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95강(렘16:19-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24. 08:32

예레미야 강해 제95(16:19-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824()

 

전란을 앞둔 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도 가운데 어떠한 심오한 깨달음이 들어 있으며 그것은 여호와의 어떠한 응답을 받고 있는가?(16:19-21)

 

본문의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40년 동안 동족들에게 외쳤지만 고향사람들은 물론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이 한결같이 외면하고 있습니다(1:1-3);

1)    심지어는 더 이상 선지자 예레미야의 소리를 듣기가 싫다고 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11:18-21, 18:18-20). 따라서 여호와의 진노로 얼마 지나지 아니하면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올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주신 그대로, 예레미야의 조국인 유다 왕국은 망하고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은 포로가 되어 이방 땅으로 끌려가고 말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위기 가운데 예레미야는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는 의인을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 의미에서, “여호와 나의 , 나의 요새, 환난날의 피난처시여”(16:19a)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3)    그의 기도는 그 옛날 수많은 강력한 적들과 맞서야만 했던 여호와의 종 다윗왕의 간구와 닮아 있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18:1-3).

(2)  둘째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제 동족들만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 기도를 여호와께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의 뜻과 역사섭리의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만이 아니라 모든 열방들과 민족들이 하나같이 창조주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해야만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신상과 우상이 헛된 것이며 자신들에게 구원을 줄 수가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여호와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2)    둘째,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사는 인생은 결코 창조주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3)    셋째, 오직 여호와를 창조주로 섬기고 그 말씀의 뜻을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만이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와 같은 깨달음을 만민들이 얻어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여호와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그 내용이 여기서, “민족들이 땅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의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 뿐이라.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16:19b-20)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의 뜻과 그 역사섭리의 목적을 정확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게 확실하게 알고서 기도를 하고 있으니 여호와의 응답이 긍정적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16:21).

1)    언뜻 생각하면, 여호와의 답변의 말씀은 역사적인 당시의 상황과 영 다른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과는 달리 신바벨론의 군대가 쳐들어 와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왕과 귀족들 그리고 쓸 만한 백성들을 전부 포로로 끌고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성과 유다의 성읍들이 파괴가 되고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성전마저 불타 버리게 될 터인데 어떻게 그 자리에 여호와의 능력이 나타나며 그 이름이 영광을 받게 된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시간적으로 전혀 이치에 맞지가 아니하는 말씀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선지자들이 기록으로 후세에 전하고 있는 깊은 내용은 그것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등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①첫째,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황제와 신바벨론의 통치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창조주이시며 이방제국의 왕조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2:46-49, 3:24-30, 4:34-37, 5:23-31, 6:26-28). ②둘째, 에스더는 이방 땅 페르시아에서도 여호와의 영광이 유대인들을 통하여 찬란하게 빛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9:1-10:3).

3)    ③셋째, 에스라는 페르시아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레스가 자신이 천하통일을 한 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1:1, 44:28-45:8). 그에 따라 유대인들이 자유민이 되고 원하는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제2성전을 건설하게 됩니다(1:1-4). 그것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과 같은 것입니다(1:1, 25:10-14).  ④넷째, 느헤미야는 페르시야제국의 제5대 황제인 아닥사스다1세가 부황인 아하수에로에 이어서 얼마나 친 유대적인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6:1-15, 7:6, 2:1-9, 8:1-17). 그들은 이방 땅의 역사까지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알고서 그렇게 처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 나의 , 나의 요새, 환난날의 피난처시여, 민족들이 땅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의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뿐이라”(16:1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 나의 , 나의 요새, 환난날의 피난처시여”(16:19a); 선지자 예레미야는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멀지 아니하여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벌일 것이며 그 때문에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먼저 다음과 같은 기도를 여호와께 올리고 있습니다; “여호와 나의 , 나의 요새, 환난날의 피난처시여”(16:19a). 그 말은 전란 가운데 자신의 목숨을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 간구입니다. 그러한 기도는 수많은 전쟁을 수행한 그 옛날 다윗왕의 간구에서 익히 엿볼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18:1-3).

(2)  민족들이 땅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의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뿐이라”(16:19b);

1)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자이시며 환난에서 사람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구원의 진리를 훗날 예수님께서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복음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2)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구원의 진리를 알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요? 예레미야는 이번 전란을 통하여 마지막 선민의 나라가 지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러한 때가 시작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선민과 이방인이라고 하는 인위적인 이분법적인 구분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3)    따라서 이제는 열방과 모든 족속들이 하나같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종교와 문화 곧 조상대대로 전해져 오는 전통적인 우상문화와 무신론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유일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비로소 이 세상에서의 환난에서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조상들이 만든 신상과 사람들이 만든 우상을 구원자로 여기고 아무리 분향을 하고 희생의 제사를 드려보아야 완전히 헛수고가 될 따름입니다(16:19b).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구원의 첫걸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16:20);

(1)  먼저, 두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신적인 능력이 없는 신상과 우상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정신없이 사람들이 창조주의 뜻을 모르고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피조세계를 소유하고 지배하고자 탐욕을 부렸으며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죄악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2)  이제는 그와 같은 잘못을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결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①첫째, 유일하게 영생의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만 자신의 하나님 그리고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환난 가운데 구원을 줄 수가 없는 허망한 신상과 우상을 모두 버리고 철거하겠다는 것입니다. ③셋째, 우상문화는 물론 그 속에 내포가 되어 있는 음란문화와 세상적인 탐욕까지 모두 청산하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로,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16:2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과 내 능력을 알려서”(16:21a);

1)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시행하고 계시는 역사의 섭리는 피조물인 인간의 안목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서 여호와께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과 내 능력을 알려서”(16:21a)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것이 선민에게나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여호와의 권능을 드러내는 일이 된다는 것일까요?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정반대의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훗날 십자가상에서 부르짖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기억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자신을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짐을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삼아 저주스러운 죽음의 골짜기로 보내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견딜 수가 없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고 계십니다(27:46).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영혼이 떠나가십니다(19:30).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와 저주를 받아 십자가 위에서 버려지는 그것이 어떻게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제사가 된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대속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고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대목입니다.

3)    그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은 스스로 여호와께서 선택한 유일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살아 오고 있습니다(19:4-5). 실제로 그들은 율법에 따른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제사장나라입니다(19:6, 16:29-34). 그러나 그들의 속죄의 제사는 그들 선민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가 창조주이시며 모든 사람의 인생과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그들의 잘못을 일깨워주는 한편 회개하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라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며 그러한 의미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용어 가운데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19:4-6).

4)    그러한 선민의 책무를 전혀 모르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멋대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을 얻은 백성들이고 주변의 이방인들은 여호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진노와 저주의 백성들이며 멸망의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삐뚤어진 선민의식이 잘못된 것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제멋대로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자신들은 모두 여호와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자만에 빠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함부로 이방신상과 우상을 도입하여 섬기면서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5)    그 결과 그들의 땅에서 무죄한 자의 피가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옛날 아모리 족속처럼 이스라엘 자손들도 멸망의 대상입니다(왕하21:10-14). 공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선민이라고 하여 그 어떠한 특혜도 주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육신이 되어 버린 자들을 떠나시고 역사적인 심판을 하십니다(6:3). 그에 따라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이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이방인의 땅에서 슬픈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만드십니다(6:3, 7:8-15). 그것이 여호와의 심판의 준엄함입니다(11:21-22). 자신이 선택한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제멋대로 살아가게 되면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6)    그러므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 없이 이제부터는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지 아니하게 되면 도저히 구원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진리를 만민들이 알 수 있도록 이제부터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겠다는 강력한 말씀이 바로 본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과 내 능력을 알려서”(16:21a).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의 멸망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는 선민의 특혜도 사라지고 모두가 공평하게 여호와 앞에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얻어야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16:21b); ‘여호와라고 하는 용어의 뜻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설명하십니다(3:14). 그 말씀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만이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48:12-13). 여호와를 제외하고 그 어떠한 신들도 모두 창조주의 권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인간이 만든 우상일 따름입니다(10:1-5). 그러므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일 역시 오직 여호와만이 하실 수가 있는 일입니다(65:17-18).

2)    또 하나는, 스스로 결정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결정을 그 어떤 피조물이라고 하더라도 번복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것과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오로지 여호와의 결정에 따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그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닫고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아올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16:21b).

결론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인간적으로 자신의 조국이 망하고 지상에서 마지막 남은 선민들이 망국의 백성으로 이방 땅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러한 비극을 예방하고자 40년 동안 전심전력으로 부디 회개하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라고 동족들에게 부르짖었지만 그 결과는 허무합니다.

이제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두가지 기도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1)  첫째, 그 옛날 다윗처럼 자신을 전란 가운데서 구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2)  둘째, 마지막 선민의 나라가 없어짐으로 이 세상에서는 선민과 이방인이라고 하는 구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디 모든 세상사람들에게 우상문화를 청산하고 여호와 앞에 돌아오는 역사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도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섭리의 뜻이라고 외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선민이 사라지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어떻게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의 깨달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선지자들의 증거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힘있게 전파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