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12강(렘20:7-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9. 10. 11:48

예레미야 강해 제112(20:7-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910()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멸망의 예언을 전할 수밖에 없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장은 무엇이며 그로 말미암아 그가 동족들로부터 어떠한 핍박을 받고 있는가?(20:7-10)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본문에서 은연중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두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예레미야의 동족들인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들처럼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또 하나는,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버려버린 선민 유대인들을 여호와께서는 더 이상 보호하지 아니하시고 망국의 백성들이 되어 이방 땅에서 실컷 이방인처럼 살아가도록 역사적인 심판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20:8). 그것은 축복의 언약이 사라지고 저주의 언약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로, 그와 같은 여호와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그들이 싫어하며 해치고자 합니다. 그러한 형편과 사정을 알고 있는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더 이상 대언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창조주 여호와께서 주인이시며 피조물인 예레미야보다 힘이 강하시기 때문입니다(20:7). 요컨대,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인이신 여호와의 뜻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동족으로부터 받고 있는 배척과 핍박을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육신을 가진 일개 사람에 불과한 예레미야이므로 그러한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에 관한 예언적인 말씀을 동족들에게 더 이상 선포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들의 미움과 위협을 더 이상 받고 싶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1)    그러나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면 그의 마음속에서 불이 붙고 있어서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말씀을 동족들에게 다시 외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20:9). 그 말씀이 당장은 그들의 귀에 거슬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2)    구체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발견하고 여호와 앞에 모두 회개함으로 나아오는 그것이 조국의 멸망을 막고 그들이 개인적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3)    따라서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을 동족들에게 대언하는 선지자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친한 벗들마저 그를 떠나고 맙니다. 참으로 고달프고 적막한 처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지자의 고독과 목숨의 위협을 여호와께 하소연하고 있는 구절이 바로 제10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20: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20:7a);

1)    여호와가 함께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나의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인의 입장에서 명령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종인 사람들은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을 해야만 합니다.

2)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러한 강압적인 명령이나 복종이라는 말 대신에 자발적인 사람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는 단어 권유가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창조가 되어 있는 인간에 대하여 얼마나 인격적인 대접을 하고 있는지를 능히 엿볼 수가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3)    그와 같은 맥락에서 여호와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이라고 하여 함부로 그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명령을 수행하도록 만드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한 차례 권유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발성에 의한 권유라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스스로 여호와를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고 한평생 살아가고자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25:2). 

(2)  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20:7b);

1)    주인이 힘과 권세가 강할까요? 아니면, 종이 더 힘과 권세가 강할까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주인이 종보다 권능이 더 많습니다. 더구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 사이에 있어서는 그 권능의 차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18:27, 55:8-9, 11:33-34).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초월적인 권능에 눌려서 그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20:7ba) 그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20:7a)라고 미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깊이 생각해보면 심오한 복종의 이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야만 자신의 동족을 구원할 수가 있다고 하는 예레미야의 판단이 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의 말씀을 들어야만 동족들이 이 세상을 이기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에 따라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여 그 말씀을 동족들에게 정직하게 대언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 결과가 자신에게 조롱과 핍박을 초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20:7bb).

둘째로,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20:8);

(1)  바야흐로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의 주권과 독립성을 되찾기 위하여 내정간섭을 하고 있는 신바벨론제국과 일전을 벌여야만 한다는 주전론(主戰論)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때입니다. 제사장 바스훌이나 거짓선지자 하나냐와 같은 자들은 전쟁을 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20:6). 그 근거로서 자신들이 그와 같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28:1-4).

(2)  그런데 유독 선지자 예레미야만은 그 주장이 다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우상을 섬기고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신바벨론제국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을 하게 되면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노예처럼 살게 될 것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예언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렇게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이 싫어하는 내용을 여호와의 예언으로 선포하고 있기 때문에 종일토록 치욕을 당하고 모욕거리가 되고 있습니다(20:8b). 예를 들면, 예루살렘성전에서는 예레미야를 체포하여 매를 때리고 거짓선지자라고 모욕을 가하고 있습니다(20:2a). 그리고 백성들이 쳐다보는 성전의 뜰 2층 누각 기둥에 예레미야를 묶고 그 목에 큰칼을 채워 놓습니다(20:2b). 그것은 예레미야에게 수치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4)  그런데 본문에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파멸멸망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0:8a). ‘파멸멸망은 언뜻 보면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간 뜻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파멸은 전쟁이나 내부공작 등 외생적인 요인에 의하여 망하는 것이고 멸망은 내생적인 요인에 의하여 망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5)  영역본에서는 violence and spoil’(KJV). ‘violence and destruction’(NIV or NRSV) 등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violence’는 폭력이라는 수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spoil’ ‘destruction’은 타락으로 인하여 망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의하여 유다 왕국이 망하게 됩니다. 그것은 유다 왕국이 우상을 섬기고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추구한 내부적 요인 때문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마침내 외생적인 요인으로 신바벨론제국의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으로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20: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20:9a);

1)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여호와를 선포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요?(20:9aa)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광범위하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은 여호와에게 속하는 일부분이지만 여호와라고 하는 전체의 신비는 말씀으로 그 모두를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히브리정경과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창조주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피조물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충분한 계시이며 설명인 것입니다.

2)    예레미야는 선지자활동을 그만두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20:9ab).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대언하는 것뿐만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에 관한 지식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지 아니하고 있는 선민의 나라에서 선지자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고통입니다. 고향사람들도 예루살렘의 권력자들도 모두가 예레미야의 선지자활동을 싫어하고 있습니다(11:19-21, 18:18, 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지자로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2)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20:9b);

1)    예레미야가 선지자활동을 그만두고자 생각을 했더니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서 불이 붙는 것 같아서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20:9b). 그것은 두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예레미야는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대언하는 여호와의 종으로 선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1:2). 자신의 인생의 가치와 목적이 바로 말씀의 종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아니하게 되면 자신의 인생은 그 가치가 무엇일까요? 무가치한 인생 덧없는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골수에 사무치는 한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②또 하나는, 동족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그냥 있을 수가 도저히 없습니다.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하는 방법은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동시에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을 그들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해야만 하는 생명구원의 길입니다. 눈을 뻔히 뜨고서 그 일을 감당하지 아니한다고 하면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책감에 시달려 자신을 태워버리고 말 것입니다.

넷째로,나는 무리의 비방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20:10);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나는 무리의 비방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20:10a);

1)    선민 유대인들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거짓말이라고 폄하하면서 그를 거짓선지자라고 비방하고 있습니다(20:10aa). 그 앞장을 서고 있는 자들이 제사장 바스훌과 진짜배기 거짓선지자인 하나냐 등입니다(20:1-2, 28:1-4).

2)    여기서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20:10a)라고 하는 번역은 좀 어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직역을 하게 되면 그 뜻이 사방의 적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서 두려워 떤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주위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겁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11:19-21, 18:18). 그들이 하고 있는 협박의 내용은 예레미야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어로 보면, “I hear many whispering, ‘Terror on every side!’ “(NIV)입니다.

(2)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20:10b); 여기서 고소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법정에 고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법정에 고소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선지자들이 예레미야에게 담대하게 대항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 혼자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들도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서 백성들에게 신바벨론과 전쟁을 하면 유다 왕국이 승리를 한다고 외쳤다는 것입니다(28:1-4). 그런데 예레미야가 다윗왕조가 패전을 한다고 달리 말하고 있으므로 누가 옳은지 여호와 하나님께 한번 물어보자는 것입니다(20:10b).  

(3)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20:10c);

1)    선지자 예레미야의 절친들도 이제는 예레미야와 입장을 같이하고 있지를 않습니다(20:10ca). 그들마저 선민우월사상과 선민구원사상에 빠져 버렸습니다.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방인에게는 진노와 재앙으로 임하시고 선민 유대인에게는 보호와 구원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상이 이름하여 선민만의 구원사상입니다(16:14).

2)    역사적으로, 100년전 히스기야 왕때에도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포위공격을 계속하고 있는 앗수르 군사 185천명을 신위적인 능력으로 몰살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왕하19:35). 이제는 신바벨론 군대를 그렇게 징치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제외한 유다 왕국의 모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틀렸으므로 이제 전쟁의 결과를 보면 그가 실족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0:10cb).

(4)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20:10d);

1)    동역자 하나없이 혼자서만 여호와의 말씀을 위험한 곳에서 대언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지금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의 주변에서는 그가 실족하기를 모두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저히 자기 혼자서는 끝까지 꿋꿋하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할 수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세상적인 유혹이 다가오게 됩니다.

2)    그만 외로운 투쟁을 접고 남들처럼 그렇게 적당하게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말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유혹에 사로잡히게 됩니다(20:10da).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소신을 잃어버린 예레미야에 대하여 그의 적들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할 것입니다(20:10db). 그리고 이제는 별 볼일이 없어진 예레미야에게 그동안 자신들이 느꼈던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차제에 앙갚음하고자 달려들 것입니다(20:10dc).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이시며 피조물인 예레미야의 인생의 주인이시지만 그에게 선지자의 사명을 맡길 때에 결코 강압적으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사명을 제의하시고 예레미야의 동의여부를 확인하십니다. 그것이 인격적으로 인간을 대접하시는 여호와의 권유입니다.

(2)  둘째, 예레미야는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음란에 젖어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동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살아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선지자 예레미야의 외로운 영적인 투쟁이 시작이 됩니다.

(3)  셋째, 선민 유대인들이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을 배척합니다. 선지자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예레미야를 미워하고 해치고자 합니다. 예레미야의 절친들마저 그를 떠나가고 혼자서 외톨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종을 보호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4)  넷째, 만약 선지자 예레미야가 다른 거짓선지자들처럼 권력자들의 비위에 맞는 예언만 하게 되면 그때에는 엄청난 비극이 찾아옵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거짓 예언을 하게 되는 예레미야를 여호와께서는 버려버릴 것입니다. 그리하면 적들이 예레미야에게 달려들어 그동안의 보복을 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들을 생각하시면서 정직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주님의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