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의 골자 제4강(롬4:1-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년 5월 10일(목)
1. 아브라함이 육신적인 행위로 이 세상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에 불과한 자신임을 고백하면서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은 무엇인가?(롬4:1-3)
(1) 아브라함이 육신적인 행위로 이 세상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롬4:1-3)
1) 이 세상의 육신적인 삶이란 한 마디로, 생존경쟁의 현장에 불과함. 한정된 재화와 권력을 누가 많이 차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주 관심사가 되고 있음. 그 이유는 두가지 때문임; ①첫째, 경쟁에 밀려서 너무 적게 차지하거나 아예 아무 것도 차지하지 못하게 되면 생존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는 것임. ②둘째, 많이 가진 자가 큰 소리를 치고 지배하는 세상이므로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지니고서 평생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임.
2)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피조세계의 재화를 불리거나 크게 증가시킬 수가 없음. 오늘 날 유전공학의 힘으로 인류의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지만 지구의 온난화와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여전히 굶어 죽는 인구의 비율이 별로 줄어들지 아니하고 있음. 그리고 첨단 의료장비와 의학기술로 사람들의 수명을 크게 늘렸다고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불치병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질병과 장애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인류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임.
3)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 75세에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을 믿고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서 1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첫번째 약속도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있는 실정임(창12:1-5).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셨는데 아직 일점혈육(一点血肉, 한 사람의 자손)이 없으니 크게 실망한 아브라함이 충직한 다메섹 출신 젊은 가신 엘리에셀을 헤브론에서 양자로 삼아 여생을 보내고자 계획하고 있는 것임(창15:2-3).
4) 따라서 이방 땅 가나안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반듯하게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의 행위와 능력으로써는 여호와의 축복의 약속을 실현하거나 성취시킬 수가 없는 것임. 한 마디로, 없는 자식을 자신의 힘으로써는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임. 편법으로 젊은 씨받이 첩을 얻어서 서자를 생산해보지만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임(창15:4, 16:1-4, 17:17-21).
5) 그렇다면 믿음생활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가지의 기본전제에서 시작이 되고 있음; ①하나는, 사람의 능력이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성취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임. ②또 하나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것임. 자신은 무익한 종임을 인정하고서(눅17:5-10)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그 말씀대로 실천할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언약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보게 된다는 것임.
(2)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얻고 있는가?(롬4:1-3)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4:1-3). 그 깊숙한 의미를 풀이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것임;
2) 첫째로, 아브라함이 자신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자신이 믿고 있는 대상이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여호와이심을 신앙고백하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하는 인정을 받고 있는 것임(창15:4-6, 롬4:1-3).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전능하신 능력이 작동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실현시키며 아브라함에게는 그것을 하나님 안에서 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생의 구원이 주어지는 것임(히11:1-16).
3)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3가지 축복의 언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것은 애초부터 사람인 아브라함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하나도 성취를 할 수가 없는 것들임(창12:2-3); ①첫째, 사라가 불임여성이므로 자식이 없는 75세의 아브라함임(창11:30). 그러므로 자손의 번성이 이루어지자면 무엇보다도 사라의 태가 열리고 늙은 몸이 가임(可姙, 임신이 가능한)여성의 상태로 변화되어야만 하는데(창18:11-12) 그것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 속하는 것임(창18:13-14, 21:1-7).
4) ②둘째, 318명의 사병만을 거느리고 있는 일개 떠돌이 호족에 불과한 아브라함이 이방 땅에서 그 이름이 창대하게 되자면(창12:2b)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해야만 전쟁에서 승리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임(창14:13-20). ③셋째,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가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가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은 애초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인 것임(창15:3). 사람인 아브라함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하겠음.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구원을 주신 이유가 아브라함이 일한 행위에 대한 보수인가? 아니면 여호와를 믿는 그의 믿음에 대한 은혜 베푸심인가?(롬4:4-8)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구원을 주신 이유가 아브라함이 일한 행위에 대한 보수인가?(롬4:4)
1)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롬4:4); 이 세상에서 남의 일을 한 일꾼이 하루 일당으로 그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임. 일을 시키면 그에 합당한 보수를 주는 것이 정당한 것임.
2) 그렇다면 문제는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그 축복의 약속을 믿고서 이방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이행을 촉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임.
3) 그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은 그러한 품삯이나 보수의 개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임.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애초부터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는 그 약속을 성취할 수가 없기 때문임.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시키신 그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임.
4)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피조물인 인간의 능력으로 자신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모두 지켰다고 주장하거나 또는 율법을 전부 준수했다고 말한다고 하면 그것은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전혀 모르고 있는 무지의 소치라고 하겠음. 그에 대한 모세의 지적이 다음과 같음;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8:16-18).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구원을 주신 이유가 여호와를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은혜 베푸심인가?(롬4:5-8)
1)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시32:1-2),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5-8). 세가지 말씀을 하고 있음; ①첫째, 의롭다 하시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임. ②둘째,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는 것들은 모두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넘고 있는 것들이라는 것임. ③셋째,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야만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대속자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임. 좀더 자세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음;
2) 첫째로, 사람의 의로움을 인정하는 자는 인간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것임.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임. 예를 들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인정하는 정의를 행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들, 곧 자손의 번성과 그 이름이 하나님 안에서 창대하게 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하심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임. 그 이유는 사람들의 집단 이기적인 정의의 개념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실천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임.
3) 둘째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공의와 영생의 구원을 사람들이 얻기 위해서는 의롭다고 하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것임. 왜냐하면 그것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므로 여호와께서 의롭다고 인정하는 자들에게만 주실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임.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하는 평가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 비결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다음과 같은 말씀 가운데 들어 있음;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등임.
4) 그 비결은 ①첫째, 여호와만이 아브라함을 지켜주는 방패가 되고 언약을 실현시켜주며 영생의 구원을 줄 수 있는 유일하신 존재라는 것임. ②둘째, 그 사실을 믿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임. ③셋째,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러한 것들을 성취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매사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완전한 인생을 살 수가 있다는 것임.
5) 셋째로, 그 비결을 안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그와 같이 실천하고 있는 인생이 없기에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허물과 죄가 많은 존재들임. 그 사실을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는 사도 바울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음(롬7:21-24). 따라서 곤고한 인생을 사망의 몸에서 건져 주신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임(롬7:24-25).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을 해방하여 준 것을 감사하는 것임(롬8:1-2).
3.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로부터 의롭다고 하는 인정을 받았는데 그때가 언제이며 이스마엘과 함께 처음으로 할례를 받은 때는 언제인가?(창15:6, 17:24-25) 믿음의 의와 할례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인가?(롬4:9-12)
(1)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로부터 의롭다고 하는 인정을 받았는데 그때가 언제이며, 이스마엘과 함께 처음으로 할례를 받은 때는 언제인가?(창15:6, 17:24-25)
1)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니라”(창15:4-7).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 아브람의 아내인 사래의 귀에 생물학적으로 빨리 깨달아지는 구절이 있음. 그것은 남편 아브람의 씨가 장차 큰 민족을 이룬다는 것임.
2) 사래는 불임여성이므로 자식을 생산할 수가 없는 몸임. 그러므로 사래는 남편 아브람의 씨만 받아서 아들을 낳으면 되는 것이므로 자신의 여종인 하갈을 남편에게 씨받이 첩으로 제공하고자 하는 것임(창16:1-2). 그에 따라 아브람과 하갈 사이에 다음해에 이스마엘이 태어남(창16:4, 15-16).
3) 창세기 제16장에서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10년 후였더라”(창16:3),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86세였더라”(창16:16)고 적고 있음. 따라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로부터 의롭다고 하는 인정을 받았는 때는 가나안에 들어온 지 10년 후 곧 그의 나이 85세때라고 볼 수 있는 것임.
4)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할례를 받은 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모세가 기록하고 있음;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99세였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13세였더라. 그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창17:24-26). 요컨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그가 여호와를 창조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은 그때로부터 14년 후인 것임. 따라서 믿음이 할례보다 역사적으로 앞서고 있음.
(2) 믿음의 의가 역사적으로 할례보다 앞서고 있으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엇이 우선되어야만 하는가?(롬4:9-12)
1) “그런즉 이 복이(대속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 롬4:6-8)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롬4:9-12).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음;
2) 첫째, 아브람이 사람이나 그 여건을 믿은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 언약의 성취를 맡겨드렸기에 여호와로부터 의인으로 여김을 받았다는 것임. 그때가 할례를 받기 14년 전이었음. 따라서 믿음의 의가 할례보다 먼저인 것임(롬4:9-10).
3) 둘째, 아브람이 사람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를 믿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여겨졌다고 하는 내용의 ‘믿음의 의’를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육체적인 표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할례 제도’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임(롬4:11).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의를 지니고 있지 아니하면 그 육체적인 할례가 별무소용(別無所用, 별다르게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것임.
4) 셋째, 할례보다는 믿음의 의가 먼저이기 때문에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의를 가지게 되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그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는 것임(롬4:12b). 그것은 단순하게 아브라함을 할례자들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더 본질적인 개념인 것임(롬4:12a).
4. 아브라함의 여호와 신앙과 그 언약을 상속한다고 하는 것은 육신적인 혈통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믿음의 승계를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가?(롬4:13-14)
(1) 아브라함의 여호와 신앙과 그 언약을 상속한다고 하는 것은 육신적인 혈통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1:13)
1)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4:13); 선민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언약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보고 있음. 그와 달리 사도 바울은 오직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를 따르는 자들이 그 상속자라고 말하고 있음. 먼저 선민 유대인들이 율법을 그 조건으로 들고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알아보고자 함;
2) 첫째, 선민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승계한 자손들의 계보를 다음과 같이 보고 있음;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받은 당사자인 아브라함--약속의 아들인 이삭—영적인 장자로 여김을 받게 되는 야곱의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이스라엘의 자손들”로 아브라함의 언약이 계승이 되고 있다는 것임.
3) 둘째, 그 결과 출애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역사하시는 것임;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3:6-8).
4) 풀이를 해보자면,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증거 외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출애굽의 역사, 율법을 주심, 성전문화, 제례의식 등을 할례와 더불어 가지고 있음. 그 모든 것들을 선민의 증거로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므로 그 모든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는 율법책의 내용을 지키지 아니하게 되면 결코 선민이 될 수도 없으며 선민구원에 참여할 수가 없다는 것임.
(2) 아브라함의 믿음의 승계는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롬4:13-14);
1)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롬4:13-14);
2) 동일한 취지의 말씀이 사도 요한에 의하여 그의 복음서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음;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0-13).
3) 결국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를 계승하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도 아니고 아브라함의 손자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주신 율법도 아니라는 것임.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의로움을 가지는 자들임.
4)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라고 하는 것은 두가지를 말하고 있는 것임; ①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언약은 사람의 지혜나 능력으로 성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로 말미암아 실현이 된다는 것임. 그 사실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임. ②또 하나는 아브라함처럼 그 언약을 주신 여호와께서 창조주이시므로 그 창조의 능력으로 반드시 그 언약의 축복을 자신과 후손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서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인의 삶이라는 것임.
5.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 육신적으로 율법생활을 영위하여 하나님이 진노를 사고 있는 반면에 이방인들은 여호와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상속하고 있음(롬4:15-16a).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선민과 이방인 모두의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다는 사도 바울의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롬4:16b-18)
(1) 육신적인 율법생활이 어째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상속할 수가 없는가?(롬4:15-16a)
1)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롬4:15-16a); 육신적인 율법생활은 하나님의 눈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눈에 율법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보이면 그것으로 의인이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임. 그러한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율법생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강하게 질책하심(마23장). 여기서 사도 바울은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롬4:15)고 단언하고 있음. 육신적인 율법생활은 외식적인 신앙생활이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고 만다는 것임. 그럴 바에는 차라리 율법을 모르는 것이 꾸중을 덜 듣는 방법이 된다는 의미라고 하겠음.
2) 참고로, 율법생활은 두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①하나는 육신적인 율법생활이며 ②또 하나는 마음속에서부터 율법생활을 영위하는 것임. 조금 설명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음;
3) 첫째, 육신적인 율법생활은 그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육신적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임. 육신을 가진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인정이 되면 의로운 자가 되고 구원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임. 그것은 창조주의 전능하신 눈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믿음과 다른 것이므로 아브라함의 언약을 온전히 상속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임.
4) 둘째,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의 눈에 정직하게 율법생활을 하는 것임. 그 방법은 ①먼저 자신의 능력과 결단력으로는 도저히 하나님 보시기에 율법생활을 온전히 할 수가 없으므로 그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임. ②그 다음에 율법을 마음속에서부터 지킬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간구하여 성령님의 능력으로 율법생활에 나서는 것임.
(2) 여호와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있는 이방인들의 믿음의 조상은 누구인가?(롬4:16b-18)
1)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창17:5)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롬4:16b-18);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삼단논법(三段論法)에 따르게 되면 아브라함은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모두의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임;
2) 첫째, 아브라함은 자신이 보기에는 실현가능성이 전무한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이지만 그것을 보증하시는 분이 창조주 여호와이시기에 그 언약을 믿기로 했다는 것임.
3) 둘째, 여호와를 창조주로 인정하고 그 창조의 능력으로 능히 그 축복의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아브라함이 믿고 있기에 그것을 여호와께서 의로운 믿음생활이라고 칭찬하셨다는 것임.
4) 셋째,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든지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이든지 상관없이 누구나 아브라함이 선을 보이고 있는 그 믿음을 지니게 되면 그 축복의 언약을 얻을 수 있는 의인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임.
5) 참고로, 여기서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4:17b)는 구절은 대속과 부활의 능력을 가지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임(히11:19). 그러한 창조주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것임(히11:1)
6. 아브라함이 100세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신의 육신과 불임으로 늙어 90세에 가까워지는 아내 사라의 육신을 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행하시는 여호와를 바라보았기에 어떠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있는가?(롬4:19-22)
(1)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여호와이시지만 그들은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는가?(창17:16-17, 18:11-12)
1)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100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90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창17:16-17),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창18:11-12); 한 마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므로 희망적인데 비해서 아브라함 부부는 꺼져가는 심지와 같아서 다음과 같이 극히 비관적임;
2)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년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의 말씀을 주시지만 그들은 결코 믿을 수가 없음. 그 이유는 그들이 늙었기 때문임.
3) 둘째, 아내 사라가 평생 불임여성이었으므로 부부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지를 못했음. 그래서 젊은 애굽여인 하갈을 씨받이로 맞이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생산하였는데 그가 이미 13세임.
4) 셋째, 노인이 된 사라는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이므로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의 상태가 전혀 아닌 것임. 그것은 고목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말씀임.
(2) 새로운 창조를 행하시는 여호와를 바라보았기에 어떠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있는가?(롬4:19-22)
1)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그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4:19-22);
2) 한 마디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자신의 늙은 몸과 불임여성으로 생리가 끊어져버린 아내의 늙은 몸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생명을 창조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바라보고 있는 것임.
3) 피조물인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 예언의 말씀을 실현하시는 줄 믿고서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영광을 먼저 올려 드린 것임. 그러한 믿음의 부부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나게 되는 것임. 그것이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하겠음.
7. 영이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었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늘날 성도들에게 어떠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는가?(롬4:23-25)
(1) 영이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어떻게 하면 믿을 수가 있는가?(창12:17-20, 14:14-20, 19:29, 20:1-7, 17-18, 21:1-7, 22:10-14)
1)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가면서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음; ①사래를 후궁으로 취한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집에 여호와의 큰 재앙이 임하고 사래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됨(창12:17-20). ②아모리 3호족과 연합한 아브라함이 자신의 사병 318명을 거느리고 메소포타미아 원정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게 되는데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인 것을 알게 됨(창14:14-20). ③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기억하신 여호와께서 소돔 성의 멸망 가운데 롯의 가족을 구원해 주심(창19:29). ④블레셋 왕이 사라를 후궁으로 데려갔으나 여호와의 경고와 황궁여인들의 태를 닫아 버리는 재앙으로 말미암아 무조건 돌려보내고 있음(창20:1-7, 17-18). ⑤여호와께서 불임여성으로 늙어버린 사라를 치유하시고 아브라함과의 사이에 아들 이삭을 낳도록 역사하심(창21:1-7). ⑥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제물을 바치도록 역사하심(창22:10-14).
2) 그와 같은 다양한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체험하게 된 아브라함 부부는 창조주께서 예비하신 영생의 천국을 바라보고서 평생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이방인의 땅에서 살아가다가 마침내 향년을 맞이하여 막벨라 굴에 그 몸을 누이고 있는 것임(창23:19-20, 25:8-10, 히11:13-16).
3) 아브라함 부부의 여호와 신앙을 계승하게 되는 약속의 아들 이삭의 부부 그리고 영적인 장자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여생을 살아간 야곱의 부부가 역시 천국의 입성을 소망하면서 그 막벨라 굴에 육신을 안장하고 있는 것임(창49:29-33).
4) 그와 같은 의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들의 믿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늘날 성도들에게 어떠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는가?(롬4:23-25)
1)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은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3-25);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음;
2) 첫째로, 아브라함은 자신의 늙은 육신과 아내 사라의 불임으로 늙은 몸을 더 이상 바라보지를 않고 자신의 축복의 언약을 이루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되심을 믿고 의지하기로 결단함(창15:6, 17:19-24, 18:14-15). 그 결과 기적의 아들 이삭이 창조주의 능력으로 태어나고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승계가 되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됨.
3) 둘째로, 그것이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믿음의 의미라고 한다면 오늘날 성도들은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서 여호와의 축복의 새 언약을 바라보고서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가운데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음;
4) 첫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제물로 사용하시고 또한 그 공로로 부활의 영으로 살리셨다는 것임(롬4:23-24).
5) 둘째, 그 사실을 믿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임(롬4:25).
6) 셋째,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복음사역과 대속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주님을 살리신 하나님의 부활의 영이 임하여 영생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임(롬8:11).
'로마서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강의 골자 제6강(롬6:1-23)(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14 |
---|---|
로마서 강의 골자 제5강(롬5:1-21)(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13 |
로마서 강의 골자 제3강(롬3:1-31)(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11 |
로마서 강의 골자 제2강(롬2:1-29)(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11 |
로마서 강의 골자 제1강(롬1:1-32)(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