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13강(렘20:1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9월 11일(화)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렘20:11-13);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가난한 자’와 ‘행악자’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는 외로운 자입니다. 그에 비해서 ‘행악자’는 성전의 총감독인 제사장 바스훌처럼 권력과 부를 지니고 있으며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서 ‘가난한 자’를 박해하는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가난한 자’가 ‘행악자’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가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으면 그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능히 행악자를 처벌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 첫째로, 여호와께서는 두려운 용사이시며 창조의 지혜의 소유자이십니다. 태초에 제멋대로 팽창하고 있는 흑암의 세력을 그 힘으로 억누르시고 그 지혜와 지식으로 우주의 질서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창1:1-31). 지금도 그 지혜와 권능으로 이 세상을 섭리하고 계십니다(단4:34-37, 롬1:20, 11:33-36). 그러므로 이 세상의 지배자라고 행세하고 있는 ‘행악자’나 그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여호와의 권능과 지혜 앞에서는 넘어지고 수치를 당할 뿐입니다(렘20:11, 롬8:39).
(2)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보다 그 행위를 보십니다(마7:21). 그리고 자신의 의로움을 서로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먼저 그들의 마음의 중심을 시험하시고 신중하게 판단하십니다(렘20:12a, 창22:1).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여호와께만 아뢰고 그 판단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렘20:12b).
(3) 셋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신을 핍박하고 그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권력자들 앞에서 여호와를 의지하고 있는 소위 ‘가난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은혜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렘20:13a). 그리고 장차 망국의 한을 안고서 이방 땅에서 온갖 핍박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동족들에게도 부디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라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기서 권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렘20:13b).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렘20:11);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렘20:11a);
1) 여기서 ‘그러하오나’는 앞절의 내용을 인정하지만 그것보다는 본문의 내용이 더욱 강력한 것이라는 의미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구제적으로 앞절인 제10절의 요지는 유다 왕국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대언하고 있는 자는 선지자 예레미야 밖에 없으므로 그는 권력자와 다수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큰 비방과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렘20:10). 잘못하면 목숨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 공포가 그를 엄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당장 명백하게 자신에게 닥치고 있는 그 위협과 공포보다는 자신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더 강력한 권능을 더욱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렘20:11a). 그 이유는 이 세상의 권력자들에 의하여 그가 잃을 수 있는 것은 육신적인 목숨이겠지만 여호와의 권능을 잊어버리게 되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마10:28). 그리고 또 하나 선지자 예레미야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은 이 세상의 권력자의 위세가 아무리 대단하고 다수의 힘이 포악하다고 하더라도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위력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진리입니다(렘20:11a, 마26:53).
(2)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렘20:11b);
1) 창조주 여호와의 권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역사하지 아니하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여호와의 권능을 자신에게 역사하도록 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을 여기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렘20:11b)라는 구절 가운데 시사하고 있습니다.
2) 그 비결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함께하실 수 있도록 예레미야가 끝까지 여호와의 말씀을 정직하게 대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두렵고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여호와의 권능을 의지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여호와께서 함께하십니다(렘20:11ba). 그로 말미암아 박해하는 자들이 먼저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렘20:11bb).
(3)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렘20:11c);
1) 앞 구절의 진술,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렘20:11ca)는 창조주 여호와의 지혜를 피조물인 인간이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진작에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9). 훗날 사도 바울이 또한 증거하고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2) 그러므로 인간의 짧은 지혜로 감히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깊고도 높은 지혜를 상대하려고 시도하는 행악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의 입을 막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큰 치욕을 당하고 맙니다(렘20:11cb). 그와 같은 여호와의 징계를 받게 되면 즉시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만약 끝까지 완악하여 회개를 하지 아니하게 되면 그때에는 영원한 치욕 가운데로 들어가고 맙니다(렘20:11cc). 그러한 사실을 훗날 예수님께서는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8:11-12)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렘20: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렘20:12a);
1) 이 세상에서 시험 치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좁은 길이 아니라 넓은 길로 편하게 가기를 원하며 시험을 치르지 아니하고 그냥 원하는 자리를 얻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으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진정한 의인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여호와의 시험을 거쳐야만 합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사도 바울이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그러합니다.
2) 아브라함은 브엘세바 우물가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창21:33). 가나안 땅과 블레셋 땅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이 정말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과 부활을 믿고 있는 것일까요?(히11:19)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를 시험하십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창22:1-2).
3) 만약 아브라함이 영생과 부활의 능력을 지니신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한다면 그 시험을 통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삭의 목숨을 살리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주시는 영생과 부활을 믿고서 그 시험을 통과한 하나님 경외자가 바로 아브라함입니다(창22:12). 따라서 그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창22:14). 이삭의 목숨을 살리고 그 대신에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창22:13). 그와 같은 맥락에서 훗날 여호와 이레의 대속의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요1:29).
4)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우에는 유다 왕국에서 거짓선지자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렘20:10).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거짓 예언이라고 거짓선지자들이 합창을 하고 있습니다(렘18:18, 20:1-2, 28:12, 38:4). 그들은 하나냐의 말과 같이 그들이 직접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 예언으로 주시는 말씀을 들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렘20:6, 28:2-4). 다윗왕조를 수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바벨론과의 전쟁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유다 왕국에게 승리를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왕국의 패배를 예언하고 있는 예레미야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5) 그렇다면 예레미야와 그를 공격하고 있는 다수 인사들 가운데 누가 여호와 보시기에 진정한 의인일까요? 그것은 여호와의 시험을 거쳐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입으로 말하고 있는 주장을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심과 그 숨겨져 있는 진의를 보시고 정확하게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앞에 서게 되면 모든 피조물은 마치 벌거숭이처럼 그 치부가 드러나고 마는 것입니다(히4:12-13).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여기서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렘20:12a) 부디 나와 저들 사이에 누가 진정한 여호와 말씀의 대언자이며 의인인지를 판정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렘20:12b); 선지자 예레미야가 거짓선지자들의 공격에 너무나 시달려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누가 진정한 여호와말씀의 대언자이며 의인인지를 판정하여 달라고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렘20:12ba). 여호와께서 빨리 그렇게 시험하시고 판정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지경이라고 아뢰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이제는 여호와의 판단과 그 보응하심 만이 남아 있습니다(렘20:12bb). 의인은 환난 가운데에서도 구원하실 것이며 죄인은 거짓선지자들이 당하는 멸망 가운데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렘20:3-6, 계20:10).
셋째로, “(내 영혼아)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렘20:13);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내 영혼아)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렘20:13a);
1) “여호와께 노래하라”는 구절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구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두 구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하는 말을 강조하기 위하여 먼저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경우에는 반복을 통하여 그 뜻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하는 문장에서 ‘너희는’이라고 하는 단어에 유의하여 보면, 먼저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영혼아 (여호와께 노래하라)”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그에 따라 다음 대목의 해석이 달라지게 됩니다; ①전자의 경우에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부디 그 다음 대목의 사실을 잊지 말고 명심 또 명심하면서 이방 땅에서 고난의 삶을 이겨내라고 하는 중복된 당부입니다. ②후자의 경우에는 현재 위기 가운데 처해 있는 자신에 대한 다짐이면서 그것은 동시에 장차 고난을 당하게 되는 동족들에 대한 격려의 말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렘20:13b);
1) 창조주이시며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종을 어느 정도로 두텁게 보호하시고 구원해주시는 것일까요? 그 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마태복음에 제10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이 세상의 행악자가 가난한 자를 해칠 수 있는 최대의 행악은 그 목숨을 끊고 몸을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몸과 영혼을 영생이냐 아니면 영벌이냐로 구분하여 한꺼번에 영원히 처벌할 수 있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생각하게 되면 일시적인 공포에 불과합니다.
2)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종으로 끝까지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그러한 가난한 자에게는 영생의 구원이 주어지게 됩니다. 물론 여호와께서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이 세상에서 당장 행악자를 물리치시고 그 종의 목숨과 몸을 온전히 보전하게 하여 계속 여호와의 종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사역이 끝났다고 판단하시면, 여호와께서는 그 종을 한시적인 목숨에 의지하고 있는 연약한 육체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완전한 영의 몸으로 부활하게 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눅22:28-30, 고전15:44, 빌3:10-12).
결론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거짓선지자들의 집중적인 공격에 너무나 시달려서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처지이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그들 가운데 진정으로 누가 여호와말씀의 정직한 대언자이며 의인인지를 시험하시고 판단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레미야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간구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양자 사이에 판단을 하시고 그에 따른 보응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조치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체포하여 성전의 뜰에서 매질을 하고 난간에 큰칼을 채워서 달아 놓은 바가 있는 제사장 바스훌에게 먼저 예언으로 임한 바가 있습니다(렘20:1-6).
그러므로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를 권력으로 괴롭히거나 다수의 이름으로 그 목숨을 위협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여호와의 종을 핍박하는 것이므로 그 의인의 기도가 응하게 되면 다수라고 하더라도 그 나라가 온전하게 보전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자신의 목숨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의 영생까지 좌지우지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권능을 생각하면서 끝까지 여호와의 종으로 의인 답게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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