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5강(눅16:1-3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7년 12월 21일(목)
1. 관리위임을 받은 재산을 낭비하고 있는 청지기를 불러 주인이 해고통지를 하자 그 청지기는 어떠한 곤경에 처하고 있으며 어떠한 살길을 마련하고 있는가?(눅16:1-6) 그리고 그것이 ‘탕자의 비유’(눅15:11-32)의 속뜻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눅16:8-13)
(1) 주인이 청지기를 해고하고 있는 이유(눅16:1-2);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눅16:1-2);
2) 한 마디로, 청지기가 주인이 맡긴 소유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해고를 당하고 있는 것임. 그것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탕자와 같은 것임(눅15:11-13).
(2) ‘탕자의 비유’의 깊은 의미를 밝히고 있는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에 대하여;
1) 예수님께서는 모인 회중에게 천국복음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전하신 다음에는 가능하면 그 속뜻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조용히 풀이를 해주시고 계심. 예를 들면, ‘씨 뿌리는 비유’의 경우가 그러함(눅8:4-8, 9-15).
2) 따라서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선민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다음에(눅15:11-32), 그 숨어 있는 뜻에 대하여 ‘옳지 않은 청지기’에 대한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쉽게 풀어서 가르쳐 주시고 계시는 것임(눅16:1-13).
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깨우쳐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의도는 다음과 같은 것임; ①첫째, 둘째아들처럼 아버지의 재산을 낭비하고 탕진하는 것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임. ②둘째, 그러나 더 옳지 아니한 일은 그 재물을 관리하도록 맡긴 주인의 진정한 뜻을 모르고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임. ③셋째, 우연하게도 그 재산을 낭비하던 청지기가 제 살길을 구한답시고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임. ④넷째, 그것이 재산을 관리하게 한 주인의 뜻에 들어맞고 있다는 것임. 따라서 오히려 주인에게서 칭찬을 받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임(눅16:8).
4) 그러므로 여기서 알 수 있는 일이 다음과 같은 것임; ①첫째, 하나님께서 청지기에게 맡기신 일은 재물을 관리하는 것 이전에 주인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서 그것을 실천하는 종이 되라고 하시는 것임. ②둘째, 사람에게 인생을 허락하시고 재능과 재물을 주시는 이유는 그것을 가지고 창조주의 뜻을 실천하라는 것임. ⑧셋째, 창조주의 뜻은 공의의 정신의 실천인데 그것은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라는 것임. ④넷째, 그러므로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빚을 탕감해주고 고단한 인생들에게 살길을 모색해주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임.
5) 그와 같은 내용이 예수님의 ‘충성된 종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의 풀이에서도 다음과 같이 밝혀지고 있는 것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마24:45-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40).
(3) 그 청지기가 마련하고 있는 자구책(눅16:3-6);
1)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100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50이라 쓰라 하고”(눅16:3-6);
2) 주인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주게 되면 훗날 청지기에게 고마워서 보은(報恩, 은혜를 갚는 것)을 하지 아니할까 생각한 것임. 따라서 과감하게 사람들이 주인에게 지고 있는 빚을 탕감해주고 있는 것임.
3) 그것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것임; “소자에게 살길을 마련해주게 되면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 주신다는 것임”(마25:40 의역). 그러므로 빚을 탕감 받은 자가 해고된 그 청지기를 대접해주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재산과 재능과 인생을 맡긴 하나님의 의도대로 잘 사용한 그 청지기에게 대신 갚아 주시는 것임(눅22:28-30).
2. 청지기가 스스로 마련한 자구책이 주인에게 도리어 지혜가 있는 행동이라고 칭찬을 받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눅16:7-9)
(1) 기름을 빚진 자와 밀을 빚진 자(눅16:5-7);
1)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100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80이라 쓰라 하였는지라”(눅16:7);
2) 기름 100말을 빚진 자를 절반으로 탕감시켜 준데 이어서 밀 100석 빚진 자에게 20%를 탕감시켜 주고 있는 것임.
3) 그런데 여기서 기름과 밀은 전부 사람들이 먹고 사는데 가장 필요한 것들임. 예를 들면, 선지자 엘리야가 흉년을 피하여 시돈에 속한 사르밧 과부의 집에 이르렀을 때에 그 집에 밀가루 한 웅큼과 기름 조금 밖에 없는 것임(왕상17:7-12). 하나님께서 그 밀가루와 기름에 복을 주셔서 화수분처럼 솟아나게 하여 그 과부의 모자간 그리고 선지자 엘리야까지 흉년을 견딜 수 있게 하신 것임(왕상17:13-16).
4) 그러므로 여기서 밀과 기름을 많이 빚을 졌다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부자에게 외상으로 양식과 식용유를 빌려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임. 따라서 청지기가 자구책으로 우연히 그 빚을 탕감해주고 있는 것이 그 가난한 자들에게 살길을 모색해주고 있는 것임.
(2)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를 칭찬한 이유(눅16:8-9);
1) 첫째, 하나님의 뜻은 흉년으로 빚을 지게 되는 자들을 구휼하고 빚을 탕감하여 살길을 열어 주시는 것임(창26:1-5, 47:15-25, 50:20). 그런데 우연히 그 불의한 종이 그러한 하나님의 속내에 해당하는 일을 실행하고 있는 것임;
2)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육신을 가지고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종)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천상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16:8);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빛의 자녀보다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서 살고 있는 하나님의 종이 더 지혜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과 그 육신의 고단함과 허무함을 동일하게 느끼고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임(히4:15-16). 그러한 체험과 긍휼함이 있기 때문에 마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일을 현실적으로 더 잘할 수가 있다는 것임.
3) 둘째, 하나님의 뜻은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임. 그러므로 청지기가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님.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재능과 재물 그리고 인생을 바쳐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라는 것임. 그러한 취지에 우연하게도 그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이 맞아 들어가고 있는 것임.
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눅16:9); ‘불의의 재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재능과 재물 그리고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전부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임. 그러므로 그것으로 고아와 과부, 레위인과 이방 나그네 등 생계의 위험에 처한 자(민18:21, 신10:18, 12:12) 곧 소자 하나를 주님의 이름으로 돌보아 주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상급을 반드시 얻게 된다는 것임(마25:40).
3. 이 세상의 재물이 어째서 불의한 재물인가?(눅16:9, 11-12) 그리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자에게 큰 것을 맡긴다고 하는데 그 큰 것이 무엇인가?(눅16:10-12)
(1) 이 세상의 재물이 어째서 불의한 재물인가?(눅16:9, 11-12)
1) 출애굽시킨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막을 짓게 하고 그 지성소 언약궤에 임재하시겠다고 말씀하심(출25:8-9, 22). 그때부터 선민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는 언약궤를 메고서 약속의 땅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임(출40:34-38, 수3:14, 6:4).
2) 하나님신앙을 상징하고 있는 언약궤에는 보물 세가지가 있는데 모세의 돌판, 만나가 담긴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임(히9:4). 그 세가지 보물의 의미가 다음과 같음; ①첫째, 십계명이 여호와에 의하여 돌에 새겨진 모세의 돌판은 여호와의 말씀을 의미하고 있음(출25:21, 34:29).
3) ②둘째, 항아리에 담긴 만나는 광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먹여 살리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의미하고 있음(출16:33-34). 그러므로 성도들의 생계를 위하여 필요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창조주께서 주신 것이라는 의미가 됨(눅10:4-8). 즉, 인생들에게 주고 있는 모든 것의 소유권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임.
4) ③셋째,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 12지파의 지도자로 세운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며 그 주권의 행사라는 것임(민17:8).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과 최종결정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것임.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며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임(민16:31-35, 17:10).
5) 그런데 탕자나 불의한 청지기는(눅16:11) 남의 것인(눅16:12) 주인의 것 또는 아버지의 것을 자신의 것인 줄 알고서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임(눅16:1, 9). 선한 청지기와 착한 아들은 반드시 자신의 소유물을 선하게 관리하도록 위임을 해주신 주인의 뜻에 따라서 재물을 운용해야만 하는 것임.
6) 환언하면, 인간에게 주신 재물도, 재능도, 그리고 인생도 모두 창조주 여호와의 것이므로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방침에 따라서 사용을 해야만 하는데 그 사실을 외면하거나 망각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탕자나 그 청지기가 낭비하고 있는 그 재물은 주인이신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불의한 재물이 된 것임.
(2)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자에게 큰 것을 맡긴다고 하는데 그 큰 것이 무엇인가?(눅16:10-12)
1)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눅9:10-12);
2) 첫째,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차례대로 두가지 있다고 말씀하심; ①하나는 지극히 작은 것인데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맡아서 또는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임. ②또 하나는 큰 것인데 그것은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임.
3) 둘째, 이 세상에서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창조주로부터 잠시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재능과 육신임. 그리고 잠시 관리위임을 받고 있는 것이 자신에게 맡겨진 재물과 권력임. 그러므로 그것을 가지고 본래의 주인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맡게 사용을 하라는 것임. 그것이 선한 청지기의 의무이며 하나님의 종의 선한 모습임.
4) 셋째, 육신을 입고서 사람들이 짧은 인생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간은 일종의 시험의 기간이라는 것임(눅4:1-2). 따라서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관리하고 사용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지극히 큰 것, 참된 것을 얻어서 자신의 것으로 영원히 누리게 된다는 것임.
5) 그것은 육신적인 것이 아니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적인 것이며 영생의 축복인 것임. 그리고 종말로 사라지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며 새로이 창조가 되는 하나님나라의 것이라고 하겠음(사65:17-18, 계21:1-7).
4. 집 하인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눅16:12-13)
(1) 지극히 큰 것 곧 영생을 자신의 것으로 얻자면 여호와의 종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가?(눅16:12-13a)
1)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눅16:12-13a); 그 깊은 의미가 다음과 같음;
2) 첫째,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청지기로 유한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심. 그것은 마치 둘째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사전에 재물을 나누어 준 것과 같음(눅15:12).
3) 둘째,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세계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창조주의 선하신 뜻을 실천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영생의 기쁨을 자신의 것으로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임.
4) 셋째, 반면에 주인이 맡긴 일에 충성하지 아니하게 되면 그것은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 또는 그것을 불의하게 사용하여 얻을 수 있는 세상적인 쾌락과 이기적인 향락을 선택한 것이므로 영벌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임(마25:30, 41-46).
(2) 천국으로 들어가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시험기간인 인생에 있어서 사람들은 어째서 하나의 선택만이 가능한가?(눅16:13b)
1) 시험에 있어서 정답은 하나밖에 없음. 구체적으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아는 것이 영생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하나밖에 없는 것임(요17:3).
2) 따라서 모세오경에서부터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선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계시는 것임;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1-5).
3) 그와 같은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본문에서 적고 있음;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b); 요컨대 재물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자는 영생에서 멀어진다는 것임.
5. 바리새인들의 신앙상의 문제점 네 가지가 무엇인가?(눅16:14-18)
(1)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는 이유(눅16:14);
1) 주전 410년경 공식적으로 구약상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선민 유대인들이 십일조를(민18:21) 제2 예루살렘성전에서 봉사하고 있는 레위인들에게 주지 아니하여 생계가 어려워진 레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을 심히 안타까워하고 있음(말3:7-12).
2) 주전 140년경부터 레위인들을 대신하여 바리새인들이 사제간에 대를 이어가면서 율법선생인 랍비가 되어 백성들에게 히브리정경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음. 그들은 십일조를 받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음.
3) 그런데 바리새인들도 가족과 함께 생계를 유지해야 하며 율법선생으로서의 사회적인 품위를 지키기 위하여 돈이 필요함. 더구나 국내외에 자신들의 회당을 건립하고 그것을 운영하기 위하여 더 많은 돈이 필요함.
4) 그러한 실정을 잘 알고 있는 의사 누가가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16:14)이라고 적고 있다고 하겠음.
(2) 바리새인들의 신앙상의 문제점 4가지(눅16:14-18);
1) 첫째, 돈을 좋아하고 있음(눅16:14). 생계유지를 위하여 그리고 회당운영을 위하여 재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자들임. 따라서 재정마련을 위하여 백성들의 기부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으며 때로는 그 재정이 그들의 신이 되고 있는 것임(눅16:13).
2) 둘째, 사람들 앞에서 의롭다고 존경을 받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있음(눅16:15a).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다분히 사람들의 눈만 의식하고 있는 그러한 외식적인 율법생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미워하시는 것임(창17:1, 눅16:15b).
3) 셋째, 여전히 자신들이 율법의 의를 이루고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임(눅16:16a). 그런데 그것이 잘못된 믿음임. 왜냐하면, 오랜 율법의 시대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신앙을 버리고 제멋대로 여호와를 마치 우상처럼 섬기고 있기 때문임.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타락한 선민들에게 회개를 권면하고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까지 보내어 회개의 물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임(눅3:3, 16:16b).
4) 참고로, 율법의 의를 이룰 수가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대속의 십자가 앞에 서서 스스로 진심으로 회개를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음(눅16:16c).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고 여전히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임.
5) 넷째, 모세의 이혼증서의 율법규정을 어기고 제멋대로 손쉽게 이혼증서를 발부해주고 있는 것임(눅16:18). 모세의 율법을 보면 다음과 같음;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신24:1). 풀이를 하자면, 아내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였는데 그것을 남편이 도저히 용인하지 못할 것 같으면 부득이 이혼증서를 주고 집에서 내보내라는 것임.
6) 그와 같은 분명한 율법의 뜻을 제멋대로 확대해석하여 바리새인들은 남편이 기뻐하지 아니하는 일을 아내가 범하였을 경우에는 이혼이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쉽게 이혼증서를 써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것임.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계시는 것임;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 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눅16:17-18).
6.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부자가 죽어서 음부의 고통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가?(눅16:19-23)
(1)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 이유(눅16:20-22);
1)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나사로는 거지이며 장애자임(눅16:20a). 따라서 개가 자신의 헌데를 핥더라도 사지육신을 움직여서 그 개를 쉽게 쫓아버릴 수가 없는 형편임(눅16:21).
2) 더구나 나사로는 집에서 버려진 자임(눅16:20b). 따라서 부자의 대문 앞에서 평생동안 동냥으로 연명을 하다가 비참하게 죽고 마는 자임. 그런데 그렇게 비루한 인생을 살다가 죽은 나사로가 천국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임(눅16:22).
3) 평생을 거지로 그리고 장애자로 살아간 나사로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사야 제53장의 말씀을 비추어볼 때에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가 있음; “나사로가 평생동안 그 부자의 집 대문 앞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면서 그곳에 출입하고 있는 부자들을 향하여 고아와 과부, 생계가 어려운 레위인과 이방 나그네를 하나님이 보내어 주신 소자로 여기고 주님의 이름으로 돌보아주라고 외치고 있는 선지자의 모습과 같은 것임”(사53:1-11).
(2) 부자가 죽어서 음부의 고통에 들어간 이유(눅16:19-23);
1) 그 부자는 그래도 관대한 자임. 왜냐하면 종들에게 명령하여 거지 나사로가 보기에 흉하다고 번쩍 들어서 멀리 내버리라고 지시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임(눅16:20-21). 그러나 그 부자가 죽어서 음부의 고통에 들어가고 만 것임(눅16:23).
2) 그 이유는 그 부자가 평생을 통하여 거지 나사로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자신에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임. 그 부자는 하나님이 주신 세상적인 복으로 말미암아 부유하고도 존귀하게 살면서 세상적인 낙을 매일 누리고 있는 자임. 구체적으로, 매일 왕족이나 입을 수 있는 귀한 자색 옷을 입고서 상류층의 파티에 참석하여 향락을 즐기는데 여념이 없는 것임(눅16:19).
3) 그 부자는 한번도 자신의 신분과 재물이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그에게 맡겼으며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의 사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를 못한 것임. 그 때문에 참으로 창조주 여호와 앞에 무익한 종이 되어 죽어서 음부의 세계에 들어가고 만 것임.
4) 참고로, 그것은 제16장 전반부에 기록이 되고 있는 불의한 종의 경우와 좋은 대조가 되고 있음. 왜냐하면, 불의한 종이 우연하게 행한 그러한 탕감의 내용조차 전혀 발견할 수가 없는 매우 이기적인 일생에 불과하기 때문임.
7. 나사로가 부자를 도와 주기 위하여 음부의 세계로 건너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눅16:24-26)
(1) 그 부자가 겪고 있는 음부의 세계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가?(눅16:23-24)
1) 첫째,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꽃에 계속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므로 서늘한 물 한 방울이라도 자신의 혀에 적셨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임(눅16:24).
2) 둘째, 그러한 지옥이 자신이 죽은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현세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인생을 달리 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는 후회가 뒤늦게 자신의 가슴을 치고 있는 것임(눅16:28).
(2) 나사로가 음부의 세계로 건너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눅16:24-26)
1) 첫째, 평생 행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최종 판결이 이미 내려져 있는 상태이므로 그것을 번복할 수가 없는 것임. 구체적으로, 고난 가운데 평생 온몸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거지 나사로에게는 천국의 위로가 함께 하고 있는 것임(눅16:25b&c). 반면에 평생 하나님이 맡긴 재물과 신분을 그 주인이신 창조주의 뜻을 생각하면서 선하게 사용하지를 아니하고 오로지 자신의 부귀영화와 향락만을 위하여 이기적으로 탕진해버린 그 부자는 음부의 영벌에 처해지고 만 것임(눅16:25a&d).
2) 둘째, 물리적으로도 천국과 지옥은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건너갈 수가 없도록 창조주의 격리장치가 완벽하게 작동을 하고 있는 것임. 그것을 아브라함은 여기서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고 말하고 있음.
8. 아브라함이 나사로를 부자의 형제들에게 보내어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전해주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눅16:27-31)
(1) 나사로를 그 부자의 형제들에게 보낼 수 없는 첫번째 이유가 무엇인가?(눅16:27-29)
1)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5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 지니라”(눅16:27-29);
2) 첫째, 하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사후에 천국에서 상급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도록 벌써 조치를 하고 계신다는 것임.
3) 둘째,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음부의 세계로 보낼 수가 없듯이 마찬가지로 현세로도 보낼 수가 없다는 것임. 그것은 천국과 음부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천국과 현세 사이에도 건널 수 없는 큰 구렁텅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임.
(2) 두번째 이유가 무엇인가?(눅16:30-31)
1)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16:30-31);
2) 그 부자는 참으로 자신이 현세를 잘못 살았음을 철저하게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후회하고 있음. 따라서 단념하지 아니하고서 아브라함에게 부디 나사로를 현세에 살고있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보내어 달라고 다시 한번 선처를 요청하고 있음.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조치를 할 수가 없음. 그 부차적인 이유가 다음과 같음;
3) 첫째,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을 통하여 먼저 메시아가 오신다는 사실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회개와 대속의 은혜가 임하고 있다는 것임. 그러한 사실을 증거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누가복음 제24장에서 다음과 같음;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4-49).
4) 둘째, 장차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3일만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이므로 영생의 부활의 메시지가 하나님나라의 메시지와 함께 온세상에 전파가 될 것임(요3:13-18). 따라서 그 부자가 미리 절망할 필요는 없음. 자신의 형제들에게도 만약 그들이 오래 살고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와 영생의 부활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의 시대가 열릴 것이기 때문임.
'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7강(눅18:1-43)(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7.31 |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6강(눅17:1-37)(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7.30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4강(눅15:1-32)(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7.29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3강(눅14:1-3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7.28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2강(눅13:1-3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