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0강(눅12:1-3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7. 25. 19:54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0(12:1-3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7 11 16()

 

1.    유대 땅 예루살렘 근교에서 발생한 예수님과 서기관들 사이의 율법논쟁이 수만 명의 선민 유대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12:1a)

(1)  400여년 만에 예루살렘 근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율법논쟁임(3:2-18, 2:13-25);

1)    주전 410년경 히브리정경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가 선민 유대인들이 십일조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아니하여 예루살렘 제2성전에서 봉사하던 레위인들이 생계가 어려워져서 모두들 지방으로 떠나간 사실을 가슴 아프게 지적하고 있음(3:7-12).

2)    주전 142년부터 레위인들의 하스모니안 왕조가 성립이 되었지만 마카비 독립전쟁을 수행한 시몬이 왕과 대제사장직을 겸하자 레위인들 사이에 분열이 발생함. 왜냐하면, 솔로몬 시대부터 레위 가문 중 오직 대제사장 사독의 후손만이 대제사장 자리를 맡아오고 있는데 그 전통을 깨버렸기 때문임(왕상2:27, 35). 더구나 왕권과 대제사장의 직분을 모두 한 사람이 차지함으로써 강력한 권력의 독점이 성립이 되었기 때문임.

3)    그때부터 사독 후손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사두개인들, 히브리정경과 전승을 연구하여 백성들에게 율법교육을 시키는 일만 담당하고자 하는 바리새인들, 아예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떠나 광야와 외딴 섬 등에서 고행을 하면서 히브리정경을 묵상하고자 하는 엣세네인들이 나타나고 있음. 그러나 그들 사이에 율법논쟁이 격렬하게 발생한 것은 아님.

4)    그 대신에 주후 28년 경 요단 강 동편 베다니 마을에 나타난 세례 요한이 회개의 물세례를 백성들에게 베풀면서 선민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에 대하여 꾸짖기를 시작하고 있음(3:3-14). 그러나 얼마 후에 갈릴리 분봉 왕 헤롯 안디바에 의하여 감옥생활을 하고 참수를 당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선지자 세례 요한의 활동은 짧은 기간에 끝나고 있음(3:18-20, 6:27-29).

5)    그에 비해서 갈릴리에서 주로 복음사역을 하신 예수님의 남하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지방에 큰 충격을 주고 있음. 그 이유는 율법선생인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 백성들에게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강요하고 있어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은 위선적이며 가식적인 거짓 믿음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임(11:39-54).

6)    예루살렘과 그 근교마을에서 발생하고 있는 최근의 바리새인들과 예수님 사이의 율법논쟁에 선민 유대인들의 관심이 집중이 되고 있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창기에 예루살렘에서 성전청결사건을 일으키고(2:13-19), 갈릴리 지역에서 두 차례나  죽은 자를 살린 이야기가(7:11-17, 8:49-56) 유대 땅에 널리 전해지고 있어 백성들은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기 때문임(7:11-12).  

(2)  초막절 기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님이심(10:18, 11:1, 29, 7:10-15);

1)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작성하면서 공생애 후반에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남하를 하신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음;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7:2),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7:10),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7:14-16).

2)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예루살렘에서 지신 때는 누가복음을 참조하면, 주후 32 4월 중순의 유월절임. 그러므로 그 전 해인 주후 31 10월 초막절에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것임. 예루살렘에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고 숙식은 동쪽 근교 마을인 베다니에서 해결하신 것으로 보임.

3)    그러한 시기에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다가 율법논쟁을 하셨으며(11:37-52) 드디어 산헤드린 대 공회원인 서기관까지 그 논쟁에 참여를 하게 되자(11:53-54) 그 소문이 번져서 수만 명의 백성들을 불러들인 것으로 보임(12:1a).

 

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형식으로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율법생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며 수만 명의 유대인들에게 들리도록 직접 큰 소리로 말씀하시지 아니하신 이유가 무엇인가?(12:1b-5)

(1)  바리새인에 대한 비판을 공개리에 많은 백성들에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가 않기 때문임(12:1b);

1)    바리새인들은 크게 보아 세 그룹으로 나누어지고 있음; ①첫째, 청소년 때부터 랍비의 문하에서 율법공부를 하고 있는 생도들 ②둘째, 율법공부에 상당한 성취가 있어 30세 때부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이 된 랍비들 ③셋째,  랍비 가운데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많이 받고 그 이름이 유명하여 산헤드린 대 공회원이 되고 율법에 대한 유권해석의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소수의 서기관 등임.

2)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벌써 예루살렘과 그 근교마을에서 일반 유대인들은 물론 바리새인들의 존경까지 두루 받고 있는 서기관과 격하게 율법논쟁을 한 바가 있음(11:53-54). 그런 마당에 만약 수만 명의 백성들이 모인 장소에서 큰 소리로 바리새인들이 잘못 가르치고 있는 외식적인 율법생활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가는 그들의 공분(公憤)만 크게 사고 말 것임.

3)    백성들로부터 받는 존경과 명예를 중히 여기고 있는 바리새인들이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을 백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여  망신을 주게 되면  어떠한 난동을 피울지 모르는 상황임. 그것보다는 오히려 조용히 자신들의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하겠음. 그러한 선택을 여기서 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훗날 바리새인들도 선민 유대인들과 함께 모두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성도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라고 하겠음.

4)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모습으로 조용하게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율법생활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임(12:1b).

(2)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율법생활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12:2-5)

1)    첫째,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만 율법을 잘 지키고 보지 아니하는 곳에서는 지키지 아니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가식적인 행위로서 들통이 나기 마련인 것임. 왜냐하면, 감추인 것이 드러나고 숨긴 것이 알려지도록 하나님께서 역사를 섭리하시기 때문임(12:2).

2)    둘째,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어두운 구석에서 말한 것일 수록 광명한 곳에서 들리게 하며, 골방에서 나눈 밀담을 지붕에서 공표가 되도록 만드신다는 것임(12:3).

3)    셋째,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있는 하나님의 영적인 눈을 더욱 두려워해야 하는 것임. 왜냐하면, 권력자들은 사람의 목숨과 그 몸을 뺏는데 그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영혼까지 영벌에 처할 수가 있기 때문임(12:4-5).  

(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형식으로 말씀하신 것이 수 많은 백성들에게 들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1)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11:33); 사람들이 등불을 켜서 방안의 어두움을 밝히듯이 하나님께서도 말씀의 빛을 온세상에 비추기를 원하신다는 것임.

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비록 작은 목소리로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율법생활의 문제점을 제자들에게만 가르쳐준다고 하더라도(12:1b) 그것은 멀지 아니하여 모든 백성들에게 마치 누룩과 같이 퍼져 나가게 될 것임.

3)    여기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좋지 아니한 이중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이 백성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진다고 하는 의미임(12:1c).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의 말씀도 그렇게 전파력이 크다고 하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임(11:33, 12:3).

 

3.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철저하게 감찰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며 생명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와 같은 신앙을 가지면 되는가?(12:6-9)

(1)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철저하게 감찰하시는 이유(12:6-7);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지금도 온전히 창조의 목적대로 피조세계가 움직일 수 있도록 철저하게 감찰하고 또한 관리하고 계시는 것임.

2)    그런데 성경에서는 피조세계를 그냥 보수하고 유지하시는 하나님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님. 심판과 구원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서도 말하고 있는 것임(65:17-18, 3:16-17, 21:1-2).

3)    그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만민구원에 이어서 만물구원까지 이루어진다고 다음과 같이 로마서 제8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음;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8:16-22).

4)     요약을 하자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임; ①첫째, 유한한 피조세계에 대한 돌보심 ②둘째, 심판과 구원 ③셋째, 영생의 새 세상의 창조의 순서임.  

(2)  참새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보시는 이유(12:6-7);

1)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창조가 되고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임(1:26).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 있기에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이며 피조세계를 돌보고 경영할 수 있는 청지기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있음(1:26-28).

2)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심(2:7). 그러므로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되면 그 신원이 회복이 되어 옛날 에덴동산의 아담처럼 하나님과 함께 동거할 수가 있는 존재임(2:8, 3:9).

3)    참고로, “참새 5마리가 2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12:6)는 말씀에 있어서 앗사리온은 로마제국의 동전을 말하는데 그것은 16분의 1 데나리온에 해당함. 당시 1데나리온은 장정의 하루치 품삯임(20:2). 그러므로 오늘날 선진사회에서 일당 100불로 생각한다면 앗사리온는 6불 정도가 되는 금액인 것임.

(3)  인자 예수 그리스도가 맡고 있는 임무(12:8-9);

1)    장차 사라지는 하늘 및 땅과 함께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도록 되어 있음(20:14). 그러므로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가 아니면 영생의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함께 불못에 던져지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임(20:15).

2)    심판의 결과 영벌과 영생으로 나누어지고 있는데 그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음. 그리하여야 그들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을 듣고서 자신들의 삶에 대하여 책임 있는  선택과 행동을 할 수가 있는 것임.

3)    그 심판의 기준에 대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풀이하여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를 하시고 계심(11:27, 8:25-30). 그리고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인생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확실하게 보여주시고 계시는 것임(22:42, 8:29).

4)    따라서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를 보고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구원을 얻을 것인지 아니면 배척을 하고서 영벌을 얻을 것인지는(12:8-9) 이제 사람들 개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결과인 것임(30:19-20, 3:16-21). 그러한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12:8-9).

 

4.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율법에 관한 논쟁을 할 수는 있으나 성령님의 역사로 진리의 말씀이 예수님과 성도들의 입을 통하여 터져나올 때에는 논쟁을 삼가하고 조심을 해야만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12:10-12)

(1)  사람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의 특수성에 대하여;

1)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성육신하심. 그 목적은 세가지임; ①첫째, 모든 백성들과 동일하게 사람의 아들로 육신을 입고서 태어나 성장하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육신의 탐욕과 정욕을 물리치고 영생의 구원을 희구하는 인생을 살아가신 것임. ,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주신 것임.

2)    ②둘째,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풀이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으로 백성들에게 선포하시고 가르쳐 주심. ③셋째,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함으로써 죄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몸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고자 하신 것임.

3)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예수님은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의 영생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시는 대속자이시기에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올바른 선택과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기꺼이 그것을 감수하시고 계심(12:10a). 그러나 인자가 아니신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것이 아님(12:10b).  

(2)  영이시며 말씀과 능력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비난하게 되면 피조물은 곧 바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임(12:10-12);

1)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12:10-12);

2)    인자’(人子, son of man)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심; ①첫째, 대속자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서 오신 인자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비방과 모욕을 감수하시고 그 죄 사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심.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고 있는 성령님은 다르심. 피조물이 감히 비난하거나 모독할 수가 없음. 그리하면 영벌에 처해지는 것임.

3)    ②둘째, 장차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진심으로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성령님께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실 것임(14:16-17. 24:44-49, 1:8, 2:1-4). 그리하면 선민 유대인들에게나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무엇을 전파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실 것이라는 말씀임(12:10).

4)    감히 인간들이 비난하거나 배척하거나 모독해서는 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임재를 장차 경험하게 되는 성도들이야 말로 권능을 가진 복음의 전파자와 목양자가 될 것임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해주시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음(1:8, 8:2, 38-39).

 

5.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재산상속 다툼에 관여하지 아니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며 사람의 생명이 넉넉한 재물보다 더 귀중한 이유가 무엇인가?(12:13-15)

(1)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재산상속 다툼에 관여하지 아니하시는 이유(12:13-14);

1)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12:13-14);

2)    출애굽의 지도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신정국가의 율법으로 전달한 바가 있는 모세는 백성들의 송사를 율법에 비추어서 재판을 한 바가 있음(18:13-16). 그 전통은 여호수아에게 그리고 사사들에게 이어지고 있음(24:25, 4:5).

3)    선민 이스라엘의 왕들도 동일하게 백성들의 송사를 다루었으나 그들이 완벽하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지혜에 의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임(왕상3:25-28). 세월이 갈 수록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왕들의 지혜와 법전에 의존하고 있는 것임.

4)    그러한 전통과 선례들이 있기에 유대인 한 사람이 예수님께 재산의 상속에 관한 판결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음(12:1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그러한 세상 재물의 분배에 관여하고자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심(12:14). 그 이유는 이기적인 현세의 복을 추구하고 있는 선민사상과 유대교를 개혁하여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을 바라보게 만들고자 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시기 때문임.

(2)  사람의 생명이 넉넉한 재물보다 더 귀중한 이유(12:15);

1)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12:15);

2)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탐심을 이루는 것이 결코 생명을 얻는 길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선포하시고 계심. 자신의 탐심을 성취하고자 인생을 사용하게 되면 죽음에 이르고 만다는 것임(1:15).

3)    그 반대로, 세상적인 육신적 탐심을 버리고 사람의 생명이 돌아가야만 하는 그 영생의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임(11:16). 그러한 마음가짐이 사람들의 영생구원을 위하여 먼저 필요하다는 사실을 차제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계심(12:16).  

 

6.    한 부자의 비유의 내용과 그 의미가 무엇인가?(12:16-21)

(1)  한 부자의 비유의 내용(12:16-21);

1)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12:16-17); 예수님께서 한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심. 한 해 풍년이 크게 들어 그 부자의 경우 창고에 더 이상 쌓아 둘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임.

2)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12:18); 그렇게 대풍(大豊, 큰 풍년)이 들었으면 두가지 곡식을 처리하는 방법이 있음; ①하나는 가난한 이웃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는 방법임. ②또 하나는 이기적으로 그 복을 혼자 누리겠다고 곳간을 증축하는 것임. 그 가운데 그 부자는 후자를 선택하고 있음.

3)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12:19); 그 부자는 여러 해 먹고도 남을 곡식을 새로 증축한 창고에 그득하게 쌓아 두고 보니 너무 기분이 좋음. 따라서 현세적인 하나님의 복을 혼자서 오래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그 마음이 즐거운지 모름. 이제부터는 마음껏 평안히 쉬면서 인생의 낙을 혼자서 주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4)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12:20); 그렇게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혼자서만 마음껏 누리겠다고 작심하는 그 부자를 한심하게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밤에 그의 영혼을 거두어 가시겠다고 하시는 것임.

(2)  한 부자의 비유의 교훈과 의미(12:19-21);

1)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20-21);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해줄 말이 많은 것임. 그 가운데 중요한 교훈과 의미가 다음과 같음;

2)    첫째, 하나님께서 현세적인 복을 크게 줄 때에는 그 가운데 반드시 자력으로 살아 갈 수가 없는 고아와 과부, 생계가 어려운 레위인, 숙식의 도움이 필요한 나그네 등을 돌보라고 하는 몫이 들어 있다는 것임. 

3)    둘째, 그러한 나눔이 없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이 세상에 계속 남겨둘 필요성이 없다는 것임. 따라서 그 영혼을 거두고 그 재물을 남에게 넘겨 버리신다는 것임.

4)    셋째, 한 부자의 비유의 교훈이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어떤 부자이든지 그러한 큰 재물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데 있어서 인색하게 되면 언제라도 그 목숨을 거두고 그 재물을 흩어 버리신다는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오늘날에도 말하고 있기 때문인 것임.  

 

7.    의식주보다는 몸이, 몸보다는 목숨이, 그리고 목숨보다는 무엇이 더 귀한 것인가?(12:22-24)

(1)  예수님의 말씀의 내용(12:22-24);

1)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12:22-23); 목숨은 목적이고 음식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임. 마찬가지로, 몸은 목적이고 의복은 그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임. 그런데 사람들은 목적은 잊어버리고 수단을 확보하는데 너무 골몰하고 있다는 것임.

2)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12:24); 수단을 그렇게 골몰해서 확보하지 아니하더라도 까마귀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서 먹이도 주시고 길러 주시고 있음. 그런데 까마귀보다 훨씬 귀한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신경을 써서 수단을 마련해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는 말씀임.  

(2)  그 말씀의 깊은 의미;

1)    첫째, 사람이 먹고 살 방도를 넉넉하게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이 되는 목숨을 연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임. 그리고 아무리 좋은 옷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몸의 건강을 완전히 돌볼 수가 없다는 것임. 그러한 인간의 한계를 빨리 인정하라는 것임.

2)    둘째, 목숨을 연장하는 장수함의 비결은 인생을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가 있게 살아가는 것임(30:20). 넉넉하게 주신 재물에는 생계가 어려운 자를 돌보라고 하는 몫이 함께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자 하나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고 돌보는 그것이 영생에 들어가는 방법이라는 것임(25:34-40).

3)    셋째,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서 실천하는 인생에 대해서는 그 생명을 보전하고 그 몸을 돌보아주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각별하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임. 따라서 너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세상살이에 골몰하지를 말고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는 말씀인 것임(12:22-24).

 

8.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먹고 살 수가 있다고 생각하여 염려하는 경우와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먹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의 주요한 차이가 무엇인가?(12:25-30)

(1)  사람의 능력의 한계에 대한 예수님의 언급(12:25-27);

1)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12:25); 사람은 성장시기가 지나고 나면 이제는 그 키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작아지고 있음. 그러므로 키가 자라는 것은 성장판과 유전자에 달려 있는 것이지 사람이 내 키야 자라라고 염려하고 그렇게 지시를 한다고 하여 커지는 것이 아님.

2)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12:26); 사람이 염려한다고 하여 자신의 키를 자기 마음대로 쑥쑥 자라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지혜와 능력의 한계가 과학의 한계로 더욱 분명해지고 있음. 예를 들면, 생물학의 목표가 사람이 인공적으로 작은 생물이라도 한번 똑같이 만들어보는 것인데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 그렇게 능력이 부족한 인간이 자신의 처지도 모르면서 세상일을 염려한다고 하여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

3)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하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12:27); 예수님의 예화가 단순하면서도 명쾌함. 백합화가 얼마나 자연상태에서 자라 그 모습이 아름다운지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임. 이스라엘 역사상 부귀영화를 가장 크게 누렸던 솔로몬 대왕이라고 하더라도 그 입은 왕복(王服, 왕의 복장)이 백합화의 자태보다 아름답지를 못했다는 것임. 그러므로 하나님이 키우시고 입히시는 그것이 인공적인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라는 것임.

4)    그와 같은 인간의 능력과 지혜의 한계를 모르고 쓸데없이 염려하고 세상의 것을 지나치게 추구한다고 하는 것은 창조주의 살아 계심과 그 지혜와 능력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교만이며 오만이라는 것임.  

(2)  사람을 먹여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12:27-30);

1)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12:28); 들에서 자라고 있는 백합화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심. 그 자태와 모양의 아름다움이 솔로몬 왕복보다 더 낫다고 이미 평가하심.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찮은 들풀로 보이는 백합화조차 그렇게 아름답게 꾸미고 입혀 주신다는 것임. 그러므로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 대해서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시고 아름답게 입히고 돌보아 주시는지 그 점을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임. 그것을 알면서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한 교만한 인간의 불신이라는 것임.  

2)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12:29); 아버지 하나님의 피조물 사랑과 그 돌보심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이심. 지금까지 토지를 경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연을 섭리하시고 도와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임.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깨닫게 되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너무 노심초사하며 지나친 염려를 하지 아니하게 될 것임. 따라서 하나님을 믿고서 복음사역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임.

3)    이 모든 것은 세상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12:30);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임; ①첫째, 무신론자들이 창조주의 살아 계심과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염려를 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에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는 것임.

4)    ②둘째, 그러나 하나님신앙을 가진 성도라고 하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임. ③셋째, 왜냐하면, 성도들에게 무엇이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것인지 또한 복음전파를 위하여 요구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며 항상 그것을 마련해주시기 때문임.

 

9.    예수님께서는 인생이란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12:30-32)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것을 추구할 때에 어떠한 은혜가 있는가?(12:30-31)

1)    이 모든 것은 세상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12:30-31);

2)    첫째,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의식주를 위하여 세상 것들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심. 그런데 그것을 자신들의 힘과 지혜로 확보하고자 사람들이 노심초사하면서 전력투구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심.

3)    둘째, 그 대신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을 좋아하심. 그리하면 세상적으로 필요한 것을 모두 더하여 주신다는 것임.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므로 틀림이 없는 사실임.

4)    환언하자면, 인생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며 성도가 그 일을 위하여 진력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의식주를 포함하여 필요한 세상의 것들을 제공하여 주신다는 것임. 그러므로 목적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면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까지 하나님께서 제공하여 주시는 것임을 여기서 알 수가 있음.

(2)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지만 사람들이 과연 그것을 얻을 수가 있는가?(12:32)

1)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12:32);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들이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임.

2)    그렇지만,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추구한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 그 이유는 다음 두가지임; ①첫째, 세상 것들은 눈에 보이는데 하나님의 영생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기 때문임. ②둘째, 그 보이지 아니하는 나라를 얻기 위하여 당장 눈에 보이는 요긴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시간과 정력을 먼저 사용한다고 하는 것이 불합리하게 보이기 때문임.

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보상을 다음과 같이 준비하고 계심;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추구하는 자가 항상 소수이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생의 나라를 얻기 위하여 당장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큰 보상을 주신다. 무엇보다도 기쁜 마음으로 그들에게 영생의 나라를 주시는 것이다”(12:32 의역).

 

10.  이 세상에서 구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며 그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시행하게 되면 어찌되는가?(12:33-34)

(1)  이 세상에서 구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12:33)

1)    백합화와 같은 들풀도 그리고 하늘을 걱정 근심 없이 날고 있는 까마귀와 같은 새들도 모두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심(12:24, 27). 그러므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은 당연히 자연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와 배려로 충분히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는 여건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음(12:28).

2)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소유욕과 지배욕을 지니고 있음. 따라서 서로 많이 가지려고 살기다툼을 격렬하게 벌이고 있음. 그 결과 사회적으로 약자들은 생존의 위기에 빠지고 있음. 한 마디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임.

3)    그러한 현상을 개선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하여 생계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고아와 과부 그리고 생계수단이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를 선민 유대인들이 먼저 돌보라고 말씀하심(10:18-19, 14:29). 그것이 구제이며 제도화가 되면 국가적으로 사회보장이 되고 있는 것임.

4)    현대 복지국가가 사회보장제도를 아무리 잘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재정으로 모두 부담할 수 없는 구제의 분야가 여전히 남아 있음.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이 돌보아야 하는 이웃들이 아직도 구제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임.

(2)  성도가 주님의 이름으로 구제를 실시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12:33-34)

1)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12:33-34);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함;

2)    첫째, 은행이 없는 고대사회이므로 예수님께서 배낭을 말씀하심. 그러므로 그것은 현대적인 개념으로 말하자면 성도가 자신의 소유로 구제를 하게 되면 그만큼 하늘에 있는 자신의 구좌에 적립이 된다고 하는 것임(12:33a).

3)    둘째, 하늘의 구좌는 이 세상의 구좌와 다름. 그것은 도둑을 맞거나 투자를 잘못하여 손실이 되는 경우도 없음. 그러므로 가장 안전한 보물과 같은 것임.

4)    셋째, 그 구좌는 훗날 성도가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기쁜 마음으로 향유할 수 있는 보물과 같은 것임.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의 구좌보다는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재물과 재능과 시간을 바쳐서 이웃을 구제함으로써 하늘의 구좌에 많이 적립을 하는 것이 인생 가운데 가장 의미가 있는 것임.

왜냐하면, 하늘의 보물이 있는 곳에 훗날 성도의 마음도 그리고 그 영혼도 함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실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임(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