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원 코리아11(손진길 소설)
평양에 살고 있는 강철민은 개인적으로 2020년과 이듬해 2021년은 마치 악몽처럼 느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공화국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어려움이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이라고 밀어붙인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의 개발 및 각종 시험으로 말미암아 국제사회에서 야기된 공화국에 대한 다양한 경제제재가 점점 가중이 되면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부터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및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차례로 만나 정상회담을 통하여 그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고자 시도하였으나 그것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따라서 2020년 6월에 김정은 수령의 심복들은 그 책임을 한국정부에 떠다 넘긴다. 구체적으로 모든 연락선을 끊어버리고 공동연락사무소 건물도 폭파해 버린다. 그때부터 남북한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고 공화국은 고립이 되고 만다;
또 하나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비드19 전염병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공화국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그에 대한 방역시설이 부족한 공화국으로서는 국경봉쇄조치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예 중국과의 교류를 차단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오래 선택하고 있다. 그 때문에 주로 중국의 물품을 수입하여 판매하고 있던 장마당이 한산해지고 만다. 북한의 인민들이 만성적인 생필품과 각종 의약품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국제적인 고립과 생필품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식량자원의 생산마저 20% 정도 부족하다. 그 전에는 남한과 해외동포에게서 들어오는 송금, 공화국에서 해외로 내보낸 인력들이 보내오는 송금, 그리고 국제무역을 비롯한 여러가지 외화벌이 등으로 부족한 식량을 사와서 인민들을 먹여 살렸는데 이제는 그 방도마저 어려워지고 만 것이다.
따라서 인민들의 불만과 원성이 자꾸만 높아지고 있다. 그들은 지난 1995년부터 4년간 경험한 김정일 수령 시대의 ‘고난의 행군’을 다시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치고 있다. 당시에는 홍수와 태풍의 피해가 극심하여 식량생산이 크게 줄어들어 인민들이 배급을 제때 받지 못하여 아사자가 속출한 참으로 끔찍한 시대이다;
지난 2011년말에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등장하여 장마당을 묵인하면서 서서히 개혁과 개방으로 나아가고 있어 나름대로 공화국의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2016년과 2017년에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의 개발이 막바지에 올라있어 연속적인 지하 핵폭발과 미사일의 시험발사 때문에 그만 핵확산을 우려하는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제재를 크게 받고 만 것이다.
2018년이 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큰소리를 쳤다. 이제는 공화국이 핵무력을 완성하였으므로 자체 핵무기가 없는 남한의 지도자들이 강성한 우리를 두려워하여 순순히 말을 들을 것이며 나아가서 세계의 패권국이라고 하는 미국도 핵강국인 공화국을 인정하고 협력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공언한 것이다;
김정은은 핵무력의 완성이 북한의 정권에 대한 안전보장이며 잘사는 인접국을 위협하여 북한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일종의 ‘도깨비방망이’(Goblin bat)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순진한 사고방식이다. 2018년초부터 남한 대통령과 협의를 하고 미국 대통령을 만나 협상을 해본 결과 그 전략이 전혀 먹히지 아니한 것이다.
그때 가서야 김정은과 그의 심복들은 1980년대에 미국보다 핵무기의 수가 더 많았던 소련이 미국과의 ‘냉전’(cold war)에 휘말려서 어떻게 경제파탄을 맞이하고 끝내 1991년에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는지를 역사적인 참담한 교훈으로 되새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때늦은 깨달음이며 후회이다. 당장은 2020년대 초반에 공화국을 덮치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국제적인 전염병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현안문제이다.
강철민은 출근하여 자신의 부대가 보위하고 있는 핵무력을 볼 때는 군사적으로 든든한 마음이 들지만 평양시내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는 초췌한 몰골의 인민들을 볼 때에는 가슴이 아프다;
노동당은 평양에 살고 있는 인민들에게 대해서는 최대한의 우선적인 배려를 하고 있지만 일단 평양을 벗어나게 되면 공화국이 인민들에게 주고 있는 혜택이 거의 없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과거 김정일 시대부터 북한의 농업과 공업에 대하여 인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생산을 증가하고자 나름대로 일부 자본주의적인 제도를 도입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협동농장의 일부를 개인에게 나누어 주면서 세금과 일부 공출을 내고 나머지는 개인이 가지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공장에 대해서도 독립채산제를 일부 도입한 것이다.
1980년대의 중국 그리고 1990년대의 러시아와 비교하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작은 규모이다. 그래도 장마당의 묵인으로 그들이 생산한 물량이 시장에서 유통되면서 공화국의 경제에 나름대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국경지대에서 수입한 물품도 장마당이라고하는 혈관을 타고서 전국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흐름이 이제는 폐쇄가 되고 있으니 인민들의 고통이 심해지고 제2의 고난의 행군이라고 몸서리를 치고 있다;
그와 같이 공화국의 현실이 심히 답답하기에 강철민은 현직에서 은퇴한 이모부 조운락 교수의 집을 자주 찾고 있다. 그 집에 가게 되면 공화국에서 천재과학자로 불린 이모부의 좋은 말을 들을 수가 있다. 더구나 간혹 그 집에 찾아오는 이모부의 친구분을 만날 수가 있다. 그 이름이 나윤철이다.
그는 조운락 교수의 친구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한 살 연하이다. 두사람은 공화국이 자랑하고 있는 천재들이지만 그 전공분야가 전혀 다르다. 조운락 교수가 물리학박사라고 하면 나윤철 교수는 정치경제학박사이다. 그리고 조 교수가 주로 모스크바 대학에서 연구를 했다고 하면 나 교수는 독일과 중국에서 연구를 했다.
조운락 교수는 모스크바대학에서 핵물리를 연구하고 조국으로 돌아와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와 달리 나윤철 교수는 중국의 개방과 개혁정치 그리고 독일의 통일과정을 깊이 연구하고 돌아와서 공화국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다;
강철민은 나 교수가 작성했던 보고서의 내용을 일부 기억하고 있다. 그는 1995년부터 공화국에 밀어닥친 고난의 행군은 천재(天災)가 아니고 인재(人災)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산에 나무가 없고 댐시설이 부족하여 홍수와 태풍의 피해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홍수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일제시대처럼 ‘사방관리소’를 만들고 대규모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교수의 보고서 내용대로 공화국이 시행한 결과 홍수피해와 태풍의 피해를 상당히 막아낼 수가 있어 고난의 행군이 21세기에는 끝나고 있다. 그러나 2020년부터는 다른 측면에서 다시 고난의 행군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나윤철 교수가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다. 그는 과연 현안문제의 타결책을 어떠한 방향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일까?...
강철민 상좌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모부의 집을 방문하여 그 집에 자주 찾아와서 이모부와 바둑을 즐기고 있는 나윤철 교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 교수는 비록 현직에서 떠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치학과 경제학에 있어서는 국가의 원로이다. 그러므로 그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그러한 그의 견해가 과연 무엇일까?...
나 교수는 친구인 조 교수의 집에 와서 바둑을 두면서도 그 옆에서 귀를 쫑긋하고 있는 강철민의 의도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 공화국의 귀족가문의 장자인 강철민이 잘하면 공화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고 그가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틈틈이 모르는 척 하면서 중요한 이야기를 친구인 조 교수와 바둑을 두면서 은근히 흘리고 있다.
한번은 강철민이 듣고 보니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다. 나윤철 교수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수령동지는 너무 자신의 안보에 집착하고 있어. 그러니 다음시대를 개척할 수가 없지. 그는 우리들이 원하고 있는 하나의 조국 ‘원 코리아’를 어떻게 하면 이룰 수가 있는지 그 구상이 없는 것 같아. 핵무력만 완성하면 조국의 통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말이지, 쯧쯧쯧… “;
‘이게 무슨 말인가?’, 강철민이 속으로 긴장한다. 그때가 2022년 11월경이다. 나윤철 교수의 그 다음말이 들려온다; “내 것을 먼저 내놓지 않으면 남도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야. 그러니 우리 공화국은 핵무력을 내놓고 우선 남한과 협상을 해야지. 그 다음에 그 결과물을 가지고 미국과 또 협상을 해야 하는 거야. 그것이 순리인데 우리 수령은 그 점을 깜빡하고 있어요… “.
‘핵무력은 내어 놓는다. 그것도 한국정부와의 협상 무대에?... ‘, 이해할 수가 없는 생각이라 강철민이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나 교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화국의 핵무력을 그대로 남한에 주면 안되지. 그러니 연방을 만들어 거기에 주면 되지. 그것이 정답이야. 돌이켜보면, 김정일 수령 시대에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와서 남북간에 ‘연방제’를 모색하기로 합의한 적이 있거든. 그러니 그것을 구체화하면 되지요,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강철민은 갑자기 머리가 환해지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렇다. ‘조선연방’도 아니고 ‘한국연방’도 아니다. 그 옛날에 ‘고려연방제’를 언급한 적이 있으니 그것을 구성하면 된다. 그러면 연방대통령과 연방의회가 핵무력을 보유하고 남한과 북한의 교류와 경제협력 및 발전을 견인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려연방에 대하여 미국이 경제제재를 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 참 묘안이군!… “;
나윤철 교수는 조운락 교수와 바둑을 두면서도 언뜻 바둑판을 구경하고 있는 젊은 강철민의 반응을 나름대로 살피고 있다. 강철민이 자기 생각에 빠져서 나 교수의 눈길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2022년 11월 평양에서의 주말이 저물고 있다. 과연 강철민은 이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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