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81강(렘14:10-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11. 16:21

예레미야 강해 제81(14:10-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810()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선민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더 이상 간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14:10-12)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중요한 몇가지 말씀을 선민 유대인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선민들이 무엇을 선택하였으며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맺은 언약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축복의 언약이고, ②또 하나는 저주의 언약입니다(27:11-28:68). 그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어그러진 길은 사랑하여 그만 저주의 언약을 선택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14:10a).

(2)  둘째로, 그들의 발걸음을 되돌리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하신 일과 그들의 완고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첫째,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계속 벌걸음을 옮기게 되면 그 결과는 선민의 지위를 박탈 당하고 여호와께서 주신 그들의 기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저주의 언약이 발동하게 되면 그 결말이 그렇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발걸음을 돌이키기 위하여 계속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를 종용하고 있지만 그들이 듣지를 않습니다(14:10b).

2)    둘째, 어째서 여호와께서는 억지로 그들의 발걸음을 돌이키지 아니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그 선택의 자유는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도 자유의지로 그것을 선택한 그들의 몫입니다.

(3)  셋째로,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누리고 있는 선민의 지위를 박탈하고 그들의 죄를 기억하며 벌하고자 확정하셨다는 것입니다(14:10c);

1)    첫째,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까지 보내어 계속 선민 유대인들에게 그 발걸음을 여호와를 사랑하는 쪽으로 돌이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외치는 소리마저 유대인들이 거절하고 맙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유대인들이 누리고 있는 선민의 지위를 박탈하십니다.

2)    둘째, 선민의 지위가 사라지면 다음과 같은 불이익이 찾아옵니다; ①여호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과 동행하며 보호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②그리고 이제는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려도 그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③따라서 그들의 죄를 더 이상 사하지 아니하고 기억하시며 처벌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4)  넷째로, 이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동족을 위하여 여호와께 복을 간구하더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14:11). 여호와께서 위와 같이 결정하셨기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동족들을 선민으로 삼아 하나님의 복을 계속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더라도 그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원님의 행차 뒤에 나팔을 부는 격이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환자가 죽은 다음에 가지고 오는 좋은 처방과 같이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말함)에 불과합니다.

(5)  다섯째로, 선민 유대인들이 금식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고 여호와께 번제와 소제의 제사를 드릴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14:12a). 왜냐하면, 이제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려고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14:12b);

1)    첫째,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결정사항을 동족들에게 전달하여야 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마음이 슬프고도 아픕니다.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은 예레미야의 심정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내용과 다른 것이며 온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10:2-3).

2)    둘째,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어그러진 길로 달려갈지라도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보호하고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구원자이실 뿐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준엄하게 처벌하시는 심판자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반쪽짜리 믿음에 불과한 것입니다(11:20-22). 비유를 하자면, ()무당이 사람을 잡고 있는 것이며 반()풍수가 집안을 망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14:10); 다음과 같이 5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14:10a);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대언하라고 하십니다(1:1-3). 그러므로 선지자인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동족들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의 말씀이든지 혹은 저주의 말씀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대언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축복의 말씀이면 그의 마음이 즐겁고 기쁩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참으로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그대로 전해야만 하는 사명을 맡은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14:10b);

1)    올바른 길과 어그러진 길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명령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반대로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그 명령을 왜곡하고 이기적으로 변질시켜서 자신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어그러진 길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두가지입니다;

2)    하나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만의 수호신으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선민임을 자랑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러한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만을 보호하고 구원하여 주는 자신들의 수호신이며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진노하시고 저주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하나님말씀의 정확한 뜻이 아니라 그들 선민만의 제한적인 구원 사상이며 이기적인 선민중심사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훗날 그리스도께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하나님말씀의 뜻이라고 복음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또 하나는,  우상을 도입하여 섬기는 것을 합리화하는 경우입니다. 선민인 자신들은 세상적인 이익과 육신적인 욕심을 따라서 우상을 도입하여 제사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여호와를 최고의 신으로 종교적으로 섬기기만 하면 여전히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범신론적인 우상문화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택하고 만 것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탐욕을 이루고자 세상을 사랑한 그것이 그들의 어그러진 선택인 것입니다.  

(3)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14:10c); 어째서 여호와께서는 어그러진 선택을 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선민들의 발걸음을 그 자리에 묶어버리거나 강제로 되돌리지 아니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1:26-27). 선택의 자유가 없으면 로봇과 같습니다. 사람은 로봇을 만들지 몰라도 하나님은 사람을 로봇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민의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떠나 잘못 선택하였기에 그 사실을 정확하게 선지자들을 보내어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부정적입니다. 그들이 완강합니다. 여호와의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서 한세상 제마음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의 최종적인 선택까지 존중을 해주어야 할 시점입니다. 

(4)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14:10d); 축복의 언약과 저주의 언약 가운데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택한 것은 후자입니다. 그러므로 저주의 언약이 발동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는 조치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선민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14:10d)라는 말씀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그에 따라 두가지 불이익이 밀어 닥치게 됩니다; ①하나는, 죄 사함의 제사가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②또 하나는, 그들의 나라를 보호하고 그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조치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5)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14:10e); 아무리 번제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려도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가 가축을 제물로 드린 그 제사로 말미암아 용서함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탕감하지 아니하시고 전부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그 죄가 그 옛날 아모리 족속의 경우처럼 여호와의 관용과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15:16) 마침내 그들에게 기업으로 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처벌이 임하게 됩니다(왕하17:19-23, 21:11-15).

둘째로,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14:11);

(1)  모세오경을 살펴보면 모세가 두번이나 전멸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께 간절하게 중보 기도하여 살려내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시내 산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섬기면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인 경우입니다(32:1-8).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하고 있는 십계명을 그대로 어기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전멸시키고 모세의 자손만으로 새로운 선민을 만들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32:9-10). 그때 모세는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도 좋으니 부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32:11-14, 30-32).

2)    여호와께서는 당장은 용서하지만 그들의 죄는 훗날 보응할 때가 되면 반드시 보응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32:33-35). 그 보응할 때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때이며 그들의 죄짐은 그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시는 것입니다(1:29, 3:13-17). 다만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이 죄인임을 주님 앞에 인정하고서 그 제자로 한평생을 살아감으로써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은 그들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3)    또 하나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10정탐꾼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불신하고 모세와 아론을 불신임하여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온 길로 되돌아가고자 한 경우입니다(13:30-14:4).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포기하고 광야로 들어가서 주변의 약한 민족들의 땅을 빼앗아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선택입니다.

4)    그것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인처럼 살아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전염병으로 전멸시켜버리고 모세에게 새로운 선민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14:11-12). 그때 모세가 간절하게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14:13-19). 여호와께서는 그때에도 모세의 기도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응답하십니다. 당장에 전멸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성세대가 광야에서 죽고 그 자녀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마음을 돌리십니다(14:20-38).

(2)  그런데 모세의 중보의 기도를 두번이나 받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드리는 중보의 기도를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1)    그 이유는 100년 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한 것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북쪽의 이스라엘 10지파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등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살았기 때문에 그 나라가 망하고 앗수르의 변경으로 끌려가고 말았는데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똑같은 죄악을 여호와 앞에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7:13-15, 왕하17:19-20).

2)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왕하21:11-14). 그리고 육신적인 향락과 사치를 즐기고 힘이 약한 자를 해치면서 착취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왕하21:15-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공의의 정신에 따라서 남조 유다 왕국도 멸망을 당하게 하고 그 백성을 이방 강대국의 포로가 되게 하고 마시는 것입니다(왕하23:25-27).

3)    그렇게 벌써 결론이 나고 있기에 선지자 예레미야의 중보의 기도는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맙니다;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14:11). 그러나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구원의 복을 구하는 그러한 중보의 기도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가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그의 동족들에게 임하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기근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14:12);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14:12a); 신실한 선지자들이 정직하게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끝까지 듣지 아니하고 선지자들을 해치게 되면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가 외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동족들이 외면하고 예레미야마저 배척하고 맙니다(11:19-23, 38:24-28). 그들의 귀에는 달콤한 거짓선지자 하나냐의 말이 듣기가 더 좋기 때문입니다. 하나냐는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과 맞선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다고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거짓 예언을 유다 왕국에 퍼뜨리고 있습니다(28:1-4). 그러한 거짓선지자의 말에 현혹이 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선민의 자리에서 쫓아내고 동시에 저주의 언약이 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금식을 하고서 여호와께 구원을 호소한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14:12a).

(2)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14:12b);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일을 하는 선민이 된 것입니다(19:4-6). 그러므로 그들의 제사장들은 여호와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민들은 이방인들의 속죄를 위하여 모두 제사장의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벧전2:9). 그것이 제사장나라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이 이제 선민의 자격을 상실하고 맙니다 따라서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고 있는 속죄의 제사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예레미야가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14:12b)고 정확하게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  기근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14:12c);

1)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기쁘고 즐거운 것이지만 그 반면에 그 심판하심은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 심판만 보더라도 다음과 같이 심각한 것입니다; ①첫째가 전쟁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②둘째가 천재지변에 따른 가뭄과 기근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③셋째가 전염병이 발생하여 그 재앙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러한 역사적인 심판 뿐만이 아닙니다.

2)    그렇게 이 세상에서 목숨이 사라지고 육신이 망하는데 그치지를 않습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고 영벌을 받게 되는 하나님의 최종심판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10:28, 5:27-29). 그러므로 이 세상을 멸망하는 심판이 아니라 영생의 구원을 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누구나 인생 가운데 반드시 경청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25:31-46, 22:28-30, 3:13-17, 5:24-29, 6:37-40, 11:24-26). 

결론적으로, 축복의 언약과 저주의 언약 가운데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후자를 선택하고 맙니다. 창조주의 말씀을 따르는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만족시키고자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달려가는 그들의 발걸음을 돌이키고자 여호와께서 아무리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를 종용했지만 막무가내입니다.

그 결과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선민의 나라를 버려버리고 그들의 죄사함의 길을 없애 버리고 마십니다. 따라서 선지자의 중보의 기도도 그들의 금식과 번제물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그들이 다시 구원의 길로 나아올 수가 있게 될까요?

여호와의 엄청난 진노와 저주를 감당할 수 있는 대속자가 이 세상에 와야만 합니다. 피조물인 사람으로는 그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성육신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제는 그 사실을 믿고서 구원의 복음을 성도들이 땅끝까지 전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복음의 사역자로 끝까지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