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2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7. 6. 21:27

너와 나의 공화국29(손진길 소설)

 

김영삼 대통령은 20대 중반에 고향 거제도에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어 정계에 진출한 이후 대통령에 당선이 될 때까지 다선의원으로서 오래 정치를 해온 인물이다. 그는 정치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두가지가 돌아가는 것을 관찰하고 그 해답을 얻어야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민심의 향배를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또 하나는, 정계에는 여야가 있으므로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가 있다;

한국의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은 북한의 핵문제를 장관 선에서 실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자 과감하게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제안을 했다. 조건 없이 만나서 남북한 정상이 민족의 활로를 개척하자는 것이다. 그에 김주석이 화답하여 1994725일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가 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78일에 김주석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받은 김정일은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기에 바빠서 남북정상회담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큰 기대를 가지고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고 있던 한국민들은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져들고 있다. 그와 같은 민심의 변화를 김영삼 대통령이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국민들에게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다시 열어줄 수가 있을 것인가?’, 김영삼 대통령이 장고를 한 결과 그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그것은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일이 자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남북간에 가족상봉이라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특히 김대통령의 고향이 거제도이다. 그곳에는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가 있었고 1.4후퇴 때 미군의 배를 타고 월남한 북한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젊은 시절 고향에서 실향민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이 커다란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고 김대통령이 현실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89~95 2,719 성사

중앙일보

입력 1996.01.20 00:00

지면보기지면 정보

89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지침이 시행된 이후 95년까지 2284가족이 이산가족 접촉을 신청,이중 32% 739가족이 제3국의 친지나 교류알선단체를 통해 재북(在北)가족의 생사확인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통일원은 19일 발간한 「통일백서」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밝히고, 89년부터 95년까지 모두 2719건의 직접상봉이 성사됐다고 말했다.또 이산가족이 접촉한 제3국으로는▶중국이 54%로 가장 많았고▶미국(33%)▶일본(6%)▶캐 나다(3%)등의 순이었다.접촉방법은▶해외동포 이용(86%)▶교류알선단체 이용(13%)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제는 그 일을 맡아서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안기부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김영삼 대통령은 일찍이 군부에서 하나회를 뿌리뽑는데 있어서 손발을 맞춰본 바가 있는 권영해 전 장관을 19941224일에 안기부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에 따라 권부장은 이듬해 1995년부터 비밀리에 그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것이 엄중한 일이라 1994년말에 자신을 방문한 조카사위 조영백 변호사에게도 끝까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함구한 것이다.

특히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수완이 뛰어난 밀정이 필요하다. 권부장은 안기부의 공작원들 가운데 가장 솜씨가 좋은 인물들을 물색하여 활동자금을 충분하게 제공하면서 비밀지령을 내렸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중국을 거쳐서 북한에 들어가고 마침내 평양에 들어가서 김정일을 만나게 된다.

북한의 새로운 통치자 김정일로서는 외화벌이가 절실하다. 따라서 돈을 받고 중국 등지에서 남북이산가족을 상봉하게 하고 아울러 남한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는 북한의 산수화나 토산품도 비싼 값으로 팔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199510월에 쌀 15만톤을 육로로 대북지원을 하게 된다. 그와 같은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어서 그런지 권영해 부장은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안기부장을 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권부장의 호출을 받고 안기부장실을 더러 방문하던 조영백 변호사가 1995년 가을이 되자 특이한 제안을 한다; “숙부님, 제가 개인적으로 특청이 하나 있습니다. 한번 들어 보시고 아무쪼록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말끝을 흐리면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고 있는 것을 보니 조카사위 조영백의 태도가 평소와는 상당히 다르다. 따라서 호기심이 생긴 권영해 부장이 조변호사의 눈을 쳐다보면서 일부러 호기스럽게 말한다; “허허, 자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행동이 조심스러운가? 평소 당찬 자네 답지 않구만. 무엇이든지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확실하게 돕겠네. 그러니 시원하게 한번 말해보라고… “. 

그 말을 듣자 조영백이 비로서 또박또박 말한다; “숙부님, 저는 금년에 나이가 벌써 45살입니다. 이제는 국회에 한번 진출해보고자 합니다. 제 친구 이민욱3년전에 벌써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내년 4월 총선에는 여당의 후보로 나서 보고자 합니다. 제게 그 길을 좀 열어주십시오… “;

조영백 변호사가 안기부장인 처숙부를 믿고서 어렵게 꺼내고 있는 신상이야기이다. 그 말을 듣자 권부장이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생각을 끝냈는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잘 알겠네. 몇 달이 지나지 아니하여 여당에서도 제15대 국회의원 입후보자 등록을 받고 심사에 들어갈 것이야. 내가 사전에 YS 측근들에게 자네 이야기를 해두겠네. 그래 지역구는 어디로 하고 싶은가?... “.

구체적인 사항을 묻고 있으므로 조영백이 정확하게 말씀을 드린다; “제가 고향에서 출마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진작에 고향에 내려가서 변호사생활을 했으면 가능하겠지만 이제는 어렵지요. 그러니 제가 살고 있는 수도권이 좋습니다. 저는 2년전에 벌써 서울 강북에서 고양시로 이사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곳이 좋습니다… “;

그 말을 듣자 비로소 권부장이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대답한다; “알겠네. 서울시내도 아니고 교외지역이라고 하니 한번 내가 힘을 써보겠네. 서울대 출신에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얻고 있는 자네이니 공천을 얻기에 크게 어렵지는 아니할 것이야.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도 국회에 조카사위가 입성하여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든든하거든, 하하하… “.

조영백은 안기부장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국회의원에 출마를 하면서 실감하고 있다. 정말 수도권에서 자신이 여당후보로 낙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여러 곳에서 스폰서가 나서서 선거운동에 자금이 부족하지 아니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1996411()에 제15대 총선이 실시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민욱 의원은 이제 김대중 총재가 만든 정당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으로 재선에 도전하고 있다. 그리고 조영백 변호사는 여당인 신한국당의 후보로 초선에 도전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자 절친사이도 서로 정치적인 입장이 여야로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199512월 중순에 모인 상록회 모임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가장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이 뜻밖에 나아문 부장검사이다.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민욱이 너는 지난번엔 정주영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 공천으로 초선이 되더니 이번에는 김대중 총재가 만든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으로 재선이 되려고 하는 구나. 계속 야당의원이 되겠다고 하니 지조가 있어서 좋구나야… “;

그것이 칭찬인지 아니면 야유인지 절친인 이민욱으로서는 조금 아리송하다. 그래서 그의 답변이 다음과 같다; “공안부장 나리께서 보시기에는 다소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몰라도 국회의원은 역시 야당의원이어야 할 맛이 난다고 하는 것이 여의도 의사당에서는 상식이야. 그러니 이왕이면 야당의원을 해야지. 안 그래 모두들, 하하하… “.

그 말에 강훈이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우리 국회직원도 여당의원보다는 야당의원을 모시기가 더 어렵지. 그러니 내 친구 이민욱 의원이라도 재선이 되어 다시 국회에 입성을 해야 내가 좀 기를 펴고 살 것 같아. 이번에도 잘해 보라구, 하하하… “.

그러자 이번에는 조영백 변호사가 한마디 한다; “, 훈이 너는 내가 여당후보로 나서고자 하는데 그러면 내가 민욱이 보다 못하다는 말이냐? 이거 섭섭하게 들린다야, 하하하… “. 그 말에 강훈이 즉시 대답한다; “아이구, 나는 복도 많지. 여야에 각각 절친을 내년에 상전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내 앞길이 훤하게 되겠구만, 하하하… “.

갑자기 나아문강훈을 보고서 말한다; “훈이 너는 벌써 정치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국회에서 의원들 보좌만 하고자 하니?... 친구들이 상전으로 들어오면 네 신세가 처량해지지 않겠니?... 그러니 이번에 한번 출마를 해보지 그래... “.

그 말을 듣자 강훈이 정색을 하고서 말한다; “아문이 네가 검사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듯이 나도 정치학을 연구하고 한국정치의 발전방안에 관하여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좋아. 그렇지만 이제 여의도 국회로 친구들은 물론 후배들까지 많이 들어오게 되었으니 차제에 나도 자리를 옮겨야지. 그래서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자리가 나는지 나름대로 알아보고 있어. 결정이 되면 나중에 알려주도록 하겠네… “.

그 말을 듣자 모두들 고개를 끄떡인다. 강훈은 정치학자로 일하는 것이 더 적성에 맞을 것으로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는데 해가 바뀌고 1996411일 목요일에 총선이 실시될 때까지 여야간에 선거전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서로 과반의 의석을 얻기 위하여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4년전 총선에서 과반수에서 1석이 부족한 149석을 얻은 여당은 이번에는 기필코 150석 이상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제1야당인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는 100석 이상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밖에 제2야당인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은 50석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총선결과 여당인 신한국당은 기대에 못 미치는 139석을 얻고 있다. 그것은 총선 직전에 146석이던 것이 7석이나 감소한 실적이다. 그와 달리 제1야당과 제2야당은 크게 약진하고 있다;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가 79,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이 50석을 차지한 것이다. 그것은 총선 전보다 26석과 21석이 각각 증가한 것이므로 야당의 총재들은 내년말에 있게 되는 대선에서 정권교체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들을 벌써 하고 있다. 과연 그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