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의 골자 제7강(롬7:1-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16. 00:07

로마서 강의 골자 제7(7:1-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531()

 

1.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는 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 율법에 따라 판결을 하게 되면 어째서 죄인이 되고 마는가?(7:1)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율법이 아니라 무엇으로 심판의 기준을 삼아야만 하는가?(7:2) 살아 생전에 남은 인생을 죄 사함 받고 의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장치를 마련하고 계시는가?(7:3-4)

(1)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는 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 율법에 따라 판결을 하게 되면 어째서 모두 죄인이 되고 마는가?(7:1)

1)    첫째,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임. 그 사실을 지적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음;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heaven, 영생의 천국)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3:13).

2)    둘째,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보다 어둠(불법, 하나님의 눈을 속임, 죄악된 삶 등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9). 그것을 사도 바울은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벌써 말하고 있음;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9-12).

3)    셋째, 본문의 내용이 다음과 같음;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율법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과 로마법을 알고 있는 로마인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7:1); 살아 생전에는 사람이 율법을 잘 지키는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심판관이 사람임. 그러나 삶을 끝내고 하나님의 법정에 서게 되면 그때는 사람이 율법을 잘 지키는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심판관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는 것임. 그러므로 육신 뿐만 아니라 영적인 삶까지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음.

4)    넷째, 쉽게 달리 말하자면 단순하게 사람의 육신이 죽는 것으로 죄가 끝나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 왜냐하면, 사람의 육신과 영이 모두 죄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임. 따라서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자면 ①죄와 연합하고 있는 육신적인 삶이 속죄의 제사로 끝나고 ②이제는 마음속의 죄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게 청산이 되어 있다고 하는 증거가 필요한 것임.

(2)  율법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선전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어째서 죄인들인가?

1)    첫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 율법을 잘 지키게 되면 살아 생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음. 율법을 잘 지키고 신앙생활을 잘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으며 백성들의 존경까지 받게 되며 종교적으로 지도자 노릇까지 할 수가 있음.

2)    둘째, 그러나 삶을 마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면 그때는 그러한 외식적인 율법생활이 아무 효과가 없게 됨. 왜냐하면, 생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신앙 양심에 비추어 율법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실이 그 자리에서 들통이 나고 말기 때문임.

3)    셋째, 육신적인 삶을 규제하는 것이 율법인 줄로만 알고서 사람들의 눈앞에서만 율법생활을 영위하던 가식적인 신앙생활이 예수님께서 그 잘못을 지적하신 때부터는 정죄가 되고 만 것임. 따라서 그때부터는 마음에 할례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눈앞에서 율법을 똑바로 지켜야만 하는 것임.

4)    넷째, 그렇지만 아직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항변할 수가 있음. 그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으며 성도들의 영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을 보내어 주신 것임(24:49, 14:16-17, 1:8,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라고 하는 진리를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음.

5)    다섯째, 그때부터 죄인된 육신의 삶이 끝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도가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간주가 되고 있는 것임(7:1). 그러한 사실을 사도 바울이 벌써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음;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6:22).

(3)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율법이 아니라 무엇으로 심판의 기준을 삼아야만 하는가?(7:2)

1)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7:2); 사도 바울은 혼인법에 의하여 부부관계가 지속이 되는 것은 살아생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 남편이 죽게 되면 부인은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으며 결혼관계도 깨어지는 것임. 마찬가지로 사람들 앞에서만 율법생활을 잘하면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던 바리새인들의 법도 사람들이 죽고 그 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가 없게 되면 아무 효력이 없는 것임. 조금 설명을 더해보면 다음과 같음;

2)    첫째, 외식적인 바리새인들의 율법생활은 자신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을 받고 따르게 되는 모든 자를 지옥에 보내게 되는 큰 죄악이라는 예수님의 지적임;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23:13).

3)    둘째,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떠나고자 하면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인이라고 주장하던 육신적인 삶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부디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고 간구를 해야만 하는 것임.

4)    셋째, 그렇게 회개하는 자들을 육신적인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이제는 영적인 삶에 대해서는 산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두가지 은혜가 임하고 있음; ①하나는 대속자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제사를 의지하도록 해주신 것임. ②또 하나는 하나님의 영을 성도들에게 임재하게 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임.

5)    넷째,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성도는 육신의 법과의 결혼관계가 끝나고 이제는 하나님의 영과 결혼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임(7:2).

(4)  살아 생전에 남은 인생을 죄 사함 받고 의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장치를 마련하고 계시는가?(7:3-4)

1)    사람들이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율법을 모두 지키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되면 그 속이 죄악에 이미 물들어 있기 때문임. 그러므로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의 기준이 아니라 다른 기준이 필요함. , 그 마음속의 죄악을 청산했다고 하는 증거가 필요한 것임(3:20-22). 그 증거가 두가지인데 ①하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이며 ②또 하나는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인 것임;

2)    첫째,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여 성도들과 함께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그것은 마치 육신적인 삶을 지배하던 이 세상 죄악과의 결혼관계가 끝나고 이제는 성도들이 성령님과 영적인 결혼관계를 새로이 시작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고 있음. 그와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말이 다음과 같음;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7:3);

3)    둘째, 성도의 육신을 지배하던 남편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이제 성도는 누구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음;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7:4). 이제는 성도들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대속자 그리스도를 남은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종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적인 삶의 모습을 본받는 제자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임.

 

2.    남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육신적인 결혼관계에서 벗어난 여자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듯이 사도 바울은 대속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육신적인 죄의 종에서 벗어난 성도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7:5-6)

(1)  육신적인 삶의 특징이 무엇인가?(7:5)

1)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7:5);

2)    첫째, 육신적인 삶의 특징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지 아니한다는 것임. 그러므로 하나님은 상관없이 사람들의 육신적인 눈만 속이면 되는 것임. 그에 따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 의롭고 선한 척 행동을 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어두운 곳에서는 탐욕적인 삶, 정욕적인 삶을 제멋대로 영위하는 것임. 그것이 이른바 외식적인 율법생활이 가지고 오는 엄청난 죄악인 것임.

3)    둘째, 그와 같은 육신적인 삶에 탐닉하게 되면 신앙 양심이 죽게 되고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고 마는 것임. 그것은 육신만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을 뿐 영적으로는 죽은 것임(11:31-32, 7:4, 하란에 60년간 머물며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족장 데라의 남은 삶이 죽은 것이라고 하는 스데반의 영적인 지적임). , 육신적인 죄악이 계속됨으로 말미암아 영생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끝나버린 상태이므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임(1:15).

(2)  남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육신적인 결혼관계에서 벗어난 여자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듯이 사도 바울은 대속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육신적인 죄의 종에서 벗어난 성도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7:6)

1)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7:6); 다음과 같이 사도 바울이 뛰어난 설명을 하고 있음;

2)    첫째, 바리새인들이며 율법선생인 랍비들이 백성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영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만을 의식하는 육신적인 율법생활에 불과하다는 것임. 그러므로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서 율법생활이란 그렇게 외식적이며 세속적으로 행하면 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임. 그것이 백성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율법적인 굴레인 것임(7:6a).

3)    둘째, 그와 같은 겉치레에 불과한 가식적인 율법생활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고 예수님께서 지적하심(19:6-9, 23:13). 그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이제는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영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임.

4)    셋째,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주님처럼 복음사역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7:6b) 두가지가 필요함; ①하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희생을 믿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임. 그것으로 하나님의 죄 사함과 칭의를 받고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임. ②또 하나는 하나님의 영의 임재로 성령님과 함께 남은 인생을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임. 그와 같은 영적인 삶에 소홀하게 되면 또 다시 틈을 보아 육신적인 삶이 들어오게 되는 것임(7:6c).

 

3.    율법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죄가 드러났으니 이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받고 의인이 된 성도들이 어떻게 육신을 이기며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가?(7:24-25)

(1)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7:24);

1)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2)    첫째, “곤고한 사람이라는 말은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7:24a); ①하나는 사도 바울 자신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자 하며 겉사람인 육신은 탐욕과 정욕에 따른 욕망을 이루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으므로 그 사이에서 매우 곤혹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자신의 신세 한탄임. ②또 하나는 결국 영적인 능력보다는 육적인 힘이 더욱 강하여 죄의 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현실을 말하고 있는 신앙적인 고백인 것임.

3)    둘째, 사도 바울이 정직하게 자신 자신을 들여다보니 율법선생인 랍비로 오랜 세월 백성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킨 자신이지만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율법을 온전하게 지켰다고 하는 증거가 없다는 것임. 마음속의 영적인 선한 욕구가 항상 육체적인 탐욕과 정욕의 욕구 앞에 맥을 쓰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으니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도저히 설 수가 없다는 것임. 그러므로 사람인 자신의 능력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창조적인 특단의 조치를 간구한다는 일종의 기도임(7:24b). 

4)    셋째, 사망의 몸에서 사도 바울을 건져낸다고 하는 것은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임(7:24b).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능력을 시사하고 있는 것임.

(2)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7:25);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

2)    첫째, 현실적으로 사도 바울은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지만 죄의 법을 따르고 있는 육신의 힘이 워낙 강하여 자신의 인간적인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자임을 이미 고백하였음(7:21-24, 25b).

3)    둘째,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그 영적인 승리의 복음을 가지고 사도 바울의 마음속 믿음을 강하게 하고 영적인 능력을 강하게 만들어 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임(7:25a).

4)    셋째,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은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마음의 욕구와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육신적인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것임.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대속의 은혜와 영적인 능력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는 실패가 아니라 승리를 얻고 있다는 간증인 것임(7:25).

 

4.    사도 바울이 율법과 계명을 말하고 있는데 율법과 계명과의 관계가 무엇인가?(7:7-8) 율법의 정신을 십계명이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으로 풀이하고 계시는데(12:30-31) 역사적으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사랑의 계명만 강조하면서 이웃사랑을 하지 아니하는 자신들의 율법위반의 죄를 어떻게 감추고 살았는가?(7:8, 11) 그에 대한 사도 바울의 지적은 어떠한가?(7:9-10)

(1)  사도 바울이 율법과 계명을 말하고 있는데 율법과 계명과의 관계가 무엇인가?(7:7-8)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7:7-8); 참으로 풀이하기 어려운 문장임. 그러나 굳이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음;

2)    첫째, 율법은 자신의 마음속과 행동을 모두 비추어 볼 수 있는 거룩한 거울과 같다는 것임(7:7). 율법의 취지가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의 실천이며 생명을 모두 돌보고 살리고자 하는 생명사랑에 있음. 그러므로 그 취지에 비추어 보게 되면 그것을 행하고 싶어하는 마음속의 신앙 양심과 그것을 버리고 자신의 육신적인 이익과 정욕을 도모하고자 하는 행동 사이의 괴리를 똑똑하게 볼 수가 있음. 그와 같은 맥락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닫게 되는 것임(7:7). 그것이 율법의 거룩한 기능인 것임.

3)    둘째, 율법에 비추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두가지의 선택이 다가오게 됨; ①하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서 율법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임. ②또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율법을 지키는 소위 세속적인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세상의 종교적인 구원을 얻고자 한다는 것임. 불행하게도 예수님 당시 유대교의 랍비들과 백성들이 추구한 것이 후자임(23).

(2)  율법의 정신을 십계명이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으로 풀이하고 계시는데(12:30-31) 역사적으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사랑의 계명만 강조하면서 이웃사랑을 하지 아니하는 자신들의 율법위반의 죄를 어떻게 감추고 살았는가?(7:8, 11)

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7:11).

2)    계명이란 출애굽기 제20장에 실려 있는 십계명이 그 기본인데 그것은 4개의 하나님사랑과 그에 따라 파생이 되고 있는 6개의 이웃사랑인 것임(20:3-17). 그것이 율법의 기본정신이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12:29-31).

3)    풀이를 해보자면,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돌보고 사랑을 해야만 한다는 것임. 그것이 이웃사랑임.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것으로 인간사랑과 이웃사랑을 대신해버린 것임. , 인간을 사랑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섬긴 것이 아니라 여호와만을 무조건 섬기라고 하는 신본주의 율법생활을 강조한 것임. 그것이 이상한 유대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임. 한 마디로, 율법과 계명의 위반을 유대교의 전통으로 감추고 살아온 것임.  

4)    그러한 잘못된 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통렬한 질책이 다음과 같음;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7:8-13).

(3)  그에 대한 사도 바울의 지적은 어떠한가?(7:9-10)

1)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7:9-10);

2)    첫째, 율법을 깨닫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지켜야만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만 의롭게 지킨 것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사람들 앞에서만 율법을 지키면 그것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킨 의인이라고 하는 면죄부를 준 것임. 그러한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사람들은 구원 받은 백성인 것처럼 살았으니 그것이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7:9a)라는 것임.

3)    둘째, 율법의 취지를 말하고 있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하는 계명에 비추어 보게 되면 하나님만 사랑하면 된다고 강조함으로써 이웃사랑을 하지 아니한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고 있음(7:9b).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나와 똑같이 사랑해야만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아니한 죄가 큰 것임. 그 점을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40).

4)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를 인간 대접하고 돌보며 그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 바로 성도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방법임. 그렇게 주님처럼 행동한 자는 영생의 구원에 들어가고 그러하지 아니한 자는 영벌의 심판에 들어가고 마는 것임(25:34-41). 따라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음;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7:10-11).

 

5.    결국 나무에 해당하는 율법에 비추어보고 그 숲에 해당하는 온전한 계명에 비추어 보게 되면 바리새인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인 육신적 삶만을 추구한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이 어떻게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는가?(7:12-21) 그리고 내 속에 선을 행하기 원하는 소원이 있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곤고한 죄인들에게 새로운 영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어떠한 하나님의 선물을 주고 계시는가?(7:22-25)

(1)  율법의 거룩한 기능과 계명의 거룩한 역할(7:12-16);

1)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7:12-16);

2)    첫째,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으므로 사람들은 죄인임.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율법생활을 잘 하면 그것으로 유대교가 주는 면죄부를 받고 의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임.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온전히 지켰는지를 따지게 되면 금방 율법은 거룩한데 그것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사람은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는 것임.

3)    둘째, 계명을 반쪽만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죄인임. 여호와 하나님만 전심으로 사랑하면 된다고 하는 신본주의 사상으로 신정국가를 운영하고 있음. 그것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모두 말하고 있는 십계명을 절반만 지키고 있는 반쪽 신앙인의 모습임.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이웃사랑을 실천할 때에 그것으로 영생의 천국으로 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임(12:30-31, 25:40-41). 따라서 거룩한 하나님의 온전한 계명 앞에 사람들의 반쪽짜리 신앙생활이 들통이 나고 이웃을 섬기지 아니한 그 죄 때문에 사망으로 들어가고 마는 것임.

(2) 율법과 계명을 온전히 행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적인 죄를 어떻게 하면 처리할 수가 있는가?(7:17-25) , 내 속에 선을 행하기 원하는 소원이 있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곤고한 죄인들에게 새로운 영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어떠한 하나님의 선물을 주고 계시는가?(7:22-25)

1)    율법과 계명을 온전히 행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적인 죄의 발견에 대한 날카로운 사도 바울의 기록이 다음과 같음;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7:17-21).

2)    이제 중요한 것은 육신적인 죄의 발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처리를 하고 사람들이 온전한 의인이 되며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임. 그 방법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음;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2-25); 조금 풀이를 해보고자 함;

3)    첫째, 사람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사람이 죄의 법을 따르고자 하는 자신의 육신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임.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함.

4)    둘째, 하나님의 도우심이 두가지로 오고 있음; ①하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고 있는 대속의 은혜인 것임. ②또 하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고 있는 영적인 은혜로서 앞으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속사람이 육신을 이기도록 만들어주는 것임.

5)   셋째, 내 속에 선을 행하기 원하는 소원이 있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①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곤고한 죄인들에게 새로운 영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죄 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를 주고 계심. ②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을 임재하게 해주는 이른바 성령님을 선물로 주고 계신 것임(7: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