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80강(렘14:7-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8월 9일(목)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을 바라보면 구원의 가치가 없지만 그래도 여호와 앞에서는 구원을 간구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렘14:7-9)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어떠한 신앙태도를 가지고 간구하여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는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사람은 심판대 앞에 서야만 하는 죄악을 범한 자이고 여호와께서는 그 죄악을 심판하시는 재판관이라는 것입니다(렘14:7a). 여호와께서는 그 이름이 사람을 창조한 창조주이시지만 인간을 잘못 만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창1:26-27). 그런데 인간들이 스스로 영적으로 타락하고 육신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살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께 범죄한 것입니다(렘14:7b). 그에 따라 여호와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예레미야는 동족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에서 구원하시는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명심하고서 간절히 구원을 호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렘14:8);
1) 그 이유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만 영적으로 다시 고침을 받고 탐욕과 정욕에 찌든 몸을 치유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갈 소망이 이루어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렘14:7a, 롬8:1-2). 그 점에 있어서는 선민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렘14:7b).
2) 이방인들의 특징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여호와가 창조주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현세적인 삶이 전부라고 하는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한평생을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한 이방인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여호와신앙으로 바꾸게 되는 계기가 훗날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건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시게 되면 만민을 구원하는 복음의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은 물론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들까지 모두 고쳐서 온세상을 구원하는 복음의 전파자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렘14:8b, 사19:22-25).
(3) 셋째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100여년 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자신이 선지자 활동을 하고 있는 조국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도 멀지 아니하여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하실까요?
1) 첫째,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나라가 차례로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멸망을 당할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냥 놀라시며 팔짱을 끼고 침묵하신 것으로 보입니다(렘14:9a, 11:19, 사53:7, 마26:52-56, 63). 그 전능하신 창조주의 능력을 조금도 선민들에게 보여주지 아니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의 죄악을 공평하게 공의의 원칙에 따라 심판하시는 재판관이시기 때문입니다(마5:43-48, 요5:27).
2) 둘째,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렘14:9b). 이스라엘 자손을 만드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비록 선민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선민들이 이방 땅의 나그네로 살아가게 될지라도 이제 자신들의 죄악을 인정하고 회개하오니 부디 그 고난의 길에 동행하여 달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렘14:9b).
3) 셋째,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그 기도의 내용 그대로 훗날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에서 선민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여호와의 놀라운 역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기록이 히브리정경에 수록이 되고 있습니다. 즉, ‘다니엘’과 ‘에스더’라는 이름의 정경들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렘14: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렘14:7a);
1) 여호와의 언약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출19:4-6).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책임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에게 그러한 논리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하고 여기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두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여호와의 언약 가운데 다른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대대로 살 수 있지만, 그러하지 못할 때에는 우상을 섬긴 가나안 원주민들이 그 땅에서 쫓겨나듯이 그렇게 선민들의 나라가 망하고 역시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이방 땅에서 유민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신4:20-28).
3)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지만 동시에 심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심판대에서 준엄하게 재판을 하십니다. 그렇게 여호와께서 심판주의 이름으로 공정한 재판을 하시는데 있어서 선민이라고 하여 특혜를 바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점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지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렘14:7a).
(2)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렘14:7b);
1)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신실한 여호와의 청지기로 이 세상을 경영하도록 조치하십니다(창1:26-27). 그 일을 모범적으로 실천해야만 하는 백성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2)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영적으로 타락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왕상12:28, 왕하17:21-23) 이방신상과 우상을 도입하여 여호와 대신에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습니다(왕하16:3-4, 21:11-13). 이방인들의 손쉬운 제사방법과 축제분위기의 종교행사가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출32:6). 특히 육신적인 정욕과 세상적인 탐욕을 만족시켜주고 있는 우상문화가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민25:1-3, 렘3:2).
3) 일찍이 모세가 신명기 제3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디 선과 악 그리고 생명과 사망 가운데 선과 생명을 선택하여 살아가라고 그토록 강조하였는데 그 사실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신30:19-20, 렘14:7a). 그들이 영적으로 타락하여 잘못 선택한 것입니다(렘14:7b). 그 결과 이제는 하나님께 범죄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역사적인 준엄한 심판만이 남아 있습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같이 하시나이까?”(렘14:8);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렘14:8a);
1) 선민 이스라엘의 소망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따라 대대로 약속의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신4:37-40).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만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현세적인 이익을 쫓아 우상을 섬기며 육신적인 탐욕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그들이 포로가 되어 이방인의 땅에서 고난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2) 그렇다면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어떠한 소망이 남아 있는 것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 앞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민으로 삼으시면서 말씀하신 언약의 내용을 다시 음미해볼 때 새로운 소망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름지기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출19:4-6). 그것은 선민들이 모두 이방인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주는 제사장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선민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지금도 이 세상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온세상에 증거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면서 살고 있는 이방인들이 모두 여호와 앞에 죄인이며 회개하지 아니하면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선지자 요나처럼 그들에게 찾아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욘3:1-4, 마12:39-42).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이 무엇인지를 이방인들에게 모범적으로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창12:1-5, 20:7, 21:22, 23:6).
4) 그렇게 살아갈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여 약속의 땅에서 영생의 복락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마28:18-20, 눅22:28-30, 요3:13-17, 14:1-3). 한마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성도의 삶을 살아갈 때에 그와 같은 소망이 그들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물론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감으로써 영생의 구원을 얻는 그 성도의 소망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렘14:8a).
(2)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같이 하시나이까?”(렘14:8b);
1) 먼 훗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을 구원자 그리스도로 보내어 그와 같은 영생의 구원을 얻는 소망의 삶의 모범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이방인과 똑같은 죄악을 범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동일한 처벌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선민의 나라가 이방인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이방 땅에서 노예와 같은 고난의 삶을 계속 살아가게 되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안타깝게 다음과 같이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같이 하시나이까?”(렘14:8b).
2) 선민인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살고 있는 그 땅에는 이방인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들 이방인들이 보기에는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란 비천한 자들입니다. 즉, 자신들의 땅에서 빌어먹고 살고 있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떠돌이 나그네 곧, ‘거류하는 자’의 의미입니다(렘14:8ba). 그렇게 이방인들에게 나그네 취급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마냥 유민으로 취급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원망이 그 가운데 담겨 있습니다.
3) 여기서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라는 말은 그저 한세상만 살다가 가면 그만인 존재 곧, 현세적인 삶이 전부인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렘14:8bb). 내세가 없으며 영생의 소망이 없는 자입니다. 그것은 무신론자인 이방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방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신들도 여호와 보시기에 그러한 취급을 당할까 겁이 난다는 것입니다. 부디 현세 가운데 버리지 마시고 영생의 소망도 주시고 이 땅에서 구원해 달라고 하는 간구입니다.
셋째로,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렘14:9);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렘14:9a);
1) 선민 유대인들은 주전 701년 히스기야 왕의 성전기도에 응답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서 다윗왕조의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천사를 보내어 진멸하셨습니다(왕하19:34-35). 따라서 앗수르의 산헤립 황제가 남은 군대를 이끌고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2) 주전 588년에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지만 선민 유대인들은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곧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왕하25:1-6).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형편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침묵만 하시고 전혀 구원의 역사를 행하시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렘14:9a).
3) 신바벨론 군대의 위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크게 놀라신 것일까요? 그래서 바벨론의 군대를 무찌를 천사를 보내실 수가 없으신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마26:52-56). 그 전쟁을 자초한 자는 선민 유대인들입니다(렘6:19, 9:13-16). 그들은 주전 722년에 금송아지 우상을 끝까지 섬긴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 당한 사실을 똑똑하게 알고 있습니다(왕하17:5-6, 21-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바알 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더라도 여호와께서 다윗왕조를 보호하시고 적군으로부터 히스기야 왕 때처럼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하는 아주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4) 그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왜곡된 선민우월사상에 불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정하게 처벌하십니다. 선민이라고 하여 특혜를 주지를 않습니다. 이방인이라고 하여 억울하게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구원은 선민과 이방인 차별이 없는 만민구원인 것입니다(요3:16).
(2)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렘14:9b);
1)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현세적인 삶과 영원한 삶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들에게 계속하여 구원을 소망하는 기도를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렘14:9b). 조국 유다 왕국이 망하고 이방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직 영생구원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2) 그 옛날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 군대를 신위적인 방법으로 몰살시키고 예루살렘성과 유다 왕국을 구원해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전히 살아서 역사를 섭리하고 계십니다(렘14:9ba).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앞에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고자 회개를 하고서 돌아오게 된다면 아직 선민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렘14:9bb). 이 땅에서 만민구원을 위하여 복음사역자로 유대인들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본래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출19:4-6).
(3)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렘7:9c);
1) 모세가 진작에 그의 유언과 같은 신명기에서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일으키면, 내가 오늘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쫓아 보내실 그 여러 민족 중에 너희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이며,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 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 하시리라”(신4:25-31).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2)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서 유랑민이 된다고 하더라도 여호와께서 이방 땅에서 그들을 지켜 주시고 그들의 회개를 여전히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신4:29-31, 사65:2). 그러므로 우리를 버리지 마시고 여호와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다시 사용하여 달라고 하는 간구를 계속하여 드리라는 것입니다(렘14:9c). 그것이 선민은 물론 이방인까지 고쳐서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하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대속자 그리스도 주님의 뜻입니다(사19:22-25, 행1:8).
결론적으로, 선민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모두 멸망을 당한다고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그만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과 만물 그리고 만민을 전부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은 물론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백성으로 삼아 그들에게 이방인의 죄 사함과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고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출19:4-6).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현세적인 선민의 욕심 만을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선민들이 이방인과 구별이 되지 아니하고 똑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나라는 이방세계의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그들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의의 원칙을 준수하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사용하여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방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만민구원을 위하여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요1:12-14). 그리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빛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는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엿보게 해주는 구절이 모세가 남긴 신명기 제4장의 기록이며 본문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이라고 하겠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처럼 현세에서 영적으로 타락하여 나라가 망하고 고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모든 인류에게 구원과 영생의 길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열어 두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소망을 두고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아무쪼록 그 구원의 은혜를 먼저 얻으시고 남은 인생을 바쳐서 하나님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시는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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