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100강(렘17:15-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28. 22:42

예레미야 강해 제100(17:15-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829()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그의 동족들이 어떻게 조롱하고 있으며 그 결과 선민 유대인들이 어떠한 재앙을 만나게 되는가?(17:15-18)

 

본문의 첫 구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17:15). 선민 유대인들이 선지자 에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 곧  유다 왕국이 망하게 된다는 예언을 전혀 믿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제1장에 따르면 여호와의 말씀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성육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1-4, 14-18).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은 예레미야 시대에도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으며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600여년 후에 그들의 사회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희롱을 하고 그 말씀을 무시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7:26). 그 뿐만 아니라 아예 예레미야의 입을 봉하기 위하여 그를 해치고자 악한 일을 도모하고 있습니다(11:19-21). 그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선지자를 선민사회에 보내지 아니하고 이제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를 지상에서 없애 버리고자 결심하십니다(11:22-23, 7:15-16, 14:10-12, 15:6).

그와 같은 망국의 위기가 목전에 다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회개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비웃으며 조롱하고 있습니다; “보라,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17:15).

훗날 여호와의 말씀이신 독생자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공생애를 시작하여 3년반 동안 복음사역을 하시지만 선민 유대인들이 시종일관 배척을 하고 맙니다. 끝내는 로마총독의 힘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고서 다음과 같이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27:38-44).  

그와 비슷한 일이 예수님보다 600여년 전에 유다 왕국에서 선지자로 활동한 예레미야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환난의 날에 자신을 구원하여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17:16-18). 따라서 예레미야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이 되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의 경우에는 어떠한 일이 그후에 발생하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짜 창조주의 뜻이라고 한다면 당장 역사 가운데 그 말씀대로 임하도록 해보라고 하는 조롱입니다.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침략으로 멸망을 당할 리가 없는데 그렇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는 예레미야의 주장이 가소롭다는 것입니다. 그들 선민 유대인들은 거짓선지자 하나냐의 거짓 예언을 믿고서 그렇게 기고만장한 것입니다(28:1-4).  

(2)  둘째, 선지자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고 맙니다(38:2-13, 28). 여호와의 말씀이 사실일 것 같으면 그 감옥에서 나오도록 하나님께서 조치하실 것이니 그렇게 되는지 한번 두고 보겠다고 하는 심산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다윗왕조 유다 왕국은 신바벨론과 전쟁을 하다가 패망하고 맙니다(39:1-10, 왕하25:1-12). 그렇지만, 선지자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감옥에서 석방이 됩니다(39:11-14, 18).

(3)  셋째, 예수님의 경우에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신 것이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왜냐하면, 3일만에 무덤에서 아버지 하나님에 의하여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28:10, 8:11, 고전15:44);

1)    그에 따라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성도에게 임재하여 한평생 진리의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십니다. 그와 같은 주님과 성령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온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14:16-20, 1:8).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목적의식이 매우 뚜렷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그 영생의 부활과 하나님나라에서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하여 전심전력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3:10-14). 더구나 사도 바울은 여러 성도들에게도 자신과 함께 끝까지 신실하게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감으로써 그 영광을 함께 누리자고 격려하고 있습니다(3:15-16, 22:28-3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보라,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17:15);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1)  하나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신들에게 말하고 있는 내용이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일 리가 없다고 하는 강한 확신이 선민 유대인들에게 들어 있습니다;

1)    예레미야만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과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과 전쟁하게 되면 유다 왕국이 반드시 멸망을 당하게 된다고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38:2-3).

2)    그러나 다른 선지자들은 전혀 예레미야와 견해가 다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과 전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승리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러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는 주장입니다(28:1-2).

3)    거짓선지자들의 앞장을 서고 있는 하나냐의 주장이 다음과 같습니다; “패전을 하게 되는 신바벨론은 전쟁배상금으로 그동안 유다 왕국에서 약탈을 하여간 금은 보화는 물론 인질들까지 예루살렘으로 반환하게 될 것입니다”(28:3-4).

4)    참으로 사탕발림과 같은 달콤한 거짓 예언입니다. 당연히 선민 유대인들은 거짓선지자들의 엉터리 예언을 선호하고 있으며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쓰디쓴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한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선민 유대인들이 감히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에 대하여 희롱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미래가 전개되지 아니할 터이니 네가 정 억울하면, 한번 전능하신 여호와의 말씀의 능력을 역사 가운데 임하도록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이라고 하는 두려운 미래를 여호와의 말씀대로 한번 도래하도록 해보라고 하는 망언입니다.

2)    그들의 말이 씨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실제로 다윗왕조의 멸망이 역사 가운데 현실로 나타나고 말기 때문입니다(15:6-7, 16:21). 그리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비웃은 그들은 전쟁 중에 죽거나 아니면 망국의 백성이 되어 이방 땅에서 천대를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따랐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하지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17:1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따랐사오며”(17:16a);

1)    목자는 양을 돌보는 자입니다. 불철주야 양떼를 습격하는 이리를 물리치고 상처 입은 양들을 치료하는 자가 목자입니다(31:40, 삼상17:34-35, 2:8). 그리고 안전한 초장으로 양들을 인도합니다(10:10). 그러므로 목자의 직분을 행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양떼인 동족들을 위험한 길로 그리고 멸망의 길로 인도할 리가 없습니다.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아무리 동족들이 자신이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고 자신을 박해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멸망을 위하여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여호와께 동족들을 구원하여 달라고 끝까지 중보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3)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이고자 하는 선민 유대인들의 행동을 보고 긍휼의 마음을 바꾸십니다(7:13-14, 11:18-23, 18:18).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입니다(7:15). 그 사실을 알고서 예레미야가 다시 중보의 기도를 올리자 이제는 그 기도를 그만두라고 말씀하십니다(7:16).

(2)  재앙의 날도 내가 원하지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17:16b);

1)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이 동족들의 온갖 핍박을 받으며 목숨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조국의 멸망을 막아보고자 몸부림을 친 사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알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17:16b). 동족들의 구원을 호소하는 예레미야의 중보의 기도까지 중단하도록 여호와께서 말씀하고 계시기에(7:16) 그는 다른 각도에서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 두가지입니다;

2)    하나는, 유다 왕국의 멸망 가운데에서도 보복할 자만 구별하여 처벌하시고 나머지 백성들에게는 달리 살길을 허용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11:20, 18:20-23).

3)    또 하나는, 망국의 백성으로 이방 땅에서 장차 고난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그들의 후손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구체적으로, 부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열방 가운데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그 새로운 언약의 시대를 허락하여 달라는 것입니다(16:14-15, 31:31-34, 11:10-13).

셋째로,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나를 박해하는 자로 치욕을 당하게 하시고, 나로 치욕을 당하게 마옵소서. 그들은 놀라게 하시고, 나는 놀라게 하지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17:17-18);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17:17);

1)    모세의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 일대에는 6개의 도피성이 설치가 되어 있습니다(35:6, 9-34, 20:7-9). 고의가 아니라 부지중에 과실로 사람을 해치게 된 자를 구원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재앙의 날피난처도피성과는 다른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살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 의하여 자행이  되는 인재’(人災)에 속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있는 재앙은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내리시는 역사적인 심판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예를 들면, 그 옛날 여호와의 말씀을 끝까지 완강하게 거절하고 있는 애굽의 바로에게 진노하신 여호와께서 그 땅에 내리신 10가지 재앙과 같은 것입니다. 특히 그 가운데 마지막 재앙이 장자의 죽음입니다. 그 마지막 재앙이 임하는 날이 여호와의 심판의 날인 재앙의 날입니다(12:29-30). 그와 같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이 여호와의 결정에 따라 역사 가운데 발생하게 됩니다(7:34). 그 날이 바로 재앙의 날입니다.

3)    애굽에서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바른 그 집안이 죽임을 면하는 일종의 피난처가 되고 있습니다(12:13). 마찬가지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의 날에 있어서는 생사를 결정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피신하는 자들이 피난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서 예레미야가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17:17)라고 여기서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나를 박해하는 자로 치욕을 당하게 하시고, 나로 치욕을 당하게 마옵소서. 그들은 놀라게 하시고, 나는 놀라게 하지 마시옵소서”(17:18a); 지금 선지자 예레미야를 박해하고 있는 자들은 두 부류입니다;

1)    하나는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의 제사장들입니다(1:1, 11:18-23, 21:18). 그들 제사장들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수호하시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인 에레미야가 선지자가 되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레미야의 선지자 활동을 고향의 제사장들이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2)    또 하나는, 예루살렘성의 주민들입니다(18:18). 그들은 신바벨론과 전쟁을 하더라도 속국의 처지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는 다윗왕조의 사람들과 유다 왕국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신바벨론과 화해를 하지 아니하면 유다 왕국이 멸망을 한다고 계속 외치고 있으니 그것이 못마땅한 것입니다(38:2-5). 그래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버립니다(38:6).

3)    고향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물리치고 하나냐와 같은 거짓선지자의 말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신바벨론과의 전쟁에서 패망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예레미야가 두려움 가운데 다음과 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를 박해하는 자로 치욕을 당하게 하시고, 나로 치욕을 당하게 마옵소서. 그들은 놀라게 하시고, 나는 놀라게 하지 마시옵소서”(17:18a). 여호와의 말씀대로 역사가 임하는 줄 그들로 깨닫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다가 핍박을 받고 죽을 위기에 처하고 있는 자신과 같은 여호와의 종을 구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3)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17:18b);

1)    여호와의 재앙의 날이 동족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비극이 됩니다(17:18ba).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가 설상가상으로,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17:18bb)라고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2)    첫째, 선민 유대인들이 끝까지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며 제멋대로 살았기에 이제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살아 남은 백성들은 적군에게 포로로 끌려가서 고난 가운데 망국의 백성으로 천대를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조국의 멸망에 더하여 망국의 백성이 되는 이중적인 치욕과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갑절의 멸망이라고 하겠습니다.

3)    둘째,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있는 신바벨론제국은 더 악한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완전한 이방인의 나라이며 처음부터 우상을 섬기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멸망을 당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공의로운 여호와의 역사의 섭리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적국 역시 멸망을 당하도록 배나 되는 멸망으로 역사하여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셋째, 세상적인 멸망도 두려운 것이지만 더 두려운 것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임하고 있는 영원한 영적인 멸망입니다(10:28).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은 적 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에 대한 영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20:10).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거짓선지자들에 대해서는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여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7:18b).   

결론적으로,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말기에 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한 선지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주관하시는 독생자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직접 말씀을 선포하시기 이전이므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리스도의 입이 되어 동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한 것입니다(11:27, 1:2-3, 7:13, 25).

그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보면, 예레미야가 당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희롱과 핍박을 예수님께서도 훗날 그대로 받게 되신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복음서에 적혀 있는 소위 예수님이 당하신 비방과 희롱의 내용과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희롱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는 엄청난 재앙으로 역사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바벨론과의 전쟁으로 조국이 망하고 모두가 망국의 백성이 되어 이방 땅을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감옥에서 석방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훗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시지만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파하는 만민구원의 시대가 전개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이 붕괴가 되고 온 세상을 떠돌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선지자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희롱하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신실하게 믿고서 끝까지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