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시편 제9편에 나타난 만민구원의 하나님(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7. 5. 15:43

제목; “시편 제9편에 나타난 만민구원의 하나님”(9:1-12)

설교일; 주후 202271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75일 화요일 작성)

 

유대인들은 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행동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방 땅으로 나아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며 더구나 여호와신앙인의 모범을 보이는 인생을 살아가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생전에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가장 큰 잘못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중요한 두가지 사항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 변방의 선지자였던 요나의 행적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12:39-41). 주전 8세기 여로보암2세 때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선지자였던 요나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았습니다(1:1-2, 왕하14:25). 그 내용은 동쪽 티그리스 강 상류에 있는 이방나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40일후에 여호와의 진노로 그 성이 멸망을 당한다는 예언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요나가 볼 때에 그 일은 이상한 두가지 점이 있습니다; 첫째, 가나안에 살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의 선지자 가운데 이방 땅에 나아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한 선례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와 같은 여호와의 저주의 말씀을 이방인에게 전파한다고 하면 그들은 화가 나서 요나 자신을 잡아서 죽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동쪽 니느웨로 간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행동합니다. 서쪽 지중해 끝에 있는 항구도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1:3). 여호와께서는 신위적인 능력으로 바다에 큰 바람을 불게 만들고 그 풍랑이 요나의 잘못 때문임을 뱃사람들에게 알게 하십니다. 그 결과 요나는 바다에 제물이 되어 던져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큰 물고기 뱃속에서 숨을 쉬면서 3일 동안 지내는 동안 요나는 여호와의 뜻을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결심합니다. 그 결과 그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땅으로 토해지는 기적을 체험하고 니느웨로 가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2:10-3:4);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저주의 예언을 들은 이방인들이 선지자 요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여호와 앞에 회개하고 있는데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백성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것입니다(3:5-9).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3:10). 그렇지만 선지자 요나는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여호와께 항의를 합니다(4:1-4). 그리고 니느웨 동쪽 언덕에 머물면서 이방인들이 다시 여호와의 눈 밖에 나서 장차 그 도시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자 합니다(4:5).

그때 여호와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4:10-11).

그 말씀의 뜻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든 창조물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3:16, 8:18-21). 그와 같은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주후 1세기 유대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동족들에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으로 밝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선지자 요나의 선례를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12:39-41, 16:4).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로마인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칭찬하십니다(8:5-10);

 그때 여호와의 만민구원의 뜻을 복음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있는 동족 유대인들의 잘못을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8:10-13).  

그것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여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라고 지상명령을 주십니다(28:18-20, 24:45-48). 또 지상명령을 실천할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1:8, 24:49).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복음으로 교육시키실 때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선지자의 글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24:44-45);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이 진리임을 여호와의 뜻으로 이미 히브리정경 가운데 모세의 율법서와 선지서와 시편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다윗의 시편 73편 중의 하나인 제9편의 내용 전반부에서 그 점을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본문 12절의 말씀 가운데 만민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기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1; 피조물인 다윗은 창조주 여호와께서 시행하시는 기이한 일들을 전파할 따름인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2; 이 세상 만민을 비롯하여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일을 행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3)  3;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우리들을 억누르고 있는 원수들이 주님에 의하여 패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4)  4;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주님의 변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5; 선민의 나라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나라까지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다윗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6)  6;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거역한 모든 원수들은 이 땅에서 멸망을 당할 뿐만 아니라 창조주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영벌의 심판까지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7)  7; 이 땅에서 역사를 섭리하시고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한 심판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다윗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8)  8; 이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가장 정직하게 선민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공의로운 판결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9)  9; 이 세상 모든 민족들 가운데 압제 당하는 자를 찾아서 보호하시며 환난 가운데 구원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주십니다.

(10)    10; 선민 이방인 차별없이 누구든지 창조주를 찾으며 구원주를 의지하고자 하는 자를 모두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11)    11; 그와 같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이 시온 예루살렘에서부터 선포가 되고 온 세상 끝까지 전파가 된다는 것입니다.

(12)    12;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자는 누구나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과 더불어 가난한 소자의 부르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아니하시는 창조주의 뜻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구체적으로 만민구원의 창조주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는 인물이 시편 제9편의 저자 다윗입니다. 이제부터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하여 본문말씀을 한 구절 씩 풀이하면서 묵상의 결과 얻은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땅끝까지)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창조주 여호와를) 기뻐하고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기이한 일을, 3:16) 즐거워하며, (피조세계의 주인이신)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영생과 영벌을) 심판하셨나이다”(9:1-4);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땅끝까지)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창조주 여호와를) 기뻐하고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기이한 일을, 3:16) 즐거워하며, (피조세계의 주인이신)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9:1-2);

1)    1절에서 다윗은 온전히 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1a). 그 이유는 피조물에 불과한 다윗의 생각과는 달리 여호와께서는 피아를 구별하지 아니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끝까지 구원하시는 기이한 능력을 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b). 따라서 창조주 여호와의 놀라운 능력을 깨닫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의 그 공의의 정신을  온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1c).

2)    2절에서 다윗은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창조주 여호와가 계신다는 사실을 참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2a). 그것은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무신론자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상숭배자나 범신론자가 아님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우상들이 할 수 없는 그것 곧 이 세상 모든 것들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여호와께 있으며 그 분이 자신의 주인이며 창조주이심을 기뻐한다는 다윗의 고백인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맥락에서 다윗은 두가지 일을 행하고 싶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2b); 첫째,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즐거워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윗 자신은 자신의 나라와 민족만을 구원하기에도 힘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나라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나라까지 모두 돌보시고 공의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둘째, 다윗은 이제부터 피조세계의 주인이신 창조주 여호와의 이름을 드높이고 그 이름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2)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영생과 영벌을) 심판하셨나이다”(9:3-4);

1)    3절에서 다윗은 원수의 종류가 두가지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본문에 명시가 되지 아니하고 있는 세상적인 원수입니다. 그들은 다윗의 군대와 맞서고 있는 적군들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적들과 싸워 백전백승을 거두고 있습니다(삼하8:14). 또 하나는, 다윗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영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 진짜 원수들이 있습니다. 그들 악한 영들은 인간의 정신과 육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6:12, 8:2). 그 원수들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악한 영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께서 진짜 다윗의 원수인 그 악한 영들을 쳐부수고 멸망시켜 주시는 것을 다윗이 여기서 명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4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주인이 되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생의 천국에서도 자신을 보호하고 구원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첫째, 다윗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행동을 하고 있으면 이 세상의 원수와 적들이 제기하고 있는 어떠한 송사의 자리라고 하더라도 다윗이 옳다는 사실을 변호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4a). 둘째, 다윗은 이 세상을 떠나 천국 여호와의 전에 이르러 그곳에서 영생의 구원을 얻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께서 다윗을 심판하시고 영생의 판결을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심판의 기준이 바로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했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5. 이방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생명책에서) 지우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영생과 영벌을 결정하기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9:5-8);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5. 이방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생명책에서, 32:32) 지우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9:5-6);

1)    5절에서 다윗이 말하고 있는 이방나라들은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창조주 여호와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선민의 나라와는 달리 여호와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나라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이방나라들은 무신론자나 우상숭배자이며 한마디로, 악인들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신앙이 없이 제멋대로 한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과 악인들은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멸망을 맛보며 궁극적으로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2)    6절에서 다윗이 원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죄와 사망으로 인간을 지배하고자 하는 악한 영들이 바로 원수입니다. 그들은 창조주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는 운명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9:6a, 20:10). 또 하나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악한 영을 신으로 섬기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그들의 나라는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따라 멸망을 당하며 그 백성들은 구원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고 영원히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9:6b, 8:12).

(2)  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영생과 영벌을 결정하기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9:7-8); 다윗이 여기서 만민구원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두가지 일을 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서 선민의 나라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나라까지 그들의 역사를 심판하시는데 그 기준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8a);

 또 하나는, 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원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보좌에 여호와께서 좌정하시면 드디어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결정하는 마지막 심판이 있게 됩니다(7). 그때에는 개인별 심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만민에게 평등하게 가장 정직한 심판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8b).

셋째로,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9:9-12);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9:9-10);

1)    9절에는 두가지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압제를 당하는 자를 보호하고 지켜 주시는 요새와 같으신 분이 바로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창조주이시므로 자식과 같은 피조물들이 서로 사이좋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현실세계에 있어서는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억누르고 착취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역사에 개입하여 억울하게 압제는 당하는 자들의 신원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9a).

2)    또 하나는, 대규모의 종교적인 박해나 적의 침략과 같은 환난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에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호소하면 여호와께서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동시에 그 환난의 때가 지나가도록 역사를 섭리하여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9b). 그러므로 여호와께 호소하면 환난의 때에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다윗이 제10절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3)    하나는, 환난의 때에 우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로지 여호와만이 창조주이시므로 백성을 구원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10a). 그것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또 하나는, 그 믿음에 여호와께서는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따라서 공의와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전부 구원하여 주십니다(10b). 그것은 이 세상의 환난에서의 구원 뿐만 아니라 영생의 구원까지를 포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9:11);

1)    이 세상 만민과 만물을 모두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으로 유대 땅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복음선포의 절정은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 처형을 맞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온 곧 예루살렘 서쪽 골고다언덕 인근에 있는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십니다. 40일간 제자들을 재교육하신 다음에는 예루살렘 동쪽 교외지역 감람산에서 승천하십니다(24:50-51, 1:10-12).

2)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방에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자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이 시온 곧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될 것임을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지하고 본문에서 벌써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라고 감격스럽게 선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9:12);

1)    12절 전반부의 내용은 창세기 제4장에서부터 그 근원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카인이 여호와의 경고를 무시하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들판 한가운데에서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시신을 그곳에 암장하고 말기 때문입니다(4:8). 그러나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죽은 아벨의 피의 절규와 그 피를 억지로 마시게 된 땅의 고통스러운 호소를 이미 듣고 계십니다(4:10-11).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이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라는 표현은 그 근거가 확실한 것입니다.  

2)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 창조가 되어 있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무죄한 자의 피가 땅에 흘러 넘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노아 홍수 이후에 사람이 흘린 피의 대가를 반드시 찾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9:5-6).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 피의 양이 하나님의 관용의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반드시 그 땅에 멸망의 역사가 찾아오도록 역사를 섭리하고 마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아모리 족속의 경우가 그러하고 훗날에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경우가 그러합니다(15:16, 왕하21:9, 16).

3)    12절 후반부의 내용은 두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첫째, 생계가 막막한 가난한 자를 주님께서는 소자(小子, 작은 자)라고 부르시면서 그들을 구제하는 것이 선민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계십니다(25:40). 따라서 모세의 율법에서부터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와 생계수단이 없는 레위인을 돌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2:21-27, 14:27-29);

4)    둘째,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 또는 생계의 어려움에 처한 그러한 가난한 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무조건 상대적으로 가난하다고 하여 약자의 편을 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서 어긋나는 것이라고 율법에서 또한 지적하고 있습니다(23:3, 6). 공평성을 강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세력이 큰 부자라고 하여 무조건 그 편을 들지 말라고 역시 말씀하고 계십니다(23:2).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둘째가 아니고 앞에서 기술한 첫째의 경우에 근거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9:12b)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는 자신이 창조한 이 세상의 모든 백성을 골고루 사랑하시며 그 생명을 전부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윗은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민만의 구원을 강조하고 있는 훗날의 유대교의 가르침은 다윗이 발견한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서 한참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의 깨달음이 훗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시편 제9편 본문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만민구원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