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94강(렘16:16-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23. 22:40

예레미야 강해 제94(16:16-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823()

 

이 땅을 더럽히고 있는 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사용하시는 어부와 포수들은 누구인가?(16:16-18)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은 창세기와 민수기의 기록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다음과 같은 창세기와 민수기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본문의 내용이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1)  첫째로, 창세기 제3장을 보면, 마귀의 화신으로 보이는 뱀이 아담부부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뱀은 아담부부가 여호와의 명령을 의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진리와 비(, 아닌 것을 말함) 진리를 적절하게 혼합하여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4-5).

2)    그 가운데 첫번째 언급 곧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3:4)는 언급은 비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2:17)고 벌써 정확하게 언급하셨기 때문입니다.

3)    두번째 언급인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는 구절은 진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3:22)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4)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피조물인 아담부부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저주를 받아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상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더구나 그 상태에서 다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먹게 되면 그때에는 여호와의 저주 가운데 영생하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영적인 교제가 끊어진 상태로 영생한다고 하는 것은 곧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따라서 생명나무에 접근하는 길을 막고 아담부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시는 것입니다(3:23-24).

5)    그와 같은 창조주 여호와의 선하신 의도를 의심하도록 마귀의 화신인 뱀이 아담부부를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아담부부가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말씀의 뜻을 여호와께 먼저 여쭈어보고 그 말씀에 따라 자신들의 의심을 풀고 행동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것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이 되어 있는 뱀의 말이 그들 부부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그 다음에 언급이 되고 있는 육신적인 탐욕입니다.

6)    또 하나는, 아담부부의 탐욕과 교만을 교묘하게 충동하고 있습니다. 뱀의 말을 듣고서 아담부부가 선악과를 쳐다보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3:6). 뱀의 말에 유혹을 받아 선악과 열매라고 하는 대상을 보니 그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탐욕과 교만이 고개를 쳐들고 있습니다.

7)    구체적으로, 보기에 탐스러워 따서 먹고 싶은 욕심이 충동으로 솟아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먹게 되면 창조주가 지니고 있는 그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니 그때부터는 여호와의 종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살 수가 있다고 하는 교만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시험에 빠진 아담부부의 창조주에 대한 반역이며 그 은혜에 대한 배신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2)  둘째로,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16:16a)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가두어서 잡아 올리는 방법입니다. 일단 물고기가 그물 안에 들어가게 되면 꼼짝 없이 어부의 손에 잡히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낚시로 물고기를 낚는 방법입니다. 낚시대에 미끼를 달아 물속에 넣습니다. 물고기가 그것을 탐스러운 먹이로 알고 먹도록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4:3). 그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물고기는 어부에게 잡히게 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그 옛날에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다는 의미보다는 낚시로 물고기를 낚는다는 뜻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지만 그것은 물고기가 그 미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해석입니다. 그와 같은 풀이가 본문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로, 민수기 제25장에서 다음과 같이 모세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25:1-3). 조금 풀이를 해봅니다;

1)    싯딤의 위치는 모압평지의 중심이며 요단 강을 건너서 서쪽으로 가게 되면 여리고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곳에 모세가 이스라엘 군대를 거느리고 진을 치고 있습니다(25:1). 군대를 재정비하면서 장차 후계자 여호수아가 그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 정복에 나설 수 있도록 여러가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2)    싯딤 남쪽 4km지점에 브올 산이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모압 여인들이 성대하게 바알 신을 모시는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녀들은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장정들을 유혹하여 브올 산으로 함께 올라가서 바알 신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땅에 풍년을 가지고 오는 의식이라고 하면서 다산(多産)의 의식을 그 다음에 진행합니다.

3)    그것은 하늘에서 바알 신과 그의 아내 신인 아세라가 합방을 하고 땅에서는 여사제들이 제사에 참여한 남자들과 혼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의 다산의 축복이 이 땅에 임하게 된다는 묘한 설명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육체적인 유혹입니다. 그 음란의 유혹이 산 위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종교의식을 명분으로 하여 대담하게 실시가 되고 있습니다. 

4)    그러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고 모세에게 명령하여 그 일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미디안 5왕들과 거짓선지자 발람을 잡아서 죽이게 합니다(25:16-18, 31:1-8).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옛날의 잘못을 재범하고 맙니다. 모든 산과 언덕 그리고 바위 틈에서 바알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여사제들과 음란한 행위를 즐긴 것입니다(3:2).

(4)  넷째로, 그러한 잘못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대 곧 유다 왕국 말기에 만연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3:2),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3:6),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을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8-10). 모든 산과 언덕 그리고 바위 틈에서 우상을 섬기고 음란한 육체적인 향연을 즐기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하여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어 우상을 철거하고 경건한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라고 끊임없이 외치게 하십니다(7:13, 25).

(5)  다섯째로, 그러나 선민들의 마음이 돌아서지를 않습니다(7:26). 그 결과 이방 강대국을 사냥꾼으로 삼아 그들 행음한 자들을 사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16:16b). 그것은 타락한 선민의 나라의 멸망을 말하며 그들 백성들이 이방인 포수들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 심판의 역사가 임하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진노와 저주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내가 우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16:18)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모든 언덕바위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16:1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16:16a);

1)    이미 모두(冒頭, 말이나 글의 앞머리)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 방법에는 크게 보아 두가지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그물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그물 안으로 몰아서 잡는 방법입니다. ②또 하나는, 낚시에 미끼를 꿰어서 물고기가 물도록 유혹하여 잡는 방법입니다. 그 가운데 본문의 경우에는 그 문맥상의 의미로 보아 후자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2)    그래서 그런지 그 옛날에 히브리정경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에 잡는다는 표현 대신에 낚는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의적절한 번역입니다. 창세기 제3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아담부부에 대한 뱀의 유혹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서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여호와의 종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먼저 시험을 치르고 계십니다. 선민 이스라엘 자손의 경우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따라서 마치 어부가 낚시에 미끼를 매달고서 물고기를 유혹하듯이 그렇게 여호와께서는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경우에는 40일간 굶주리신 후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들어가서 마귀로부터 3가지의 강력한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4:1-11). 그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과하여야 드디어 만민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외가 없이 누구나 여호와의 일꾼으로 일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어부가 미끼를 가지고 유혹을 하고 있는 그 시험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5)    그런데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10지파가 그 시험에서 실패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왕하17:6, 21-23). 이제는 마지막 남은 선민인 유대인들마저 그 시험에서 탈락을 하고 있습니다(3:8-10). 물론 이방인들도 훗날 그리스도의 제자로 복음사역에 나서기 위해서는 그 시험을 통과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16:16a)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모든 언덕바위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16:16b);

1)    어부의 낚시밥에 유혹을 받은 이스라엘 자손의 타락에 대해서는 민수기 제25장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브올 산에 모압 여인들과 함께 올라가서 바알 신에게 제사를 드린 다음에 그녀들과 성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이 땅에 풍요를 가지고 오는 합방이라는 명분입니다. 그렇게 우상문화와 함께 음란의 문화가 선민사회에 퍼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여 성적인 타락을 한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장정들을 색출하여 사형에 처하라고 합니다(25:4-5). 그리고 원정대를 남파하여 모압 여인들을 이스라엘 진영에 보내어 장정들을 타락시킨 배후세력 미디안 왕들을 처치하라고 지시하십니다(25:16-18, 31:1-8).

2)    그런데 동일한 현상이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 의하여 자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이방 신과 우상을 도입하여 섬기면서 성적으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음란문화가 선민사회에 만연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영적인 타락과 성적인 타락을 청산하고 여호와신앙으로 돌아오라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거듭거듭 외치게 하고 있습니다(7:13, 25-26).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혀 듣지를 않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사냥꾼을 보내어 그들이 우상을 섬긴 그 장소에서 그들을 사냥하게 하는 것입니다.

3)    포수가 사냥하는 것은 어부가 낚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부를 시켜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일꾼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있는지 시험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선민들이 유혹을 이기고 그 미끼를 물리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포수가 사냥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미 이스라엘 자손들이 우상문화에 젖어 들어 사치와 퇴폐 향락을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책무를 전혀 행하지를 않습니다(19:4-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선민의 나라를 보호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선민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백성들을 이방 땅으로 끌고가서 고난 가운데 살아가게 하는 심판만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영적이고도 성적인 타락을 한 그곳으로 포수들을 보내어 그들을 처벌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그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모든 언덕바위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16:16b).

둘째로,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16:17);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16:17a);

1)    여호와께서 항상 피조물을 감찰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명심하고서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님 경외자입니다. 예를 들면, 애굽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청년 요셉이 그러합니다.

2)    요셉은 단 둘이 있는 은밀한 자리에서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할 때에 한 마디로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이 자신의 아내를 시종장인 요셉에게 맡기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신은 하나님의 눈 앞에서 그러한 죄악을 범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39:8-9). 그것이 요셉이 애굽 땅에서 형통하게 되는 신앙적인 비결입니다.

3)    정반대의 인물에 대한 기록이 창세기 제4장에 적혀 있습니다. 아담부부의 장남인 가인이 그러한 인물입니다. 그는 넓은 들판으로 동생 아벨을 불러내어 암살을 하고 그 시신을 파묻어 버립니다(4:8). 그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기에 완전살인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4:9). 그러나 가인은 은밀한 중에 온세상을 감찰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범행이 탄로가 나고 동방 유랑민들의 땅 놋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4:10-16).

(2)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16:17b);

1)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아무리 그늘진 곳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자행이 된다고 하더라도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남자들이 산 위와 언덕 위 또는 바위 틈 계곡에 올라가서 은밀하게 바알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여사제들과 음행을 한 사실은 여호와의 눈을 속일 수가 없는 소위 영적이고도 성적인 타락 행위입니다(3:2, 16:16b).

2)    그러한 죄악을 여호와께서 일일이 감찰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앞에 두 손을 들고 나아와서 회개하고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매년 그들의 달력으로 710일에 대 속죄의 제사를 드릴 때에도 그러한 죄악을 실토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16:29-30). 그 결과 그들의 죄악이 사함을 받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대로 모두 기억하시는 것으로 남게 됩니다(14:10a).

3)    그들의 죄악이 그 옛날 가나안 원주민들만큼 많아지게 되면 똑같은 여호와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14:10b, 왕하21:11-14)). 그 징벌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선민의 나라가 여호와의 보호함을 받지 못하고 이방인 나라처럼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그들의 기업에서 쫓겨나 이방 땅에서 나라 잃은 백성으로 고달픈 삶을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내가 우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16:18);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우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16:18a); 율법에 따라 잘못을 범한 경우에는 그 손해배상이 갑절입니다(22:4, 7).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악에 대하여 2배로 징계하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실로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깨닫고 동시에 자신의 그 무거운 죄악을 그리스도께서 전부 대속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그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마치 여리고의 세관장인 삭개오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2배가 아니라 4배로 배상하겠다는 결심을 밝히는 것처럼(19:8) 그렇게 남은 인생을 통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큰 결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19:9-10, 21:15-19).

(2)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16:18b);

1)    이방신상과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제물의 피가 땅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특히 인신제사를 드린 경우에는 그 무죄한 자의 피가 땅을 적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땅에 저주가 임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창세기 제4장과 제6장에서 그와 같은 사실을 모세가 웅변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2)    첫째, 가인이 동생 아벨의 무죄한 피를 땅에 흘린 경우입니다;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4:10-11),

3)    둘째,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악하여 약육강식의 포악한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수많은 약자의 피가 땅에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1-13).

4)    예레미야의 시대에 있어서는 선민 유대인들의 죄악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들의 기업인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 적군의 침략으로 초토화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7:34). 사람의 잘못이 그 모집단인 땅까지 핏빛으로 물들게 하고 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판입니다.

(3)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16:18c);

1)    첫째, 이방신상과 우상을 섬기면서 백성들이 음란한 행위를 하고 그 음란문화를 온 사회에 만연시키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예레미야가 벌써 여호와의 말씀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3:2),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3:9).

2)    둘째, 이방신상을 세우고 또한 우상을 세우며 그 제단을 만드는 것이 바로 가증한 것을 가나안 땅에 가득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의 제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도다”(11:12-13).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적인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외치는 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입니다(4:3). 그들은 먹을 것을 미끼로 사용하여 낚시를 하고 있는 어부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일꾼을 선택하실 때에 어부의 낚시로 유혹을 하게 하십니다. 그 결과 그 시험을 통과하면 복음사역의 일꾼이 되고 그러하지 못하면 영적인 타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세상적인 떡보다 더 달콤한 유혹이 우상문화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브올 산에 올라가서 바알 신을 섬기고 여사제들과 음란한 성생활을 한 것이 이스라엘 남자들의 타락입니다. 종교적인 명분이 동원된 그 음란한 문화가 선민의 사회에 만연이 되자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이 그 땅에 임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방 강대국의 군대를 포수로 사용하여 타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징벌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명심하고서 어부의 미끼라는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영적인 각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그리고 포수에 의한 사냥감이 되지 않도록 우상문화와 음란의 문화를 척결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