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3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7. 10. 15:17

너와 나의 공화국32(손진길 소설)

 

199811월말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정릉 골짜기 K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로 지내고 있는 강훈의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온다. 점심식사를 일찍 끝내고 교수실로 들어와서 뉴스위크 잡지를 보고 있던 강훈이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통하여 반가운 절친 조영백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훈이냐? 나 영백이야. 오늘 좀 만나볼 수 있을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 강훈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어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강훈이 머뭇거리지 아니하고 바로 대답한다; “나는 오전에 강의를 끝내고 지금은 쉬면서 뉴스위크 잡지를 읽고 있는 중이다. 학기중이라 내가 움직일 수는 없지만 네가 내 교수실로 찾아오는 것은 환영이다. 언제 오겠니?... “.

조영백이 활기차게 말한다; “조금 후에 바로 출발할 거야. 넉넉잡고 한시간만 기다려 다오. 그러면 네 교수사무실에서 보도록 하자”. 50분쯤 지나자 정말 조영백이 문에 노크를 하고 들어온다. 반갑게 인사를 한 다음에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조영백이 말을 꺼낸다.

그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훈아, 사실은 내 처가에 재종 숙부가 한 분 계시는데 그 분의 성함이 권영해. 지금 무척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어. 그래서 오늘 내가 그 문제를 상의하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온 거야… “.

그 말을 듣자 강훈이 얼른 묻는다; “그 이름은 전직 안기부장으로서 지난 봄에 검찰조사를 받은 인물이 아니냐?... “. 그 말에 조영백이 조용히 고개를 끄떡인다. 그 다음에 강훈의 눈을 쳐다본다.

그리고 조영백이 천천히 설명을 시작한다; “권부장은 작년에 대선을 앞두고 DJ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하여 북풍공작을 했다는 죄명으로 지난 봄에 잡혀 들어가서 곤혹을 치르고 있지. 오죽 견디기 힘들었으면 수사중에 자해소동까지 벌였을까?... “;

조영백이 잠시 한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나는 그 소동을 바라보면서 한가지 이상한 생각이 들고 있어. 그것은 단순한 북풍공작에 대한 수사 이상의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예를 들면, YS정부와 지금의 DJ정부가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케이스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

그 말을 들으면서 강훈이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조영백이 천천히 질문을 한다; “한국정치론을 강의하고 있는 훈이 네가 보기에는 이 사건이 어떠한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오늘 너를 찾아온 것이야… “.

강훈이 조영백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서 또박또박 말한다; “좋은 지적이야. 역시 국회의원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군. DJ가 보기에는 YS가 일종의 변절자로 보일 거야. 그 이유는 신군부 출신 노태우 대통령과 3당합당을 하고 그 덕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 바로 YS이거든… “;

잠시 말을 멈춘 다음에 강훈이 이어서 말한다; “그와는 달리 DJ정권은 결코 군부와 야합하지 아니한 진짜 국민의 민주정부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싶어하지. 그러니 권부장의 북풍공작이야 말로 그 차이를 극명하게 밝혀주는 가장 좋은 케이스가 아니겠어… “.

그 말에 조영백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역시 내 짐작이 맞는 것 같군. 그렇다면 말이야. DJ정권은 앞으로 안기부를 어떻게 개편하고 북한과의 대화는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그 점이 궁금해… “.

강훈이 조금 생각을 하다가 대답한다; “YS정권이 스스로 국민이 선택한 문민정부라고 주장했다면 DJ정권은 국민에게 모든 것을 개방하는 투명한 민주정부라는 점을 강조하겠지. 따라서 안기부를 축소할 것이고 가능하면 정부활동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보여주고자 할 것이야. 그런 점에서 북한과의 협상도 투명한 절차를 거쳐서 진행하겠지.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거야”.

그날은 그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조영백 의원이 여의도 국회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다음 정국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조영백은 강훈 교수의 말이 사실인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에 의하여 19983월에 안기부장이 된 종로구 출신 4선의원 이종찬이 이듬해 곧 19991월 하순이 되자 안기부의 조직을 축소하여 국가정보원으로 새출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 부총리급이 수장으로 있던 통일원을 축소하여 통일부로 만들고 남북협상에 있어서 통일부장관이 국정원장과 함께 손발을 맞추도록 조치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물밑 막후협상이 아니라 이제는 소위 햇볕정책을 당당하게 국책사업으로 시행하는 공개적인 남북협상의 광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성과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그 즈음 여당 재선의원인 이민욱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1980년대 후반 북방외교의 결과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국방관계 현물상환의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그가 관심을 가진 이유는 노태우 정권 때 소련에게 제공한 차관 147천만불을 현금으로 받지 못하고 그 대신에 소련이 자랑하고 있는 군사장비로 1991년에 그 일부를 대신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김영삼 정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하나의 차이점은 과거 소련의 모든 부채를 승계하고 있는 러시아로부터 1995년부터 무기류와 국방산업자료를 받아서 그것을 가지고 무기체계를 국산화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름하여 제1불곰계획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 이민욱 의원이 한가지 깊은 생각에 잠기고 있다; “러시아의 무기류는 조금만 개량하면 당장 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얻은 첨단 국방산업의 자료는 당장은 사용이 어렵다. 국내의 민생 및 방위산업의 수준이 그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

 이민욱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훗날 우리나라의 전자산업과 기계산업이 크게 발전하면 반드시 방위산업측면에서 소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 그러니 이왕이면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첨단 국방산업의 자료를 차제에 많이 획득할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국방위원인 이민욱이 국방부장관은 물론 국방과학연구소 ADD의 책임자를 차례로 만나서 의견을 교환한다;

그 결과 그러한 방향으로 러시아와의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21세기에 들어와서 십 수년의 세월이 흐르자 한국의 방위산업의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게 되는지 그때는 정말 미처 알지를 못했다.

한편 이민욱은 남북정상회담의 추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민욱은 정치부기자 생활을 오래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 옛날 DJ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고려연방제를 추진하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구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또한 그 내력을 알고 있는 북한 당국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렇게 이민욱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1999 9월에 북한 외무상 백남순 색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금의 남북 관계는 최악이지만 7·4 성명의 3 원칙을 존중하고 자신들의 협상 제의에 응한다면 정상회담도 진행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주장의 진의가 곧 밝혀지고 있다. 현대그룹 왕회장으로 여전히 불리고 있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10 초에 방북하여 북한의 김정일 최고지도자를 만나고 남북경협사업에 큰 합의를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2000년에 들어서자 정주영의 아들인 현대그룹 정회장이 문화부장관인 박지원과 통일부장관인 임동원을 만나서 북한의 김정일이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극비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다소의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2000612일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는 하루가 늦은 613일에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공항에 도착하여 김정일을 만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이민욱은 김대중 대통령을 북한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김정일의 속셈을 나름대로 짐작해본다;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대통령과 북한의 개방 및 경제발전에 관하여 논의하면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목적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또다른 목적이 숨어 있다고 본다. 그것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벌고자 하는 것이다… “.

이민욱 의원의 정치적인 촉이 날카롭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 6.15선언을 하고 8월에는 개성공단 건립에 합의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평화공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북한 당국이 자꾸만 시간을 질질 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속셈은 따로 있다. 그것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따가운 감시의 눈초리와 의구심을 남북간의 해빙무드로 효과적으로 무마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은 공산주의이론에도 없는 왕조정치를 주체사상이라고 떠벌리면서 시대착오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장 우선적으로 핵무장이 긴요하다.

따라서 핵무력을 완성할 때까지 어떤 계책을 사용하여서라도 시간을 벌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속셈은 과연 훗날의 역사 가운데 어떻게 성취가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