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30(손진길 소설)
1996년 4월 11일(목)에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선거 개표과정을 상록회의 4친구는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 4인 가운데 절반인 두사람이 이번에 출마를 했기 때문이다. 이민욱과 조영백이 수도권에서 각각 야당과 여당 후보가 되어 선거전에서 끝까지 완주한 것이다.
이민욱의 선거구가 일산이고 조영백의 선거구는 고양이다. 서로 인접하여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2친구가 같은 지역구에서 맞붙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두사람의 친구인 강훈과 나아문은 이왕이면 모두 당선이 되기를 바라면서 개표과정을 보도하고 있는 실시간 뉴스를 계속 시청하고 있다.
밤늦게 당선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천만다행으로 2친구가 모두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당선자 다음으로 두 친구가 기뻐하고 있다. 그들은 두사람에게 축하전화를 낸다. 이제 야당인 이민욱은 재선의원이고 여당인 조영백은 초선의원이 된 것이다;
제15대 국회는 1996년 5월 30일에 개회하여 4년간 존속이 된다. 따라서 제15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그때부터 2000년 5월 29일까지이다. 그들은 4년간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고 재선을 위하여 2000년 4월 총선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흔히 제15대 국회가 한국에서는 ‘20세기 마지막 국회’라고 불리고 있다.
이민욱은 제1야당 소속이며 2선의원이므로 그에게 모처럼 본회의에서 국정전반에 관하여 국무총리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그때 이민욱은 과거의 노태우 정권과 현재의 김영삼 정권을 비교하면서 한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먼저 두 정권에 대한 이의원의 간략한 비교가 다음과 같다; “흔히들 노태우 정권이 잘한 것이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범죄와의 전쟁이고 또 하나는, 북방외교의 성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김영삼 정권은 민주화조치를 과감하게 실시하였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북방외교에 있어서는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
이민욱 의원의 질문이 시작된다; “저는 총리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북방외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일을 남북대화의 장소로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정부에서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차제에 총리께서는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수성 총리가 간략하게 답변한다; “요즈음 북한에서는 식량생산이 격감하여 소위 ‘고난의 행군’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에서는 북한동포의 굶주림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식량지원을 계속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이 있는 실향민들에 대해서는 제3국을 통하여 송금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동족애를 발휘함으로써 북한 김정일 정권을 대화의 마당으로 이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총리의 답변은 현장에서 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이 적어서 주는 페이퍼를 요령껏 읽는 것이다. 물론 행정조정실장은 뒷자리에 배석하고 있는 각 부처의 실무국장이나 차관보가 작성하여 주는 답변서를 수합하여 빨리 읽어보고 그것을 현장에서 즉시 다듬어서 총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답변이 상세할 수는 없다.
재선의원인 이민욱은 그와 같은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본회의장에서 총리에게 구체적인 정책내용을 질문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리고 총리로부터 자세한 답변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부여당에게 북한당국과의 협상에 좀더 신경을 쓰고 장차 남북간 통일의 길을 닦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정책을 개발하여 계속 시행을 하라는 권면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문제는 좀더 깊이 다루어 볼 필요가 있다. 이민욱은 1990년 여름 신문사 정치부 차장시절에 벌써 서독과 동독을 방문하여 통독에 관한 현지조사를 한 적이 있다. 따라서 1996년 가을 상록회 모임에서 그 문제를 친구들과 논의하고자 한다.
그때 공교롭게도 강훈이 자신의 신상문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한달 전에 입법부를 떠나 지금은 서울에 있는 K대학교 정치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전임으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어요. 여러 친구들이 많이 도와 주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강훈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실력 있는 정치학자가 이제는 대학의 교수로서 한국의 정계에 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야당의원 이민욱이 스스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남북한 통일문제를 거론한다. 그러자 여당의원 조영백이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나는 벌써 본회의장에서 이민욱이 발언하는 내용을 들었어. 좋은 질문이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내 생각을 차제에 말하자면, 그것은… “.
이민욱을 비롯하여 모두들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담담한 조영백 의원의 말이 들려온다; “노태우 정권에서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범죄와의 전쟁을 실시했다고 한다면 우리 김영삼 정권에서는 민주발전을 위하여 세가지 정책을 수행했지. 군부에 뿌리박은 사조직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와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제 실시 등이 그러한 것이야. 그러니 현정권이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지. 그 뿐만이 아니야… “;
국회의원이 되더니 조영백 변호사가 자신의 소신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94년 7월에 북한 김일성 주석과 만나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만 보름전에 죽고 말았어. 따라서 95년부터는 장차 김정일과 평화협상을 하기 위하여 정부여당은 북한주민을 도와주는 일부터 추진하고 있어. 나는 나중에 그 성과를 목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 말을 듣고 있던 이민욱 의원이 한마디를 보태고 있다; “여와 야를 떠나서 영백이 말에도 일리가 있어. 내가 1990년에 통일 직전의 서독을 방문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독에 대한 서독의 재정적 지원이 통독을 앞당기는 순기능을 한 것이 사실이거든… “;
그 말에 조영백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민욱아, 고맙다. 여와 야의 입장을 떠나서 너는 여전히 훌륭한 정치부기자이고 저널리스트이구나. 소속에 상관없이 맞는 것은 맞다고 말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고 있으니 장차 국회의장 감이구나. 그렇게 정도를 걸어간다면 내가 성심성의껏 밀어주마, 하하하… “.
그날 조영백의 말을 듣고 강훈과 나아문 그리고 이민욱이 오래간만에 파안대소를 한다. 역시 오래된 친구가 좋은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이고 사회에 진출하여서도 20년 넘게 상록회 모임을 계속하고 있으니 그들은 정파의 입장을 떠나서 모두가 동지인 것이다. 그렇게 1996년이 지나가고 있다.
1997년이 되자 2월달에 북한의 노동당 국제담당 서기인 고위직 황장엽이 한국으로 망명해 온다. 그는 북한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한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황장엽의 망명사건을 보고서 한국민들은 남북간의 체제경쟁에서 한국이 완전한 승리를 얻은 것으로 지레짐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을 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강훈의 견해는 다르다. 그가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경수로에서 사용한 핵물질을 재처리하여 소량이지만 플루토늄239를 계속 비축하고 있다. 그것으로 장차 핵무기를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
서울공대 출신인 강훈이므로 그의 견해는 확고하다; “대를 이어 이제는 김정일이 비밀리에 그 일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핵무기를 가지게 되면 북한정권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따라서 황장엽의 망명사건에 너무 도취가 되는 것은 안보상 단견이며 위험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를 건설해주는 공사를 8월에 착공하고 있다. 그 명분이 북한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서 애로사항이 많으므로 한국에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주면 핵사찰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강훈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이 아니다. 북한의 능숙한 속임수에 한국정부가 순진하게 속고 있다. 강훈은 입맛이 쓰다.
그런데 국회 경제관계위원회에서 오래 입법관료로 일한 강훈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더 위험한 일이 1997년에 발생하고 있다. 그것은 중공이 죽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개방과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한지 20년이 되는 지금 너무나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영국이 날로 비대해지고 있는 중공의 영향력에 견디지 못하고 오랜 세월 조차하여 사용하던 홍콩을 7월초에 반환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그대로 버려 두면 세계 유일의 패권국 미국이 일본과 중공을 쉽게 다루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강훈은 미국이 일본과 중공의 경제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방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자주 중얼거린다; “그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 어떠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가?... “;
국제정치와 경제를 연구하고 있는 강훈 교수의 눈에 1997년 6월달에 이상한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국내에서 한신공영그룹이 갑자기 부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환보유고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제에 어두운 김영삼 대통령이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연말에 실시되는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당에서는 대권후보경쟁이 치열이다. 모두들 경제현실에 둔감한 것이다;
먼저 여당인 신한국당을 박차고 나간 인물이 이인제 경기도지사인데 그는 9월에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신한국당에서는 이회창이 대선후보가 되면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당을 떠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11월달에 YS가 당을 떠나자 이회창은 얼른 신한국당의 이름을 한나라당으로 바꾸고 만다;
그 이유가 걸작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에 어두워서 그만 나라경제를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으므로 그와 결별을 하고 이회창은 한나라당을 이끌고 새로운 한국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눈감고 아웅하는 격이다.
그런데 엄연한 현실은 외환보유고가 너무나 부족하여 한국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깊이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뒤늦게 김영삼 정부가 11월 21일에 국제통화기금 IMF에 긴급구제를 요청한다. 국제통화기금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다. 먼저 한국정부에 경제갱생정책을 추진하도록 종용하면서 12월 3일이 되어서야 긴급구제에 나선다.
그들이 지체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 월가에 자리잡고 있는 국제금융기관의 ‘헤지펀드’가 한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도록 사전에 그 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강훈이 짐작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민들은 나라경제를 되살리고자 금붙이를 모으고 재미교포들은 한국에 달러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한 눈물겨운 일들이 11월과 12월에 진행이 되고 있는 가운데 12월 19일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제1야당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고 있다. 그는 이듬해 2월 25일에 취임하게 되면 과연 어떠한 정책으로 한국경제를 되살릴 것인가?... 상록회 인물들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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