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53강(렘8:18-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7월 13일(금)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을 슬퍼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가?(렘8:18-22)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의 조국인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난 후 선민들이 제국의 포로가 되어 살게 될 때에 그들에게 어떠한 행동의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지에 관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의 대략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선민의 나라가 이방인의 제국에 의하여 망하고 앞으로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땅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는 백성들을 바라보고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이 슬프고도 근심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렘8:18).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잘못은 선민 유대인들이 범하였는데 그들을 처벌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선민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여호와의 슬픔을 드러내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불신하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는 백성들의 불신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처벌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마음이 슬프고 아프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반드시 치유와 구원의 방법을 역사 가운데 모색하시고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2) 둘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다시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소원과 피조물인 사람들의 사명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한 대목이 그 점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창44:30-31).
(2) 둘째로, 선민들이 유대 땅 시온에서 여호와께 구원을 부르짖는 소리 뿐만 아니라 이방 땅에서 노예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는 소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두 듣고 계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렘8:19a).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들만의 창조주가 아니라 온 세상 모든 것들의 창조주이시며 그들의 인생과 역사를 지금도 전부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진리를 모르고 선민들이 이방신과 우상을 도입하여 여호와를 대신하여 경배하고 섬겼으니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렘8:19b). 그 때문에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인들의 종 노릇을 하게 되는 징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여호와의 징벌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선민들이 이제는 여호와의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고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렘8:20). 선민들이 이방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철저하게 우상문화를 청산하고서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자 나아오게 되면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패역한 선민들에 대한 분노와 징벌의 슬픔 가운데에서도(렘8:21) 여전히 그러한 회개와 돌아옴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길르앗과 시온에서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렘8:22, 사65: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렘8:18-1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렘8:18-19a);
1)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근심이 있으며 위로 받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민 유대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렘8:18a). 위로를 받지 못하여 그 마음에 병이 생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렘8:18b).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딸과 같이 애지중지하고 있는 선민들은 어떻게 아버지와 같은 여호와의 근심을 덜어 줄 수가 있을까요? 효심이 있는 딸 자식이라고 하면 그 점을 먼저 가슴 아프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효성은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계속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우상문화를 청산하고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여호와를 버리고 제멋대로 우상문화에 젖어서 살아간 그들의 죄악 때문에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방제국의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후 페르시아제국의 시대에 일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고토로 돌아와서 제2성전시대를 살아가지만 완전한 회복의 역사가 전개된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이방 땅의 나그네로 살아가면서 여호와의 구원하심과 시온의 영광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렘8:19a).
3) 선민 유대인들마저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만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회개를 하고서 여호와께로 나아오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근심과 병이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하나님의 아들이 스스로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십니다(요1:14). 아버지 하나님께 위로를 드리기 위하여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신 것입니다(요1:29). 자신을 대속의 십자가에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심으로 영원한 죄 사함과 구원의 제사를 드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요3:13-1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은 이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의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이방제국의 속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2)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렘8:19b);
1) 예레미야가 중요한 명제를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예루살렘성전에 두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렘8:19ba). ②또 하나는, 이방세계의 역사까지 섭리하시는 왕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렘8:19bb). 그러므로 선민들이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이방제국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창조주로 그리고 모든 인생과 역사의 섭리자로 존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따라서 이방 땅의 나그네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선민 유대인들이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에서도 이방신과 우상을 제거하고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한 구원주이며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기록이 되고 있는 성문서가 바로 ‘에스더’이며 대선지서가 ‘에스겔’과 ‘다니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는 그러한 회개의 역사가 유대인사회에서 전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부에서만 그리고 일시적으로 발생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이방 땅애서도 여전히 우상문화에 젖어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예레미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렘8:19bc).
둘째로,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렘8:20-21);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렘8:20);
1)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살게 되면서 매년 예루살렘성전에 들러 3절기를 지내고 있습니다(출13:5, 10, 23:14-17). 그 3절기에는 빈손으로 여호와 앞에 나오지 아니하고 반드시 그 시기의 땅의 소출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그 순서가 다음과 같습니다; ①태양력으로 4월 중순인 유월절에는 보리의 첫 수확을 바칩니다. 그때가 봄철입니다. ②50일 후인 오순절 곧 초여름 6월 초순에는 주곡인 밀의 첫 수확을 바칩니다. ③가을걷이가 모두 끝나고 수확과 열매를 곳간에 간무리를 한 다음에는 수장절이 있는데 그때에는 온갖 과일과 기타 작목의 수확의 일부를 여호와의 전에 바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2) 그러므로 본문에서 여름이 모두 지나가기 전에 있는 ‘추수할 때’(렘8:20a)라고 하는 것은 주곡인 밀의 첫 수확을 여호와께 바치는 오순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모든 수확과 기타 열매를 거두는 가을걷이가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은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선민들이 미리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 가을걷이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구원의 순서가 이방인들이 먼저이고 선민들이 후순위가 되고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그렇게 후순위가 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먼저 주기 위한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따른 것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롬11:25, 29-33).
(2)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렘8:21);
1)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이방 땅에서 유리 방황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렘8:21)라는 문장 속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그들을 모두 구원하고 싶어하십니다. 그 마음을 아시고 독생자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의 마음을 모두 그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2) 그런데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속죄의 제사까지 드렸지만 그 일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모두 쳐부수고 다시 한번 이스라엘제국의 영광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부르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선민 유대인들의 현세적이면서도 집단 이기적인 신앙노선 때문에 도저히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가 없습니다.
3) 그 결과 마지막 방법이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서 먼저 회개하는 이방인들부터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선민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 오기를 주님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한 이치를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으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롬11:11-12).
셋째로,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됨인고?”(렘8:22);
(1) ‘길르앗’은 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있는 산지입니다(렘8:22a). 그 옛날 야곱이 식솔을 이끌고 북부 시리아 하란 땅에서 장인 라반을 피하여 가나안으로 도주를 할 때에 꼬리가 잡힌 장소가 바로 ‘길르앗’입니다(창31:20-23). 그 경로를 통하여 대상들에 의하여 시리아의 ‘유향’이 유입이 되고 있습니다(렘8:22b);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창37:25).
(2) 먼 훗날 요단 강 동편인 길르앗과 그 서편인 가나안 땅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이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호와의 말씀과 구원의 능력으로 만민을 치유하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맞이하고자 하십니다. 그렇게 만민을 구원하시는 ‘의사’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나안 땅에 오셔서 구원의 시대를 활짝 여시게 됩니다(렘8:22c). 그때 이방인제국의 속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선민 출신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치료를 받고자 찾아 오지를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매를 더 맞으려고 하는 자신의 ‘딸’과 같은 선민들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씀하십니다(렘8:22d). 그와 같은 예언의 말씀을 예수님이 오시기 600년 전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벌써 동족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선민들이 자신들의 현세적인 이익을 위하여 약한 자를 착취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와 퇴폐 향락에 푹 빠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내어 여러 번 경고를 하십니다. 그러나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 선민의 나라인 유다 왕국이 망하고 백성들이 이방인제국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그러나 도무지 회개하지 아니하는 선민 유대인들 때문에 위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께서 이 세상에 만민구원을 위한 그리스도로 오십니다.
이방제국의 속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배척합니다. 그 이유는 현세적인 이기주의에 여전히 젖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민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의 복락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선민만의 구원사상에 푹 빠져 있는 유대인들이 지극히 싫어하는 사상인 것입니다.
그때문에 복음에 의한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 선민 유대인들이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먼저 구원하고 그것을 보고서 시기하여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는 선민들을 나중에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먼저 주어지고 있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한 그들을 끝까지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여호와의 깊은 사랑이라는 점을 널리 이해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선민 유대인들 때문에 이방인 성도들이 곁가지로 구원을 얻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겸손한 신앙생활을 영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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