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60강(렘10: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7월 20일(금)
우상이란 무엇인가?(렘10:1-6)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선지지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우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렘10:1-6). 그 주요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세가지입니다(렘10:2-6);
(1) 첫째로, 여호와께서는 선민의 나라와 다른 세상나라들은 살아가는 길이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렘10:2a).
1) 첫째, 선민의 나라는 여호와만이 창조주이시며 권능의 하나님이시므로 그 이름을 높이며 가장 귀하게 여기고 숭배를 하면서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신정국가(神政國家)입니다(렘10:6). 그러므로 선민들은 여호와의 종이며 그 말씀을 청종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2) 둘째,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이나 인간을 자신들의 신이나 왕으로 삼고 숭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이방인들의 세상 나라입니다(렘10:2a, 6). 따라서 이방인들에게는 창조주이신 여호와보다 더 사랑하고 애지중지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일종의 우상입니다.
(2)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신으로 삼으며 또는 창조주 하나님보다 더 애지중지하고 있는 그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1) 첫째, 하늘에 있는 천체와 하늘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들입니다(렘10:2b).
2) 둘째, 사람들이 만든 우상으로서 신적인 권위를 그것에 전통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것들입니다(렘10:3).
(3) 셋째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애지중지하고 있는 나라나 금은보화와 같은 것들을 우상들이 지켜줄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렘10:4).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렘10: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렘10:1-2a);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렘10:1);
1)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먼저 선민들에게 말씀하십니다(렘10:1a). 그리하면 그들 선민들이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야만 합니다(렘10:1b).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역사적으로, 선민들이 그와 같은 여호와의 말씀전파의 역할을 담당하여 이방 땅에 나아가서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언약을 실현하는 방법이 됩니다.
2) 그 옛날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육신적인 아버지 족장 데라의 집을 떠나 여호와께서 가라고 말씀하신 이방 땅 가나안으로 선교적인 사명을 띠고서 들어갑니다. 그렇게 이방 땅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신앙의 모범을 올바로 보여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4가지의 축복의 언약으로 함께하십니다(창12:1-5). 그와 같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언약의 계승자들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신앙의 발자취를 선민들이 따라가야만 합니다.
3)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변의 이방인들을 미워하여 그렇게 실천하지를 않습니다(마5:43). 오히려 그들의 마음이 여호와를 떠나고 이방인들의 우상문화를 받아 들이며 그것에 심취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선민들이 현세적인 이기주의에 물든 패역한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호할 가치가 없어져서 선민의 나라를 떠나 버리십니다. 그 결과는 선민의 나라의 멸망입니다.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망하고 이제는 주전 586년에 곧 남조 유다 왕국마저 망할 차례입니다. 그것이 예레미야 예언이 나타난 시기입니다.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렘10:2a);
1) 여호와만이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자신들의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이시라고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이 선민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나라는 거룩한 신정국가(神政國家)이며 여호와의 나라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나라의 백성들은 세상의 여러 나라와 두가지 점에서 달라야 합니다;
2) 하나는, 여호와만이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나라들이 여호와가 아닌 것을 자신들의 창조신으로 잘못 섬기고 있는 신앙을 배격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민들은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성취해주는 신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는데 그러한 우상문화를 도입해서는 안됩니다.
3) 또 하나는,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유일하신 여호와 창조주보다 더 귀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사람들은 자신들이 애지중지하고 있는 국가나 사람 또는 물건을 자신들의 우상으로 삼고 있지만 여호와의 종들을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방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렘10:2b-3);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방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렘10:2b);
1) 사람들이 옛날부터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렘10:2ba).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십니다(렘10:2bb).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하늘과 천체는 여호와께서 창조한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창1:6-7, 14-15). 사람도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창1:26-27).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같은 피조물인 하늘이나 천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2) 더구나 사람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가 되어 있습니다(창1:26-27). 그것은 굉장히 고귀한 창조물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하늘과 천체는 그렇지가 못한 단순한 창조물입니다. 따라서 하늘과 천체가 귀한 창조물인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옳지, 반대로 사람이 자신보다 못한 피조물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치를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하늘과 천체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이 세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3) 첫째, 사람은 땅에 발을 딛고서 하늘의 공기를 코로 호흡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땅은 사람이 자신의 발로 디딜 수가 있는 공간이지만 하늘은 다릅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아니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미지의 세계이며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4) 둘째, 하늘의 천체는 거대합니다. 천문학의 발전에 따라 천체의 크기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상상도 할 수가 없는 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천체를 수없이 가지고 있는 하늘은 더욱 거대한 것입니다. 온 우주에 있어서 지구는 10의 24승 분의 1정도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눈에 보이는 cm의 모래 알갱이가 지구라고 하는 공에 10의 24승 개 정도 담겨 있는 것과 같은 비율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에 있어서 지구는 그저 모래 알갱이 하나에 불과한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5) 셋째, 히브리정경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그대로 천체의 움직임이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농사의 풍흉 및 국가의 존망에 대하여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1:14),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욥38:33).
(2)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렘10:3);
1)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 왕국에 참여한 이스라엘 10지파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로부터 1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자 남조 유다 왕국에서 예레미야가 주전 627년부터 선지자활동을 시작합니다(렘1:2).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대에 있어서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유일한 제사장나라이며 선민의 나라입니다(출19:6, 왕상12:20). 유다 왕국을 제외한 여러 나라는 여호와신앙을 모르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의 나라입니다.
2) 이방인들은 여호와가 창조주라는 사실을 모른 채 스스로 자신들의 수호신을 만들고 또한 여러 가지 소원을 손쉽게 빌 수 있는 우상들을 조각하여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짜 신과 우상들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이방나라의 풍습입니다(렘10:3a).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풍습은 헛된 것이라고 지적하십니다(렘10:3b). 그 이유는 그것들은 창조주가 아니며 피조물인 인간들이 편리하게 만든 가짜 신이며 우상들이기 때문입니다;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렘10:3c).
셋째로, “그들이 금과 은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고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렘10:4-5a);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들이 금과 은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렘10:4);
1)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 앞으로 인도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면서 여호와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섬기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선포하십니다(출19:4-6). 그것이 선민의 탄생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에게 두가지를 말씀하십니다; ①하나는 여호와를 어떠한 형상으로도 새기거나 조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피조물의 형상으로 우상을 만들고 ‘여호와’라고 부르는 죄를 엄격하게 처벌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②또 하나는, 여호와께서는 선민들 가운데 임재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지으라고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것입니다(출25:8-9). 성막에는 여러가지 성물이 있습니다. 성물과 성막의 뼈대는 금과 은 그리고 조각목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와 속죄소가 놓여 있는 지성소에 여호와께서 임재를 하십니다(출25:22).
2)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영이십니다(창1:1-2, 요4:24). 그러므로 피조물인 사람의 눈에 보이지를 않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차원에 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시공간이라고 하는 4차원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면, 1차원인 선(線, line)만을 인식할 수 있는 1차원적인 존재는 하나의 선상을 움직이고 있는 2개의 점(点)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2차원에 살고 있는 존재는 2개의 선이 만들어 내고 있는 평면상의 움직임만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단층촬영이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입체인 사과를 평면으로 단층촬영을 하게 되면 그것은 평면과 접촉하는 모양이 좁은 것에서 점점 넓어지다가 다시 좁아지고 마침내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인식이 됩니다.
3) 사과를 3차원을 볼 수 있는 인간의 눈으로 보게 되면 평면이 아니라 하나의 입체인 물체로 금방 파악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4차원을 의미하고 있는 시간의 축입니다. 사람은 시간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물체의 모양과 운동만을 관찰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5차원을 인식할 수 있는 신의 눈으로 보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물체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인간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입체와 자연의 변화로 비로소 인식하고 있는 그것을 신은 단숨에 하나의 피조물로 인식하고 말 것입니다. 그 피조물 가운데 시간의 흐름이 그대로 한꺼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차원에 따른 그와 같은 본질적인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시공간에 갇혀 있는 피조물의 형상으로 만들거나 그렇게 알고서 무지하게 경배하는 것은 불경 그 자체라고 하겠습니다.
4)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인 자신을 어떠한 인간의 생각으로도 형상화하지를 말고 신비 자체로 인식하라고 명령하십니다(출20:3-5). 그리고 하나님을 빗대어 피조물의 형상으로 어떠한 우상도 만들지 말라고 경고를 하십니다. 그것은 여호와신앙의 본질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으로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문화입니다. 그러한 인본주의적인 우상문화의 본질은 창조주를 피조물인 인간이 편리한 자신의 도구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램프의 종으로 하나님을 부리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이 우상문화에 그대로 깃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5) 그것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금은보화를 참으로 귀하여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을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끔찍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이 세상의 것을 그토록 귀하게 여기면서 여호와보다 더 떠받들고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렘10:4a, 삼상2:29-30). 질투하시는 여호와께서는 그것도 우상이라고 보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애지중지하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여호와께 번제로 바치라고 시험을 하십니다(창22:1). 그것은 인신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삭의 주인이 아브라함인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신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6)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자신의 결심을 모리아 산에서 실행합니다(창22:10). 여호와께서는 그때서야 진심을 밝히십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창조주 여호와를 귀하게 여기며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는 여호와 경외자임을 알았으므로 모든 시험을 통과한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창22:12). 아브라함이 명실상부하게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창15:6, 롬3:16). 그와 같은 깨달음이 없으면 금과 은으로 치장을 한 우상을 아무리 견고한 구조물 위에 튼튼하게 세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헛수고인 것입니다(렘10:4b-5a).
(2)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고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렘10:5a);
1) 사람들이 만든 신상(神像) 뿐만이 아닙니다. 성막 지성소에 배치하고 있는 성물인 언약궤도 그러합니다. 그것을 레위인들이 어깨에 가마처럼 메고서 운반을 하고 있습니다(렘10:5a, 출25:14-15). 여호와의 임재를 위하여 만들고 있는 성막과 성물 역시 사람들이 만든 인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체 생명력이 없습니다. 사람처럼 걸어 다닐 수 있는 생명체도 아닙니다. 요컨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든 모든 생명체는 자체 움직일 수가 있지만 피조물인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은 그러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말도 할 수가 없으며 걸어 다닐 수도 없는 것입니다.
2)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서 두가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인공지능입니다. 사람들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하여 스스로 말로써 자신의 판단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인공지능입니다. 앞으로 자동 통번역기도 대중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명력을 부과한 생명체가 아닙니다. ②또 하나는, 걸어 다닐 수 있는 보행 로봇입니다. 앞으로 사람처럼 걸어 다니면서 노동을 할 수 있는 로봇이 대중화를 앞두고 한참 개발 중에 있습니다.
3) 그렇지만 그러한 인공지능과 보행 로봇에는 근본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스스로 자연을 호흡하면서 신진대사를 하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생명체의 일부 구조를 사람들이 흉내를 내어 첨단과학으로 모방하여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개발과정을 바라보면서 여호와신앙을 가진 과학자들과 현대인들은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와 그 놀라운 능력을 인식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와 반대로 그 옛날 애굽제국의 요술사들처럼 자신들도 지팡이로 뱀과 개구리를 만들어내는데 심취를 하고 있다고 한다면 애굽에 내린 여호와의 재앙이 현대국가에 재현이 되고 말 것입니다(출7:11, 8:7).
넷째로,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렘10:5b-6); 다음과 같이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렘10:5b); 사람들에게 복이나 화를 줄 수 있는 자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신명기에서 모세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30:19-20). 창조주가 아닌 사람들이 만든 신상이나 우상이 사람들에게 복과 화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렘10:5ba). 그럴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창조주 여호와를 두려워하여야 하는 것이지 피조물의 피조물인 우상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렘10:5bb, 마10:28).
(2)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렘10:6);
1) 여호와는 유일한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신이나 우상은 결코 창조주가 될 수가 없습니다(렘10:6a). 근본적으로,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의 ‘여호와’라고 하는 이름에는 벌써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출3:14). 온 우주와 만물 그리고 만민까지 창조하신 것이 여호와의 권능입니다. 그 이름이 벌써 그러한 창조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주의 그 크신 이름과 우주를 만드신 그 권능을 영원히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렘10:6b). 성경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서도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계15:3-4).
결론적으로, 위와 같이 옷깃을 여미고 여호와 앞에 서서 그 이름과 권능을 찬양하며 그 종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인이며 성도들입니다. 그와 같은 본분을 부디 망각하지 말라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선민들에게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처럼 멋대로 신상을 만들고 우상을 조각하여 금칠을 하여 섬기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사랑하는 패역함을 범해서도 안됩니다.
특히 첨단과학이 발달하고 있는 21세기에는 과학의 힘과 인간의 재능을 마치 하나님처럼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대국들은 국제적인 영향력을 지니는 군사력과 기업의 힘을 의지하여 세상을 마음대로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사조는 이 세상의 주인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리고 있는 불신앙입니다. 그러한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사조를 버리고 여호와 앞에 다시 바로서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여호와신앙의 회복 운동에 앞장을 서시는 여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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