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70강(렘12:5-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7월 30일(월)
여호와께서 선민 유대인들을 버리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렘12:5-8)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이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명령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그들이 어째서 반역을 일삼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먼저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해보고서 본문의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첫째로, 모세오경에서 여호와께서는 선민과 맺은 언약을 강조하십니다. 그 언약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첫째, 일찍이 창세기 제12장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맺은 여호와의 언약이 그 원형이 되고 있습니다. 그 핵심내용은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이방 땅에서 살아가게 되면 그 땅에 여호와의 복이 그를 통하여 흘러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창12:3). 그것은 은연중에 이방 땅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신앙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키고 시내 산 앞에서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수많은 족속 가운데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의 백성으로 삼은 이유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출19:4-6). 제사장나라는 선민 모두가 이방인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방인들이 여호와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선지자 요나처럼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만 합니다(욘3:1-10).
(2) 둘째로, 여호와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선민으로 삼으시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을 여호와와 맺은 언약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명령을 실천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이며 대대로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입니다(신4:1, 6:1-3). 반대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육신적인 탐욕을 이루고자 하면 그 기업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신8:18-20).
2) 둘째, 어떻게 하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명령을 실천할 수가 있을까요?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원하지만 세상적인 욕심과 육신적인 정욕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으므로 실제 삶에 있어서 참으로 어렵습니다(롬7:21-2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여호와의 말씀을 십계명과 율법으로 간추려서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전해주는 한편 그 신앙생활의 비결을 또한 말씀해 주십니다.
3) 셋째, 그 신앙생활의 비결이 바로 자신이 여호와의 종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고 모든 일을 주인의 뜻을 받들어서 그 앞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창17:1). 그것이 육신의 할례의 의미를 넘어서는 ‘마음에 할례’라고 하겠습니다(신10:12-22). 그때부터 선민은 더 이상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 그리고 판단을 내려놓고 오로지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고 도와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역사를 하십니다. 항목을 달리하여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3) 셋째로, 사람들이 스스로 이 세상의 주인이며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여기고 살아가게 되면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그 명령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가 뚜렷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의 비결은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여호와 앞에서 한결같이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것입니다(창17:1, 롬7:25, 8:1-6). 그때 여호와께서 영적으로 선민과 함께 동행하시는 놀라운 영적인 삶이 가능합니다(롬8:11-18);
1) 첫째, 그와 같은 이치를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에서부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2) 둘째, 사도 바울은 그의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면서 여호와 앞에서 그 종으로 살아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는 자가 진정한 선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롬4:16-18).
3) 셋째, 예수님께서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신 인물입니다(사53:1-12).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3년 6개월간 공생애를 사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멸망의 심판이 아니라 영생의 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천국복음으로 선포하십니다. 나중에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창조주의 능력으로 부활하십니다(눅24:44-48).
4) 넷째,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주님의 제자로 끝까지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성도들에게는 성령님께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는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눅24:49, 행1:8, 2:1-4). 그것은 성도들이 육신의 탐욕을 이기고 여호와의 종으로 복음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주님을 말씀 가운데 만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그것이 여호와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요4:23-24).
그런데 본문에서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렘12:8).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고 그를 죽이고자 합니다(렘11:19).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나라를 망하게 하고 이방 땅에서 고난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렘11:22-23, 12: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첫째로,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렘12:5-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렘12:5);
1) 오늘날 국제사회에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이 서로 무역을 하면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두가지의 경쟁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개발도상국이 이웃하고 있는 개발도상국과 경쟁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것은 한번 경쟁해볼 만한 구도입니다. 서로가 기술력과 자본력이 비슷하므로 경쟁이 가능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보행자와 보행자 사이의 경쟁’과 같은 것입니다(렘12:5a). 물론 약간 뒤처진 자가 앞선 자를 따라 잡기에는 힘이 벅차고 피곤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심기일전하여 전력투구를 한다면 추월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2) ②또 하나는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 경쟁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것은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의 구조가 아닙니다. 기술력과 자본력 등 여러 측면에서 양자는 너무나 힘의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초등학생과 대학생이 아무런 조건이 없이 맞상대를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국제관계에서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또는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그 수준의 차이를 감안하여 배려를 해주는 법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강자가 약자를 먹이로 삼는 ‘정글의 법칙’만이 작동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에서는 “보행자가 말을 탄 자와 경주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렘12:5b).
3) 그동안 마지막 선민의 나라인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강대국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했지만(왕하17:1-7) 유다 왕국만은 여호와께서 사자를 보내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그 성을 구해준 것입니다(왕하19:34-35). 따라서 앗수르제국이 신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때까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은 더 이상 외침(外侵)을 당하지 아니하고 “평안한 땅에서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렘12:5c).
4) 그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유다 왕국을 건져주고 앗수르의 공격을 막아준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 주변국에 여호와신앙의 본을 보여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뜻을 받들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자신들의 의로움과 능력으로 앗수르를 물리쳤다고 자랑하면서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세상적인 탐욕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히스기야처럼 마지막 순간에 예루살렘성전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기만 하면 또다시 적군을 하나님께서 물리쳐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안일하게 살고 있으므로 앗수르의 뒤를 이은 강력한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오게 되면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신바벨론의 군대의 침략을 “요단 강물이 넘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렘12:5d).
(2)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렘12:6);
1)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두가지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①하나는, 선민사회에서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이 사라지고 서로 속이고 거짓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형제 사이에서도 서로 믿지를 못하는 불신사회가 되고 있습니다(렘12:6a). ②또 하나는,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여호와께서 그 수호신이 되고 계시므로 이방 강대국이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결코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하는 거짓선지자의 말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어서는 안되는 달콤한 유혹의 거짓말입니다(렘12:6b).
2) 구체적으로, 선지자 하나냐와 같은 자들이 신바벨론의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능히 물리칠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냐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그러한 승리의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고 왕과 귀족들 그리고 유다의 백성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렘28:1-4).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들려주시는 여호와의 말씀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고 있으며 회개할 줄을 모르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여호와께서는 벌써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나라는 망할 것이며 백성들은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고난의 세월을 지내게 될 것입니다(렘7:15, 9:15-16).
둘째로,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 내 소유가 숲속의 사자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내므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렘12:7-8);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렘12:7);
1)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시 한번 여호와의 결정사항을 동족들에게 그대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①첫째, 선민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나라와 땅을 이방인 강대국에게 넘겨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렘12:7a). ②둘째, 조국이 망하고 선민 유대인들은 원수의 나라로 끌려가서 그들을 섬기며 고난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렘12:7b).
2)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키고 시내 산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께서는 어째서 그러한 비극적인 결정을 내리고 마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선민 유대인들이 100년전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이스라엘 10지파처럼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죄악이 만연한 사회를 만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렘7:8-15, 왕하21:11-14). 그 점을 다시 한번 알기 쉽게 다음 구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렘12:8).
(2) “내 소유가 숲속의 사자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내므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렘12:8);
1) 고대국가에서 왕국의 모든 것은 왕의 소유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에 있어서 모든 것은 여호와의 소유입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 있어서 주권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모든 선민들은 여호와의 소유물인 종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적반하장격의 역사가 선민의 나라에서 자행이 되고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왕이시며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을 도모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다 왕국의 주인이며 이 세상의 주권자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신상을 도입하여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2) 우상이란 기본적으로 사람이 만든 가짜 신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자신의 주인인 사람이 원하는 대로 그 소원을 이루어 주는 종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램프의 요정 지니’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이 우상문화에 빠져서 그만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의 하나로 여기고 맙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여호와의 주인이고 하나님은 자신들의 요구대로 구원과 축복을 가져오는 도구로 인식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마4:5-7). 그와 같은 의미가 “내 소유가 숲속의 사자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내므로”(렘12:8a)입니다. 그러한 반역을 도모하고 있는 자들을 여호와께서는 미워하며 멸망시켜버리고 마는 것입니다(렘12:8b).
결론적으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민족적으로 계승한 것입니다. 그 점을 다시 한번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을 아비 데라의 집을 떠나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그를 강력하게 보호하여 줄 것이며 이방 땅에 하나님의 복이 흘러 넘치는 통로가 되게 하겠다고 언약하십니다(창12:1-5). 마찬가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이방 땅에서 살아가게 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대대로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출19:4-6, 신6:1-3). 그러므로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구원의 말씀을 전파하고 그들을 위하여 죄 사함의 제사를 드려주는 것이 선민들의 책무입니다.
(2) 둘째,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이루어 주시는 주체인 여호와의 능력을 믿고 여호와신앙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믿고서 모든 세상적인 의심을 물리치고 맙니다(창15:6). 그것이 여호와께로부터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믿음의 의’입니다(롬4:13).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언약대로 이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언약을 의심하고 그 능력에 대하여 회의를 하게 되면 실족하고 맙니다.
(3) 셋째, 여호와의 언약 안에 끝까지 머물 수 있는 비결은 여호와 앞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항상 여호와 앞에서 그 뜻을 묻고 신실하게 실천하는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그 인생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창17:1). 그러므로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시며 인간역사의 섭리자이신 여호와 앞에서 그 종으로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하고 그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 여호와의 언약을 성취하는 길이며 올바른 믿음 생활입니다.
(4) 넷째, 여호와께서 주신 모든 것을 여호와의 뜻에 따라 바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부활과 영생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그와 같은 믿음을 아브라함이 지니고 있는지 여호와께서는 모리아 산에서 시험하십니다(창22:1). 아브라함이 그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여호와 경외자’라는 칭호를 얻고 있습니다(창22:12). 선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의 가장 귀중한 것을 그 주인이신 여호와의 뜻대로 사용하겠다고 하는 결단이 있을 때에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의 기업을 얻을 수 있는 영광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히11:13-16).
모든 여호와의 언약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역사 가운데 소위 ‘새 언약’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렘31:31-34). 그러므로 이제는 성도들의 차례입니다.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여호와 앞에서 믿음생활을 영위할 때에 주님께서 먼저 얻으신 그 모든 영광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눅22:28-30, 롬8:11-18, 빌3:9-12).
결국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준 여호와의 언약은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민족적으로 계승이 되었다가 이제는 주님을 통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승계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호와 앞에서 주님처럼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언약의 성취를 얻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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