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03강(렘18: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9. 1. 20:31

예레미야 강해 제103(18: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91()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토기장이의 주권의 의미가 무엇인가?(18:1-8)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예레미야의 토기장이 비유는 제17장 후반부인 제19-27절과 직결이 되고 있습니다. 앞장에 있는 후반부의 요지는 선민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영광이 영원할 터인데, 그러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여호와의 진노로 예루살렘성이 불타고 유다 왕국이 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17:19-27)

그와 같은 맥락에서 여호와의 명령으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는 본문의 토기장이의 비유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토기장이가 그릇을 빗는 장면을 보고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들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자신의 뜻에 맞는 그릇을 빗고 있지 결코 진흙이 원하고 있는 그릇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18:6).

(2)  둘째로, 그릇을 만들고 있는 도중에 진흙이 말을 듣지 아니하고 터져버리게 되면 토기장이는 그 모양을 부수어 버립니다(17:27). 그것으로 다시 진흙덩어리로 만들어 다른 그릇을 만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18:4).

(3)  셋째로, 토기장이와 같은 창조주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고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같이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국민적인 회개의 부르짖음이 없으면 유다 왕국의 멸망은 막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18:7-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轆轤)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18:1-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18:1-2);

1)    현장교육은 아주 실용적이며 효과적인 교육의 방식입니다. 직접 작업의 현장을 보면서 배울 수가 있으므로 그 배운 바가 오래 기억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고도 중요한 내용을 가르치고자 할 때에 사용이 됩니다. 지금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고 있는 현장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중요한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고자 하십니다.

2)    시청각교육을 현실감 있게 모형을 사용하여 교실에서 실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는 아예 현장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직접 토기장이가 어떻게 그릇을 만들고 있는지를 눈으로 보면서 여호와의 말씀의 가장 깊숙한 의미를 깨닫고 백성들에게 전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즉시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2)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轆轤)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18:3-4);

1)    토기장이가 녹로’(轆轤)를 손으로 또는 발로 돌려가면서 녹로의 원판 위에서 진흙으로 그릇 모양을 만들고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릇 모양이 있습니다. 신중하게 그릇 모양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그만 도중에 그 모양이 터져버리고 맙니다. 흔히 토기장이가 그릇을 빗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뜻대로 잘 모양을 유지하고 있으면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릇을 빗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진흙덩어리에 불과한 그것이 나름대로 자기 생각이 있어서 토기장이가 원하는 바를 따라주지 아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그릇을 만들어가는 도중에 그 모양이 터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2)    그릇의 모양이 완성되는 좋은 장면을 보지 못하고 하필이면,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릇이 도중에 터져버리는 경우를 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그들에게 주변의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선지자와 제사장의 일을 하도록 사명을 맡겼는데(19:4-6) 그들이 그 역할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12:39). , 여호와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선지자로 살아가는 한편,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는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 살아가라고 원하셨는데 그 여호와의 생각을 그들이 따르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선민 유대인들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 땅에서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처벌만이 남아 있습니다(17:27).

3)    그들 유대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요? 선지자 예레미야가 궁금해하고 있는 사항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다가 도중에 진흙의 모양이 터져버리자 그것으로 다시 다른 그릇을 만드는 광경을 목격하게 하고 있습니다(18:3-4). 그렇다면 새로 만드는 다른 그릇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요? 둘 가운데 하나로 짐작이 됩니다; ①하나는, 선민의 특권이 사라지고 이방 땅에서 고생을 하다가 주후 1세기가 되자,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서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깨닫고 회개를 하는 그러한 성도의 모습을 가지는 그릇입니다. ②또 하나는, 70년 동안 이방인들의 종살이를 하지만 바벨론이 망하자 고레스 황제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주전 516년에 제2성전을 건설하고 나름대로 자신들의 율법생활을 계속하는 유대인들입니다.

둘째로,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18:5-6);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18:5-6a);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토기장이의 집을 찾아가서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토기장이가 자신의 생각대로 그릇을 빗고자 녹로에서 진흙으로 그릇의 모양을 만들고 있는 장면입니다. ②또 하나는, 도중에 그릇모양이 터져버리자 그 진흙을 다시 반죽하여 새로운 그릇을 만드는 장면입니다.

2)    그와 같은 두 장면을 순차적으로 보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①첫째, 토기장이가 자신이 생각하는 모양의 그릇을 반드시 만드는 것처럼 여호와께서는 기필코 자신이 원하는 그릇을 빗으신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릇을 만드는 도중에 못된 진흙들이 있어서 그릇모양을 터지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토기장이가 그 진흙을 다시 반죽하여 다른 그릇을 만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8:5-6a).

3)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①첫번째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잘못을 범하고 여호와의 뜻을 어긴다고 하더라도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원하시는 세상을 기필코 창조하신다는 것입니다(65:17-18, 11:33-36). 그러므로 피조물인 사람들은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그 뜻을 알고서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

4)    ②두번째의 경우에는 죄를 범하고 있는 선민들에게 회개를 하고서 여호와의 뜻을 따르도록 하라고 계속 선지자를 보내시는 계십니다(7:13, 25-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도무지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선민의 나라를 없애 버리고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한 후에 새로운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18:6b);

1)    토기장이와 진흙과의 차이를 가지고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덩어리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그릇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진흙덩이가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로지 토기장이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토기장이가 자신이 원하는 그릇을 만들어 사용하고자 하듯이 그렇게 창조주께서는 피조물을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2)    요컨대, 피조물인 사람의 인생도 그 사명도 전부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뜻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 뜻을 벗어나서 제멋대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주인을 몰라보고 종이 함부로 행동하고 있는 경우와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창조주께서는 마치 토기장이처럼 그 그릇의 모양을 부수어 버리고 다른 그릇을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18:6b)는 구절은 창조주의 주권과 모든 피조물의 주인 되심에 대한 가장 알기 쉬운 선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18:7-8);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18:7);

1)    여호와께서는 모든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십니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라고 하더라도 여호와께서 관용하시고 인내하시는 그 선을 넘어서서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모독하거나 무죄한 자의 피를 과도하게 흘리게 하면 그들을 역사적으로 심판하고 마십니다(15:16). 아모리 족속의 경우에도 그러하고 유다 왕국의 경우에도 그러합니다(왕하21:11-16, 23:26-27).

2)    그때 사용하시는 방법이 세가지입니다; ①첫째,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에서 쫓아내는 것입니다. ②둘째,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부수어 버리는 것입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다시는 그 민족이 국가를 형성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③셋째,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멸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민족까지 온세상에 흩어버리고 말살시켜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심판부터 큰 심판까지 세가지로 열거가 되고 있습니다.

(2)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18:8);

1)    축복의 언약이 사라지고 저주의 언약이 임하려고 합니다(8:1, 19-20, 17:24-27).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축복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문화에 심취하는 한편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주의 언약이 임하게 되면 세가지의 역사적인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①가나안 땅이라고 하는 기업을 상실하게 됩니다. ②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맙니다. ③선민 유대인들이 이방 땅에서 망국의 백성으로 천대를 받으면 살아가게 됩니다(18:7).

2)    그와 같은 참상을 미연에 막아보고자 여호와께서는 계속 선지자들을 보내어 선민 유대인들에게 부디 회개하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라고 외치게 합니다(7:13, 25). 그러나 그들이 전혀 귀를 기울이지를 않습니다(7:26). 이제는 저주의 언약이 임할 차례입니다. 유대인들의 회개를 기다리기에 지치신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중보의 기도를 멈추라고 말씀하십니다(7:16, 15:16). 그리고 유대인들의 번제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14:12). 이제는 어찌하면 됩니까?

3)    마지막 남은 구원의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18:8)라는 말씀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에 따른 성전의 속죄의 제사를 넘어서는 차원의 회개의 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니느웨에서 40일 후에 있을 여호와의 멸망의 심판을 앞두고서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하나같이 여호와께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면서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3:1-9).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그 마음을 돌이키신 것입니다(3:10).

결론적으로, 그와 같은 마지막 방법까지 본문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은 전혀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주전 588년에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재침을 하고 3년만에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1-7).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의 인생살이 가운데 여호와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으로 귀에 들려오고 있을 때에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만 합니다(3:20-22).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참혹하게 죽음의 심판을 받아야만 할 정도로 자신의 죄악이 크고도 무겁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7:21-25).

그것이 새로운 그릇으로 빗어져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구원의 길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구원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녹로; 토기장이 곧 도공이 그릇을 빗기 위하여 원반 위에 흙을 두고서 돌릴 때에 그것을 녹로 또는 물레로 부르고 있음. 특히 물레는 실을 잣기 위하여 주로 사용을 하고 있음. 그리고 녹로는 그 옛날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긴 막대기와 도르레로 된 장치를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오늘날의 기중기와 같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