장자인 이삭이 이스라엘로 불리게 되는 야곱의 부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12지파의 후손들은 전부 아브라함의 자손이 맞습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레위 지파 출신 초대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기 때문에 예수는 외가로 보면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1:5, 36);

(2)  그렇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 예수는 생물학적인 부친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34-35). 그것은 창세기 제3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완전한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3:15, 7:14);

(3)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조상은 다윗대왕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예수의 외가가 레위지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대왕은 유다지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레위지파의 후손이 유다지파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흔히 나사렛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으로 아기 예수를 임신하고 출산하게 된 마리아가 정혼한 남편 요셉과 함께 다윗의 출생지역인 베들레헴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요셉의 적장자로 나사렛 예수를 등재하였기 때문입니다.

(4)  혈통적으로 따지자면 목수 요셉은 나사렛 예수의 의붓아버지입니다. 하지만 그 점을 명시하지 아니하고 출생과 동시에 호적에 적장자로 등재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적으로 보자면 나사렛 예수는 다윗의 자손인 목수 요셉의 장자로서 당연히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혈통적인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요셉의 장자로 의제가 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 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예수님의 남동생들입니다.

(5)  그들은 부모로부터 장자인 예수의 출생의 비밀에 관하여 이미 들은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바로 아래 동생인 야고보의 경우에는 부친 요셉의 적장자는 사실 자신이라고 하는 긍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부친 요셉이 모친 마리아와 합방을 하여 얻은 아들이 야고보를 위시하여 요셉, 유다, 시몬 등이기 때문입니다(6:3). 그러므로 야고보와 그의 동생들은 형 예수가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아라고 하는 소문을 듣고서 코웃음을 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분위기를 나사렛 예수의 이종동생인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그의 복음서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러 함이러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7:1, 3, 5).    

(6)  이상과 같은 사실을 깊이 생각하게 되면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계보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선민 유대인들은 주전 722년에 이스라엘 10지파가 참여하고 있는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그 흔적이 사라지고 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유민들이 제국의 변방으로 끌려가고 그 대신에 변방의 이민족이 사마리아와 고토에 들어와서 살게 되면서 혼혈과 우상화작업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2)    그 결과 가나안 땅에서는 이제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백성들만이 선민의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통성은 다윗왕조를 중심으로 보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비록 주전 142년부터 80년 동안 레위지파 출신 하스모니안 왕조가 가나안 땅을 다스리고 있지만 그것을 유대인들은 선민의 정통왕조로 보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에서 메시아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선민중심사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에 대하여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이방여인 4명이 다윗왕조의 조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이방인까지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본문에 대한 설명이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윗왕조를 섬기는 혈통적인 선민사상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전히 부인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8:10-12, 11:21).

4)    선민 유대인들이 선민 우월주의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다윗왕조의 혈통에는 이방인 출신 여성 4명의 피가 섞여 있습니다.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혈통적으로 다윗왕조의 족보는 나사렛 예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계보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제1장의 족보에서 선민사상을 찾는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연목구어(緣木求魚, 전혀 잘못된 시도)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7)  그렇다고 하면 다윗왕조의 족보가 아니라 진실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믿음의 족보라고 여길 수 있는 새로운 족보는 어디에 실려 있는 것일까요? 그와 같은 관점에서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 제3장에 게재하고 있는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특징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다윗을 제외하고 다윗왕조의 왕으로 세움을 받은 자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윗왕조의 계보가 아니라 단순하게 스룹바벨(Zorobabel, 3:27, KJV)의 계보이며 나아가서 유다의 아들 베레스와 헤스론의 족보일 따름입니다. 참고로, 여기서의 스룹바벨(Zorobabel, 3:27, KJV)은 여고냐 곧 여호야긴 왕의 손자인 스룹바벨(Zerubbabel, 2:2, KJV)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이름입니다

2)    그렇지만 그 족보의 끝은 세상의 왕조의 계보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거슬러 올라가서 종국적으로 에노스와 셋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정말 의사 누가가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믿고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3:38).

3)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들이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거듭난 인생을 살다가 끝내는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시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자녀들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그 신원을 마침내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소망과 믿음 가운데 성도들이 거듭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이 땅에서 다윗왕조나 선민의 제국의 영광에 구속이 될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8)  참고로, 본문 제6절에서는 다윗의 죄악이 여과없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 딴 사람의 아내에게서 후계자 솔로몬 왕자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다윗왕조의 죄악성을 드러내고 있는 진술이 다음과 같습니다;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삼하11:3, 26-27, 왕상1:11)에게서 솔로몬을 낳고”(1:6). 요컨대, 다윗의 왕자무치(王者無恥) 사상이 바로 선민들의 교만과 같은 것이라고 질타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분열왕국 유다 다윗왕조 1)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2)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3)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4)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5대 여호람 또는) 요람은 (6대 아하시야- 7대 모친 아달랴- 8대 아들 요아스- 9대 아마샤- 10아사랴 또는)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11)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12)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13)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14)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15)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16)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여호야김)의 형제들을 (17대 여호아하스- 18대 엘리아김인 여호야김, 왕하23:34- 19대 여고냐인 여호야긴, 왕하24:12, 25:27, 대상3:16-17- 20대 맛다니야인 시드기야, 왕하24:17)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 (왕이 아닌 다윗가문의 가주 제1)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2, 사실은 조카를 양자로 삼은 것임, 대상3:19) 스룹바벨을 낳고”(1:7-12); 마태복음을 저술하고 있는 사도 마태는 가버나움 세관에서 일한 적이 있는 세관원 레위입니다. 당시 세관에서 근무하자면 헬라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12사도 가운데 공생애 당시 헬라어에 밝은 자는 사도 마태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이 유식한 사도 마태이지만 당시 다윗왕조의 계보에 대해서는 정밀하지가 못합니다;

 따라서 차제에 다윗왕조의 왕들 이름 가운데 누락이 되고 있는 대목을 살펴서 아래와 같이 보완하였습니다;

(1)  8절에 대한 보완입니다; “, 8. (3)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4)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5대 여호람 또는) 요람은 (6대 아하시야- 7대 모친 아달랴- 8대 아들 요아스- 9대 아마샤- 10아사랴 또는) 웃시야를 낳고”(1:8). 유다왕 여호람 또는 요람의 아들인 아하시야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 갔다가 그곳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 비보를 들은 모후 아달랴는 아들 아하시야의 아들들을 전부 죽이고 스스로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녀는 북조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왕비 이세벨의 딸이므로 그러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요아스가 대제사장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의 손자가 아사랴인데 다른 이름으로는 웃시야로 불리고 있습니다.

(2)  11절에 대한 보완입니다;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16)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여호야김)의 형제들을 (17대 여호아하스- 18대 엘리아김인 여호야김, 왕하23:34- 19대 여고냐인 여호야긴, 왕하24:12, 25:27, 대상3:16-17- 20대 맛다니야인 시드기야, 왕하24:17) 낳으니라”(1:11). 성군 요시야가 북상하고 있는 애굽의 바로의 군대를 격퇴하기 위하여 요새지 므깃도에 나갔다가 그만 불의의 화살을 맞고 후송 도중에 급서하고 맙니다(왕하23:29-30). 중신들이 똑똑한 두번째 왕자 여호아하스를 신왕으로 삼고 바로 느고의 침략을 저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여호아하스가 애굽으로 끌려가고 괴뢰정권의 수장으로 첫번째 왕자 엘리아김이 바로 느고에 의하여 여호야김으로 이름이 바뀌어 즉위하게 됩니다.

(3)  그때부터 애굽 또는 신바벨론을 섬기는 약소국 유다왕국의 시대가 시작이 되고 맙니다. 여호야김 말기에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 군대를 이끌고 침략합니다. 왕은 사전에 죽고 왕자 여고냐가 여호야긴 왕이 되어 적을 막지만 역시 역부족입니다. 항복을 하자 그만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왕하24:12-15). 그때 유다왕국을 갈대아군대가 빈집털이를 하고 허접한 것들만 남겨서 시드기야 왕에게 주고 있습니다(왕하24:16-17). 그후 시드기야 왕이 애굽이 이끌고 있는 반() 바벨론 연맹에 참여하였다가 주전 586년에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다윗왕조 유다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그는 두 눈이 뽑힌 채 북송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7).

(4)  12절에 대한 보완입니다;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 (왕이 아닌 다윗가문의 가주 제1)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2, 사실은 조카를 양자로 삼은 것임, 대상3:19) 스룹바벨을 낳고”(1:12); 여호야김 왕의 아들인 여호야긴 왕이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하자 황제는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가서 감옥생활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36년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서거하자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즉위하여 여고냐 곧 여호야긴 왕을 자유의 몸이 되게 하고 신원을 회복하여 줍니다(왕하25:27-30).

(5)  그러나 다윗왕조가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윗의 가문만이 신바벨론제국의 수도인 바벨론성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여고냐의 장남인 스알디엘이 자손이 없이 죽고 맙니다. 그것을 보고서 여고냐는 3남 브다야의 장남 스룹바벨을 스알디엘의 양자로 삼고 그에게 다윗가문을 넘겨주고 있습니다(대상3:16-19). 주전 539년에 신바벨론제국을 격파하고 페르시아제국을 창건한 고레스 황제가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해방합니다(1:1-4). 그때 스룹바벨이 대제사장 가문의 후계자인 예수아와 함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와서 제2성전을 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2:1-2).

셋째로,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목수)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14,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14더라”(1:13-17);

(1)  16절에서 사도 마태는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목수) 요셉을 낳았으니, (아버지 없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확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후손인 요셉과 마리아가 합방을 하여 아들 예수를 낳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발휘가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아기 예수로 탄생한 것입니다.

(2)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대왕까지는 14대가 맞습니다. 그렇지만 다윗대왕의 아들인 솔로몬대왕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는 여호야긴왕 까지는 14대가 아닙니다. ①솔로몬- ②르호보암- ③아비야- ④아사- ⑤여호사밧- ⑥여호람- ⑦아하시야- ⑧요아스- ⑨아마샤- ⑩웃시야- ⑪요담- ⑫아하스- ⑫히스기야-⑬므낫세- ⑭아몬- ⑮요시야- (16)여호아하스- (17) 여호야김- (18)여호야긴 등 18대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북조 이스라엘 아합왕의 공주인 아달랴의 유다 통치까지 반영한다고 하면 19대가 됩니다. 더구나 시드기야 왕까지 포함하면 총 20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벨론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족보는 14대가 맞습니다(17).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이유는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아니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의 권능으로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한 자신의 아들인 것입니다. 단지 다윗의 자손인 목수 요셉이 마리아가 낳은 아기 예수를 고향 베들레헴을 방문한 김에 자신의 호적에 장자로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법으로 보자면 나사렛 예수는 다윗의 자손인 목수 요셉의 장자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혈통을 중시하고 있는 선민의식으로 보자면 예수는 도저히 다윗의 자손이 될 수가 없는 인물입니다.

그와 같은 현실을 반영하여 법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의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로 간주가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에 따라 선민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계자인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여 당시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외세인 로마의 세력과 헤롯의 왕가를 축출하여 주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같은 선민 유대인들의 현세적인 요구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왕조의 혈통적인 정통성을 내세우고 있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과 메시아사상이 만민을 구원하여 천국에서의 영생을 누리게 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복음사상에 어긋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제1장에 실려 있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하는 것은 다윗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족보에 편입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에 따라 그 족보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과는 다르며 선민사상의 근거가 되고 있는 다윗의 족보가 근본적으로 구원의 방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요한복음 제1장의 한대목을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2-14).

다윗의 족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성육신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의 성육신인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를 성경말씀 가운데 깊이 깨달아 그것을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새로운 족보이며 유일한 생명의 길입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