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58강(렘9:17-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7월 18일(수)
출애굽 당시 애굽에서 울려 퍼진 애곡의 소리가 어째서 이제는 시온에서 들리게 된다고 말씀하시는가?(렘9:17-22)
흔히 사람은 ‘망각(妄却, 잊어버림)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 망각이 인생살이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망각이 지니고 있는 장점입니다. 반면에 망각이 지니고 있는 단점도 있습니다. 먼저 그 장점과 단점을 한번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망각의 장점은 어떠한 큰 슬픔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기억속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또 일구어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전쟁의 엄청난 피해도 뇌리속에서 점점 사라지기 때문에 그 다음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슬픔과 고통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세월이 지나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은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망각이란 그 다음의 삶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입니다.
(2) 단점은 잊지 말고 평생 명심을 해야만 하는 중요한 깨달음과 충격도 세월이 지나면 그 기억이 무디어지고 결국에는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월이 지나면 똑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하고 여호와의 역사적인 심판을 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그 극복방안이 필요합니다. 그 극복방안을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 극복방안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곡하는 부녀자와 지혜로운 부녀자를 불러 모아 애곡을 하고 그 통곡의 의미를 빨리 백성들에게 설명을 해주라는 것입니다(렘9:17-19). 그것은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올바른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숭배와 음란문화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여호와의 진노로 곧 멸망을 당할 위기에 봉착하고 있으므로 부디 영적으로 정신을 차리라고 하는 파수꾼의 경고와 같은 것입니다.
(2) 둘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대대로 유월절과 무교절 행사를 통하여 그 옛날 출애굽 당시의 기억을 새롭게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출12:14, 24, 23:15, 수5:10, 스6:19). 그것과 이번의 조치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이 다릅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애굽제국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으며 그 마지막 재앙이 애굽인들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을 하룻밤에 전멸시키는 것입니다(출12:12).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시키고 국경 바깥으로 보내어주지 아니한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2) 둘째, 유월절 그날 밤에 모든 애굽사람들의 집에서는 초상이 나고 통곡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출12:29-30). 반면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이 되고 애굽을 떠나올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출12:31-37). 따라서 통곡과 애곡은 애굽인들의 것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해방과 기쁨의 환호성을 울린 날입니다. 선민들의 고통이 아니기에 유월절과 무교절의 의미는 세월이 지나자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뇌리 속에서 빨리 퇴색이 되고 만 것입니다(출12:42, 왕하23:21-23).
3) 셋째, 이번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 옛날 애굽인들이 맛본 그 절망감과 통곡을 여호와를 버린 이스라엘 자손들이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점을 부녀자들을 동원하여 함께 애곡을 통하여 미리 선민들에게 알려주라고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렘9:20-22).
(3) 셋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렘9:17) 라는 문구로 본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본문의 여호와의 말씀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만 적용이 되는 역사의 섭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모든 사람들의 나라와 민족에게 그대로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역사의 섭리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민이나 이방인이나 그 창조주는 동일하게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의 경우를 공부하면서 이방인들도 그러한 여호와의 역사 심판이 동일하게 자신들의 나라와 민족에게 그대로 임하지 아니하도록 예방조치를 해야만 합니다. 그 방법이 시온에서 들리는 통곡소리와 지혜자의 음성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렘9:2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해보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렘9:17-18);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해보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렘9:17);
1)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전달하십니다(창1:26-27, 렘9:17a). 먼저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민과 성도들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두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렘9:17b). ①하나가 애곡하는 부녀들처럼 통곡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②또 하나는, 지혜로운 부녀들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대물림해야 합니다(렘9:17c).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2) 첫째, 자신들의 잘못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받게 되었으니 그것을 슬퍼하면서 회개할 줄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애곡하는 부녀들을 앞세우고 있는 것은 남정네들보다 그들이 더욱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입니다(렘9:17b). 장정들은 목이 뻣뻣하고 여호와 앞에 더욱 완강합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그 뜻을 굽히지를 않습니다(출32:9, 롬10:3). 그러나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가정주부인 부녀들은 다릅니다. 여호와 앞에 잘못한 그것이 자신의 자녀들의 앞날에 어떠한 진노와 재앙으로 나타날지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리 여호와 앞에 울면서 나아와서 부디 용서하여 달라고 눈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옛날 니느웨 성이 멸망을 받지 아니하고 구원을 얻게 된 비결입니다(온3:3-10). 그러한 회개의 대역사가 당장 필요하다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3) 둘째, 다시는 선민의 나라가 망하는 역사를 되풀이하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지혜의 부녀들처럼 자녀들에게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을 부지런히 가르쳐야만 합니다(렘9:17c). 잘못을 범하였기에 그 사실을 깨닫고 두 손을 들고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눈물로 회개하며 통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전에 그러한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하여 여호와신앙의 기본을 확실하게 대물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지혜와 여호와의 지혜가 다르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론으로 인생을 살아가도록 신앙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배우고 익혀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며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신앙생활의 비결인 것입니다.
(2)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렘9:18);
1) 사람의 슬픔과 눈물은 전염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먼저 엉엉 슬프게 울게 될 때에 그 분위기에 젖어서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울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영적으로 민감한 자들이 먼저 애곡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으니 동족의 구원을 호소하기 위하여 부녀자와 지혜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서 애곡을 시작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여”(렘9:18a).
2) 그리하면 영적으로 둔감한 이웃들이 비로소 망국의 역사가 가까이 다가옴을 느끼면서 눈물로 여호와 앞에 통회하게 될 것입니다. 나중에는 전 민족이 여호와의 전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해야만 합니다.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고 현세적인 축복과 쾌락만을 탐하여 살아오고 있는 선민들의 죄악을 모두 청산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후회의 눈물과 통곡소리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 점을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렘9:18b)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이는 시온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거처를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하게 하고, 각기 이웃에게 슬픈 노래를 가르치라”(렘9:19-20);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는 시온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거처를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렘9:19); 선민 유대인들이 가슴을 치면서 여호와의 전에서 통회를 해야만 하는데 그 내용이 세가지입니다;
1) 첫째,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겼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더 이상 얻지를 못하고 선민의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렘9:19a). 그러므로 그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2) 둘째,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들이 타락하여 이방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고 말았으니 그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렘9:19b). 선민들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삶의 모범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여호와의 용서함을 받기에도 부끄러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는 자괴감입니다.
3) 셋째, 크게 진노하신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을 모두 이방 강대국의 손을 빌려서 파괴하고 마십니다(렘9:19c). 그리고 선민 유대인들을 이방 땅에 나그네로 살아가도록 뿔뿔이 흩어 버리십니다. 그것은 망국의 백성으로 이방인들의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 오랜 세월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은 가슴을 치면서 애곡하며 슬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하게 하고, 각기 이웃에게 슬픈 노래를 가르치라”(렘9:20);
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금식을 하십니다(마4:2). 그리고 성령님께 이끌려 광야로 가서 마귀의 시험을 받게 됩니다(마4:1). 첫번째 시험의 내용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놀라운 창조주의 능력으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마4:3). “헌 신으로 엿을 바꾸어 먹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사용하여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는 기적을 행하라는 주문입니다.
2) 40일간 굶주린 육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아들 예수님께 그것은 얼마나 달콤하면서도 강력한 유혹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인 배고픔의 고통보다는 영적인 굶주림이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그러한 의미의 말씀을 선민 유대인들이 명심해야만 한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렘9:20a).
3)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에 멸망이 다가오고 있는 이유는 선민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적인 떡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민들은 자신들이 잘 먹고 살고 부귀와 권력을 가지고 주변의 이방인들을 지배하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집단 이기적인 선민 사상입니다. 그러한 선민 중심적인 현세적 구복사상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사상과는 정반대입니다. 요컨대, 선민 유대인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복음으로 실천함으로써 이방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영생의 구원을 누리기를 결코 원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지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 앞에 시온의 딸들이 회개를 먼저 해야만 합니다; “너희 딸들에게 애곡하게 하고”(렘9:20b).
4) 예루살렘의 선민들은 목을 놓아 조국의 멸망을 슬퍼하며 여호와 앞에 통곡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땅에서 포로로 살게 되는 운명에 처해진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선민들은 이방인들에게 외쳐야만 합니다. 자신들처럼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부귀영화만을 추구하지 말고 부디 회개를 하고서 여호와 앞에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그리하지 아니하게 되면 이방인들도 다윗왕조 유다 왕국처럼 그 나라가 망하고 강한 민족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는 슬픈 운명에 처하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취지의 말씀을 선민들이 자신들의 경전인 히브리정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전을 매주 안식일에 그들의 예배장소인 회당에서 읽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내용은 노래로 만들어 자손대대로 대물림을 하고 있습니다; “각기 이웃에게 슬픈 노래를 가르치라”(렘9:30c).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셋째로, “무릇 사망이 우리 창문을 통하여 넘어 들어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들을,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너는 이같이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버려져, 거두지 못한 곡식단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렘9:21-22);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무릇 사망이 우리 창문을 통하여 넘어 들어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들을,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렘9:21);
1) 출애굽을 앞둔 마지막 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애굽인들의 모든 집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애굽 사람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을 전부 멸절하기 위한 것입니다(출12:29-30). 주전 1,446년 4월 중순에 애굽 땅에 발생한 그러한 여호와의 심판이 이제 예레미야 선지자의 시대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서 발생을 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무릇 사망이 우리 창문을 통하여 넘어 들어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들을,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렘9:21). 어떻게 하면 여호와의 심판을 면하고 목숨을 건질 수가 있을까요?
2) 그 방법은 주전 15세기 애굽에서나 주전 6세기 유대 땅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원칙이기 때문에 변함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고 그 고기를 쓴 나물 및 딱딱한 무교병과 함께 먹으면서 여호와의 구원을 온 민족이 한마음으로 간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출12:6-14). 다만 새 언약의 시대인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결심을 다짐해야만 하는 것입니다(요1:29, 마28:18-20, 눅22:28-30). 그것이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2) “너는 이같이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버려져, 거두지 못한 곡식단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렘9:22);
1)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여호와의 구원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의 복음으로 선민의 땅과 이방인의 땅에서 선포를 하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십니다. 그때부터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누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그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요1:12-13, 마16:24, 눅22:28-30).
2) 그렇다면 그리하지 아니하게 되면 세상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고 마는 것일까요?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두가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배척하는 자는 개인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그들의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더구나 전란 가운데 그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는 것입니다(렘9:22a). ②또 하나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추수꾼의 손길에서 제외가 되고 맙니다(렘9:22b, 요4:35-36). 그러므로 부활하여 심판대에 서게 되었을 때에 영생이 아니라 영벌로 들어가게 되는 비극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요5:27-29, 마25:45-46).
결론적으로, 조국의 멸망이 지척에 다가오고 있음에도 선민들은 둔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선지자가 전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아예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마지막으로 시온의 딸들 가운데 부인들을 동원하여 먼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을 깨닫게 하고 애곡과 통곡을 하게 만들라고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지시하십니다. 자신의 부인들이 먼저 울게 되면 혹시 선민의 가장들이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역사적으로 별로 실천이 되지를 않습니다. 유다 왕국이 망하고 선민들이 이방인들의 땅으로 끌려가서 고난 가운데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마지막 여호와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유다 왕국의 멸망의 이유를 자손들에게 정확하게 전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래로 만들어 온세상에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민들의 통한의 노래가 히브리정경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선민의 역사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깊이 묵상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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