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87강(렘15:10-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17. 04:37

예레미야 강해 제87(15:10-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816()

 

예레미야에 관한 예언, 패권국에 관한 예언, 선민 유대인에 관한 여호와의 예언은 각각 어떠한가?(15:10-14)

 

본문의 처음 두 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이 태어난 시대의 아픔과 자신의 운명적인 고난 그리고 선지자의 삶을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여호와의 은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예레미야 자신은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 전란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15:10a). 그리고 자신은 양 진영에 대하여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적군은 물론 동족으로부터도 저주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5:10b).

(2)  둘째로,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의 운명적인 고난에 대하여 달리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종이 선지자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며  여호와께서 주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15:11);

1)    첫째,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을 강하게 만드십니다.

2)    둘째,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3)    셋째, 원수들이 재앙과 환난을 만날 것이며 구원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의 종에게 기도를 부탁할 것입니다. 그 점은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발생한 일과 같습니다(20:7, 17-18).

그 다음에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첫째로,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북방에서 유다 왕국을 정복하고자 이방 강대국이 달려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그 강대국을 상대할 수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15:12).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국난을 수습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 강대한 나라의 군대를 쳐부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이 그렇게 처신하지를 않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가 아니라 힘이 없는 이방신상과 우상을 의지하여 국난을 극복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한 여호와신앙을 벗어난 잘못과 세상적인 죄악 때문에 다음 두가지 징벌을 역사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1)    첫째, 적에게 나라가 망하고 유다 왕국의 모든 보물들이 약탈을 당하여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말 것입니다(15:13). 그것은 히스기야 왕 때에 이미 예언이 된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왕하20:17).

2)    둘째, 전란에서 살아 남은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전쟁포로가 되어 이방 땅에 끌려가서 노예의 삶을 살게 되고 말 것입니다(15: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다투는 자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15:1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다투는 자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15:10a);

1)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모친이 그를 태어나게 한 그 시대가 참으로 그에게는 재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5:10a). 이 세상에서는 이웃나라 사이에 서로 분쟁하지 아니하고 우방으로 잘 지내고 있는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유다 왕국은 이웃나라와 사이가 좋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유일한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신정국가이며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한 유일한 민족이라고 하는 자랑이 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

2)    선민 유대인들은 이웃나라의 백성들을 이방인이라고 멸시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여호와를 모르고 제멋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야만인들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주변국의 백성들이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을 볼 때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입으로는 여호와를 섬기며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면서 그 속마음은 여호와보다는 우상을 좋아하며 특히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고나서 여사제들과 음란한 문화를 즐기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존경을 받는 신앙인들이라고 하겠습니까? 따라서 기회가 되면 한번 단단히 혼을 내주려고 벼르고 있는 것입니다.  

3)    그 가운데 신바벨론은 더욱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정복하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히스기야 왕 때에 사절을 보낸 바가 있는데 그때 예루살렘의 보물창고와 성전에서 많은 보화 및 금그릇과 은그릇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왕하20:13). 그렇게 신바벨론제국이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정복하고 그 보물을 전부 차지하기 위하여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시기에 예레미야가 태어나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대언하는 선지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4)    예레미야는 신바벨론제국이 유다 왕국을 노리고 있으며 여호와께서는 우상문화를 청산하지도 아니하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지 아니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신바벨론의 손에 망하도록 역사를 섭리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그러한 시대에 태어나서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다투는 자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15:10a)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5)    그런데 묘하게도 그 구절에서 예레미야의 놀라운 믿음의 한자락을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와 같은 전란의 시대를 살아가도록 그러한 시기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지 창조주 여호와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시대에 예레미야를 태어나게 하고 선지자 활동을 하도록 섭리하신 분은 그의 어머니가 아니고 창조주 여호와이십니다. 그러한 사실은 일찍이 선지서 이사야에서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44:1-2). 요컨대,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불경스러운 그러한 말을 일체 그의 입에 올리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15:10b);

1)    사람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분쟁의 요인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채권채무관계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채무자에게서 이자와 원금을 제때에 꼬박꼬박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채무자가 약속을 이행하지 아니하면 얼마나 돈을 받기 위하여 애를 쓰면서 때로는 상대방을 욕하고 저주하는지 모릅니다. 반면에 채무자는 채권자가 지독하다고 욕을 하고 있습니다.

2)    돈이 급해서 빌려갈 때에는 철석같이 제때에 이자와 원금을 갚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막상 갚아야 할 때가 닥치게 되면 급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가급적 천천히 그것도 갚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채권자가 갑자기 죽기라도 해서 자신의 채무가 자동적으로 탕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게 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과 동족 사이에서는 그러한 불편한 채권채무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5:10ba).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족들이 선지자 활동을 하고 있는 예레미야 자신을 미워하고 있습니다(15:10bb). 그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그에 대한 선처를 해달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더 깊이 묵상을 해보면 그것은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4)    여호와께서는 시내 산 앞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계십니다(19:4-5). 그들에게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19:6).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호와의 보호와 축복을 받는데 그치지 말고 그 축복을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나누어 주라고 하는 의무 조항입니다.

5)    그런데 그 의무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혀 실행하지를 않습니다(12:39).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과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서는 마치 채권채무관계와 같은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불협화음 사이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끼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처지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지 모릅니다.     

둘째로,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15:11);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15:11a);

1)    예레미야가 정직하게 여호와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대언하고 있으므로 선민 유대인들이 그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결코 듣기에 좋은 말이 아닙니다. 우상을 철거하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며 세상적인 탐심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서 사는 죄악된 삶을 여호와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라고 종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지 아니하면 선민의 특권이 사라지고 저주의 언약이 임하여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    더구나 살아 남은 유대인들이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노예와 같은 고난의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듣게 되는 동족들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배척하고 죽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러한 어려운 전란의 시대에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동시에 그렇게 힘들고 고달픈 선지자의 사명을 맡게 된 자신의 처지를 여호와 앞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3)    그에 대한 여호와의 첫번째 답변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15:11a). 그 의미는 한 마디로, 예레미야가 정직하게 선지자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는 그를 강하게 보호하는 한편 강력한 영적인 힘을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조국이 망하는 와중에서도 선지자 예레미야는 감옥에서 구출이 됩니다(39:11-14). 그리고 타의에 의하여 애굽에 있는 유대인 난민촌으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열방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게 됩니다(43:4-7, 44:1-51:64).  

(2)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15:11b); 두번째로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과 같은 것입니다(12:3).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복을 줄 것이며 그 복은 그가 가는 곳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흘러 넘치게 되는 구원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15:11b).

(3)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15:11c);

1)    이방 땅에서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이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 선지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강력하게 보호하여 주실까요? 창세기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경우를 살펴보면, 당시 블레셋의 황제인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다음과 같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20:7).

2)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처인 사라를 잘못 아브라함의 여동생인 줄 알고서 궁으로 데리고 옵니다(20:2). 그 때문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왕궁의 모든 여인들의 태를 닫아 버립니다(20:18). 큰 재앙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 재앙을 면하자면 여호와의 선지자인 아브라함의 죄 사함의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20:7). 그러므로 블레셋의 황제인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기도를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20:14-17).

3)    유사한 경우를 욥기 제42장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욥의 세 친구에게 하나님의 제사장인 욥을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속죄의 제사 및 중보의 기도를 받으라고 지시하십니다”(42:7-8). 욥이 자신을 찾아온 세 친구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와 죄 사함의 기도를 여호와께 드립니다(42:9-10). 그때 욥의 신원이 그 자리에서 회복이 되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42:10-13).

4)    따라서 고달픈 삶을 선지자가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정직하게 대언하게 되면 세상사람들이 여호와의 진노를 받지 않기 위하여 선지자를 찾아와서 중보의 기도를 부탁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15:11c). 그것이 이 세상에 여호와의 죄 사함과 구원의 복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나누어 주게 되는 성도들의 특권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누가 능히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15:12-1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누가 능히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15:12-13a);

1)    가나안 땅의 북방에서 강한 철이 생산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고대시대 흑해연안에서 놋과 철을 사용하여 먼저 무기를 만들어 남하를 하는 민족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초의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북방에서 쳐들어온 의문의 족속에게 멸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청동기로 병장기를 만드는 기술에 있어서 수메르인들보다 북방에서 쳐들어 온 민족이 더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 정복자들은 북동쪽의 카스피해가 아니라 복서쪽인 흑해 연안에서 쳐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2)    그 다음에는 선진 철제무기를 개발한 힛타이트 족속이 흑해지역에서부터 남하하여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 중의 한 갈래인 헷 족속이 주전 21세기에 가나안 땅으로 쳐들어와서 아브라함 시대에 헤브론 일대를 차지하게 됩니다. 당시 가나안 땅의 가뭄을 피하여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성을 헤브론에 두고서(14:13, 20:1) 블레셋의 평야지대 그랄 땅에 이주하여 오래 산 다음에 브엘세바를 거쳐서(21:14, 31)  다시 헤브론으로 들어오게 됩니다(23:1-2). 그때에는 그 전의 아모리 족속이 선진 철제무기를 가진 헷 족속에게 패하여 헤브론 땅을 빼앗긴 다음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사라의 장지를 구하기 위하여 많은 돈을 헷 족속에게 주고서 막벨라 굴을 사게 됩니다(23:16-20).

3)    주전 14세기가 되면 여호수아 시대에 유다 지파의 수령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85세의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이끌고 여호와의 약속을 믿고서 헤브론 일대를 얻고자 남하를 합니다(14:6-13). 그곳에는 선진 철제무기를 가진 거인족 헷 족속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습니다(13:32-33).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의 군대는 연전연승을 하여 그 땅을 전부 차지하게 됩니다(14:14-15). 어째서 노령인 갈렙과 힘이 약한 유다 지파의 군대가 그러한 놀라운 승리를 얻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선진 무기체계를 갖춘 거인 족 아낙 자손을 여호와께서는 얼마든지 물리칠 수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깃발 아래 믿음으로 전투에 나서는 자는 갈렙처럼 승리를 얻게 됩니다(17:15-16).

4)    그와 같은 여호와 닛시의 믿음이 없이 이방신상과 우상을 의지하여 국난을 극복하고자 획책하는 자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린 죄인들입니다. 그들이 여호와가 아니라 우상을 택하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여호와를 자신들의 인생과 역사의 주인으로 모시고 싶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한 세상을 여호와의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 세상의 주인으로 제마음대로 살고 싶다고 하는 생각이 교만으로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신상과 우상을 섬기는 문화가 만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이시므로 선민들이 기도를 하게 되면 일방적으로 그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관계 당사자의 경우를 모두 살펴서 그 생명을 전부 살리는 방향으로 역사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소원을 아뢴 당사자에게 손해와 희생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방신상과 우상을 섬기는 경우에는 정반대입니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만든 피조물이므로 절대로 모든 관계자의 처지와 형편을 살피지 않습니다. 그저 제물을 바치고 있는 당사자의 소원만 일방적으로 들어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6)    그러므로 개인적인 탐욕과 정욕을 소원성취하는데 있어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신앙으로 보자면 불신앙이며 죄인의 모습이지만 그 죄악의 열매는 꿀과 같이 단 것입니다. 그와 같이 달콤한 우상문화에 젖어서 살아오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므로 신바벨론과의 전쟁을 앞두고서 여전히 여호와신앙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레미야 시대 유다 왕국의 죄악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누가 능히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15:12-13a)라는 표현 그대로  백전백패를 당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2)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15:13b-14);

1)    선민 유대인들은 히스기야 왕 때에 벌서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이방신상과 우상을 탐욕과 정욕에 이끌리어 섬긴 죄로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왕하18:13-25). 그러나 그 때에는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이 너무나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약소국의 별 볼일이 없는 신으로 경멸하였기에 여호와의 노여움을 사서 패전을 하고 맙니다(왕하18:22-25, 19:10-19, 32-33).

2)    여호와께서 사자를 보내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산헤립의 군대 185천명을 도륙하였기 때문입니다(왕하19:35). 그 옛날 여호와의 계명을 어기고 죄를 범한 다윗대왕이 남은 인생을 철저하게 회개하는 심정으로 살아간 그 본을 받으라는 뜻으로 히스기야 왕의 유다 왕국을 살려주었더니(왕하19:34) 그 다음에 히스기야가 하는 행실이 참으로 문제입니다(왕하20:12-15).

3)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그 도우심을 전혀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영광과 유대 왕국의 강성함만을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예언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왕하20:17-18).

4)    회개할 줄을 모르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께서는 훗날 두가지의 강한 징벌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①하나는, 유다 왕국의 보물이 전부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다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신바벨론의 황제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보물을 모두 전리품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쓸 만한 백성들을 모두 전쟁포로로 끌고가서 종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가 예언 그대로 실제로 임하게 됩니다(15:13b-14). 주전 701년 히스기야 왕 때로부터 115년이 지난 주전 586년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대가 그러합니다.

결론적으로, 두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는, 선지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동족들의 환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고달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탐욕을 쫓아 우상을 섬기며 정욕대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사람들에게 부디 회개하고서 여호와 앞에서 그 종으로 살아가라고 외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세상사람들의 종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으니 참으로 좋은 대접을 받기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정직하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들에게는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내용이 강력하게 보호하는 한편 영적인 힘을 공급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세상의 패권국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 앞에서는 부지깽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선민 유대인들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신바벨론제국의 군대를 상대하려고 합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제외하고서는 이 세상에서 어느 나라도 강철과 같은 패권국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2:44-45). 그런데 선민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방신상과 우상을 의지하여 패권국을 물리치고자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그 결과 마지막 선민의 나라가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선민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땅에서 고난의 세월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참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 그리고 주님처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이 세상을 이겨 나가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놀라운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