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원 코리아(손진길 소설)

그들의 원 코리아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9. 14. 10:03

그들의 원 코리아8(손진길 소설)

 

한국영 목사가 평양에 오고나서 지난 5일간 지냈던 큰 종고모 한보옥의 집은 상당히 좋은 주택이었다. 그 이유는 가장인 조운락이 천재과학자로서 공화국에 기여한 공이 컸기 때문이다. 노동당에서는 그 공을 치하하여 평양에서 좋은 집에 살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영이 강철민의 차에 짐을 싣고서 그의 집에 도착하고 보니 더 넓고 좋은 저택이다. 그것도 대동강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도 이웃집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것으로 보아 북한에서 큰 권세를 누리고 있는 귀족의 집인 모양이다;

한목사는 일부러 강철민에게 집안의 내력이나 북한에서의 지위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들이 직접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집에 도착하니 둘째 종고모 한영옥이 며느리 김효린과 함께 한국영을 반갑게 맞이한다.

한국영은 한영옥 고모를 그동안 3차례 뵈었지만 강철민의 아내인 김효린은 처음 만난다. 따라서 강철민이 얼른 소개를 한다; “국영이 형, 내 아내 김효린입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이 있는데 지금은 학교와 유치원에 갔어요”. 한목사가 제수씨인 김효린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날 저녁에는 고모부 강주성이 일찍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강철민 부부의 아들 강상일과 딸 강설지가 친척 숙부인 한국영에게 인사를 한다. 그것을 보고서 한국영이 기분이 좋아서 강철민에게 말한다; “여보게 철민이 아우, 자녀분 상일이와 설지가 정말 총기가 있어 보이는 군. 자네 부부는 복이 많아!... “;

그 말을 듣자 강철민의 마음이 흡족하다. 하지만 그 입에서는 겸양의 말이 나오고 있다; “하하, 형님도. 아직 어리니 더 커야 알 수가 있지요. 잘 커서 우리 공화국의 동량이 되기를 저와 집사람은 바라고 있습니다만, 하하하… “.

그 말을 마침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던 김효린이 듣고 있다. 그녀가 속으로 생각한다; “아주버님이 보시기에도 우리 아이들이 영민하게 보이는구나. 잘 키워서 우리 공화국을 튼튼하게 만들어야지!... “. 역시 뼈대 있는 가문의 손녀인 김효린이다.

그날의 만찬은 참으로 즐거운 자리이다. 공화국에서 권력서열이 10위권 안에 들고 있는 대단한 거물이지만 강주성은 그날만은 한국영에게 그저 인자한 종고모부이다. 그만큼 혈족의 개념이 강한 북한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영 목사가 그날 만찬을 즐기고 푹 잠을 잔다.

다음날 아침부터 강철민의 집이 바쁘다. 모두들 출근을 하고 학교와 유치원에 가기 때문이다. 일찍 조반을 마치고 강주성은 중앙당사로 떠나고 강철민은 부대로 들어간다. 김효린은 직접 차를 운전하여 아들과 딸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그렇게 집이 조용해지자 배웅을 마친 한영옥이 조카인 한국영을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부른다.

그녀가 은밀하게 말을 꺼낸다; “국영아, 마침 집이 조용하니 내가 은밀한 이야기를 너에게 해주겠다. 내가 하는 말은 그저 귀로 듣고 마음속에만 명심하고 일체 아는 체를 하지 말아라. 그것이 여기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란다!... “;

무슨 비밀이야기를 하시려고 하시는가?’, 한국영이 아연긴장을 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천천히 한영옥의 말이 들려온다; “다름이 아니고, 평양에 북조선공화국을 세운 김일성 수령과 우리 집안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제시대 1930년대에 만주에는 한인조국광복회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거기에 독립군이 소속되어 있었어. 그런데… “.

한국영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서 한영옥이 짧게 숨을 쉬고서 이어 설명한다; “19319월에 일제의 관동군이 만주사변을 일으켰는데 중국의 만주군벌이 그것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지. 따라서 이듬해에 관동군이 만주를 거의 점령하고 말았어. 그렇게 되자 한인 독립군들이 만주에서 쫓기게 되었지. 그때쯤 소련이 한인 독립군을 지원하기 시작했어… “.

한국영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계속 고모의 입을 쳐다본다. 한영옥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소련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돌아온 30대 초반의 조선인 장교가 독립군 부대 하나를 지휘하게 되었는데 그 자의 이름이 김일성이야. 그는 1937년 보천보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웠지만 그해 전사하고 말았어. 그의 부대가 활동한 주무대가 백두산 일대와 그 남쪽 혜산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

새로운 이야기이다. 한국영이 숨을 죽이며 듣고 있다. 한영옥이 계속 설명한다; “그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김성주김영주 형제 그리고 김성주의 심복 3사람이 있었어. 당시에 3명의 심복은 그 별명이 주막, 백정, 훈장이었지. 그들은 젊었기에 겁도 없이 30명 정도의 부대원들을 이끌고 무장독립투쟁을 계속했어. 그렇지만 일제의 관동군이 장백현 일대를 완전 포위하여 쳐들어오자 1940년에 만주에서 탈출하기 시작했어… “.

잠시 숨을 쉬고서 한영옥이 계속 설명한다; “탈출 도중에 10명 정도 부대원들이 전사하고 김성주는 부상을 입고 말았어. 그러자 심복들이 교대로 김성주를 들쳐 입고 기어이 포위망을 벗어나 소련의 영토로 들어간 것이야그때부터 그들은 소련에서 정치교육을 받기 시작했어… “.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설명이 이어진다; “19458월에 해방이 되자 소련군이 북한에 진입했지. 그때 김성주 형제와 심복 3사람이 북한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면서 김성주를 김일성 장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 옛날 김일성 장군을 기억하고 있는 그의 부하들이 이의를 제기했지. 그러자 김성주는 그들 100여명을 전부 체포하여 완전히 숙청하고 말았어. 그리고… “;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한영옥이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말한다; “그 옛날 독립군의 영웅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차지하게 된 김성주는 자신의 심복 3사람에게 새로운 이름을 선물했어. 그 이름이 강만수, 최필용, 김책이지. 주막, 백정, 훈장으로 불리던 그들이 이제는 공화국의 귀족들이 된 것이야!... “.

갑자기 한영옥이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김일성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에 동창 가운데 강주성이 나를 쫓아다녔어. 지금의 남편인 그가 바로 공화국의 귀족인 강만수의 아들이지, 호호호당시 그의 청혼을 나의 친정아버지 한기룡은 찬성했어. 그 이유는 조총련의 거물인 아버지 입장에서는 공화국의 귀족인 그 집안과 혼맥을 맺는 것이 좋다고 여긴 것이지… “;

그 다음에 한영옥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점은 나의 언니 한보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지. 당시 공화국에서 명성이 높은 과학자 조일천의 아들 조운락이 역시 김일성대학에 다니고 있던 한보옥에게 청혼을 했어요. 아버지 한기룡은 조일천과 조운락 부자가 공화국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 결혼을 적극 찬성했어요… “.

조카 한국영이 흥미를 가지고 듣고 있는 것이 기특해서 그런지 한영옥이 부연설명을 한다; “조일천 교수는 일찍이 모스크바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그곳에서 교수로 있었는데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야 귀국을 했지. 그의 동생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그만 돌아오지 못하자 장남인 조일천이 조국으로 돌아온 것이야;

그는 이미 모스크바에서 북한여성과 결혼을 하고 슬하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조운락이야. 내 형부인 조운락은 부친 못지 아니한 천재과학자이지… “.

그 말을 듣자 한국영이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 “그런데 고모, 한국전쟁때 많은 남한의 지식인들이 북송을 당했는데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한영옥이 고개를 끄떡이다가 대답한다; “해방이 되자 김일성은 인민위원회를 만들고 지주의 땅을 뺏아서 국유화하기 시작했지. 그러자 많은 지주와 지식인들이 월남을 하고 말았어. 따라서 북한은 국가발전과 경제개발이 어려운 상태였어. 그래서… “.

그 말에 한국영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한영옥이 간단하게 설명한다; “해방후에 자발적으로 월북한 지식인과 예술인이 많아. 그리고 한국전쟁 때 북송한 지식인이 많았지. 그렇지만 여전히 북한은 고급인력과 자금난에 시달렸어. 그때 김일성이 온정을 베풀었던 조총련이 움직인 것이지… “;

잠시 숨을 돌리고 한영옥이 이어서 설명한다; “내 친정 아버지 한기룡이 그때 앞장을 섰어. 그가 강력하게 주장하자 조총련에서 조국을 돕기 위하여 돈을 보내고 또한 지식인들이 대거 귀국을 했지. 물론 그 가운데 많은 조총련계 인물은 사실 남한 출신들이지. 하지만 이데올로기가 고향을 뛰어넘게 한 셈이야… “.

그 이야기를 듣자 한국영은 그때 이승만 정권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국내에 정치적인 기반이 없던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세력과 손을 잡았다. 그렇지만 대외적으로는 반일운동을 하는 것처럼 비치기를 원했다. 따라서 그는 재일교포들의 삶을 마냥 모른 체하고 그냥 버려 두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김일성 주석은 재일교포를 조직화하고 일본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드디어 한영옥이 기나긴 이야기의 결론을 맺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두가지야. 하나는, 우리 공화국의 왕족과 귀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라는 사실이야. 전혀 아는 체를 해서는 안돼. 또 하나는… “.

그 다음에 고모가 하는 말은 그냥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로 들린다; “현재 일본에 있는 조총련세력이 약화일로라고 해도 이념적으로는 여전히 힘이 있어. 그리고 북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야. 그러니 국영이 네가 일본에 가게 되면 결코 북한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좋아. 그것만 조심하면 되지… “;

한국영 목사는 며칠 후에 평양 순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간다. 그는 떠나기 전에 강철민에게 자신이 준비해간 달러를 주면서 말한다; “철민이 동생, 이 돈을 가지고 있다가 언제 기회가 되면 가족을 데리고 호주 시드니로 한번 놀러 오게. 여비정도는 될 거야. 정말 만나서 반가웠어. 또 보세… “;

그 말을 듣자 강철민이 한국영의 손을 꼭 쥐더니 힘차게 포옹을 한다. 형제가 없는 그로서는 한국영이 정말 듬직한 형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사람은 평양에서 헤어진다. 그들은 언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훗날 그들은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