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10강(렘19:14-20: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9. 10. 03:42

예레미야 강해 제110(19:14-20: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98()

 

도벳에서 돌아온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외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무엇이기에 성전의 총감독이며 제사장인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탄압하고 있는가?(19:14-20:2)

 

본문의 여호와의 말씀을 읽게 되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①첫째,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는데 그 장소를 어째서 여호와의 집 뜰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19:14). ②둘째, 여호와의 재앙이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유다 전역의 촌락으로 확대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19:15) ③셋째, 제사장 가운데 성전의 총감독을 맡고 있는 자와 대제사장은 어떻게 다른가?(20:1) ④넷째, 에레미야의 예언이 바스훌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20:2a) ⑤다섯째, 거룩한 성전에 어째서 형틀이 마련되어 있는가?(20:2b) 하는 것 등입니다. 간략하게 우선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장소를 여호와의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9:14). 그 중의 하나가 예루살렘성전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의 차이를 생각하면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은 선민 유대인들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창조한 모든 인류에게 적용이 되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2)  둘째로, 백성들을 잘못된 신앙으로 이끈 큰 책임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잘못된 지도자들의 신앙행태를 그대로 추종한 백성들의 책임을 묻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고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온 선민 유대인 모두에게 재앙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19:15).

(3)  셋째로, 다윗 왕 때에는 두 사람의 대제사장이 예루살렘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있습니다(삼하15:35). 그러나 솔로몬 왕이 즉위하면서 아도니아의 편을 든 대제사장 아비아달을 추방함으로 말미암아(왕상1:7, 2:26-27) 사독 대제사장만이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게 됩니다(왕상1:8). 그런데 대제사장의 직무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성막을 돌보고 백성들을 위한 제례의식을 총괄하는 일입니다(25:22, 27:21, 29:29, 16:11-34). ②또 하나는,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의 업무를 감독하는 일입니다(3:6-9). 그 가운데 단수인 대제사장이 제례의식을 총괄하고 다른 유력한 제사장에게 레위인들의 업무를 총감독하는 직무를 맡기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선례는 모세와 아론의 시대에 벌써 나타나고 있습니다(3:32, 4:16, 28).  따라서 제사장 바스훌은 후자의 업무를 맡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0:1).

(4)  넷째로, 유다 왕 시드기야 시대에 대제사장에 버금가는 권력을 예루살렘성전에서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 제사장 바스훌입니다(20:1). 그는 하나냐처럼 당대에 스스로 선지자로 자처하고 있습니다(20:6). 그 두사람은 여호와의 예언을 직접 들었다고 말하면서 신바벨론과 전쟁을 하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승리를 한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20:4, 28:1-4).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성전에 들어와서 성전의 뜰에 있는 백성들에게 회개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게 된다고 예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19:15). 그것은 주전론자(主戰論者)인 거짓선지자 바스훌의 의견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감독하에 있는 성전에서 레위인들을 동원하여 예레미야를 잡아서 박해하고 있습니다(20:2).

(5)  다섯째로, 참으로 비극적인 예루살렘성전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고 있는 성전의 뜰 한쪽 방에 형틀이 설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20:2b). 성전을 감독하고 있는 제사장이 부하에게 명령하여 성전에서 난동을 부리는 자를 잡아 목에 큰칼을 씌우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집이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말씀만을 선포하는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참담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예언하게 하신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19:14-15);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예언하게 하신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19:14);

1)    도벳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건립이 되어 있는 몰렉과 바알 신의 번제단을 말하고 있습니다(19:14a). 여호와의 명령으로 그 골짜기를 방문한 선지자 예레미야가 도벳번제단을 바라보면서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이 그곳에 있게 될 것임을 예언합니다. 왜냐하면, 선민 유대인들이 이방신상에게 인신제사를 드리고 무죄한 자의 피를 그 골짜기에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지시로 예루살렘성전을 방문하여 그 뜰에서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선포하게 됩니다.

2)    그런데 예루살렘성전을 여호와의 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9:14b). 그 의미는 그가 여호와의 명령으로 선포하고 있는 내용의 말씀은 예루살렘성전에서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피조세계 어디서나 임재하시고 모든 나라들을 감찰하시며 모든 사람들의 잘못된 행위를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집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따라서 선민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도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언하고 있는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자신들의 죄악을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하지 아니하게 되면 여호와의 진노로 재앙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풍성한 구절이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19:14b)라고 하겠습니다.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19:15a);

1)    만군의 여호와는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19:15aa).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선민들이 자신들만의 수호신인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19:15ab). 그렇다면 여호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쪽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이시며 모든 인류의 주인이라고 신앙고백을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입각한 올바른 여호와 신앙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반면에 전통적인 선민 유대인들의 관념에 따라 출애굽의 하나님 곧 이방제국인 애굽에는 진노와 재앙으로 임하시고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보호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고 믿게 되면 그것은 선민우월사상내지 선민구원사상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인들에게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지 아니하고 자신들만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을 독점하려고 획책했기 때문에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지위를 상실하게 됩니다(19:4-6 반대해석). 더구나 여호와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기에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택한 백성들인 선민의 나라부터 처벌하십니다. 그것도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성을 처벌하시면서 지방의 촌락들을 함께 처벌하십니다(19:15ac). 그 다음의 징벌의 대상은 누구일까요? 주변의 이방나라부터 먼 이방나라로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이 이어지는 것입니다(25:29).

(3)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19:15b);

1)    목이 곧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 앞이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옳으며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19:15ba, 32:9-10). 예수님께서 복음사역을 하시는 당시에도 소위 선민 유대인들의 율법 선생이라고 하는 랍비들과 바리새인들의 신앙태도가 그러합니다(18:11-12). 여호와 앞에 자신이 잘못했다고 고백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행동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2)    한 마디로,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도무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나 예수님께서 아무리 여호와의 말씀을 외쳐도 의인들인 자신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하고 맙니다(19:15bb). 그 마음속을 들여다보시는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라고 강조하고 계시는데 선민 유대인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7:13).

3)    그것이 비극입니다. 그 때문에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 땅에서 망국의 백성으로 고난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세상에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임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이 성도의 삶을 영생의 구원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20:1);

(1)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듣고 있습니다(20:1b). 예레미야가 선포하고 있는 여호와의 메시지는 제사장 바스훌이나 선지자 하나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정반대입니다. 주전론자인 바스훌이나 하나냐는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하더라도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승리를 한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20:6, 28:1-4).

(2)  지금 성전의 뜰에서 외치고 있는 예레미야의 말은 그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따랐으며 탐욕과 정욕을 쫓아 살아가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19:15). 그러므로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9:13, 20:4-6).

(3)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의 총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제사장 바스훌이 나서고 있습니다(20:1ba). 그는 예레미야의 입에 자갈을 물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당시 바스훌은 대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위임을 받아 레위인들의 업무를 총감독하는 중책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성전내에서는 제2인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권력의 향배에 민감하여 여호와의 말씀의 진위보다는 왕과 중신들이 좋아하는 말씀을 여호와의 예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4)  참고로, 당시 바스훌이라고 하는 이름은 선민 유대인들의 귀족사회에서 흔합니다. 그 이유는 바스훌이라고 하는 이름이 애굽의 현인신 바로를 뜻하는 호루스의 몫또는 평화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신과 국가의 최고권력자로부터 자신의 몫을 챙기는 귀족이며 동시에 가문의 평강을 얻고 있다는 것이니 좋은 이름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정경에 그 이름자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20:1, 21:1, 38:1, 2:38, 7:41, 10:3).

셋째로,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을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20:2);

(1)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민 유대인들에게 정직하게 대언하고 있던 선지자 예레미야가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는 거룩한 여호와의 성전의 뜰에서 레위인들에 의하여 체포를 당하고 먼저 매를 맞고 있습니다(20:2a). 성전의 총감독인 제사장 바스훌이 수하인 레위인들에게 그렇게 지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은 훗날 예수님께서 전현직 대제사장들이 보낸 군병과 하인들에게 체포가 되어 매를 맞는 것과 비슷합니다(26:67).

(2)  그 다음에는 여호와의 종인 선지자에게 행해서는 아니되는 매우 수치스러운 박해가 가해지고 있습니다. 성전의 뜰 주위에는 여러 개의 창고와 방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높은 곳에 형틀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레위인들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겁도 없이 끌고 가서 2층 누각에 있는 형틀인 큰칼에 예레미야의 목을 채우고 마는 것입니다(20:2b). 거룩한 여호와의 성전에 형틀이 설치가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비극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나 그 풀이가 왕이나 귀족들의 입맛에 맞지 아니하면 형벌로 다스리겠다고 하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성전의 뜰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당하고 있는 그 수치스러운 광경을 올려다보고 있는 백성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거짓 예언을 하던 예레미야가 마침내 수치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세상적인 권력이 감히 여호와의 사자의 입을 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다윗왕조의 권력자들과 영적인 지도자들의 잘못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잘못된 국가권력의 행사가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을 앞당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세상적인 권력과 영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이 먼저 여호와 앞에 겸손한 종의 자세로 바로 서야만 합니다. 그러하지 못하면 자신의 파멸은 물론 국가와 민족의 몰락을 초래합니다. 아무쪼록 여호와 앞에 정직한 신앙의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예레미야의 형틀과 비슷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