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43강(렘7: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7월 3일(화)
예루살렘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과 선민들이 보고 있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렘7:8-11)
본문의 마지막 구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선민들이 예루살렘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고 질책을 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7:11).
그 대목은 600여년 후 선민사회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성전을 청결하게 하고자 하실 때에 말씀하신 내용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21:12-13).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본문에 있어서는 어째서 선민들이 예루살렘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고 하는 질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선민들이 율법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과 이웃들은 사람의 내심을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신앙심을 단지 세상적인 평판과 겉으로 드러난 율법행위만을 가지고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고 평가하고 있는 개인의 신앙생활과 이웃사람들이 보고서 평가하고 있는 그 자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다릅니다.
(2) 둘째,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성전에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선민들을 향하여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아무 소용이 없는 사람들의 안목과 평가를 의지하여 스스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십니다(렘7:8, 10a).
(3) 셋째, 거짓말을 믿고서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 신앙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렘7:8). 예를 들면, 십계명을 모두 어기고 있으면서도 예루살렘성전에 들어와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거짓말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렘7:8-10).
(4) 넷째, 여호와께서 미워하는 일을 버젓이 선민들이 행하고 있습니다(렘7:10b). 우상을 섬기면서도 겸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다고 믿고 있으니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하나의 우상으로 취급하고 있는 교만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가증스러운 모습이 종교지도자와 이웃에게 숨겨져 있기에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눈도 속이고 있다고 스스로 자신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호와의 구원을 훔치고자 하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가증스럽다는 말씀입니다(렘7:11).
위와 같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훗날 예수님께서 인용하시면서 동시에 이사야의 기록을 원용하고 계십니다. 그 내용은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예루살렘성전에 들어와서 기도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선민들이 조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56:6-7). 그런데 그러한 이방인에 대한 여호와신앙의 전파가 선민사회에서 전혀 없으니 그것이 자신들만 여호와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하는 강도와 같은 행위라는 통렬한 지적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렘7:8);
(1) 선민 유대인들의 가장 큰 신앙생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단 한마디로 명쾌하게 여호와께서 지적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무 효력이 없는 거짓말을 의존하여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렘7:8).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 첫째, 사람들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시는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선민들이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내심을 투시할 수가 없는 편리한 우상을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우상에게 제물을 많이 드리고 소원을 빌기만 하면 성취가 된다고 하는 참으로 간편한 절차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만만한 신앙생활을 선호하고 있는 선민들입니다.
2) 둘째, 피조물인 인간의 구원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는 선민들이 동시에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청종하고 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의 주장은 우상을 섬기는 자라고 하더라도 성전예배와 제사에 참여하기만 하면 모든 죄가 깨끗하게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값싼 거짓 구원을 말하고 있는 거짓선지자의 말을 달콤하게 듣고서 율법생활을 사람들 앞에서만 행하고 있는 어리석은 선민들입니다.
(2) 그렇다면 선민들이 어떻게 하면 여호와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그 대답은 심히 간단합니다;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조금 더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신실한 종은 주인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실천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세상적인 이치는 그 다음의 순위입니다.
2) 둘째,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시며 자신의 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하고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3) 셋째, 그리하면 우상을 섬겨서 얻을 수 있는 가짜 구원과 세상적인 소원성취가 아니라 진실로 창조주 여호와께서 주시는 부활과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넷째, 설혹 선민의 나라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신실한 종들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을 따르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니라”(렘7:9-10);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을 따르면서”(렘7:9);
1) 출애굽기 제20장에는 십계명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과 순서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제1-4계명까지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출20:1-8).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인 계명입니다. 그 내용은 ①다른 신을 두지 말라. ②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③여호와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지 말라. ④안식일을 여호와 앞에서 거룩하게 지켜라 등입니다.
2) 둘째, 사회적인 계명이 제5-10계명입니다. 그 내용은 ①부모를 공경하라. ②살인하지 말라. ③간음하지 말라. ④도둑질하지 말라. ⑤거짓 증거하지 말라. ⑥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등입니다. 위와 같은 십계명의 순서와 비교를 하면 본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①사회적인 계명에 속하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제8계명을 가장 앞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강조 용법입니다. ②종교적인 계명 가운데 우상인 바알을 만들어 섬기는 것과 악한 영을 잘 알지도 모르면서 세상적인 욕심과 육신적인 탐욕에 이끌려서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선민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도둑질을 하는 것, 그리고 우상에 불과한 바알을 섬기는 것 또한 악한 영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신인 줄 알고서 따르고 있는 것 등의 3가지 큰 악이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 결과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지 그 다음 구절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2)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렘7:10a);
1)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서 그 이름을 두신 집이 바로 예루살렘성전입니다(왕상9:3a). 그 집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성전에 예배를 드리고자 찾아오는 선민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왕상9:3b).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므로 피조물인 사람들의 속마음과 그 행위를 모두 살피시고 여호와의 기준에 맞으면 영생의 구원을 주실 수가 있는 분이십니다.
2) 그런데 선민들은 예루살렘성전에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들어오고 있지마는 성전 바깥에서 그들이 행하고 있는 앞 구절과 같은 구체적인 죄악 때문에 도저히 여호와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여호와 앞에 서서 감히 구원을 얻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구원을 도대체 이 피조세계 어디에서 얻게 되었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거짓말입니다.
3) 선민들이 그것을 거짓말인 줄 모르고 있다고 한다면 그들을 속인 거짓선지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영체인 신과 사람이 만든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기면 더 쉽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우상을 섬기더라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십계명을 어기더라도 구원을 능히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엄청난 거짓말까지 버젓이 하고 있습니다.
4) 거짓선지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달콤한 거짓말은 다음과 같은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으며 아무리 악인이라고 하더라도 성전예배와 제사에 참석만 하면 전부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 비추어보면 완벽한 거짓말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5) 훗날 발생하게 되는 니골라 당의 이론이 거짓선지자의 주장과 같습니다(계2:15). 쾌락주의자로 불리는 그들은 육신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죽을 죄악을 많이 지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영적인 구원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육신을 벗고 그 영혼만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썩어지는 육신이 지은 죄는 심판의 대상이 되지를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쾌락을 즐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따르더라도 자신의 영적인 구원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거짓말은 헬라철학에 있어서 영과 육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원시적인 영지주의 이론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6) 그러나 그것은 두가지 점에서 완전한 거짓말입니다; ①첫째, 진리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의도와 능력을 함께 보십니다. 즉, 사람의 마음속의 죄악과 행위적인 범행을 함께 보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육신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생기까지 영으로 불어 넣어 주십니다(창1:26-27, 2:7). 그러므로 인간은 영과 육이 하나로 되어 있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과 육을 완전하게 분리하여 구원을 논할 수가 있겠습니까?
7) ②둘째,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여호와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는 죄인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제사에 근거하여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주님의 제자인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육신을 입고 있는 생애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남아 있는 인생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고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온 세상에 보여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빌1:24). 더구나 주님의 이름으로 중보기도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생의 구원을 얻어서 영원히 누리게 되는 성도의 이 세상에서의 헌신의 모습입니다.
(3)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니라”(렘7:10b);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루살렘성전 안에서만 계시고 성전 바깥의 일에 관해서는 일체 살피지 아니하고 계시는 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성전 바깥에서는 온갖 악을 행하면서 성전 안에 들어와서는 경건하고 믿음이 좋은 척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가증한 신앙생활을 버젓이 행하면서 선민들의 율법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준엄한 책망이 있게 됩니다(마23:1-36).
셋째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7: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렘7:11a);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도둑질을 하더라도 많은 제물과 재물을 드리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고 구원을 주시는 줄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성전 바깥에서 남의 것을 도둑질한 자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한 채 여호와께서 보고 계시는 성전에 예배를 드리겠다고 감히 뻔뻔하게 참석을 하고 있다는 질책입니다.
(2)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7:11b);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인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죄악 때문에 여호와의 섭리로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멀지 아니하여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왕하25:1-6). 그리고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재주가 있는 쓸만한 백성들은 모두 신바벨론제국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됩니다(왕하25:7, 11).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자초하고 있는 선민들입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선민들이 지니고 있는 그 죄악을 정확하게 보시고 멸망의 심판을 하시는 것처럼 이방인들에게도 그리고 미래의 세상나라와 백성들에 대해서도 그대로 시행을 하신다는 표현이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7:11b)라는 구절 가운데 정확하게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드신 유일한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인생과 역사의 섭리자이십니다. 지금도 자신의 종들이 피조세계를 여호와의 뜻을 따라 선한 청지기로 잘 다스리고 있는지 살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눈 앞에 모든 선민들과 성도들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같은 진리를 모르고 이방인들이 물질적으로 그리고 육신적으로 우상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약상의 선민들도 이방인들처럼 살아가다가 세상나라에 의하여 자신들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또한 성도들은 육신이 아무리 죄악을 범하더라도 영적인 구원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는 니골라 당의 목소리에 현혹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간 자들이 참된 성도들이며 영원한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마7:21).
그러므로 아무쪼록 본문의 말씀을 음미하시면서 자신의 마음의 옷깃을 바로 잡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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