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97강(렘17:5-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25. 22:55

예레미야 강해 제97(17:5-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826(주일)

 

마치 시편 제1편의 말씀과 같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본문은 어떠한 내용인가?(17:5-8)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여호와신앙인과 그러하지 못한 자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17:5).

(2)  둘째로, 여호와신앙을 떠난 자의 인생살이의 모습을 사막의 떨기나무의 처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17:6).

(3)  셋째로,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되면 마치 그 옛날 모세처럼 그 광야의 떨기나무에서부터 어떠한 새로운 인생이 시작이 될 수가 있는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17:7, 3:1-12).

(4)  넷째로, 여호와 앞에서 진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어떠한 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지를 시편 제1편의 말씀을 원용하여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17:8, 1:1-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17:5);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하의 말씀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대언을 하라고 받은 말씀이라는 사실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17:5a). 본문은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생과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 그것이 여호와신앙을 가진 자와 그것을 떠난 자의 차이를 가장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2)  첫째, 여호와신앙을 떠난 자는 사람을 믿고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17:5b). 반면에 여호와신앙인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3)  둘째, 자신의 육신적인 힘을 믿고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는 여호와신앙인이 아닙니다(17:5c). 그와 반대로, 여호와신앙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힘을 믿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4)  셋째, 그 마음이 여호와를 떠나서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여호와의 종이 아닙니다(17:5d). 따라서 여호와신앙인은 마음속으로 항상 자신의 주인이 여호와이시므로 그 앞에서 모르는 것을 묻고 주인의 뜻을 들은 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는 자입니다. 그것이 종의 도리입니다.

(5)  요컨대, 여호와신앙이란 하나님 앞에서 종의 법도를 올바르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할 때에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서 보다 완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17:1).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행동을 하는 종의 인생을 전능하신 창조주의 능력으로 온전하게 만들어 이 세상에서 복음사역을 하게 한 후 영생의 기업인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7:21, 22:28-30).  

둘째로,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17:6-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17:6);

1)    사막의 떨기나무에 대하여는 모세의 이야기를 통하여 잘 알려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을 때에 미디안의 변경 호렙 산이 있는 르비딤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3:1, 17:1, 6). 그때 모세는 호렙 산의 중턱에 외로이 타고 있는 떨기나무의 불꽃을 멀리서 보면서 지나치고 있습니다(3:2). 이제는 떨기나무가 몽땅 타버렸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고서 그는 고개를 돌려 산 중턱을 쳐다보았습니다.

2)    여기까지가 미디안 땅에서 장인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모세가 40년 동안 양치기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있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처지가 마치 호렙 산의 떨기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막과 같은 그 르비딤 광야에서는 양을 칠 만한 물도 별로 없고 풀도 잘 자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렙 산 중턱에서 자라고 있는 떨기나무는 그 신세가 외롭고 처량합니다. 마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고  미디안 땅에서 외로운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는 모세의 처지와 같습니다(2:22). 그 점을 여기서,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17:6)고 묘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불이 여전히 그곳에서 타고 있습니다(3:3). 생전 처음 본 그 신기한 광경 때문에 모세가 호기심에 이끌려서 호렙 산 떨기나무가 있는 곳으로 올라갑니다(3:4). 그리고 그곳 불타고 있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여호와를 만나고 모세의 인생이 변하게 됩니다(3:5-12). 사실 경치와 풍경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호렙 산 중턱에서 자라고 있는 떨기나무는 여전히 외롭고 쓸쓸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창조주 여호와를 만나고 사명을 부여 받았기에 그의 인생길이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다음 구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17:7);

1)    모세는 40세가 될 때까지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황궁에서 왕자급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난 사람입니다(2:10, 7:22). 그 이유는 양어머니인 핫셉수트 공주가 애굽제국의 상속권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2:5, 7:21). 그녀는 투트모세1세의 유일한 공주입니다. 물론 다음 번의 바로가 되는 투트모세2세가 있지만 그는 그녀의 이복 남동생이며 서자 출신입니다. 그러므로 제국의 상속권을 가진 적자인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비로소 황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2)    남편인 투트모세2세가 죽고 나자 자신의 자녀가 없는 핫셉수트 황후는 다시 제국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녀는 투트모세2세가 비천한 궁녀와 관계하여 낳은 아기를 투트모세3세로 칭하고 바로의 자리에 앉힌 후 18년 동안 섭정을 하게 됩니다. 그 시기를 애굽의 역사에서는 여자 바로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모세의 양어머니이므로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통치자의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3)    그러한 모세가 나이 40이 되자 그만 양어머니가 투트모세3세의 회군에 의하여 권력을 잃어버림에 따라 변방 고센 땅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고센 땅에서 모세는 자신보다 20세나 어린 투트모세3세를 몰아내기 위하여 히브리인들의 세력을 규합하다가 사전에 계획이 탄로가 나고 맙니다(2:11-14, 7:23-28). 그는 정신 없이 멀리 동쪽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여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80세가 될 때까지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2:15-3:1, 7:29).

4)    그와 같은 모세의 80세까지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동족들을 규합하여 고센 땅에서 무장봉기를 함으로써 군사력으로 투트모세3세를 몰아내고 권좌를 차지하고자 시도한 인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인이 여호와이시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켜야 노예에서 해방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을 얻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5)    모세의 나이가 80세가 되었을 때에 그가 호렙 산 떨기나무 사이에서 여호와를 만나게 됩니다. 동족들을 출애굽시키라는 사명을 부여 받고 여호와의 종으로 이제 살아가고자 길을 나섭니다(4:12-20). 그때부터 그는 여호와신앙으로 살아가는 인물이 됩니다. 그와 같은 변화에 대하여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17:7)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여호와를 의지하여 살아가야 복을 받습니다. ②또 하나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고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여호와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22:21, 13:5-7).

셋째로,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때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17:8);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17:8a);

1)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에셀나무’(tamarisk tree)를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대목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21:33). ‘에셀나무는 가나안 땅에서 기념식수를 할 때 사용이 됩니다. 그 이유는 반() 사막성 기후에도 견디는 사철 푸른 잎의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9m까지 자라는 바늘 잎을 가진 나무인데 그 뿌리가 높이의 3배까지 땅속으로 뻗어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뭄에도 지하수를 빨아 올릴 수가 있는 나무입니다. 그 에셀나무를 네게브 지역인 브엘세바에 심고서 아브라함이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마음은 에셀나무의 뿌리가 지하수를 빨아올리는 것처럼 여호와의 생명의 말씀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력을 얻어서 살고 싶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록이 바로,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17:8a)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자손들에게 계승이 되고 있습니다.

3)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아리랑이고 부를 수 있는 시편 제1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믿음의 노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이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1:1-3). 그와 동일한 의미가 본문 제7-8절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2)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17:8b);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에 찌는 듯한 한낮의 더위를 여호와의 구름기둥이 막아 주고 있습니다(13:21). 그에 따라 200만명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40년 동안에 더위를 먹고 죽는 사례가 기록상 없습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가 있기에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도 믿음의 사람은 그 잎이 청청한 것입니다(17:8b).

(3)  가무는 때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17:8c);  

1)    대표적인 천재지변이 가뭄과 그로 인한 기근입니다. 선지자 엘리야의 시대에 그러하고 예레미야의 시대에도 그러합니다(왕상17:1-7, 14:3-6, 12).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이방 땅에서 살아갔기에 그들의 발걸음을 여호와께서 인도하시고 다음과 같이 가뭄을 극복하도록 해주셨습니다;

2)    첫째,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가뭄을 피하여 애굽의 삼각주 및 블레셋의 곡창지대인 그랄 땅에서 난민생활을 했습니다(12:10-20, 20:1-18). 그 두번의 경우에 있어서 아름다운 아내 사라를 황제들에게 후궁으로 빼앗길 뻔했지만 두 차례나 여호와께서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재물도 얻고 목축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우물물을 주셨습니다.

3)    둘째, 이삭은 가나안 땅에서 가뭄을 당하자 여호와의 지시에 순종하여 애굽이 아니라 그랄 땅으로 갔습니다(26:1-25). 그곳에서 초보 농사꾼인 이삭이 백배의 결실을 얻어 부자가 됩니다. 원주민의 텃세 때문에 그가 판 우물을 계속 빼앗기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물물을 계속 주십니다.

4)    셋째, 야곱은 부모님의 집에서 멀리 시리아 북부에 있는 외삼촌의 집으로 피신을 합니다(28:1-29:20). 그러나 벧엘의 여호와께서 그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 덕택에 하란 땅에서 부자가 되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와 같은 은혜를 선지자 예레미야는 가무는 때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17:8c)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에 따르면 여호와신앙의 핵심은 다음 세가지입니다;

(1)  첫째,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2)  둘째, 육신의 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셋째,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마음속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명심하며 중요한 사항을 항상 여호와 앞에서 그 뜻을 묻고 주인의 뜻을 따라 결정해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진실한 여호와의 종에게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 결과 시편 제1편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신앙인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 복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게 되면 성도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는 복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복의 근원이신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끝까지 살아감으로써 영생의 구원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