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의 골자 제6강(롬6:1-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년 5월 24일(목)
1. 로마서 제6장의 주제가 무엇인가? 그리고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예수님의 세례의 의미가 무엇이며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가?(롬6:1-4)
(1) 로마서 제6장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자력(自力)구원의 법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얻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1) 사람들 앞에서 율법생활을 잘 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피조물인 사람들의 눈만 의식하고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눈을 외면한 것임.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은 불이익을 얻게 됨;
2) 첫째, 그와 같은 외식적(外飾的,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는)인 율법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피조물인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함이 곧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가지고 올 수가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임. 그런데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 왜냐하면,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존재하시고 스스로 판단하시는 분이시지 사람들의 생각이나 평가에 지배를 받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임(출3:14).
3) 둘째, 사람들이 인정하고 칭찬을 한다고 하여 그것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님. 왜냐하면 칭찬하는 그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결코 영생의 구원을 줄 수가 없기 때문임. 애초부터 영생의 구원이란 창조주의 선물이지 사람들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임.
4) 셋째,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외식적인 율법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이 여전히 자력구원의 법을 믿고 있는 죄의 종이라고 보고 있음. 그들은 구원이란 오로지 다음과 같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자들인 것임; ①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여호와의 종에게 주어지는 것임(롬6:20-22). ②여호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임(롬6:16). ③사람들의 이기적인 정의가 아니라 창조주의 자기 희생적인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임(롬6:17-18).
5) 넷째, 바리새인들이 모르고 있는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와 선물에 대하여 정확하게 자신의 공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로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 따라서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들처럼 외식적인 신앙생활 곧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죄의 종으로 살지를 말고 부디 예수님의 제자답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믿음생활을 하여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그 영생구원의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으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임.
(2)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예수님의 세례의 의미가 무엇이며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가?(롬6:1-4)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1-4);
2) 첫째,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생활을 영위하라고 말하고 있음.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으며 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직도 죄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임.
3)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의 대속의 제사의 효과를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세례로서 적용시켜 주신다고 하는 것임. 예수님께서 회개하는 모든 자들을 살리기 위하여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게 되면 이제는 죄에 대하여 죽은 것으로 간주를 해주시는 것임.
4) 셋째,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죽음의 사망에 계속 둘 수가 없는 것임. 따라서 예수님을 3일만에 음부의 세계에서 구원하여 영생의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셨듯이 성도들에게도 부활의 날이 임하게 되는 것임(고전15:20-24). 당장은 남은 인생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시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복음사역의 일꾼으로 일하게 되는 것임.
2. 주님과 성도의 연합의 의미가 무엇이며 성도가 죽든지 살든지 그 연합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가?(롬6:5-8) 그리고 주님을 모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는 죄의 문제와 사망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롬6:9-11)
(1) 주님과 성도의 연합의 의미가 무엇인가?(롬6:5-6)
1)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like this in his death, NIV)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our old self, NIV)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5-6); 조금 풀이를 해보고자 함;
2) 첫째, 예수님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죽는 삶의 모습을 지니지를 못하게 되면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할 수가 없다는 것임(롬6:5). 그 말은 예수님처럼 대속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주님께서 얻으신 그 부활을 자신도 얻을 수가 있다는 의미임. 따라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임;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0-12).
3)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에 같은 모양으로 못박아버려야만 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임.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옛사람’(our old self)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죄에 물들어 있는 육신으로 보고 있음. 그것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죽음으로 처리함으로써 성도들이 다시는 죄의 종 노릇하는 인생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임. 그 장면을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음; ①“제9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27:46), 육신에 죄를 정하시고 그 육신의 몸을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그 육신에 계속 깃들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자아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음. ②“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19:30).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 죄의 몸이 완전히 죽음으로 결별이 되었기에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있는 것임.
4) 셋째,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답게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되면 그러한 다 이루었다고 하는 순간을 육신의 죽음의 순간에 맞이하게 될 것임. 그러나 문제는 그때까지 죄의 종 노릇을 하고 있는 육신과 함께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임. 성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죄의 몸을 이길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로마서 제7장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하고 있음(롬7:21-25).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님의 능력과 그 도우심이 절실한 것임. 그 도우심을 받아 거듭난 영적인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의 신앙고백이 다음과 같다는 사도 바울의 간증임;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2) 성도가 죽든지 살든지 그 연합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가?(롬6:7-8)
1)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6:7-8);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살든지 죽든지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확실한 것임.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며 그 믿음에 확신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 진리의 성령님의 역사인 것임. 좀더 논리적으로 풀어서 설명을 해보고자 함;
2) 첫째, 아무나 자신의 육신이 죽고 나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님. 오직 예수님의 경우가 그러한 것임.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육신을 속죄양으로 바치는 그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고 있는 것임.
3) 둘째,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수님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같은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임. 그러나 예수님과 성도들의 중요한 한가지 차이는 예수님께는 그러한 대속의 삶이 가능하지만 성도들은 자신들의 육신에게 져서 그러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임(롬7:24-25).
5) 셋째,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구원을 얻는 삶이 성도에게 가능해지는 것일까요? 그 방법이 ①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한다고 하는 사실을 성도들이 믿는 것이며, ②그 믿음대로 거듭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보혜사의 능력인 것임(요14:16-20, 눅24:49, 행1:8). 따라서 사도 바울이 이미 제시한 바와 같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임.
6)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성도들이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예수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인데 그 사실이 복음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음;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4:1-2),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 시험과 유혹을 성도 혼자서 받게 되면 실패를 하게 됨. 그러므로 반드시 성령님과 함께 받아야만 하는 것임.
(3) 주님을 모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는 죄의 문제와 사망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롬6:9-11)
1)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9-11);
2) 첫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만 한다는 것임.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심;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3) 참고로,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①이 세상에 영생의 구원을 주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②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임. ③그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성도들이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것임.
4) 둘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거듭난 인생의 주인인 주님으로 모시고 그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는 예수님의 그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를 얻고 있음.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10-11)라고 말하고 있음;
5) 참고로, 그 뜻은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그렇게 인정을 하시고 간주하셨다고 하는 것임.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벌써 자신의 죄가 처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자신의 부활이 진리라고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임. 반대로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하게 되면 그러한 구원과 영생의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임.
3. 주님을 모시고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마땅히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자신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며 죄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은혜의 법을 따라야만 하는데 그렇게 소원하지만 그렇게 되지가 아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롬6:12-14, 7:21-24)
(1) 주님을 모시고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마땅히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자신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며 죄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은혜의 법을 따라야만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롬6:12-14)
1)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私慾, 개인적인 욕심)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6:12-14);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음;
2) 첫째,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개인의 육신적인 욕심을 따르는 것임(롬6:12). 그렇게 죄가 장성하게 되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임(약1:15).
3)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희생을 보고서 그것이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유일한 제사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은 성도들은 회개하는 심정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임. 그 새로운 인생은 더 이상 개인적인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공의로운 인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임(롬6:13).
4) 셋째, 성도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면 더 이상 육신의 죄가 지배하지를 못하게 된다는 사도 바울의 설명임(롬6:14).
(2) 그렇게 소원하지만 그렇게 되지가 아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롬7:21-24)
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1-24);
2) 첫째, 성도는 아직 완전한 의인이 아니며 온전히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 그 이유는 여전히 사욕을 따르고 있는 죄의 육신을 가지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임.
3) 둘째, 성도가 죄의 육신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의 영이 또다른 보혜사로 임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시게 되어 있지만 그러한 역사가 발생하자면 먼저 성도가 간구를 하여야만 하는 것임(눅24:49, 요14:16-20).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은 그 도우심을 구하는 자에게 영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아무에게나 강제적으로 함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임. 그와 같은 이치 때문에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어 달라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임(눅24:49, 행1:8).
4) 셋째, 성도들이 대속의 주님과 연합하듯이 그렇게 성령님과 연합하여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면 다음과 같은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가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음;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6-18).
5) 넷째, 사도 요한도 그의 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음;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20-22); 조금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것임; ①스스로 마음의 문을 주님께 열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하는 것이 성도들의 믿음생활임. ②강제적으로 주님께서 성도들의 인생에 주인이 되시거나 성령님께서 강압적으로 성도들의 삶을 지배하시지는 아니하시는 것임. ③그것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최대한의 대우이며 대접인 것임. ④그렇게 성도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맞아 들이고 성령님을 영적인 삶의 선생으로 맞아 들인 것이기에 부활과 영생이라고 하는 그 놀라운 열매와 상급을 당사자가 떳떳하게 누리게 되는 것임.
4. 죄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의의 종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여 주시는가?(롬6:15-19)
(1) 사람들이 인생 가운데 누구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째서 그토록 중요한가?
1) 100년 안팎의 인생을 누구나 이 세상에서 살다가 향년을 맞이하고 있음. 그런데 그 기간이 참으로 중요한 이유는 영생이냐? 아니면 영벌이냐? 하는 것이 그 인생을 사는 동안에 결판이 나고 말기 때문임.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음;
2) 첫째, 사람들은 현세만 육신을 가지고 살아갈 뿐 내세라고 하는 미래에는 자신의 삶이 없다고 사고하는 현세주의자들은 현세의 종이 되어 살아가고 있음. 그 열매는 이기적으로 최대한의 쾌락을 누리고 현세를 살다가 마침내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고 마는 것임.
3) 둘째, 현세에서는 육신을 가지고 육신적인 삶을 살아가고 죽은 다음에는 육신을 벗어버리고 그 영혼이 구원을 받아 내세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어 있다고 영과 육을 완전히 구별하여 이원론적으로 사고하는 자들이 있음. 그들이 일종의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 신봉자들임. 그 가운데 특히 ‘니골라(Nicolas) 당’과 같은 쾌락주의자들이 있음. 그들의 주장은 육신이란 이 세상에서만 사용하고 완전히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 어떠한 쾌락이나 이기적인 욕심을 추구하더라도 자신의 영혼의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임. 그것은 “성도들은 거듭난 인생을 의의 병사로 살아가야만 한다”(롬6:13의역)는 취지의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것임.
4) 셋째,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한평생 육신을 입고서 복음사역을 하시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셨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한 마디로,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그 기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를 잘 말해주고 있음. 그와 같은 입장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자신의 거듭난 육신의 유용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지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1-24). 복음사역과 만민구원의 일도 육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나라에서 큰 상급을 얻게 되는 것임(마28:18-20, 눅22:28-30).
(2) 죄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의의 종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여 주시는가?(롬6:15-19)
1)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6:15-19);
2) 첫째, 인생을 사는 동안 양자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임; ①하나는 죄의 종으로 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임. ②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법을 이루는 그리스도처럼 순종의 삶을 선택하여 살다가 영생을 얻는 것임(롬6:16).
3)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그 제자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본래 종이었던 사람이 죄로부터 해방이 되어 이제는 의의 종이 되어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는 것임(롬6:17-18).
4) 셋째, 이제는 성도들이 그 소속이 달라졌으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임. 그러므로 육신의 사욕을 이길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는 인생을 항상 살아가야만 하는 것임(롬6:15, 19). 그렇게 살아가지 아니하는 자는 여전히 죄의 종인 것임.
5. 죄의 종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는 대신에 그 열매가 없으며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되돌아보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롬6:20-21)
(1)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스러웠느니라”(롬6:20)는 사도 바울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1) 첫째, ‘죄의 종’이 무엇일까요? 인생은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그 종이 된다고 사도 바울이 진작에 말하고 있음(롬6:16). 그러므로 ‘죄의 종’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육신적인 사욕을 쫓아서 남을 해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임. 그렇게 육신적인 욕심을 따라 한평생을 살아가게 되면 육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에 그 영혼도 영벌이라고 하는 사망의 벌을 받고 마는 것임(요5:29, 마25:40-41).
2) 둘째, ‘의’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이기적으로 부르짖고 있는 주장이 있는데 그것이 자신들의 법정에서 ‘정의’(正義, justice)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인간의 정의는 타 집단에 대해서는 정의가 아니라 부정이 되고 마는 것임. 그에 따라 서로가 정의의 전쟁을 수행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것임.
3) 그와 달리 여기서의 ‘의’는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를 말하고 있음. 그것은 창조주의 시각에서 모든 피조물을 공평하게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것임. 인간은 시공간과 육신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수가 없음. 그러므로 예수님의 경우에도 또한 성도들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그러한 공의의 실천이 가능한 것임.
4) 셋째, 어떠한 ‘자유’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인간이 육신적인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모를 때에는 자신들의 집단의 정의가 곧 하나님의 의로움인 줄로만 알고서 제멋대로 자유스럽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삿21:25).
5) 그러나 선지서와 성문서에서는 그것이 아니라 훗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음(욥19:25-27, 시110:1, 사11:1-5). 그리고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역사하시게 되면 모두가 선지자가 되고 하나님의 공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될 것이라고도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임(민11:29, 사48:16, 욜2:28). 따라서 정의에 따른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은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만 하는 것임.
(2) 죄의 종의 열매가 사망인 줄 아는 것과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성도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롬6:21)
1) 첫째, 죄의 종으로 살게 되면 그 인생의 열매가 사망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육신적인 탐욕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극임. 그러한 비극을 맛보고 마는 자들은 자신들의 힘과 지혜로 육신의 사욕을 다스려보려고 몸부림을 쳐보았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기 때문임.
2) 둘째, 죄의 종의 열매가 사망인 줄 알고서 그러한 육신적인 탐욕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심히 부끄러워하면서 솔직하게 도움을 구하는 성도들이 있음.
3) 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음.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눈물로써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임. 그러한 성도에게는 육신과 이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임. 그것이 이름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의 삶의 모습인 것임(마16:24).
6.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살아가면 성도들이 죄로부터 해방이 되고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게 되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고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가 있는가?(롬6:22-23)
(1)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의화, 성화, 영화에 대하여(롬6:22);
1)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6:22);
2) 첫째,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칭의의 은혜 곧 ‘의화’(義化, justification)가 다음과 같이 묘사가 되고 있음;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롬6:22a); 사람들이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대신 희생이 되셨다는 사실을 알고서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동시에 얻게 됨. 그러므로 “죄로부터 해방’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도들이 얻고 있는 죄 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 곧 ‘의화’를 말하고 있는 것임.
3) 둘째, ‘성화’(聖化, sanctification)에 대한 묘사가 다음과 같음;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롬6:22b); 주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종이 되어 경건하게 살아가지 아니하게 되면 결코 성화의 열매를 얻지 못하게 된다고 하는 의미임.
4) 셋째, ‘영화’(靈化, glorification)의 단계에 대한 묘사가 다음과 같음;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6:22c); 자신의 성화를 이루며 복음사역자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면 향년을 맞이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임. 그것이 영화의 단계임.
(2) 성도들은 그 신분이 이 세상의 종에서부터 누구의 종으로 분류가 되고 있는가?(롬6:23)
1)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이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성도라고 하더라도 육신적인 사욕에 젖어서 살게 되면 죄의 종이 되고 사망에 이르게 되고 마는 것임(롬6:23a, 약1:15). 그와 달리 성도가 주님 안에서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예배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영생을 얻게 됨(롬6:23b, 12:1-2, 요4:23-24). 그 점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개념적으로 풀이하고 있음;
2) 첫째,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라는 것임; 창세기 제4-5장을 보면, 아담의 형상을 물려 받은 셋이(창5:3) 여호와 신앙을 아들에게 전하고 있음. 그 내용이 아들의 이름을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에노스’라고 짓고서 부자가 모두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영생의 구원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는 것임(창4:25-26).
3) 그리고 믿음의 조상이라고 사도 바울이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도(롬4:16) 창세기 제21장을 보면 브올세바에서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간절하게 부르고 있음(창21:33). 그 이유는 인간이 줄 수가 없는 그 영생이라고 하는 선물을 창조주 여호와의 은혜로 얻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임.
4) 둘째,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그 영생을 얻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임; 예수님의 증거가 다음과 같음;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3:13).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 영생의 천국에 올라간 자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 뿐이라는 증언인 것임. 구체적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여 영생의 몸을 입고 그대로 승천하신 분은 예수님이 유일하신 것임(눅24:44-48, 51).
5) 셋째,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이 되어 주님을 모시고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게 되면 주님께서 얻으신 그 부활과 영생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임. 사도 바울이 그러한 복음의 깊은 뜻을 깨닫고서 자신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감으로써 궁극적으로 주님의 부활과 영생을 얻고자 하는 것임;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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