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04강(렘18:9-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9. 3. 02:41

예레미야 강해 제104(18:9-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92(주일)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회개하는 마음과 완악한 마음과의 차이가 무엇인가?(18:9-12)

 

본문의 제9-10절 말씀과 그 앞에 있는 제7-8절 말씀은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어느 민족이든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며 계속 죄악을 범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망하게 역사를 섭리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8:7, 10).

(2)  둘째, 만약 그들의 왕과 백성들이 한마음이 되어 진심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인정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철저하게 회개를 한다면 그 옛날 니느웨에서 그러하신 것처럼 여호와께서는 그 멸망의 뜻을 돌이키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18:8, 3:3-10).

(3)  셋째, 그 반면에 그러한 전반적인 회개를 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완악하게 행동하면 멸망의 역사를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18:12).

이상과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18:9-1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18:9);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호렙 산으로 불러서 불꽃 가운데 사명을 부여하십니다(3:1-12). 애굽 고센 땅에서 대를 이어가면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을 시키고 미디안 변경 호렙 산으로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의 친형인 아론과 함께 애굽의 황제인 바로를 찾아가서 여호와의 명령을 전달합니다(5:1). 그러나 바로는 애굽에서 오랜 세월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족속의 수호신인 여호와의 명령이라고 하므로 코웃음을 치며 아예 무시합니다(5:2-9).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로 10가지 재앙이 차례로 애굽인들에게 임하고 마지막 재앙은 장자의 죽음입니다(6:1-8, 12:29-30).  

2)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고 집안에서 양고기와 무교병 그리고 쓴 나물을 먹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은 대신에 그러하지 아니한 애굽인들은 그날 밤에 자신들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는 대 재앙을 경험하게 됩니다(12:5-14, 29-30). 여호와의 명령을 다시 무시하게 되면 그때에는 장자가 아니라 바로와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의 가장들이 모두 죽임을 당할 형편입니다. 너무나 놀란 그들은 당장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동족들을 이끌고 애굽 땅을 떠나 달라고 간청합니다(12:31-34). 재앙 덩어리인 화근을 고센 땅에 더 이상 머물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경건한 잡족들은 여호와께서 애초에 지시하신 미디안 변경 르비딤 광야 호렙 산으로 가게 됩니다(12:37-38, 17:1-6). 

3)    그곳에서 모세는 호렙 산 앞의 바위를 여호와의 지팡이로 내리쳐서 샘물이 터지게 하는 기적을 연출합니다(17:6). 그리고 기습을 한 광야의 무법자 아말렉 족속을 모세가 호렙 산에서 두 팔을 들고 여호와께 기도함으로써 물리치게 됩니다(17:10-11). 물론 전투 현장에서는 여호수아가 전쟁경험이 전무한 이스라엘 장정들을 이끌고 아말렉 족속을 쳐부수고 있는 것입니다(17:8-9, 13). 그 소식을 듣게 된 미디안 족속들은 간담이 서늘합니다(18:9-11). 한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함께 지낼 수 없는 것처럼 미디안 땅의 지배권을 놓고서 훗날 이스라엘 족속과 전쟁을 벌이게 되면 미디안 족속들이 패전을 하고 이스라엘 족속을 섬기게 되는 불행한 사태가 야기될 형편입니다.

4)    따라서 미디안의 제사장이며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를 호렙 산 아래 모세의 군막으로 보내어 제물과 예물을 많이 주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지도자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면서 부디 미디안 르비딤 광야를 떠나 달라고 읍소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18:12).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여 백성을 돌이켜 시나이 반도 남쪽 꼭지점인 시내 산 앞 시내 광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19:1-2).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19:4-6). 그 뜻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여호와신앙을 전파하고 회개하는 자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장나라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룩한 백성 곧 여호와의 종의 모범을 보이게 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며 그곳에서 대를 이어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5)    따라서 세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①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어 출애굽시킨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 앞에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최초의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삼고 계십니다. 그것이 본문 가운데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18:9a)의 의미입니다. ②둘째, 여호와 앞에 죄악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십니다(15:16, 3:8, 9:1-6).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심으시는 소위 여호와의 식민정책에 해당합니다(18:9b).

6)    ③셋째, 이스라엘 자손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를 건설하고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식업으로 준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입니다. 그 반면에 선민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그 옛날 가나안 족속들처럼 살아가게 되면 그때에는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그 땅에서 역시 쫓겨나게 됩니다(8:19-20). 그것은 여호와의 축복이 저주로 바뀐다고 하는 소위 저주의 언약의 발동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동일하게 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이시며 피조물을 공평하게 대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왕하21:11-16). 그와 같은 의미에서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18:9)라고 보편적이면서도 일반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18:10);

1)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농사와 목축을 하게 되자 이스라엘 자손들의 신앙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광야에서 여호와께서 신위적으로 주시는 만나를 거두어 양식으로 삼던 시절에는 안식일도 잘 지키고 율법생활을 잘 하던 그들입니다(16:28-30, 8:16). 그러나 가나안 땅에서 농업과 목축업을 경영하여 일년간 먹을 양식을 한꺼번에 얻게 되자 자신들의 능력과 노력으로 잘 살게 된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8:17). 그러므로 여호와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2)    한세상 제멋대로 살고자 하는데 방해가 되는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을 버리고자 합니다.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습니다(8:19a). 자신들이 만든 우상처럼 무조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매우 편리한 신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고 여호와는 자신들에게 그저 복을 주는 도구라는 기복주의적인 인식입니다.

3)    그와 같이 주객이 전도가 되는 타락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고 재앙을 내리십니다(8:19b). 그것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축복의 언약을 중지하고 이제는 저주의 언약을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18:10). 저주의 언약의 요지는 기업으로 준 가나안 땅에서 내쫓고 망국의 백성으로 천대를 받으며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4)    그러한 역사가 그 옛날 아모리 족속을 위시한 가나안 족속에게 임했습니다. 이제는 동일한 죄악을 범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임하게 됩니다(8:20, 18:10). 먼저는 주전 722년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입니다(왕하17:5-6). 그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둘이나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정치적으로 선전하면서 계속 섬기게 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앗수르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사라지게 됩니다(왕하17:21-23).

5)    이제 100년의 세월이 흐르자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그러합니다. 므낫세 왕의 시대는 그 옛날 아모리 족속보다 더 죄악이 심하고 우상문화가 극성입니다(왕하21:11-16). 그러므로 주전 586년에 유다 왕국마저 멸망을 하고 그 백성들이 망국의 백성으로 이방 땅에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왕하25:1-7, 7:15, 8:3). 그와 같은 역사가 임하지 아니하도록 여호와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을 유다 왕국에 보내어 거듭 경고를 하십니다(7:13, 23-26).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이 끝까지 완강하게 선지자들이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고 맙니다(7:27-28). 그 결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여호와의 복이 사라지고 유대인들이 그 땅에서 내쫓기고 마는 것입니다(18:10).

둘째로,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18:11);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18:11a);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기타 지방인 유다 땅에 사는 사람들로 분류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이분법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중심지는 어디까지나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에 왕궁이 있으며, 왕족과 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유한 기득권층이 살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여호와신앙의 중심인 성전도 예루살렘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예루살렘에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권력이 집중이 되고 있으므로 유다 왕국의 지방에서는 농업과 목축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특권층이 사용하는 식품과 기타 물품을 생산하는 기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과 특권층에게 많은 것을 바치고 나면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 지방에는 많은 군사적인 요새지가 있어서 가난한 자들의 반란을 사전에 예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 그와 같이 특권층이 수도인 예루살렘에 살고 있으며 지방인 유다 땅에는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생산자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여호와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유다 지방의 백성들을 통치하고 있으며 그들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차별을 하지 아니하십니다. 따라서 선지자들을 보낼 때에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반드시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공평하게 전파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요컨대, 여호와의 말씀 앞에서는 인위적인 특권층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18:11b);

1)    여호와께서 베풀고 계시는 복을 걷어 찬 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멸하고자 하십니다(14:12). 그 세가지에 대하여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첫째, 기근과 전염병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입니다. 먼저 비를 내리지 아니하고 가뭄이 들게 하면 그 땅에 소출이 나지 않습니다. 먹거리가 사라지기 때문에 백성들이 굶어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전염병을 발생하게 하여 백성들을 질병으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천재지변이 여호와의 재앙으로 선민 유대인들을 엄습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8:11ba).

3)    둘째, 여호와께서 유다 왕국에 임하게 하는 칼은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입니다. 신바벨론은 앗수르제국을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정복한 새로운 패권국입니다. 그런데 약소국인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과 전쟁을 하고자 합니다(28:1-4, 38:4-5). 그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위정자들이 그러한 전쟁을 무모하게 벌이고자 하는 것이 유다 왕국의 패망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34:2-3, 21-22). 여호와께서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18:11b) 부디 그 뜻을 알아 채고서 빨리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3)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18:11c);

1)    여호와 하나님께서 멀지 아니하여 유다 왕국에 닥칠 전란과 패망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사전에 여러 번 예언하게 하는 이유는 부디 그러한 멸망을 자초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회개를 하고서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18:11c). 창조주이시며 선민들의 나라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고 싶지 결코 저주를 임하게 하고 싶지가 않으신 것입니다(30:19-20, 3:16).

2)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그 사랑과 구원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우상을 섬기고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성전제사를 제때 드리고 율법을 지키는 척하고 있으면, 히스기야 왕 때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방 강대국을 신위적인 방법으로 또다시 물리치고 자신들을 구원하여 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왕하19:34-35, 28:1-4).

3)    그런데 그것이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참으로 무시하고 있는 잘못된 신앙의 태도입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악취가 나고 있는데 겉으로만 율법을 지키는 선민인 척하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아름답지 못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18:11c반대해석, 23:27-28). 그러므로 끝까지 완강하게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그들에게 선민의 나라의 멸망과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미래만이 전개가 될 따름입니다.

셋째로,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18: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18:12a);

1)    사람들의 비교론적인 가치관이 들어가 있는 문장입니다. 두가지의 질문이 가능합니다; ①첫째, 진짜 선지자의 예언과 거짓선지자의 예언 가운데 어느 것이 헛된 것일까요? ②둘째, 백성들은 어느 것을 헛된 것이며 어느 것을 실효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일까요?

2)    첫째, 원칙적으로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이시며 피조물인 인간의 인생과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의 뜻대로 개인이나 국가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하고 있는 환경이나 집단의 이익에 따라서 그것을 달리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 시대 선민 유대인들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3)    둘째,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인 예레미야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그 말씀을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현실성이 없는 헛된 것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죄악과 우상을 섬긴 일에 대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철저하게 회개하지 아니하면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으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할 것이므로 부디 전쟁을 하지 말고 화평정책을 추진하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38:3, 17-18, 22-23).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빙자하여 동족들의 독립정신과 정신전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그것은 심각한 이적 행위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38:4).

4)    셋째,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냐 등 거짓선지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거짓 예언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있고 매우 고무적인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28:1-4). 신바벨론과 전쟁을 하더라도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그 옛날 히스기야 왕 때처럼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 결과 신바벨론은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약탈해간 보물들을 반환할 것이며 인질들도 되돌려 보낼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와 같은 예언의 말씀은 전쟁의 위기를 앞두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사기를 올리고 백성들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있는 참으로 좋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18:12b);

1)    성군 요시야가 주전 609년에 북상하는 애굽의 바로 느고의 군대를 므깃도에서 막다가 부상을 입고 후송 도중에 갑자기 죽고 나자(왕하23:29) 그 다음의 유다 왕국의 역사가 참으로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요시야의 3아들과 손자 1명이 즉위하지만 그들은 유다 왕국의 존립을 위하여 외교정책을 수립한 것이 아니라 완악하게도 그 반대로 나라가 망하는 쪽으로 국가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첫째, 요시야 왕이 급서를 하고 나자 중신들이 똑똑한 둘째 왕자 여호아하스를 옹립하고 애굽의 바로 느고가 침략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너무 빨리 느고의 군대가 쳐들어 옵니다. 그 결과 막지를 못하고 3개월만에 여호아하스 왕이 포로가 되고 그의 형인 여호야김이 바로 느고에 의하여 괴뢰정부의 왕이 됩니다(왕하23:34).

3)    둘째, 여호야김은 주전 605년에 신바벨론이 앗수르의 잔존세력을 치고 시리아까지 차지하자 얼른 친 애굽정책을 버리고 친 바벨론 외교정책을 수립합니다. 그런데 주전 601년에 신바벨론과 애굽과의 전쟁이 비기게 되자 이제는 다시 친애굽 정책을 추진합니다(왕하24:1). 그 모습을 보고서 신바벨론이 칼을 갈게 됩니다. 마침내 주전 597년에 유다 왕국을 침략하여 여호야김의 후계 왕인 여호야긴을 인질로 끌고 갑니다(왕하24:15).

4)    셋째, 여호야김의 동생인 시드기야가 신바벨론 황제 느브갓네살에 의하여 괴뢰정부의 왕이 됩니다(왕하24:17). 그는 패권국인 신바벨론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국내적으로 하나냐와 같은 거짓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신바벨론과 전쟁을 벌이더라도 히스기야 왕 때처럼 여호와의 신위적인 도움으로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고 이상한 예언을 퍼뜨리고 있습니다(28:1-4). 그러한 근거가 없는 예언을 믿고서 왕과 귀족들이 주전론자(主戰論者)가 되고 있습니다(38:4-6).

5)    넷째,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대언하고 있습니다. 요시야 왕 이후 후계 왕들이 하나같이 악한 왕 므낫세의 뒤를 따라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고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살아가고 있으므로 왕과 모든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회개하지 아니한다면 여호와의 진노로 전쟁을 만나고 망국의 백성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7:8-15, 8:5-12, 11:17, 17:27, 38:2-3, 왕하23:25-27). 그러나 그들은 완강하게도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고 도리어 그를 죽이고자 합니다(11:18-21, 18:18). 따라서 예레미야가 감옥의 뜰에 갇혀 있는 동안에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18:12b)고 행한 선민 유대인들이 모두 나라가 망하고 적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동족들에게 여호와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도록 먼저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면서 여호와를 함께 섬기는 범신론적이고 혼합주의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하라고 말합니다.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살아가는 신앙생활로써는 여호와의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경청하지를 않습니다. 이방인들과 달리 선민 유대인들은 할례와 율법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예루살렘성전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으므로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영원하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제나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 것일까요?

선지자 예레미야는 동족들이 전혀 회개를 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에 완악한대로 망국의 백성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결국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예레미야 역시 선지자 이사야처럼 먼 훗날 온세상에 흩어진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이키시는 메시아의 오심을 소원하고 있습니다(11:10-12, 16:15, 31:31-34).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주님의 말씀과 복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묵상하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