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깨달아야만 하는 두가지 영적인 진리(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7. 19. 08:51

제목;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깨달아야만 하는 두가지 영적인 진리”(8:4-8, 8:2)

설교일; 주후 2022724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719일 화요일 작성)

 

창세기 제1장과 제2장의 말씀에 따르면, 세상만물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는 크게 보아 두가지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지막날 제6일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걸작품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여 세상만물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1:26, 28);

따라서 피조물인 사람이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특별한 영적인 능력을 일부 얻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창세기 제1장 제27절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7).

또 하나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생명의 기운을 계속 얻어서 하나님의 청지기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창세기 제2장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2:7-8);

다시 풀이를 해보자면, 사람은 애초에 천지만물을 창조주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할 수 있는 청지기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창조주의 뜻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심령속에 내재되어 있는 영성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영성의 개발이란 창조주 하나님에게 돌아가서 다시 영적인 생기를 얻어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세상나라 실락원(失樂園, lost paradise)에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명의 창조주가 기다리고 계시는 그곳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제멋대로 날아다니고 있는 새들도 때가 되면 둥지로 돌아오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이 생명의 주인이신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그 점을 가장 먼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길에서 실족하고 있는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달라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간구하기만 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 주실 것인데 그와 같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선민 유대인들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한평생 영광을 누리기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창조주 하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무덤에서 사람들을 다시 살려서 심판대 앞에 세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5:24-29). 어린아이들은 넘어지게 되면 부모님께 울면서 도움을 구하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특히 그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이 된 선민들이 그렇게 행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깨달은 사실들을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4. (예레미야) 너는 또 (동족인 유대인)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려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8:4);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동족인 유대인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사람이 일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바로 일어서고자 용을 쓴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는 자주 땅에 넘어집니다. 그때에는 부모님께 울면서 호소합니다. 자신을 부디 붙잡아서 일으켜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쓰러지는 자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용을 써야 합니다. 그 방법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가 없으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2)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믿음생활에서 실족하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와 같은 올바른 성도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무덤에서 부활시켜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 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이 세상에서 잘못을 범하여 넘어졌을지라도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다시 주님의 도우심으로 벌떡 일어나 거듭난 성도의 삶을 끝까지 살아간 자는 무덤에서 부활하여 영생의 심판을 받아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끝까지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오지 아니하는 자는 완전히 넘어진 자가 되어 마지막 심판에서 영벌에 처해지고 말 것입니다.

(3)  또 하나는, 어리석은 탕자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제마음대로 한세상 살아 보기를 원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15:12-13).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부모님의 손을 놓쳐버린 것을 깨닫게 되면 즉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자 야단입니다;

 그런데 선민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그러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서 그 품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뜻대로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욱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  구체적으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 말기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동족들에게 선포하여도 그들이 전혀 여호와신앙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멀지 아니하여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가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유다 왕국은 애굽제국이 주도하고 있는 반() 바벨론 동맹에 가입하여 갈대아군대의 침입에 맞서게 되면 넉넉하게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8:1-4). 그것은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말씀과는 정반대입니다(25:7-9). 한마디로, 유다 왕국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일반백성들이 예레미야가 전달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떠나서 끝까지 자신들의 세상적 판단과 고집만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1-12).  

둘째로, “5.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창조주 여호와인)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6.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8:5-6); 믿음에서 실족한 자의 모습에 대하여 예레미야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를 버리고 멀리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5a). 둘째,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거짓선지자의 달콤한 말을 듣고서 마냥 세상살이의 재미에 탐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5b). 셋째, 여호와신앙을 버린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①거짓말이 성행하고, ②악행을 회개하지 아니하며, ③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④나아가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역사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6);

셋째로, “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8:7-8);

(1)  7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실제로는 미물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고 있다고 질타하고 있습니다(7c). 예를 들면, 공중을 멀리 날고 있는 장수함의 상징인 학은 창조주 하나님이 정한 시기 두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계절을 쫓아 어느 방향으로 날아갔다가 언제 되돌아와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수명이 길다고 하지만 청년의 때, 중년의 때, 노년의 때가 있음을 알고서 그 기력에 순응하여 살다가 마침내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소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7a);

(2)  학만큼 오래 살지 못하지만 다른 새들 곧 산비둘기, 제비, 두루미 등도 그 정도의 지혜를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가기를 소원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7b). 그 점에 대해서는 훗날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제8장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8:19-22).

(3)  8절에서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 백성들의 방종함에 대하여 영적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8b).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 있어서 서기관은 두가지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하나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역할입니다. 또 하나는, 율법학자로서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서기관인 사관들이 여호와신앙을 떠난 왕과 귀족들의 행태에 대하여 윤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담고 있는 율법에 대하여 율법학자인 서기관들이 선민중심주의 및 선민우월주의에 입각하여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에 대해서는 여호와의 저주가 임하고 반면에 선민 유대인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임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와 같은 서기관의 거짓의 붓과 폐쇄적인 율법해석이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15:14). 구체적으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진정한 뜻을 선민들이 깨닫지 못하고 장로들이 만든 율법의 세칙을 준수하는 것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고서 남은 인생을 세상적인 지혜를 숭상하며 살아가고 마는 것입니다(8a). 그 점을 훗날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책망하십니다;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 도다”(7:5-9).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신앙생활을 단순하게 어린아이처럼 하면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0:14-15). 그 이유는 무엇보다 어린아이가 길에서 넘어지게 되면 부모에게 자신을 일으켜 바로 세워 달라고 즉석에서 울면서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손을 놓쳐버리게 되면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기 위하여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선민임을 자랑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그와 같은 순전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에서 멀리 떠나 제멋대로 한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는 세상적인 지혜와 방법을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멀리 떠나서 생활하는 것이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는 실족하여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우상숭배자의 삶에 불과합니다. 그와 같은 삶을 계속하게 되면 그들의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며 개인적으로는 부활하여 영벌의 심판을 받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본문의 말씀을 자주 묵상하시면서 만물의 영장 답게 창조주 여호와의 품에 돌아가서 생명의 기운을 말씀 가운데 영적으로 흡족하게 얻어서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