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14강(렘20:14-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9. 12. 01:45

예레미야 강해 제114(20:14-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912()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은 뻔하였다는 예레미야의 기록의 의미가 무엇인가?(20:14-18)

 

본문의 내용은 바로 그 앞의 구절과 굉장히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예레미야가 제13절에서는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行惡者, 악을 행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은혜를 그토록 찬양하고 있는데 제14-18절에서는 갑자기 자신이 그 시기에 유다 왕국에서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참으로 좋을 뻔하였다고 크게 탄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40년 동안이나 동족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선민 유대인들의 죄악을 지적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100년 전에 망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처럼 유다 왕국도 여호와신앙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에 젖어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왕과 귀족과 백성들이 하나같이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마지막 선민의 나라인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망하고 적국으로 끌려가서 망국의 백성으로 고난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동족들이 철저하게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고 비방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예레미야를 핍박하면서 죽이고자 합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의 멸망을 이제는 확정하고 마십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된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1)    첫째, 자신과 같이 여호와의 종으로 고난 가운데 신실하게 살아간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20:13)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유다 왕국의 멸망과 더불어 전란 중에 희생이 되고 마는 친지들과 동족들을 생각할 때에 예레미야의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차라리 그러한 시기에 자신이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러한 참상을 보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20:14)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고있는 욥의 진술과 같은 것입니다(3:3, 9-1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20:14-1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20:14);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있습니다(20:14a).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다는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20:14b). 그는 여호와의 선지자로 활동하면서 동족들로부터 당하고 있는 자신의 고난과 핍박도 감당하기가 힘이 들지만 그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 있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2)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지막 선민의 나라인 조국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골육과 친지들 그리고 동포들이 장차 당하게 될 그 엄청난 환난과 고통을 생각할 때에 차라리 자신이 태어나지 아니하여 그 처참한 광경을 보지 아니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20:15);  상당히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득남을 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여 준 사람을 빗대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은근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첫째, 고대사회에서 득남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하여 주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복된 소식이며 부모와 온 가문에 즐거움을 주는 경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②둘째, 그러나 그 아들이 태어나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 부모의 죽음과 가문의 멸문 그리고 조국의 멸망이라고 한다면 그 득남의 소식이 과연 복음이냐? 하는 것입니다. ③셋째, 구원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여 주지 못할 바에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득남의 소식을 전하는 자가 실제로는 이 세상에 임하는 저주와 재앙을 그 아들이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나니”(20:16);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같이 되었더면”(20:16a); 선지자 예레미야가 환난 가운데 의인이 희생이 되는 경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죄악을 범한 자가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그의 조국과 함께 망하는 것은 후회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신앙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신실한 자가 그만 전란 가운데 희생이 되고 만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자신이 그러한 비극을 바라보고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라고 미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0:16a). 그러한 맥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옥석(玉石, 옥과 같이 귀한 것과 돌과 같이 하찮은 것)을 구별하여 주시거나(18:23) 아니면 모두가 죄인이 되어 후회함이 없는 심판을 받게 해달라는 것입니다(20:16a).  

(2)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나니”(20:16b);

1)    예레미야가 제7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그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7:33-34). 전란 가운데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성읍이 파괴가 되며 남은 자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에서는 인적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일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2)    그것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문화에 빠져서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마냥 추구한 유다 왕국의 최후입니다. 그 최후를 목격하는 운명을 타고난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있습니다(20:14). 자신이 그러한 유다 왕국의 말기에 태어나지 아니하여 그 비참한 종말을 보지 아니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온 성읍에 아이들이 뛰놀고 그들의 즐거운 소리가 떠들썩하게 아침부터 온종일 들리게 되는 그러한 시대를 자신이 살게 되었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라고 예레미야가 안타깝게 기록하고 있습니다(20:16b).

셋째로,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20:17-18);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20:17a); 사람은 자신이 시대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이 태어나서 경험하게 되는 시대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신상과 우상을 심하게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에 젖어서 살다가 그만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 가운데 들어가고 말기 때문입니다. 곧 조국이 멸망을 당하고 골육과 친지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 광경을 뻔히 지켜 보아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이 저주스럽습니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께 어찌하여 나를 모태에서 사산(死産, 죽어서 태어나는 것)시키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여 그와 같이 비참한 광경을 보게 하시는지 참으로 한스럽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20:17a).

(2)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20:17b);

1)    모태에서 잉태가 된 아기는 성장하여 10달이 차면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합니다. 그렇게 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산모의 배는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부른 배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야 나중에 다시 임신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와 같은 자연의 순리를 거슬려 만삭이 되어도 아기가 태어나지 아니하게 되면 그것은 큰 일입니다. 산모와 아기의 목숨이 위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기가 잉태가 되면 산모를 돌보아 제때에 출산이 이루어지게 섭리하시는 것입니다(21:1-2). 그와 같은 이치를 선지자 예레미야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순조롭게 모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꼼짝 없이 자신이 그만 보지 말아야할 조국의 멸망과 가문의 멸문을 목격하는 처지가 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0:17b).

(3)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20:18);

1)    예레미야가 자신이 원하지 아니한 시대에 그것도 유다 왕국에서 태어났기에 다음과 같은 세가지를 경험하고 만다고 안타깝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여호와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대언하는 선지자로 살아가면서 많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②둘째, 유다 왕국의 권력자들과 백성들이 하나같이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멸망의 예언조차 거짓말이라고 비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남은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맙니다. 그러한 비극을 예레미야가 슬픔으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2)    ③셋째,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의 능력이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면서도 막상 죽음으로 향해서 내달리고 있는 골육과 친지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망으로 인도하지 마시고 구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 땅에서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후손들에게 구원자 메시아를 보내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러한 그의 기도가 응답이 되는 이른바 새 언약의 시대에 새로운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31:31-34).

결론적으로,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도 선민들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의 부끄러운 능력의 한계를 실감하면서 자신이 태어난 시대와 환경을 고통과 슬픔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던 그는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부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망으로 인도하지 마시고 구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장차 이방 땅에서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후손들에게 구원자 메시아를 보내어 달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가 응답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가 기록하고 있는 새 언약에 관한 여호와의 예언입니다(31:31-34). 600년이 지나자 새 언약의 시대가 예루살렘에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대속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새로운 구원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 새 언약에 감사하면서 끝까지 주님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