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예레미야 강해 제52강(렘8:13-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7. 18. 05:51

예레미야 강해 제52(8:13-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712()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죄와 여호와의 벌은 무엇인가?(8:13-17)

 

출애굽 당시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3:8, 17). 그에 따라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요단 강 동편의 아모리 족속의 땅과 서편의 가나안 원주민들의 땅을 전부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21:23-35, 2:24, 3:2, 12:1-24).

그런데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그 기업을 전부 빼앗고 선민 이스라엘 족속을 이방인들의 종으로 삼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8:13).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징과 비유의 수법으로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8:14-17);

(1)  첫째로, 선민들이 견고한 천혜의 요새지인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서 결사적으로 항전을 하더라도 결코 적군을 물리칠 수가 없게 됩니다(8:14a).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이 하나님의 역사심판으로 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8:14b). 그것은 유다 왕국의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그들의 왕국의 멸망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진노의 잔을 얻어 마시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25:18).

(2)  둘째로, 선민들의 잘못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면서 세상적인 평강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만민구원의 뜻을 실천하지 아니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만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침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 뿐이로다”(8:15)라는 구절에 진하게 담겨 있습니다.

(3)  셋째로, 100여년 전에 망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잘못은 그들의 북쪽 국경도시인 단과 남쪽 국경도시인 벧엘에 각각 금송아지 우상을 설치하고서 그것을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주장하면서 백성들에게 경배하고 섬기도록 한 것입니다(왕상12:28-33). 그렇게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구성하고 있는 이스라엘 10지파가 우상문화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도입한 결과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왕하17:21-23). 앗수르가 북쪽 단을 치고 남침을 해옴에 따라 이스라엘 10지파의 자손들은 수도인 사마리아성에서 3년간 결사의 항전을 합니다(왕하17:5). 그러나 그 결과는 완전한 패망입니다(왕하17:6). 그와 똑같은 역사가 이제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에서 발생하려고 합니다(8:16). 그 이유는 이스라엘 왕국과 동일하게 유다 왕국이 우상문화에 깊이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7:9-11, 15). 

(4)  넷째로, 인간적인 노력과 방법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원칙을 변경시킬 수가 있을까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8:17)라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선민들에게 보내는 뱀과 독사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는 것일까요? 두가지의 방법이 아직 남아 있음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모세가 만든 놋뱀을 쳐다보듯이 여호와께서 보내신 대속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21:4-9, 6:39). 그리하면 세상의 멸망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증거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4-15).

2)    둘째, 선지자 요나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에 따르면 40일 내에 니느웨 성읍이 주민들의 죄악 때문에 멸망을 당한다고 합니다(3:4). 그러나 니느웨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한마음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습니다(3:5-9).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니느웨에 대하여 멸망 대신에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3:1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8:1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8:13a);

1)    여호와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3:8, 17). 여기서 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식품의 일종입니다. 그러므로 목축을 하여 가축의 젖을 얻게 되면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까지 주십니다. 그것은 삶의 풍요로움을 달콤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석청이나 포도주가 그러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광야를 헤매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곳에서 농업과 목축업을 안정적으로 경영하면서 양식을 얻고 삶의 풍요를 누리도록 해준 것입니다.

2)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과 같은 것이 무화과의 열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희고도 끈적끈적한 젖과 같은 것이 무화과 열매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추야자의 열매는 매우 달기 때문에 그것을 이라고 표현했다고 풀이를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무화과와 대추야자가 많이 자라고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좋은 땅을 주신다고 하는 의미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3)    그런데 그렇게 젖과 꿀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고 있는 가나안 땅에서 이제는 여호와께서 선민들을 쫓아낸다는 것입니다(8:13ab).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선민들이 가나안 땅에 살면서 일찍이 여호와께서 당부하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19:4-6). 패역한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계속 그들의 기업으로 인정하여 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신 역사의 섭리라고 하는 사실을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8:13aa)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8:13b);

1)    여호와께서 주시는 나무의 잎사귀의 효능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제22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22: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생활 가운데 마실 물을 구하고 있을 때에 쓴 물이 있는 마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법도와 율례로 그들에게 주면서 앞으로 그들의 신앙생활을 시험하겠다고 선포하십니다(15:25). 선민들이 만약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따라 율법생활을 진실되게 하면 이방인들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아니할 것이며 혹시 병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력이 있는 물과 잎사귀로 치료를 해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15:26). 그리고 종려나무의 잎사귀가 무성하고 마실 물이 충분한 오아시스 엘림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십니다(15:27). 나중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선민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2)    그렇게 여호와께서 선민들에게 이미 주신 것을 이제는 거두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8:13b).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고의로 어겼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예루살렘성전에서 율법에 따른 제사를 드리고 있으며 할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성전과 회당에서 안식일도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이방신과 우상을 도입하여 그것을 경배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상의 하나로 여호와를 성전과 회당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은 멀면서 형식적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척하고 있으니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것입니다(7:30-31, 8:9, 12, 15:6-9). 따라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그들을 물리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게 하심이니라”(8:1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멸망하자”(8:14a);

1)    여호와의 율법을 진심으로 지키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겼기에 선민의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하는 선지자들의 예언이 나타나고 있습니다(1:2-9, 7:13-15). 그러나 선민들은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내침한 적들과 전투를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서 필사의 항전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견고한 요새지로 들어가서 완강한 수성작전(守城作戰)에 돌입하고 있습니다(8:14aa). 동시에 멀리서 원정을 온 적들의 기운을 빼기 위하여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성읍에만 곡식을 저장해 놓고 들판에 있는 작목은 전부 불태워버립니다.

2)    그렇게 하여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막강한 앗수르제국의 원정군을 상대하여 3년간 사마리아성에서 저항을 한 적이 있습니다(왕하17:5).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한 패망입니다(왕하17:6). 이제 100여년의 세월이 흐르자 똑같은 현상이 예루살렘성과 기타 요새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그렇게 저항을 한다고 하더라도 북조 이스라엘 왕국처럼 패망하고 말 것이라고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계속하여 동족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8:14ab).

(2)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게 하심이니라”(8:14b);

1)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겉으로 보면 상호간의 군사력 및 정신전력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엄청난 변수가 그 가운데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큰 변수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 개입입니다(8:14ba). 그와 같은 선례를, ①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의 전쟁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14:13-16). ②출애굽기에서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17:11-13). ③민수기에서는 미디안 족속과의 전투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31:4-12).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앞으로 닥쳐오는 신바벨론과의 전쟁에서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게 하심이니라”(8:14b). 여호와께서 영적인 중범죄자 선민들에게 주고 있는 그 독한 물사약’(賜藥, 왕이 죄인에게 주는 죽음의 탕약을 말함)과 같은 것입니다(8:14bb). 참고로, 예레미야 제25장에서는 독한 물을 여호와의 진노의 술잔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25:15).

셋째로,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침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 뿐이로다. (전투용)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준마들이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그 소유성읍과 그 중의 주민을 삼켰도다”(8:15-16);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침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 뿐이로다”(8:15);

1)    선민들이 엉뚱한 곳에서 평강을 구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를 하고서 나아갔더라면 영적인 평강을 얻으며 이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를 떠나서 이 세상에서 세상적인 방법으로 그 평강을 얻고자 합니다. 그 결과 좋은 것을 얻지를 못하고 패망의 길로 접어 들고 맙니다(8:15a).

2)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고 이방신과 우상들에게 잘못을 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과 치유를 얻지를 못하고 신바벨론제국의 침략으로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8:15b). 어떻게 선민들의 귀와 눈이 그렇게 영적으로 어두워져 버렸는지 놀랍고도 불가사의한 일입니다(6:9-10, 8:15c)). 그 점을 훗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아주 좋게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11:25).

(2)  (전투용)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준마들이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그 소유성읍과 그 중의 주민을 삼켰도다”(8:16);

1)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모습과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는 남조 유다 왕국의 모습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예언으로 전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2)    첫째, 이스라엘 왕국의 북쪽 국경도시였던 의 지명이 가장 먼저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전달하고 있는 첫번째의 의미는 적군의 내침이 동쪽이 아니라 북쪽에서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군대도 북쪽에서 남침을 했으며 신바벨론의 군대도 북쪽에서 남침을 해온다고 하는 예언입니다. 그들 이방인의 강대국들이 선민의 나라를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주민들을 모두 포로로 사로잡아 간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전투용)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준마들이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그 소유성읍과 그 중의 주민을 삼켰도다”(8:16).

3)    둘째, ‘이라고 하는 지명이 두번째로 상징하고 있는 것은 그곳에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제단이 있다는 것입니다(왕상12:29-30).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우상문화가 그곳에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떠나서 단에서 금송아지를 계속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10지파를 없애 버리신 것입니다(왕하17:21-23). 마찬가지로 우상문화가 만연하고 있는 유다 왕국도 이제는 멸망시켜 버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넷째로,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8:17); 여호와께서 뱀과 독사를 선민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물게 하면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치유를 받을 수가 없다고 하는 말씀입니다(8:17c). 여기서의 앗수르, ‘독사신바벨론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기술이나 법칙으로는 치유와 구원이 불가능합니다(8:17b). 그렇지만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가능하십니다(8:17a). 그와 같은 복음의 시대를 바라보게 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600년 전에 기록이 된 선지자 예레미야의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의 멸망 가운데에서도 성도들은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3:16-17). 그것이 변함이 없는 여호와의 뜻이라고 하는 사실을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8:17a)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벌써 민수기 제21장에서 모세의 놋뱀 사건으로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21:6-9).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성육신하셔서 공생애를 사시면서 하나님의 복음으로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4-15). 그것이 여호와께서 주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죄 사함과 영생구원이라고 하는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복음사역의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