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69강(렘12: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1. 22:02

예레미야 강해 제69(12: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729(주일)

 

선지자를 박해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의 사회가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예레미야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12:1-4)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자신을 박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본문 앞에서 벌써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11:18-21). 그리고 선지자의 외침을 배척한 그들 선민들이 어떠한 운명을 맞이하고 마는지에 대해서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1:22-23).

그 다음에 본문에 들어와서는 예레미야가 선민 유대인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잘못된 현실에 대하여 여호와께 말씀을 드리고 그 답변을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12:1-2, 4). 그리고 여호와께 훗날 동족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12:3).

먼저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는 내용과 자신의 솔직한 마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예레미야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하여 판결을 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항상 공의의 원칙에 따라 정확하게 말씀하여 주시는 줄 잘 알고 있습니다(12:1a). 그러나 선민 유대인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아니하신 것만 같아서 그 이유를 여호와께 질문하고 있습니다(12:1b).

(2)  둘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께 여쭙고 있는 구체적인 질문과 그에 관련된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인 예레미야 자신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12:1b).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    둘째, 선민 유대인들이 마음은 여호와께 멀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율법을 잘 지키는 척 가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12:2). 그들을 언제까지 내버려 두실 것입니까?

3)    셋째, 유대인들이 여호와께서는 자신들이 무슨 일을 행하든지 그 일에 관심이 없으시다고 생각하면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12:4c). 선민들의 악한 행동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모든 것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12:4b). 언제까지 그냥 보고 계실 것입니까?(12:4a)

(3)  셋째로, 선민 유대인의 사회에 있어서 악한 자가 번성하고 부귀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약한 자는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정의를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사회와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12:3a). 그렇지만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주시고 부디 조국이 망하고 쫓겨나게 되는 그들에게도 장차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12:3b).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12: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12:1a);

1)    여기서 변론’(辯論)이라고 하는 법정에서의 용어를 예레미야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민 유대인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가지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그 판결을 구하고 있습니다(12:1aa). 그때마다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의 입장에서 공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의로운 판결을 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12:1ab).

2)    참고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판단의 기초로 삼고 계시는 공의’(公義, righteousness)는 피조물인 인간들이 그들의 법정에서 의로운 것으로 선언하고 있는 정의’(正義, justice)와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정치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숭고한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는 집단 이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3)    정의는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는 의로운 것이지만 다른 집단이나 적대국에 있어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극단적인 경우에는 두 나라가 적대국이 되어 전쟁을 하면서 서로가 자신들이 정의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에 비추어 보게 되면 악행인 것입니다.

(2)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12:1b); 그렇다면, 피조물인 인간들은 자신들이 소속하고 있는 나라나 지역에 있어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선민 유대인 사회에서 악한 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있으며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 자가 부귀영화를 얻고 평안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12:1bb).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데 도대체 선민의 사회에서 어떻게 그러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12:1bc) 예레미야가 직접 여호와의 답변을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12:1ba).

둘째로,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12:2);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12:2a);

1)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 앞으로 인도합니다(19:1-2). 그곳에서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면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민족적으로 계승하게 합니다. 그 내용은 여호와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19:4-6). 그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십니다(12:2aa, 8:1). 본래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죄악을 너무 범하여 그만 하나님의 관용의 한계를 넘어서고 맙니다(15:16).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들 원주민들을 쫓아내고서 그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준 것입니다(9:4-5).

2)    가나안 땅을 선민들에게 주신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그 땅에서 여호와의 언약을 실천하는지를 보고자 하십니다. 선민들이 그 땅에서 풍요를 누리고 살면서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이고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기꺼이 전해주고자 하는지를 보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다윗대왕을 통하여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도록 역사하십니다(12:2ab).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신들을 택하신 여호와의 뜻을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그저 자신들보다 힘이 약한 주변의 이방인들을 쳐서 속국의 백성으로 만들고 조공을 받기에 급급합니다. 그것은 결코 여호와께서 선민들에게 원하시는 열매가 아닙니다(12:2ac).

(2)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12:2b);

1)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인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서 그만 영적으로 타락하고 맙니다.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신과 우상을 도입하여 제마음대로 욕심껏 섬기고 있습니다(12:2bb). 여전히 율법이 정한 바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키고 있지만 그것은 형식적입니다(12:2ba).

2)    그들의 진짜 마음속 소원을 여호와가 아니라 우상에게 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판정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우상이 훨씬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우상이란 그저 제물만 많이 바치고 정성을 보이면 어떠한 개인적인 탐욕스러운 소원이라도 들어준다고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셋째로,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께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옵소서”(12:3); 다음과 같이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께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12:3a);

1)    여기서 감찰이라고 하는 말은 그 뜻이 시험’(試驗, test)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가 있습니다; ①첫째,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가 어떠한 성품의 사람인지를 이미 알고서 그를 하나님말씀의 대언자인 선지자로 삼으신 것입니다(12:3aa). ②둘째,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는지를 보고 계십니다(12:3ab). ③셋째,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는 과정에서 예레미야가 동족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11:19). 선민들이 여호와의 말씀 듣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욕심껏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소원을 성취하고 싶은데 그 옆에서 예레미야가 회개하라고 자꾸만 외치고 있으니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2)    선지자인 예레미야는 심지어 입을 다물지 않으면 아예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협박을 고향에서 받고 있습니다(11:19, 21). 그러한 처지에서 예레미야의 마음에는 어떠한 생각이 들고 있을까요? 여호와께서는 그 마음속을 들여다보고서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합격인지 아니면 불합격인지를 판단하십니다(12:3ac). 예레미야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은 모든 억울한 일을 오로지 여호와께 맡기고 그 의로우신 판단만을 구하고 있으므로(11:20) 주께서 그 사실을 아시고 자신의 마지막 중보의 기도를 부디 들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2:3b).

(2)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옵소서”(12:3b); 선지자 예레미야의 위대한 중보의 기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양을 잡는 날에는 모든 선택된 양들이 제물이 됩니다(12:6). 그것은 속죄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영적으로 타락한 선민들이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스스로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12:3ba). 날이 이르게 되면,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마지막 남은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유대인들이 도륙이 되는 것입니다.

2)    둘째, 제물로 사용이 되는 양은 본래 자신의 죄가 아니라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로 사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두가지 의미의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3)    하나는, 부디 많은 사람의 죄짐을 지고 가는 대속자 그리스도를 선민사회에 보내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하여 달라는 간구입니다(12:3bb).

4)    또 하나는, 가까운 장래에 대한 기도입니다. 미구에 적병들이 선민들을 도살하는 와중에서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백성들을 부디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 간절한 중보의 기도입니다(12:3bb).

넷째로,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12: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12:4a); 여기서 예레미야는 두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가나안 땅이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면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땅에 살고 있는 것들이 함부로 약한 자를 해치고 있으므로 많은 무죄한 자의 피가 땅으로 스며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노아 시대에는 여호와께서 그 모습을 보고서 아예 땅을 함께 처벌하신 적이 있습니다(6:12-13).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땅이 부디 그렇게 공동운명으로 처벌이 되지 않도록 미리 호소를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2:4aa, 4:11).

2)    또 하나는, 가나안 땅의 동식물들이 여호와께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악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자신들마저 함께 멸망을 시켜버릴까 두렵다는 것입니다(6:7, 7:11-12). 그러므로 부디 그 땅의 거주민만 심판을 하시고 자신들은 그냥 그 땅에서 살 수 있도록 보호를 요청하는 하소연입니다(12:4ab).

(2)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12:4b); 예레미야가 선민 유대인들의 불신앙의 죄악이 어느 정도인가를 단 한절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는 창조주에 불과할 뿐 지금 이 세상의 운영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역사적으로 심판하신다고 예레미야가 외치고 있는 것은 전부 거짓말인 것이다(Moreover, the people are saying, ‘He will not see what happens to us)”(12:4b의역과 NIV).

결론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 그대로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주전 586년 시드기야 왕 11년에 신바벨론제국 원정군에 의하여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맙니다(왕하25:1-7).

선민 유대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심판도 하시고 훗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수도로서 새 예루살렘성까지 창조를 하십니다(65:17-18, 21:1-2).

이제 남은 문제는 그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누가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누가복음 제22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나의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는 길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인생의 목표를 이루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