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공화국(손진길 소설)

너와 나의 공화국2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7. 4. 07:11

너와 나의 공화국27(손진길 소설)

 

1993225일에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여 1998224일까지 5년간 국정을 담당하는 사이 국내외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신군부 세력에 대한 정리문제를 비롯하여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금융실명제 및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제의 실시 등이 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제1차 핵협상이 있고 유동성 함정에 빠져버린 한국경제를 되살리기 위하여 해외자금을 빌려오는 문제 등이 대두하고 있다. 그와 같은 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계절마다 열리고 있는 상록회 모임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강훈, 이민욱, 조영백, 나아문은 전원 출석하고 있다.

그런데 강훈5년간 계속되는 김영삼 정권을 둘로 나누어 전반기와 후반기로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고 애초에 그 모임에서 제안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입법조사관으로서 행정부처의 활동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예산, 집행, 결산이라고 하는 3년 기간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영삼 정권도 전체기간이 5년이므로 약간 겹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2번의 주기를 가지게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강훈이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김영삼 정권의 전반기 실적이 다음과 같다;    

(1)  1993년부터 김영삼 정권이 군부 내의 하나회 정리문제와 12.12 5.18사건의 처리문제에 매어 달리고 있는 사이에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영변 원자력연구소의 소형 원자로에서 얻은 핵폐기물을 암암리에 재처리하여 핵폭탄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239 물질을 얻는데 열중하고 있다. 혹시 북한이 핵무장을 하기 위하여 그러한 암중모색을 하고 있을지 몰라서 미국은 비밀리에 항공촬영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감시망에 그러한 징후가 포착되고 있으므로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 IAEA를 통하여 핵사찰을 실시하고자 나선다. 그러나 김일성 정권은 그 요구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한마디로, 북한은 자신들이 신봉하고 있는 주체사상에 위배가 되는 국제사회의 부당한 간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  그렇지만 아직 핵무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소국에 불과한 북한이 언제까지나 세계의 단독패권국이라는 미국과 세계적인 핵확산을 우려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회피할 수는 없다. 그 결과 김일성 정권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사전에 재처리시설과 플루토늄 239 물질을 전부 숨겨버렸다고 하면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는 핵사찰이 가능한지를 두고서 IAEA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주변국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자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비핵화라고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충분한 국제적인 압력을 행사한다는 합의에는 여전히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만약 6자회담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참여국이 반반으로 나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3)  내부적으로, 미 일 한3국 그리고 중 러 북3국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으니 실효성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한 불투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주한미군의 핵을 먼저 한반도에서 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안보는 이제 주한미군이 아니라 멀리 한반도 바깥에 배치되어 있는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멀리 일본의 남단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핵무기 또는 공해상을 떠돌고 있는 미국 항공모함에 탑재되어 있는 핵무기만을 의지하고 있게 되니 그것이 거리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공산진영에서 한국의 주요도시에 핵공격을 감행할 경우 미국이 그에 맞서 얼마나 즉각적으로 핵보복능력을 발휘하여 줄지는 정치적으로 불확실한 시대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슬로건을 강조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은 영어에 능숙한 한승주 외무부장관을 내세워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4)  그러나 그 문제가 실무장관의 선에서 해결될 수는 없다. 그 점을 확인하고서 김영삼 대통령은 과감하게 북한의 주석 김일성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짓겠다고 나선다;

 그렇지만 남북한 수뇌가 직접 만나 현안을 매듭짓는 것을 주변국들은 다른 입장에서 서로 자신들의 손익을 계산하기에 바쁘다. 그 누가 자유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힘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최전방 한반도에서 갑자기 완충지역’(buffering zone)이 사라지는 것을 용인할 것인가?... 한국과 북한이 더 이상 국제사회의 희생양이 되지 아니하겠다고 서로 합의하여 종전선언과 더불어 평화선언이라도 하고 나서면 그 사태를 환영할 주변국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한반도 대신에 그들 주변의 강대국들이 서로 국경선을 맞대고 대적해야 하므로 국방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대규모 전쟁의 위험성도 엄청나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 일 중 러는 언제까지나 같은 민족인 한국과 북한이 한반도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이념적으로 원수가 되어 계속 으르렁 대기를 바랄 뿐이다.  

계절적으로 열리고 있는 상록회 모임에서 강훈이 예리하게 그러한 문제를 나름대로 분석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벌써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하고 1994년 중반에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내정치의 변화는 물론 국제문제와의 연결성을 설명하고 있는 그의 논리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다.  

게다가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보름 남짓 남겨둔 극히 미묘한 시점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은 한국나이로 83세이지만 건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는데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장소가 묘하다. 평양 중심에 있는 주석궁이 아니라 멀리 묘향산에 있는 별장에서 199478일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문제를 7월 중순에 모인 상록회에서 4사람이 다각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은 물 건너가 버렸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국가원수가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고 현안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천금과 같은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특히 한국나이로 67세인 민주투사 김영삼 대통령과 83세인 북한의 유일한 주석 김일성은 젊은 시절부터 정치를 한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서로 의기가 투합하고 정치 10단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한 가닥 민족의 앞날을 개척할 수 있는 합의를 할 것으로 보았는데 그것이 그만 허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다들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데 이민욱 의원이 조용하게 말한다; “한동안은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이 자신의 통치체제를 완전히 굳히기 위하여 남북협상에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야. 그렇지만 김정일은 일찍부터 대리청정을 해온 인물이므로 그 기간이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는 아니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어. 또 기회는 찾아올 것이야… “.

그 말을 듣자 나아문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나는 이제 남북협상은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새로운 지도자 김정일은 자신이 선친 김일성만큼 뛰어난 영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주체사상을 강화하는 한편 핵무장을 서두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지. 국제적인 압력을 모두 물리치고 비밀리에 핵무력을 완성한다고 하면 그것이 북한 인민들을 감동시킬 것으로 나는 보고 있어… “.

범법자들을 많이 다루어 본 공안부장 나아문이기에 그는 소위 마피아의 보스가 어떠한 영웅적인 선택을 하는지를 벌써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는 김정일 정권이 어떠한 정책을 펼지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자 조용히 조영백강훈이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 가운데 조영백이 먼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백두혈통이라고 하는 김일성 가문이 다스리고 있는 북한이다. 그러므로 선친의 유훈이라고 하면서 비밀리에 핵무장을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지. 그러니 그에 맞서자면 우리도 비핵화만 강조하지 말고 자체 핵무장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해. 강도는 총을 들었는데 가장이 부엌칼을 들고 맞설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

강훈이 한마디를 하려다 그만 둔다. 조영백이 이미 강훈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한 것으로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논의를 하는 중에 벌써 1994년 한여름 밤의 어두움이 짙게 깔리고 있다. 40대 중반인 그들 4사람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가을 모임을 기약하면서 그렇게 다시 헤어지고 있다