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85강(렘15: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8월 14일(화)
모세와 사무엘의 시대에 비하여 선민 유대인들이 얼마나 타락하였기에 철저하게 여호와의 응징을 받게 되는가?(렘15:1-4)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진노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며 멸망을 향하여 직진하고 있는 조국과 동족을 살리고자 부디 다시 한번 회개할 기회를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매어 달린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의 마음과 달리 고향사람들부터 예레미야를 배척하고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냐와 같은 거짓선지자의 달콤한 가짜 예언에 현혹이 되어 전혀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렘11:18-21, 28:1-4).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동족을 구해 달라는 기도를 그만 두라고 명령하십니다(렘7:16).
그렇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연유를 조금 더 살펴봅니다;
(1) 선민 유대인들은 100여년 전에 형제국가인 북조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을 끝까지 섬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진노로 앗수르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적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광경을 목격한 바가 있습니다(왕상12:28-33, 왕하17:21-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의 원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10지파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형식적인 율법생활을 하면서 현세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우상문화에 푹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처벌하시는 여호와의 공의의 원칙에 따라 선민 유대인들 역사 나라가 망하고 적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17:19-20, 렘7:12-15, 11:3-17). 그와 같은 조국의 멸망과 동족들의 고난의 운명이 여호와에 의하여 결정이 된 사실을 알게 되자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때부터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선민 유대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고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용하여 달라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3) 그 모습은 ①그 옛날 모세가 여호와의 진노로 전멸을 당하게 된 동족들을 구하기 위하여 시내 산과 가데스 바네아에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 중보의 기도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출32:10-14, 31-35, 민14:12-25). ②또한 선지자 사무엘이 여호와의 진노를 사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사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매어 달렸을 때 그를 슬퍼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린 사실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삼상15:30-35). ③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하시며(렘15:1) 다시는 예레미야에게 동족의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렘7:16).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장래일을 묻거든(렘15:2a)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답변하라고 지시하십니다;
(1) 첫째로, 구원을 얻을 기회가 사라지고 단지 다음 네 가지의 운명만이 선민 유대인들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첫째, 전쟁의 발발 전에 죽게 되는 자가 있습니다(렘15:2b). 예를 들면, 거짓선지자 하나냐가 그러합니다. 그는 주전 588년 10월 10일에 신바벨론제국과 유다 왕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는데(왕하25:1) 그 전에 7월달에 죽게 되는 것입니다(렘28:16-17).
2) 둘째, 유다 왕국의 전국의 성읍들이 신바벨론 군대에게 점령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항을 하던 유다 왕국의 병사들이 수없이 적의 칼날에 전사하고 성안의 장정들이 또 얼마나 적의 칼에 도륙이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렘15:2c).
3) 셋째, 적에게 성을 내어주지 아니하려고 예루살렘, 라기스, 아세가의 유대인들의 저항이 대단합니다(렘34:7). 그 성들이 신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포위를 당하여 고립이 오래가게 됩니다. 그러자 양식이 떨어지고 기근이 심하여 아사자(餓死者, 굶어서 죽는 사람)가 크게 발생하고 맙니다(렘15:2d).
4) 넷째, 유다 왕국이 망하고 나면 살아 남은 유대인들이 모두 전쟁포로가 되어 이방인의 땅으로 끌려가고 맙니다(렘15:2e).
(2) 둘째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따르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살아간 그 현세적인 죄악이 여호와 앞에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그들에게 임하게 되는 응징의 모습 네 가지로 다시 한번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렘15:3).
(3) 셋째로,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선민 유대인들이 나라가 망하고 온세상에 흩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습니다(렘15:4).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히스기야 왕의 이름이 먼저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앗수르제국 산헤립 황제의 군대의 침략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심으로 말미암아 기적적인 구원을 얻은 유다의 왕입니다(왕하19:35). 멸망을 당할 운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번 바꾸어 준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옛날 다윗대왕처럼 자신의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하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는 뜻입니다(왕하19:34, 삼하12:9-15). 그러나 그는 도리어 교만해져서 자신의 군사력으로 중동의 패권국 앗수르를 물리쳤다고 자랑하기에 바쁩니다(왕하20:12-21).
2) 둘째,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 왕은 역사상 가장 우상을 심하게 섬기고 포악한 왕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폭정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무죄한 자의 피가 흘러 넘치고 그것이 그 옛날 망한 아모리 족속의 경우보다 더욱 많습니다(왕하21:11-16, 창15:16).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의 손자인 요시야 왕의 성전청결운동과 종교개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므낫세 왕의 전철을 밟고 있는 유다 왕들의 실정으로 말미암아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듯이 유다 왕국을 가나안 땅에서 쓸어버리려고 결심하십니다(왕하21:11-15, 23:25-27).
3) 셋째, 유다 왕국이 망하고 나면 선민 유대인들이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고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렘15:4). 그것은 당장은 선민들이 겪고 있는 뼈아픈 고통이며 회한의 삶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온세상에 여호와의 말씀과 하나님신앙이 전파가 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인정하는 선민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선민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이 누구나 여호와신앙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제공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훗날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소위 ‘디아스포라’의 역사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렘15:1); 모세와 사무엘과 예레미야의 간구가 각각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두번이나 전멸시켜버리고 그의 자손만으로 새로운 선민을 만들겠다고 말씀하시는 여호와 앞에 그 말씀을 거두어 달라고 간구한 인물입니다(출32:9-14, 민14:11-20, 렘15:1a). 여호와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토록 진노하시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시내 산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인 사건입니다(출32:1-10). 그것은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십계명을 정면으로 어긴 것입니다(출20:3-6).
2) 또 하나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주겠다고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악평하고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이제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광야로 들어가서 애굽인들처럼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겠다고 떠들었기 때문입니다(민13:32-14:4).
(2)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걸어 놓고 여호와 앞에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줄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그들을 광야에서 전멸시켜버린다고 하시면 여호와의 이름과 역사의 섭리를 누가 경외할 것인가? 하는 요지의 중보 기도입니다(출32:11-14, 민14:13-20). 그 기도를 들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 생활 40년의 벌을 받은 후에 여호수아의 인도로 무사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그 땅을 차지하고 살게 된 것입니다.
(3) 사무엘은 사울을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삼상15:11, 렘15:1b). 사울 왕은 급하게 되면 율법에 따르지 아니하고 여호와께 제멋대로 제사를 드리고 전쟁에 나서는 왕이기 때문입니다(삼상13:9). 그는 여호와의 말씀보다 군사들의 말을 더 잘 듣고 있습니다(삼상13:8, 15:24). 전쟁의 승리가 여호와에게 달려 있는 것이(출17:9-16) 아니라 자신의 용맹함과 자신을 따르는 군사들의 충성심 그리고 지리적인 잇점을 선점하는 전략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그에 따라 여호와의 지시를 어기고 적의 재물을 전리품으로 챙겨서 부하들의 충성심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는 왕입니다(삼상15:9). 결국,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버리고 새로운 왕을 세우라고 선지자 사무엘에게 명령하십니다(삼상15:18-23, 26-28, 16:1). 그러나 사울 왕은 사무엘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범죄함을 인정하니 부디 한번의 기회를 더 달라고 합니다(삼상15:25, 30-31). 그러한 사울 왕의 모습을 보고서 사무엘이 슬퍼하고 있습니다(삼상15:35). 따라서 그는 사울 왕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린 것으로 보입니다(삼상15:11). 그에 따라 17세의 소년 다윗이 37세에 명실상부하게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왕이 될 때까지 20년 동안 사울의 왕가가 더 존속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삼하5:3, 5).
(4)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유다 말기의 선민 유대인들의 경우는 모세나 사무엘의 시대와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유다 왕국의 멸망을 막아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렘15:1c). 이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는 조국의 멸망과 동족들이 이방인의 땅에서 포로가 되어 고난을 당하는 것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가지 기도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의 자격을 상실하고 이방인의 땅에서 이방인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하면 현지인들과 함께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장은 유배의 삶이 70년만에 끝난다고 하는 작은 복음입니다(렘25:11-12, 스1:1-4). 그러나 먼 훗날을 생각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가게 된다고 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렘15: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을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15:2a);
1) 그 옛날 선지자 사무엘은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사울 왕에게 대언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삼상15:28-29). 마찬가지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민 유대인들의 나라의 멸망과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렘15:1).
2)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전해 들은 선민 유대인들이 이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그 옛날 사울 왕처럼 선지자에게 인간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았으니 부디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간구하여 달라는 것입니다(렘15:2a). 그러나 너무 늦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발생할 것임을 미리 아시고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다음과 같이 쐐기를 박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15:2a).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만을 대언할 따름입니다. 이제는 중보의 기도마저 불가능합니다(렘7:16).
(2)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렘15:2b); 선민 유대인들이 어떠한 여호와의 징벌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그 구체적인 모습을 다음 네 가지로 예언하십니다; ①첫째, 전쟁 전에 자연사하거나 질병으로 죽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참혹한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아니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②둘째, 적병의 칼에 맞아 죽는 것입니다. 군인의 경우에는 전사입니다. 민간인의 경우에는 피살입니다. ③셋째, 성에서 저항을 하다가 양식이 떨어져서 굶어 죽는 아사(餓死)입니다. ④넷째, 다행히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적병에 의하여 포로로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렘15:3);
(1) 여호와께서는 신바벨론제국의 원정군에 의하여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할 것인데 그 현장이 차마 눈뜨고는 보지 못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예언하십니다;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그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렘7:33-34). 그 내용이 세가지입니다; ①첫째, 예루살렘과 온 유다에 죽은 자의 시신이 즐비하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시신을 매장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들이 전부 포로가 되어 끌려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③셋째, 예루살렘과 전국의 성읍이 불에 타서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 주민이 사라져서 죽음의 땅으로 바뀌고 맙니다.
(2) 그 가운데 본문에서는 죽은 자의 시신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칼에 맞아 죽은 시신이 뒹굴고 있습니다. ②둘째, 개가 와서 시신을 찢어 먹고 있습니다. ③셋째, 공중의 새가 날아와서 시신을 쪼아 먹고 있습니다. ④넷째, 들짐승이 와서 시신을 먹으면서 허기를 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어서도 그 신체가 안전하게 굴속에 안장이 되거나 땅속에 매장이 되지를 못하고 시신마저 여호와의 징벌을 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넷째로,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렘15: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을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렘15:4a); 한 마디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하게 되는 이유는 히스기야 왕과 므낫세 왕의 행적에서 잘 알 수가 있다고 하는 구절입니다;
1)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신위적인 방법으로 예루살렘성을 구원하십니다. 하룻밤에 천사를 보내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의 군사 18만 5천명을 쳐죽인 것입니다(왕하19:35).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유다 왕국이 되살아나고 히스기야 왕이 통치를 계속하게 됩니다.
2) 그것은 여호와께서 창조주 하나님을 감히 멸시하고 있는 앗수르 군대를 쳐부수는 한편 그 옛날 다윗의 회개와 여호와신앙의 회복을 유다 왕들에게 기대하신 것입니다(왕하19:34). 그러나 히스기야 왕과 그의 후계자들이 정반대로 행동하고 맙니다. 히스기야 왕처럼 중동의 패권국 앗수르의 군대를 물리쳤다는 자랑과 자신들의 군사력을 과시하는데 바쁩니다(왕하20:12-21). 여호와의 도우심과 그 크신 영광을 이웃에게 전하지 아니한 것입니다(마12:39).
3) 더구나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 왕은 유다 왕국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우상을 심하게 섬기고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린 포악한 군주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십니다(왕하21:11-16). 므낫세의 손자인 요시야 왕이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 종교개혁에 나서지만 역부족입니다. 그가 급서하고 나자 후임 왕들이 히스기야와 므낫세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왕하23:25-27). 따라서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전쟁포로로 끌려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2)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렘15:4b);
1)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는 피조물인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사55:8-9, 롬11:33). 왜냐하면, 선민의 역사가 끝나자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의 시대가 시작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장이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렘15:4b)는 것입니다.
2)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신정국가를 다스리는 율법의 형태로 받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율법을 진심으로 지키지 아니하고 우상문화에 빠져버렸기에 그만 선민의 나라가 차례로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방인의 땅을 유랑하는 백성들이 되고 맙니다. 그로 말미암아 선민이 사라지고 모두가 이방인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참으로 공평한 세상이 도래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3) 첫째, 신정국가를 다스리는 율법과 같은 강제력을 지니는 법규정으로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겉으로 사람들 보기에 율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행동하면 스스로 의인이며 구원을 얻은 자로 착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비극입니다. 구원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여호와의 눈으로 보자면 그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명제가 선민의 나라의 멸망으로 이제 사라지게 됩니다(롬3:20).
4) 둘째,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래도 히브리정경을 지니고 있습니다(롬3:2). 여호와의 말씀을 경전으로 지니고 있기에 그것이 온세상에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을 통하여 이방인 지혜자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단2:24, 48, 스1:1-4, 7:12-26, 마2:1-2)). 그러한 측면에서 이방 땅에 흩어진 선민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입니다. 그리고 해외에 건설한 그들의 ‘회당’(會堂, synagogue)은 훗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최초의 기지역할을 하게 됩니다(행13:43, 14:1).
결론적으로, 흔히 사람은 죽어서 관 뚜껑을 덮어 보아야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역사적인 평가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말하자면, 선민 유대인들의 말로는 비참하며 그 평가는 혹독합니다. 그 시신이 매장이 되지를 못하고 들짐승과 날짐승의 먹이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마지막 선민인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징벌을 받아 시신이 되어서도 벌을 받고 있다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렘15:3).
그 반대의 경우를 복음서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족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십자가에서 처형이 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시신에 대하여 산헤드린 대 공회원 두 사람이 지극정성으로 향품 처리를 하여 부자의 묘실에 안장을 하도록 조치를 하십니다(요19:38-41, 사53:9).
성도들은 두가지 가운데 어느 쪽을 따라서 살아가야 할까요?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세상의 탐욕과 정욕대로 살아가고 마는 선민 유대인들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의 말로가 너무나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대속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부활과 영생을 확보하는 인생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호와께서 기억하시고 부활시켜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러한 일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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