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08강(렘19:6-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9월 6일(목)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죽임의 골짜기’로 바뀌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렘19:6-9)
‘힌놈의 골짜기’를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고 달리 부르고 있는 이유는 그곳에 유다의 왕들이 암몬의 수호신인 ‘밀곰’의 신상을 설치하고 아들을 인신제사로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조금 설명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생명을 귀하게 여기십니다(창1:26-27, 9:5-6). 따라서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인신제사를 금하고 계십니다(창22:10-14).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이 ‘힌놈의 골짜기’에서 인신제사를 시행하고 있으므로 그 잘못을 반성하도록 그곳의 지명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고 달리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렘7:30-31, 19:6).
(2) 둘째, 선민 유대인들이 밀곰의 신상을 그 깊은 남쪽 힌놈의 계곡에 세운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그 신상의 크기가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신상의 가슴 위치에 번제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사람을 제물로 드리고 있기에 번제로 바치기 위하여 토막을 낼 때에 흘린 그 피를 빨리 처리를 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사람의 피를 공동묘지가 있는 ‘힌놈의 골짜기’에 뿌리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3) 셋째, 암몬의 수호신인 ‘밀곰’은 주변국에 전쟁의 신으로 소개가 되면서 그 이름이 ‘몰렉’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몰렉’은 ‘멜렉’이라고 하는 ‘왕’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왕국의 존망이 위태로운 경우 왕이 자신의 왕자를 제물로 바치면 전쟁에서 이기고 그의 왕권을 수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신 중의 왕이 바로 ‘몰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몰렉’의 신상은 이웃나라의 왕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4) 예를 들면, 암몬의 이웃나라인 모압의 왕 메사는 이스라엘의 추격군에게 쫓기고 있을 때에 살길을 찾기 위하여 세자를 몰렉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습니다(왕하3:26-27). 그리고 유다 왕국에서는 북쪽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의 공격에 직면한 아하스 왕이 앗수르에 원군을 청하는 한편 전쟁의 신 ‘몰렉’에게 왕자를 제물로 바치고 있습니다(왕하16:3, 7). 더구나 유다 왕 므낫세는 자신의 왕권의 강화를 위하여 ‘몰렉’에게 왕자를 번제로 바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행하고 있습니다(왕하21:6).
선민 유대인들의 영적인 타락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왕자를 ‘몰렉’에게 번제로 바치는 행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시돈의 농사신인 ‘바알’에게도 인신제사를 바치고 있습니다(렘19:4-5). 풍요와 번영을 누리게 해준다는 ‘바알’에게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민간에서도 자행이 되고 있으므로 ‘힌놈의 골짜기’에는 탐욕에 젖은 선민들의 자녀들의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어떠한 여호와의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일까요?
(1) 첫째, 이제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흘러내린 아들의 피와 무죄한 백성의 피가 그 옛날 아모리 족속의 경우처럼 여호와의 인내와 관용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창15:16, 신2:24, 3:2, 왕하21:10-16).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여금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흘린 그 피의 양으로 말미암아 그곳이 ‘죽임의 골짜기’로 바뀌게 된다고 외치게 하십니다(렘19:6).
(2) 둘째, 그 의미는 여호와의 진노로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과의 전쟁에서 패망할 것이며 선민 유대인들의 피가 그 골짜기에 흘러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렘19:6-8).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이방신들에게 인신제사를 드리다가 그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이 온세상에 조롱거리가 되고 맙니다. 몰렉과 바알을 섬겨 왕국을 보전하고 풍요와 번영을 얻으려고 하다가 여호와의 진노로 패망하고 적군에게 선민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그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3) 셋째, 예루살렘성이 신바벨론의 원정군에게 둘러싸여서 장기간 포위공격을 받게 됩니다. 성안에서는 양식이 떨어지고 맙니다. 때 맞추어 가뭄이 들고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습니다(렘14:12). 기아에 허덕이는 예루살렘 주민들이 서로 이웃들의 자녀를 잡아 먹습니다(렘19:9a). 나중에는 금방 죽은 친구의 살도 뜯어 먹게 되는 참상을 연출하게 됩니다(렘19:9b). 그것이 ‘힌놈의 골짜기’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변한 결과 그 땅에 임하고 있는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인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 그곳을 이제는 ‘죽임의 골짜기’라고 부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렘19:6).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19: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렘19:6a);
1) 여기서 ‘도벳’은 몰렉의 번제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렘7:31). ‘도벳’에서 몰렉에게 인신제사를 드리는데 그 장소가 ‘힌놈의 골짜기’입니다. 그러므로 왕의 아들이 제물이 되어 그의 무죄한 피가 흘러내린 그곳을 여호와께서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곳에 선민 유대인들은 ‘몰렉’ 뿐만 아니라 ‘바알’ 신상도 세우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가문의 번영과 풍작을 기원하는 탐욕스러운 유대인들이 어린 자녀를 번제물로 ‘바알’에게 바치고 있습니다(렘19:5). 그 무죄한 피 역시 ‘힌놈의 골짜기’를 적시고 있으니 여호와께서 그 참상을 보시고 그곳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사람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자녀를 희생제물로 바치고 무죄한 피를 땅에 흐르게 하면 여호와께서는 반드시 그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그것은 창세기에서부터 천명이 되고 있는 여호와의 역사의 섭리입니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 그 때문에 동쪽으로 쫓겨나서 유랑자들의 포악한 땅 놋에서 살아가게 됩니다(창4:8-17). 그리고 노아의 홍수 후에 육식이 허용이 되자 여호와께서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람의 피를 흘리지 못하도록 강력한 보복의 율법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창9:2-7). 이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그 피의 보복을 어떻게 역사 가운데 임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멀지 아니하여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때가 되면 죽임의 골짜기로 부르게 되는“ 그러한 여호와의 두려운 징벌이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임하게 된다고 여기서 예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렘19:6a);
(2)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19:6b);
1)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죽임의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는 날이 장차 임하게 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렘19:6b).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선민 유대인들이 ‘힌놈의 골짜기’에 거대한 ‘몰렉’과 ‘바알’의 신상을 세우고 ‘도벳’이라고 부르는 그 제단에 자녀들을 인신제사로 바친 그 죄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무죄한 자녀의 피가 흘러 그 골짜기를 적시면서 여호와의 분노와 재앙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2) 여호와의 관용과 인내의 한계치를 넘게 되는 그때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죽임의 골짜기’로 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신바벨론제국의 군대를 동원하여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을 정벌하게 하고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엄청나게 죽이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신이 매장이 되거나 굴속에 안장이 되지를 못하고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버려지게 됩니다. 그것은 피로써 피를 속하게 하는 여호와의 심판의 역사가 그 골짜기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려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이 성읍으로 놀람과 조롱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며”(렘19:7-8);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려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렘19:7a);
1) 여기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은 무엇일까요?(렘19:7aa) 선지자 예레미야는 동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이방 강대국을 동원하여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남은 자들을 포로로 끌고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선지자들이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예를 들면, 하나냐와 같은 자는 유다 왕국이 강대국 신바벨론과 전쟁을 하더라도 승리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렘28:1-4). 왜냐하면, 그가 들은 여호와의 예언은 전쟁에서 패한 신바벨론이 그동안 유다 왕국에서 약탈해간 보물을 전부 반납하고 두 차례나 끌고 간 인질들을 되돌려 보내게 될 것이라고 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을 듣고 사기가 충만해진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은 군부와 함께 강대국 신바벨론제국과 일전을 벌일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보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어떠한 판단을 하고 계시는지를 전혀 살피지 못하고 있는 무지몽매한 계획에 불과합니다. 그 옛날 니느웨의 왕과 백성들처럼 자신들이 여호와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같이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와야만 임박한 나라의 멸망을 면할 길이 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욘3:3-10).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으니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을 도저히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렘19:7aa).
3) ‘대적’과 ‘생명을 찾는 자’가 나타나고 있습니다(렘19:7ab). 여기서의 대적은 신바벨론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찾는 자는 ‘창9:5-6절’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고의로 사람을 살해한 자는 여호와의 율법에 따라 그 피를 보복하는 피해자 가족의 손에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민35:19, 27). 따라서 예루살렘 성안에서는 두가지 종류의 살인행위가 훗날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①하나는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신바벨론 군대가 진입하여 그 칼에 목숨을 잃게 되는 자들이 무수합니다. ②또 하나는, 성안에서 주민들 사이에 피의 보복이 자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상전에 의하여 목숨을 잃어버린 종들의 가족이 그곳에 있습니다. 평소에는 억눌려 살고 있었지만 나라가 망하는 마당에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생명을 찾는 자가 되어 주인을 몰래 살해하고 마는 것입니다.
(2)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이 성읍으로 놀람과 조롱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며”(렘19:7b-8);
1) 첫째,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렘19:7b)라는 구절은 두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신바벨론과의 전쟁으로 죽게 된 수많은 유대인들의 시신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채 산천에 그대로 버려진 바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와 짐승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아무리 전란 중이라고 하더라도 가족들이 죽은 자의 시신을 묻어 주거나 간단하게 굴속에 안장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족이 유다 땅에 남아 있지를 못합니다. 그들이 모두 포로로 이방 땅에 끌려가고 말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이 성읍으로 놀람과 조롱거리가 되게 하리니”(렘19:8a)라고 하는 구절 역시 두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찬란한 예루살렘 성읍이 기타 유다 성읍과 함께 초토화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의 끈질긴 저항과 수성(守城)작전 그리고 청야(淸野)전술에 너무나 화가 난 적병들이 닥치는 대로 성읍을 불태우고 있으며 백성들을 죽이거나 전부 포로로 끌고가고 맙니다. 그러므로 인적이 사라지고 황폐해진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의 터를 보고서 주변의 이방인들이 그 처참한 몰락에 놀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3) ②또 하나는, 선민 유대인들의 말로가 주변의 이방인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성전을 가진 유대인들은 주변의 이웃나라와 이방인들을 얼마나 멸시하였는지 모릅니다. 자신들은 창조주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들이므로 전란 가운데에서도 구원을 얻을 수가 있지만 주변의 이방인들은 선민들을 괴롭히다가 전부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고 만다고 주장하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게도 그들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멸망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실을 화제거리로 삼아 이방인들이 선민 유대인들을 얼마나 조롱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4) 셋째,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며”(렘19:8a)라고 하는 구절은 앞의 구절과 중복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상당히 경과한 다음에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적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신명기의 다음 내용에서 알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위에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부으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버리시되”(신29:19-20), “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의 자손과 멀리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 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또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신29:22-23).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가 되어 마치 여호와의 불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폐허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먼 훗날의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고 있습니다(렘19:8a).
셋째로, “그들이 그들의 원수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질 때에 내가 그들이 그들의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19:9);
(1) 신바벨론 제국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기 시작한 때는 유다 왕 시드기야 9년인 주전 588년입니다(왕하25:1). 그러자 예루살렘성에 갇힌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정예병들이 끈질기게 저항을 합니다. 그들은 무려 3년간 버티다가 마침내 성이 무너지고 도망을 치게 됩니다(왕하25:2-7). 그렇게 오랫동안 저항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한 양식과 물이 사전에 예루살렘성에 비축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그것들이 3년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양이 아닙니다. 더구나 여호와께서는 가뭄으로 일찍 양식이 떨어지게 하여 예루살렘 주민들로 하여금 기근에 허덕이게 하고 있습니다(렘14:12). 그 때문에 먹거리가 사라진 성내에서는 어린 자녀를 죽여서 그 살을 뜯어 먹는 목불인견(目不忍見, 차마 눈뜨고는 볼 수가 없음)의 참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렘19:9a). 그리고 몰래 힘이 약한 친구를 암살하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비극도 발생하고 있습니다(렘19:9b). 그에 따라 예루살렘성에서는 전염병이 발생하여 적병에게 성이 망하기 전에 벌써 지옥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렘14:15-18).
결론적으로,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스스로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서 탐욕과 정욕을 쫓아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게 되면 선민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예루살렘성 남쪽 깊은 계곡 ‘힌놈의 골짜기’가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힌놈의 골짜기’를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고 부르시고 나중에는 ‘죽임의 골짜기’로 부르신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선민 유대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왕국의 번영과 가문의 번성을 위하여 ‘힌놈의 골짜기’에 이방신상인 ‘몰렉’과 ‘바알’을 설치하고 그 번제단에 자녀를 제물로 삼아 인신제사를 드리게 되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그 나라가 망하고 그들의 시신으로 그 계곡이 뒤덮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소원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는 사람을 해쳐서는 안됩니다. 사람을 제물로 삼아 가문과 왕국의 영광을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그러한 죄악을 범하게 되면 오늘날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으로 나라가 망하고 망국의 유민으로 온세상을 떠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호와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 살리는 일에 전력을 다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애국애족의 길입니다. 살롬!
(몰렉의 신상과 인신제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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