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33강(렘23:33-3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10월 1일(월)
여호와께서는 누구를 버리시고 또한 누구와 누구의 집안을 벌하시는가?(렘23:33-36)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참으로 간략하면서도 정확하게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최종적으로 밝히고 계십니다;
(1) 첫째로,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1)고 진작에 말씀하신 여호와께서는 이제 너희들을 버릴 따름이라고 결론을 짓고 계십니다(렘23:33).
(2) 둘째로,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 그러나 그 한사람의 의인이 예루살렘 출신 가운데 발견이 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렘5:31).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백성이나 매일반으로 그 사람과 그 집안을 벌하시겠다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하십니다(렘23:34).
(3) 그러므로 더 이상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고 묻지를 말라고 하십니다(렘23:35). 그리고 이미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하신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에서 벗어나는 거짓말을 백성들에게 유포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렘23:36a). 만약 자신이 여호와께 직접 받은 예언이라고 주장하면서 함부로 거짓 예언을 사회에 전파하게 되면 여호와의 중벌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렘23:36b). 왜냐하면, 감히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이름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망령되이 사용하였으니 그것은 십계명의 위반이기 때문입니다(렘23:36c, 출20: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렘23:3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렘23:33a);
1) 선민사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인 선지자나 제사장들 그리고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여 그 엄중(嚴重, 변함이 없고 확고한 속내를 말하고 있음)한 뜻이 무엇인지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묻고 있습니다(렘23:33a). 어째서 그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진의(眞意)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2) 하나는, 여호와의 전에 불려 가서 그 말씀의 위탁을 받아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대언할 수 있는 선지자가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선택한 특별한 자가 아니면 사람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거나 여호와의 말씀이 임재를 하는 대 사건이 발생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렘1:1-3).
3) 예를 들면, 공식적으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가 주전 400년경에 활동을 하였는데 그 이후 유대인 사회에서는 주후 1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정식으로 선지자가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누가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주후 28년이 되자 비로소 요단 강가에 세례 요한이 선지자로 나타나고 반년 후에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로 등장한 것입니다(눅1:36, 41-42, 3:1-3, 21-23). 그만큼 진짜 선지자는 희귀하며 매우 특별하게 선택을 받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의 종이라고 하겠습니다(요21:15-19, 행6:4).
4) 또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쉽사리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세가지로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5) 첫째,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세계를 관찰하시고 피조물들을 일일이 살피시고 그 생명을 하나같이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에 비하여 인간은 모든 세상을 다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시야가 지극히 제한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우선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가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어려운 주문입니다.
6) 둘째,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시공간을 초월하십니다. 동시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시고 모두를 살리는 방향으로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시고 사람을 만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은 다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를 못합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여호와의 생각을 자신의 집단 이기적인 속성에 맞추어서 이해를 하려고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7)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역사적으로 선민우월사상을 지니고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무조건적인 수호신으로 개념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선민과 이방인을 동일하게 취급한다거나 이방인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종으로서 자신들의 희생을 무릅써야만 한다고 하는 말씀은 그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주장에 불과합니다.
8) 셋째,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공생애를 사시면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복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풀이하시자 유대인사회에서 일대 혼란이 발생합니다. 전통적인 자신들의 히브리정경 말씀의 풀이와 전혀 다른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 의하여 배척을 받고 십자가에서 처형이 되는 비극이 발생하고 마는 것입니다.
(2)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렘23:33b);
1) 예레미야가 선지자활동을 하고 있던 유다 왕국 말기에는 거짓선지자들이 득세를 하고 있던 시대입니다. 마지막 선민이라고 대내외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선택하고 있는 행동이 여호와의 뜻과는 전혀 다릅니다. 선민 유대인들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신상에게 인신제사를 드리고 우상에게 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2) 그렇게 영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타락한 유대인 사회를 향하여 많은 영적인 지도자들이 두가지의 거짓 예언을 감히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율법에 따라 예루살렘성전에서 매년 대(大)속죄일에 대(大)제사장이 백성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고 있으므로(레16:29-34) 선민 유대인들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여호와로부터 죄 사함의 은혜를 얻은 거룩한 의인들이라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다윗왕조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 히스기야 때에 중동의 패권국 앗수르의 침공을 신위적인 능력으로 물리쳐 주셨습니다(왕하19:34-35). 그러므로 작금의 패권국 신바벨론이 다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쳐들어온다고 한다면 그들 역시 여호와의 능력으로 패퇴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렘28:1-4).
3)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것이 아니라고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영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타락한 선민 유대인들의 나라는 여호와의 진노로 신바벨론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것이며 전란 가운데 살아남은 백성들도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망국의 백성으로 고난 가운데 살아갈 것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렘6:13-15, 8:1-3). 본문에서는 그것이 변함이 없는 확고한 여호와의 역사 섭리임을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렘23:33b)라는 기록으로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안을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렘23:34);
(1) 거짓선지자들의 말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보다는 그들의 말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1) 첫째, 누구나 자신이 잘못한 것을 꼭 집어서 야단을 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라고 하더라도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같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고 있다고 비판을 하고 있다면 그것을 좋아할 백성이 없습니다. 칭찬 받기를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그렇게 따갑게 잘못을 질책하고 있으니 마음에 들 리가 없는 것입니다.
2) 둘째, 백성들의 영적인 그리고 성적인 타락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들의 나라를 망하게 하고 그 백성들을 이방인의 노예로 살도록 징벌하신다고 하는 예언의 말씀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여전히 절기를 쫓아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으므로 이방 강대국을 여호와께서 그 옛날처럼 계속 물리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하는 그 달콤한 사랑과 구원의 말씀을 선민 유대인들이 선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백성들이 심리와 권력자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권력자들의 비위를 맞추고 백성들의 마음에 드는 말씀을 자신들이 받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대인사회에 선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예레미야가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렘23:34a)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말 만을 골라서 그것이 여호와의 예언이며 엄중하신 말씀이라고 거짓말을 서슴지 아니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처벌을 하실까요? ①첫째, 거짓 예언을 전한 자나 그것을 추종한 자 모두 처벌을 하십니다. ②둘째, 그러한 개인은 물론 그 집안까지 모조리 처벌을 하시겠다고 본문에서 선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렘23:34b).
셋째로,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하고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 하고”(렘23:35-3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하고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렘23:35-36a);
1) 창세기 제3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마귀의 화신인 뱀의 간교한 술책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뱀은 다음과 같이 아담부부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선악과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먼저 질문하고 있습니다(창3:1). ②둘째, 여호와의 말씀의 진의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아담부부는 회의적인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창3:2-3).
2) ③셋째, 그 빈틈을 노려서 뱀은 아담부부의 탐욕과 정욕을 충동하는 말을 진리라고 스스로 확신하듯이 그렇게 엄중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창3:4-5). ④넷째, 그 뱀의 거짓말의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그들 아담부부가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는 신분에 벗어나는 잘못을 대담하게 저지르고 말기 때문입니다(창3:6-7).
3) 마찬가지입니다. 거짓선지자들이 서로 옳다고 보증하면서 내세우고 있는 거짓 예언의 영향력이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렘23:35-36). 그러면서도 백성들은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엄청난 분노를 사는 길이라는 사실조차 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강력한 징벌이 그 다음 구절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2)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 하고”(렘23:36b);
1)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뜻을 모르고 함부로 거짓 예언을 세상에 퍼뜨리게 되면 당사자와 그 말을 듣고서 그 진위여부를 확인하지 아니하고 맹종한 백성들이 모두 여호와의 중벌을 받게 됩니다(렘23:36ba).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2) 하나는, 자신이 전하고 있는 말씀에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예언의 말씀이며 확실한 진리의 말씀 곧 엄중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주장을 했기 때문입니다(렘23:36bb). 그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제멋대로 사용하여 인간인 자신의 말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도장을 찍은 소위 사위(詐僞, 사기와 위조) 행위이며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한 신성모독죄입니다(출20:7).
3) 또 하나는, 예레미야 제23장에 걸쳐서 여호와께서는 엄중한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 또한 진짜 선지자와 거짓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것을 모두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그러한 여호와의 주의사항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말씀만을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진짜 선지자 예레미야와 우리야가 박해를 받고 있으며 거짓선지자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렘26:20-24, 38:1-6).
4) 그러한 세상을 만든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렘23:36b)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당연히 ‘각 사람’은 선동자와 추종자 모두를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생활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이 진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인지 그리고 정확한 여호와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간단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결론삼아 드리고자 합니다;
(1) 첫째,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시며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필요한 경우에 선지자를 선택하여 환상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내시고 말씀을 위탁하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받은 선지자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둘째, 그런데 문제는 일반백성들의 입장에서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만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선지자가 전하고 있는 말씀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식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누가 진짜 여호와의 말씀의 위임을 받은 진짜 선지자일까요? 더구나 거짓선지자가 자신도 여호와를 꿈속에서 또는 환상 가운데 만나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 진위를 파악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3) 셋째,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록을 통하여 제23장에서 그 식별의 방법을 지금까지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일반성도들도 여호와의 말씀의 엄중한 취지가 무엇인지를 마음속에 담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함으로써 여호와신앙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세상 탐욕과 쾌락을 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처벌이 없으며 평안과 구원으로 함께하신다고 말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의 달콤한 말에 현혹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4) 넷째, 여호와의 말씀을 자기 편한대로 이기적으로 해석하여 받아 들이거나 세상적으로 끼리끼리 집단을 이루어 세력으로 자신들이 진짜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을 고수하고 있다고 권력투쟁을 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은 질의 문제이지 결코 양적인 문제나 인간세상의 세력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본문을 포함한 예레미야 제23장의 말씀을 음미하시면서 신앙생활에 많은 도우심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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