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78강(렘13:23-2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8월 7일(화)
이 세상에서 유일한 구원자이며 선을 행하시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 뿐임을 잊어버리고 선민들이 우방을 의지하는 등 어떻게 행동을 하다가 가장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고 마는가?(렘13:23-27)
어떻게 하면, 선민 유대인들이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그 마음이 정결하게 되어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게 될까요? 본문에서 그 방법을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요점은 세상의 강대국의 힘을 의존하여 국가를 보전하려고 하지를 말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구스 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는 것입니다. 애굽을 통치하고 있는 구스 사람들의 왕조가 중동의 역사를 변경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유대인들이 애굽의 구스 인들을 마치 우상처럼 섬기고 신바벨론제국에 맞서고자 하고 있으니 나라가 망하는 운명을 어찌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먼저 그와 같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주전 605년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앗수르와 애굽의 세력을 중동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장악합니다. 그는 유다를 침공하고 예루살렘성을 포위한 후 친(親) 애굽 노선인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 항복과 조공을 요구합니다(단1:1-2). 유다의 왕 여호야김은 항복을 하고서 그때부터 애굽을 버리고 신바벨론을 상국으로 섬기게 됩니다. 그에 따라 조공품과 함께 귀족의 자제 중 촉망받는 인재들을 바벨론에 인질로 보내고 맙니다. 그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바벨론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단1:3-4).
(2) 둘째로, 주전 601년 신바벨론의 원정군을 애굽 제 26왕조의 바로가 막아내자 유다 왕 여호야김은 다시 친 애굽으로 외교노선을 변경합니다. 그 때문에 주전 597년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다시 유다를 침공합니다(왕하24:10-12). 그때 부왕인 여호야김이 죽고 즉위한지 3개월에 불과한 여호야긴이 항복을 하고 인질이 되고 맙니다(왕하24:8).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물어주고 귀족들이 많이 잡혀갑니다(왕하24:15-16). 그때 선지자 에스겔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입니다(겔1:1-3). 느부갓네살 황제는 차제에 여호야긴의 숙부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친 바벨론정권을 수립합니다(왕하24:17).
(3) 셋째로, 그 옛날 앗수르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한 애굽의 제 25왕조의 뒤를 이은 역시 구스 인들의 제 26왕조가 애굽을 통일하고 그 세력이 융성해지자 유다 왕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 황제를 버리고 친(親) 애굽 노선으로 선회합니다(왕하24:20). 그 때문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재차 침공하여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말살하고 쓸 만한 유대인들을 전부 바벨론으로 끌고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1-21).
이상과 같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역사를 창조주이시며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두 통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왕조와 선민들은 신바벨론의 황제 또는 구스 왕조의 애굽의 바로를 번갈아 의지하면서 유다 왕국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이제는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구원의 살길이 전능하신 여호와의 능력으로 열리겠지만 계속 그렇게 이방 강대국에게 원군을 요청하게 되면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자국의 독립마저 보전할 수가 없게 되고 말 것이라고 예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구스 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같이 흩으리로다”(렘13:23-2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구스 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1) 주전 701년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군대가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왕하18:13-17). 그때 유다 왕 히스기야가 상국인 애굽에서 바로의 구원병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아들 구스 왕 디르하가가 산헤립 황제의 매복작전에 걸려서 대패를 하고 물러가고 맙니다(왕하19:8-9). 그 소식을 들은 히스기야 왕이 절망 가운데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구원을 호소합니다(왕하19:14-19).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앗수르의 군대를 다윗 왕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사자를 보내어 쳐부수어 주십니다(왕하19:34-35).
2) 그 의미는 두가지로 풀이가 됩니다; ①하나는, 다윗 왕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서 여호와 앞에 회개하는 심정으로(삼하12:7-14) 장차 히스기야 왕과 선민 유대인들이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②또 하나는, 애굽의 구스 인 왕조를 의지하여 앗수르제국의 군대를 물리치려고 그렇게 강대국의 힘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렇게 전략과 군사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뜻은 출애굽기 제17장에서 벌써 선포가 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원칙입니다(출17:9-16).
3) 애굽의 제26왕조는 제25왕조에 이어서 상(上)이집트에서 성립이 된 구스 인들의 왕조입니다. 제25왕조는 구스 왕 디르하가가 산헤립에 의하여 패퇴를 당하고(왕하19:8-10) 훗날 산헤립의 후계자인 에살핫돈 황제에 의하여 멸망하고 맙니다(왕하19:37). 그 뒤를 이은 제26왕조는 아시리아와 연합하여 반 앗수르 전선을 형성하고 독립을 되찾게 됩니다. 마침 앗수르가 신바벨론에 의하여 갑자기 무너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한때 애굽의 바로인 느고가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여 유프라테스 강 상류로 진출하여 갈그미스 요새를 차지하기도 합니다(왕하23:29).
4) 하지만 신바벨론이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고 주전 597년 유다 왕국을 재차 공격하자 구스 인들의 애굽제국은 군사적으로 더 이상 대항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왕 시드기야와 중신들은 자꾸만 애굽의 구스 인들을 의지하여 신바벨론의 세력을 몰아내고자 계속 시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선민들의 헛된 희망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구스 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고 질책하십니다.
5) 그 뜻은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풀이가 됩니다; ①첫째, 자신의 검은 피부 색깔도 희게 할 수가 없는 피조물에 불과한 구스 사람을 의지하여 유다 왕국의 구원을 이루고자 도모하고 있으니 그것은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②둘째, 인간들의 선과 악을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선민 유대인들이 감히 우상을 섬기고 죄악을 일삼고 있으면서 이방 강대국의 힘을 빌려서 왕국의 멸망을 예방하고자 도모하고 있으니 그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같이 흩으리로다”(렘13:24);
1) 여호와께서는 훗날의 역사를 통하여 유다 왕국이 의지하고 있는 우상과 같은 애굽의 제국 그리고 다윗왕조를 집어 삼키고 있는 신바벨론제국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를 다음과 같이 보여주십니다.
2) 첫째,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그 백성들을 전쟁포로로 끌고 갑니다(왕하25:6-21). 그러나 47년이 지나자 주전 539년에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의 기습공격으로 수도가 허무하게 함락을 당하고 맙니다(단5:30-31).
3) 둘째, 바사의 왕 고레스는 아라비아 전선에 나가 있는 신바벨론의 군대를 모두 격파하고 페르시아제국의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스1:1-4). 그의 후계자들에 의하여 애굽제국마저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에1:1).
4)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귀족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우상처럼 섬기고자 한 애굽제국이 망하고 그 땅의 백성들이 주전 6세기부터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 여러 제국의 속국으로 계속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같이 흩으리로다”(렘13:24)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네 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렘13:25-26);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네 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렘13:25a);
1) 여호와께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기업과 분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그 땅에서 계속 대대로 살 수 있는지 아니면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되는지는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지키는지 아니면 지키지 아니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렘13:25a).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민들의 기업인 가나안 땅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의미하고 있습니다(히11:8-16). 그러므로 여호와신앙을 지키고 주님의 제자로 한평생 복음사역을 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영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기업이며 분깃입니다(눅22:28-30).
2) 그러한 사실을 모세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풀무불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여호와께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게 진노하사 내게 요단을 건너지 못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그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라고 맹세하셨은즉, 나는 이 땅에서 죽고 요단을 건너지 못하려니와, 너희는 건너가서 그 아름다운 땅을 얻으리니,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일으키면, 내가 오늘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신4:20-26).
(2)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렘13:25b-26);
1)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기며 강대국의 힘을 빌려서 죄악에 물든 자신들의 왕국을 지키고자 하면 그 장래가 어떻게 될까요?(렘13:25b)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렘13:26);
2) 하나는, 여호와와 맺은 언약에 따라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신앙을 버렸기에 그들의 기업인 가나안 땅에서 조국이 망하고 쫓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얼굴을 들고서 다닐 수가 없게 됩니다(렘13:26a). 요컨대, 선민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능하신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피조물인 이방인들의 나라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그것이 첫번째 수치입니다.
3) 또 하나는, 선민의 딸들이 이방인들의 성적인 노리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렘13:26b). 그러한 성적인 수치가 어째서 그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다음 구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렘13:27).
셋째로, “내가 너의 간음과 사악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네가 행한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하시니라”(렘13:27);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너의 간음과 사악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네가 행한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렘13:27a); 민수기 제25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1) 첫째, 모압 여인들이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은밀하게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민25:1). 함께 남쪽 10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브올 산에 올라가서 바알 신에게 제사를 드리면 그녀들이 여사제가 되어 이스라엘 장정들에게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민25:2).
2) 둘째, 혈기가 왕성한 이스라엘 남자들이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밤중에 은밀하게 브올 산으로 올라가서 바일 신을 섬기고 여사제들과 혼음을 즐기고 맙니다(민25:3).
3) 셋째, 여호와께서는 거룩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음란한 마음으로 브올 산에 올라가서 음행을 자행한 선민 이스라엘 장정들을 강력하게 처벌하십니다(민25:4-9).
4) 넷째,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발람의 꾀를 음란한 미인계로 실천에 옮긴 미디안의 왕과 백성들을 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민25:16-18). 그 결과 이스라엘 원정군이 남하하여 미디안 5부족국가를 멸망시키고 맙니다(민31:1-8).
5) 여호수아의 인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풍족하게 살게 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옛날 모압 평지와 브올 산에서의 범죄를 여호와 앞에서 감히 재현하고 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둘이나 만들어 섬긴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망하고 그 백성들이 앗수르 변경으로 강제이주를 당하고 맙니다(왕하17:6, 22-23). 이제 그 뒤를 남조 유다 왕국이 따르고 있습니다; “내가 너의 간음과 사악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네가 행한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렘13:27a).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2)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렘13:27b); 여호와께서는 한 마디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음란한 문화를 유다 사회에 만연하게 한 선민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화가 미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렘13:27b)라고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이유는 유다 왕국의 수도가 예루살렘이며 그곳에 왕과 귀족들 그리고 부자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지도자들부터 여호와를 떠나서 우상을 섬기며 육신적인 퇴폐와 향락 그리고 사치를 즐기고 있으니 그 책임을 먼저 준엄하게 물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3)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하시니라”(렘13:27c);
1)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망하고 유민들 가운데 일부가 주전 535년경 유대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스1:1-4). 그들이 페르시아 황실을 도움을 받아 주전 516년에 예루살렘 제2성전을 건설하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스6:14-22).
2) 그러나 주후 30년경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성전청결운동을 시작하십니다(마21:12-13, 요2:14-17). 그 이유는 성전 내 이방인의 뜰에 제물장사와 환전장사치들을 끌어 들이고 그들에게 자리세를 받아서 성전을 증축하는 등의 종교적인 타락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강도와 도둑의 소굴이 되어버린 그 성전을 헐어버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새로운 성전을 짓고자 하십니다(요2:19-20).
3) 그 의미가 성도들의 마음속에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는 새로운 성전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습니다(요2:21-22). 그러므로 진정한 성전의 청결은 ①그리스도의 오심과 대속의 죽으심 그리고 ②창조주의 능력에 따른 부활의 역사를 기다리고 또한 ③성령님의 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이 이루어지는 복음의 시대에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렘13:27c).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두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는, 이방 강대국의 힘에 의지하여 자국의 독립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은 헛된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섭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능력에 의지하여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립이며 영원한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2) 또 하나는, 선민의 나라의 멸망과 이방 땅에서의 수치스러운 유배생활까지 경험을 한 선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유대 땅으로 돌아와서 제2성전을 짓고 다시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지만 100년도 지나지 아니하여 다시 영적인 타락상을 보이고 만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느헤미야의 성전청결운동과 종교개혁이 그가 권력을 잃어버리게 되자 당장 그 효력을 상실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구약의 선지자 말라기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나안 땅에 오실 때까지 400년 동안 선민의 사회에서는 선지자가 사라지고 진정한 성전의 청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성전청결사건의 뜻을 다시 묵상하게 됩니다.
결국, 완전한 성전청결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우상문화와 음란문화를 몰아내는 방법은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과 창조주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 그리고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 밖에 없습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적으로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레미야 강해 제80강(렘14:7-9)(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11 |
---|---|
예레미야 강해 제79강(렘14:1-6)(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10 |
예레미야 강해 제77강(렘13:20-22)(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8 |
예레미야 강해 제76강(렘13:15-19)(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8 |
예레미야 강해 제75강(렘13:12-14)(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