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106강(렘18:18-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9월 4일(화)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자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까지 하였으나 그것이 소용이 없어지자 이제는 여호와의 심판에 대하여 어떻게 동의하고 있는가?(렘18:18-23)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어떤 경우에 중보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으며 여호와의 징벌이 그대로 임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음해하고 죽이더라도 예루살렘성전에서 율법에 따른 속죄의 제사만 드리면 여호와의 보호와 구원을 계속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경우입니다(렘18:18). 그것은 엄청난 오판입니다.
(2) 둘째로, 악으로 선을 갚는 경우에는 여호와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렘18:20). 동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목숨을 걸어 놓고 여호와 앞에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생명살림의 선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예레미야를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이방인처럼 살아간 것이 선민 유대인들의 죄입니다. 그리고 회개를 외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것이 그들의 악행입니다. 그와 같은 죄악에 대하여 참회를 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로 유다 왕국에 멸망이 임하고 마는 것입니다(렘18:22-2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렘18:18);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렘18:18a);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웅덩이에 갇히게 되는 때는 시드기야 왕의 집권 후반기입니다(렘38:5-6). 그 당시 유다 왕국의 정치적 지도자들과 종교적 지도자들은 외세의 간섭을 물리치고 다윗왕조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패권국인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까지 불사(不辭, 사양하지 아니함)한다는 이른바 ‘주전론’(主戰論, 전쟁을 하자는 주장)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유다 왕국이 약소국이지만 이방 강대국 신바벨론을 상대하여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거짓선지자들의 선동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당시 하나냐와 같은 거짓선지자는 신바벨론이 유다에 의하여 패전을 하고 예루살렘에서 약탈해간 보물은 물론 인질들까지 전부 돌려보내게 될 것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예언을 자신이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렘28:1-4).
2)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것이 거짓말이므로 부디 속지를 말고 무모하게 신바벨론과 전쟁하여 유다 왕국의 멸망을 자초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100년 전에 망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10지파처럼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으므로 신바벨론의 군대를 동원하여 멸망시키고자 결심하셨기 때문에 군관민이 모두 먼저 여호와 앞에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으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렘7:29-34, 38:2-3). 그리고 당장은 신바벨론과 화해를 하여 유다 왕국의 멸망을 면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렘38:17-18). 그러나 예루살렘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렘37:2). 그것은 여호와의 생각과 하나님말씀의 뜻보다 거짓선지자의 말과 자신들의 생각을 더 중시하고 있는 인간들의 죄라고 하겠습니다.
3) 예루살렘의 정치적 지도자와 군부는 예레미야의 말을 따르게 되면 국론이 분열이 되고 백성들의 사기가 떨어져서 전쟁을 치기도 전에 지고 만다는 것입니다(렘38:4). 그러므로 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서 죽이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렘38:6). 그것은 국가를 통치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들의 세상적인 판단입니다. 그들은 겸손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선지자 예레미야를 어떻게 처리해야만 할지 물어보지를 않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세상적인 판단에 의거하여 그를 처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예레미야는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렘18:18a)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를 세상적인 꾀로써 죽이고자 하는 명백한 악행인 것입니다.
(2)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렘18:18b);
1)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3부류가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 등입니다; ①그 가운데 왕은 지혜로운 신하들과 함께 국가정책을 만들어 신정국가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②제사장들은 율법에 따른 제례의식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③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대언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선지자들이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직접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위탁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예언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진위를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판단을 올바르게 하자면 무엇보다도, 모세오경과 역사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의 기록을 통하여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의 취지에 비추어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3) 안타깝게도 선민의 나라에서 그러한 노력이 별로 없습니다. 조상들로부터 전승이 되고 있는 히브리정경을 연구하고 배우며 여호와의 말씀의 체계를 세워 나가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누구나 자신이 직접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위탁을 받았다고 주장만 하면 그것이 일단은 통하는 시대입니다. 그 당시 하나의 판단의 기준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것입니다.
4) 구체적으로, 어느 선지자의 주장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레미야의 말은 배척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냐의 말은 유다 왕국의 정치권에 그대로 수용이 되고 맙니다. 그 결과는 신바벨론과의 전쟁으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미래가 참으로 걱정이 되어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쟁만은 피하자고 계속 외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그는 죽음의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처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해친다면 유다 왕국에 과연 하나님의 지혜와 보호하심이 계속 임하게 될까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렘18:18b)가 아니고 애석하게도 여호와의 구원의 말씀과 생명수가 이제는 선민의 사회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렘18:14-17).
(3)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렘18:18c); 말에는 말로 대항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치기 위하여 먼저 거짓선지자들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한사람을 상대하기 위하여 하나냐를 비롯한 거짓선지자들이 무더기로 투입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신바벨론과의 전쟁에서 그 옛날 앗수르와의 전쟁에서처럼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승리를 거두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렘28:1-4, 왕하19:34-36). 그것이 그들에게 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다수의 주장에 따라 한사람의 소수설이 된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이 유다 왕국에서 배척을 받게 되고 그는 구덩이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렘38:4-6).
둘째로,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와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유익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렘18:19-20); 역시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와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렘18:19);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자신의 말을 예루살렘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그들의 입장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주장은 그의 파송자이시며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판단에 따라 그 진위여부가 결정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부디 그들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판단하시고 처결을 내려 달라고 여기서 간구하고 있습니다(렘18:19).
(2)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렘18:20a);
1) 훗날 사도 바울은 그의 로마서 제12장에서 성도들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는 복음적인 대속의 취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히브리정경에 나타나고 있는 여호와말씀의 취지 곧, “원수를 갚지 말고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19:18),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잠24:17-18)는 내용을 정확하게 복음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가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간추리고 체계화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렘18:20a)라고 하는 예레미야의 말은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됩니다; ①첫째, 예레미야는 다가오고 있는 조국의 멸망과 동족들의 고난을 막아보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여호와의 예언을 그들에게 전하고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히려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선한 행동입니다.
3) ②둘째,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향인 ‘아나돗’(예루살렘 북동쪽4km지점임, 제사장들에게 할당이 된 베냐민의 성읍임, 수21:18-19, 상세는 첨부한 지도 참조 바람)의 제사장들과(렘11:18-21)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렘18:18) 하나같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을 배척하고 이제는 구덩이에 그를 던져버리려고 획책하고 있습니다(렘18:20, 38:6). ③셋째, 그것은 악한 계책으로 선한 선지자의 활동을 없애 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악으로 선을 갚고자 하는 악행이므로 여호와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께서는 회개하는 죄인의 죄악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훗날에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제사를 통하여 회개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강력한 징벌을 내리십니다. 특히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면서 동족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이고자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아니하십니다. 따라서 그 처벌이 엄중합니다. 그 내용을 이제부터 예레미야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렘18:21-23).
(3)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유익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렘18:20b);
1)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을 전란의 위험에서부터 구원하고자 여호와의 예언을 그들에게 전하는 한편 중보의 기도를 쉬지 않고 있습니다(렘18:20b). 자신이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배척하고 있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서 부디 그 옛날 니느웨에서처럼 유다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회개하고서 한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의 죄악을 용서하여 달라고 매어 달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욘3:1-10, 렘4:1-4).
2) 그러나 그 모든 예레미야의 선한 행동이 배신을 받고 있습니다. 동족들이 악으로 선을 상대하고자 합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렘7:13-16).
3) 선민 유대인들의 완전한 배신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외침과 중보의 기도가 필요가 없게 되는 단계에 이르고 맙니다. 그것은 악으로 선을 갚는 엄청난 악행을 여호와께서 발견하셨기 때문입니다(렘18:20).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를 배척하고 마침내 죽이고자 하는 악한 백성들에 대해서는 이제 중보의 기도도 필요가 없고 여호와의 처벌만이 임하게 됩니다. 그 징벌의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셋째로,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 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넘기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죽음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주께서 군대로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드리려고 올무를 놓았음이니이다”(렘18:21-22);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 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넘기시며”(렘18:21a); 여호와께서는 두가지 종류의 재앙을 유다 왕국에 내리고자 하십니다; ①하나는 천재지변입니다. 그것은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가뭄으로 양식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전역에 굶주림으로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약자들과 자녀들이 먼저 기근으로 죽고 마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이방 강대국을 불러들여 전쟁으로 처벌하는 것입니다. 적병의 칼날에 선민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2)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죽음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렘18:21b); 어른들도 전란을 피하여 거의 도망을 치지 못하고 맙니다. ①젊은이들은 군사가 되어 적과 싸우다가 전사를 하고 맙니다. ②어른들도 남자들은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적병에 의하여 도륙을 당하고 있습니다. ③전란으로 남편이 죽고 자녀들이 굶어서 죽습니다. 과부가 된 부녀자들이 적병에게 잡혀서 이방 땅에 종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와 같이 너무나 참혹한 선민 유대인들의 비극을 예레미야가 상세하게 예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주께서 군대로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게 하사”(렘18:22a);
1) 유다 왕국의 위정자들과 종교적 지도자들이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신바벨론제국의 원정군과 싸우더라도 자신들이 승리를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수호신이며 언제라도 다윗왕조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도와 주시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을 계속 받을 수가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지 그 속내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2)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세가지입니다; ①첫째, 선민의 상징인 육체적인 할례를 받고 율법에 따라 예루살렘성전에서 매년 대속의 제사를 드리고 있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은 여호와의 보호하심과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형식적인 율법의 준수에 의한 구원론입니다. ②둘째, 그 옛날 앗수르제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망했지만 그러하지 아니한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앗수르의 군대를 물리치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과 달리 유대인들은 여호와께서 보호하시는 유일한 선민이며 의인들이라는 것입니다.
3) ③셋째, 선지자 예레미야가 지금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의 말씀을 떠나서 제멋대로 이방인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옛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처럼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냐와 같은 선지자들은 그것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멸망의 예언을 전하는 자는 예레미야 하나입니다. 기타 선지자들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왕조를 보호하시고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위정자들은 다수설에 따라 선지자 예레미야를 배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런데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의 판단이 틀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신바벨론제국의 군대를 끌어 와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지상에서 없애 버리고 마시기 때문입니다(렘18:22a). 그렇게 사람들의 판단을 뛰어 넘는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의 다수설에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그 역사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창조주의 진리는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질적인 차원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다수결과 민주주의가 곧 창조주 하나님의 진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성급하게 여호와의 뜻을 평가절하하여 피조물의 관점에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4)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뜨리려고 올무를 놓았음이니이다”(렘18:22b);
1) 동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를 백성들이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구원이냐? 아니면 멸망이냐?를 쉽게 알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불신하고 그를 죽이고자 시도한 사실이 유다 왕국의 멸망을 결정짓고 있기 때문입니다(렘18:22b). 그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로마총독의 힘을 빌려서 십자가에 처형하였기 때문에 40년이 못되어 예루살렘과 유다 땅이 로마군대에 의하여 초토화가 되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눅19:41-44, 요19:11).
2)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잘못을 철저하게 청산을 하라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왕으로부터 일반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일제히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라고 하더라도 북조 이스라엘 왕국처럼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이방 땅에서 비참하게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을 배척하고 맙니다.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듣고서 오히려 예레미야가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거짓을 선택하고 여호와의 진리를 배척한 인간의 죄입니다. 달콤한 거짓말을 선호하고 입에 쓴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을 외면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스스로 옳다고 하는 완악함을 고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계속하여 동족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의 멸망만은 막아보고자 중보의 기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4)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의 노력이 열매를 얻지 못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의 위정자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여호와께서는 역사적인 심판을 단행하십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와 같은 사실을,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뜨리려고 올무를 놓았음이니이다”(렘18:22b)라고 본문에서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치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께서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하니라”(렘18:23);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렘18:23a); 선지자를 배척하고 죽이려 하는 것이 악행입니다. 그러한 악행에 대해서는 용서함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치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렘18:23b);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이 영적인 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되어서 현세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살아가는 그것이 또한 여호와 앞에 죄입니다. 그러한 죄는 예루살렘성전에서 매년 율법에 따라 속죄의 제사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렘18:23ba).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이 그들의 죄와 악행 때문에 역사적으로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렘18:23bb).
(3) “주께서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하니라”(렘18:23c);
1) 마침내 선지자 예레미야가 중보의 기도를 그만두고 있습니다. 동족을 구하고자 하는 예레미야의 선함이 위정자들의 악행에 의하여 구덩이에 던져지게 되는 신세가 되는 것을 보고서 여호와께서는 더 이상 중보의 기도를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렘7:15-16, 18:20).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의 징벌이 유다 왕국에 임하고 마는 것입니다(렘18:23c).
2) 그런데 본문은 또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기 제32장에 다음과 같은 모세의 글이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32:33-35).
3) 여호와께서 죄를 범한 인간들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두고서 보응하시는 그때가 언제일까요? 그 심판의 날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성도에게 살아서 성령님과 함께 역사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종말심판의 때에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간 성도의 삶이 있어야 성령님 안에서 그 증명이 됩니다. 그와 같은 새 언약의 시대를 염두에 두고서 본문의 내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주님의 은혜가 성령님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지를 새삼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지은 죄와 선지자를 해친 자신들의 악행을 용서받을 수가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자신들이 죄인임을 참회하면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의지하여 회개를 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회개와 용서를 구하지 아니한 선민 유대인들의 멸망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예루살렘 주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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